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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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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로 되돌아온 남자는 매트리스 위에 그녀를 올려놓았다. 매트리스는 하얀 색의 요가 깔려 있었고 요는 민무늬의 부드러운 순면(純綿)으로 만들어진 제품이었다.
사냥감의 윤기(潤氣)나는 긴 머리채가 요 위에서 흐트러져 흑백 대비(對比)를 이루었고 그 모습을 남자는 잠시 감상하다가 그녀의 옷을 하나씩 벗겨나갔다. 자잘한 꽃무늬 칠부 가디건을 벗긴 후 뒷지퍼를 내려 하얀 원피스도 벗겨내는데 지퍼소리가 음울하게 들려왔다. 그 이유는 남자의 의도가 결코 좋지 못한것을 알기 때문이고 이후의 벌어질 일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겉옷을 모조리 벗겨내자 약간의 군살을 제외한 날씬한 몸이 드러났고 레이스가 달린 핑크빛 속옷이 그 위에 입혀져 있었다. 하얀 살결을 내보이며 봉긋한 형태의 가슴이 브래지어에 감싸여 있었고, 매끈한 복부 아래로 비밀스러운 그곳을 팬티가 감싸고 있었다. 음심(淫心)이 동할만도 하건만 남자는 무심하기 그지없었고 그녀를 보는 시선은 포식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남자는 어디선가 검정색의 기다란 천을 가져와 사냥감의 눈을 가렸는데, 그 천은 두껍고 불투명해서 빛조차 통과하지 못할 것 같았다. 끈의 매듭이 아주 튼튼하게 묶이도록 양손에 힘을 주어 당겼다. 그리고 천을 가져올 때 함께 들고온 굵게 꼬아놓은 밧줄을 사냥감의 가녀린 팔을 뒤로 꺽어 그녀의 손목에 묶었는데 매듭이 기묘해서 여간 쉬워보이지 않아 왠만한 힘을 주어도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친절하게도 밧줄로 묶기 전에 부드러운 천을 덧대어 피부가 쓸리지 않도록 해주었는데 참으로 쓸떼없고 가증스러운 친절(親切)이었다.
"흐음...보기 좋군."
한 여자를 발가벗기고 밧줄로 묶는 것이 어떠한 이유에 의거하여 보기 좋은 것인지 모르나 남자의 표정없는 얼굴을 들여다보면 정말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무미건조한 음성에 담긴 내용으로만 파악할 뿐 어느 것도 짐작할 수 없었다.
남자는 잠시 거처를 비워야했는데 혹시나 그만의 '거처'가 먹잇감의 행동으로 엉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녀를 포박한 것이었다. 그가 의도하지 않는 흐트러짐은 좋아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계획 하에 이루어지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일을 좋아하지 않은 편이었고 아예 원인의 싹을 살라버려 예방하기를 원했다.
남자는 사냥감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방안의 침대 위로 올라가서 이불까지 덮고 잠들었다. 아침이 다가올 때까지 푹 잠들었고 동이 틀 무렵에 정확하게 일어나 욕실로 들어섰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깨끗하게 흐르는 물로 씻었고 마른 수건으로 말끔히 물기를 제거시킨 후 젖은 머리도 욕실 안에 준비된 드라이기로 바짝 말렸다. 조금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을 훔쳐 쓰레기통에 버리고 젖은 욕실을 정리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나체로 나와 방으로 들어가서 옷장문을 열어 옷을 꺼내 입었고 단련된 육체가 노란 조명 아래 두드러졌지만 이내 옷 아래로 제 모습을 숨기었다.
옷까지 걸쳐입은 남자는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사냥감에게 다가가 약품을 묻힌 손수건을 한 번 더 그녀의 코에 갖다대었고 의식을 잃은 와중에도 호흡하는 숨결을 타고 약기운이 스며들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본 후 그녀를 매트리스 위에 내버려둔 채로 거처를 벗어났다. 밖으로 나온 남자는 다시 어디론가 향했고 목적지가 다가옴에 따라 남자의 성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냥감을 유혹할 때처럼 죽은 눈동자가 생기를 되찾았고 무표정에 표정이 생겨났다.
남자는 품에서 길죽한 케이스를 꺼내 열어 그 안에서 든 뿔테의 안경을 집어들었다. 반질하게 닦인 안경의 유리알이 반짝였고 이내 뿔테의 안경은 남자의 얼굴 위에 씌워졌다.
"가볼까?"
깔끔히 넘긴 머리칼과 총기 넘치는 눈동자, 그 위에 덮힌 뿔테의 안경, 단정한 복장은 어젯밤의 옴므파탈적인 남자의 분위기와 다른 유순하고 어리숙하게 바꾸었으며 범생적인 분위기를 생성하였다. 멀끔한 인상이 훈훈하면서도 평범한 학생처럼 보이게 했다.
남자는 묘한 말을 뒤에 남긴 채 다리를 움직여 코앞에 있는 목적지로 들어섰고 그 목적지는 커다란 도서관이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무언가를 손끝에 발라 문지르고 손끝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만족스러운 눈빛을 내비추었다. 도서관의 유리문 손잡이를 잡고 밀어 안으로 들어가 도서관 로비 측면의 안내 게시판 앞에 섰다.
게시판에는 도서관 관련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고 각 층별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 있었다. 남자는 그 안에 게시된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읽고 머릿속에 담아 기억했다.
이윽고 멈춰선 걸음을 걷기 시작했으며 도서관 중앙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2층에 올라선 남자는 벽에 붙은 표지판을 흘긋 쳐다보고 표지판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고 2층 안에 있는 도서실에 들어가 입구부터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옮겨지는 시선에 얽히는 모든 것이 남자에게 흡수되는 것 같았다.
* * * * *
고여있던 공기가 빠져나가고 새로운 공기가 집안으로 들어섰다. 도심의 대로변에 위치한 탓에 그다지 좋지 못한 공기였지만 안에 갇혀 있는 탁한 공기보다는 신선했다.
물건 위에 쌓인 먼지를 대충 닦아내고 슈트케이스를 눕혀 장착된 장금장치의 비밀번호를 짜맞추어 열었다. 케이스 안에는 한국에서부터 챙겨간 몇벌의 옷들과 중국에서 가져온 몇가지 마른 식품들, 면세점에서 사온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고 쑨양은 손에 움켜쥐는대로 밖으로 끄집어 냈다.
부피가 가장 큰 옷들 제외하면 별다른 짐이 없었기 때문에 금세 끝이 났고 텅빈 슈트케이스는 닫아 한쪽에 치워놓았다. 끄집어 낸 물품 중에서 옷들을 집어들고 빌트인 드럼세탁기의 뚜껑을 열고 집어넣은 후 빨래 바구니를 뒤져 전부터 쌓아둔 빨래감들도 세탁기 안에 던져 넣었다.
뚜껑을 닫은 다음에 드럼세탁기용의 세제를 넣고 전원 버튼과 실행 버튼을 누르고 해당코스까지 눌러 세탁기를 돌렸다. 모터 소리와 물이 채워지는 소리를 들으며 바닥에서 뒹구는 물건들을 정리했다. 마른 식품은 라면따위를 보관하고 있는 찬장 안에 넣었고 면세점에서 산 물건들은 품에 안고 분리된 방쪽으로 향했다.
손잡이를 비틀어 방문을 열고 들어가 벽면에 배치된 원목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면세 물품들은 자신이 사용할 기초 화장품과 향수, 명품브랜드의 립스틱들, 다량의 초콜릿 등 이었다. 립스틱과 초콜릿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나눠줄 선물(膳物)이었다.
{으...피곤하다.} * { } : 중국어 표기.
대충 물건을 정리한 쑨양은 침대에 걸터앉아 마른 세수를 하고 눈가를 매만졌다. 중국에 다녀온 길이 고된 탓인데 그처럼 덩치가 큰 사람이 좁은 비행기 좌석에 몇시간 버티고 있기란 힘든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정이 부족하지 않아 이코노미가 아닌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했지만 평균 이상의 덩치를 지닌 그로서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유럽이나 미국처럼 긴 체공시간이 필요한 구간도 아닌지라 비즈니스보다 더 넓은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기에는 일명 '돈지랄'이었다.
잠깐 침대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 방을 나오면서 옷을 벗었다. 아가일패턴의 오트밀 가디건과 하얀셔츠, 블랙진이 그의 큰 손의 움직임에 따라 유일하게 남은 속옷을 빼고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아차...이것들도 세탁기 돌려야하는데...}
방금 전까지 입고 있었던터라 생각치 못했던 부분이었다. 아쉽지만 다음 번에 빨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손에 들린 옷들을 빨래바구니에 던져 넣은 후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후르륵. 쩝쩝. 서내의 어느 자리에서 라면의 면발을 흡입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성용은 때지난 점심으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열심히 먹고 있는 중이었데 하나로는 부족해서 한개를 더 뜯어 두 개째 라면을 먹는 중이었다.
다른 동료들도 라면을 먹거나 빵과 우유를 먹고 있는 중이었다. 진척없는 실종사건과 다른 살인사건부터 근친강간 사건 등 다양한 강력범죄들로 나날이 철야하느라 집에는 커녕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현재 잠복하러 나간 팀들과 몇몇을 제외한 사람들만 남아 때놓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성용이 면발을 다 쓸어넣고 뜨거운 국물을 삼킬 때쯤 그의 곁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현재 실종 건으로 함께 팀을 이루고 있는 청용이었고 식사를 끝마쳤는지 다방커피를 손에 쥐고 후르륵 마시고 있었다.
"다 먹었냐?"
"어, 형. 또 커피 마셔?"
"너도 타주랴?"
"됐네요. 그놈의 다방커피 지겹소."
"블랙 있어. 설탕말고."
"아~ 싫어. 왜 이래. 나 고급 입맛임."
"웃기고 있네. 쯧쯧."
잡담하고 있는 성용과 청용의 곁으로 우유팩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면서 자철이 다가왔다. 자철은 견원지간(犬猿之間)의 성용에게 당장 그의 고급 입맛을 비웃으며 한가지 예를 들었다. 초코파이와 오예스 중에서 한가지 고르라고 했을 때 성용은 초코파이를 선택했고 자철은 오예스를 선택했었는데 초코파이가 오예스보다 더 싸기 때문에 저렴한 입이 맞다고 들먹였다.
그의 말에 성용은 빡쳤고 자철과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다. 그런 어린아이보다 못한 그들을 보며 청용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똑같다. 똑같아. 어디서 똑같은 놈들끼리 지가 서로 잘났다고 우기고 있냐. 어휴."
"형! 무슨 소릴! 그리고 저 새끼가 먼저 시작했잖아요. 내가 뭘? 아무 말 안했어!"
"내가 틀린 말 했냐? 식빵 놈은 할말 없으면 맨날 욕하더라~"
"캬악! 니가 내 성질을 건들니까 그렇지!"
"야야. 그만해라. 내가 보기에는 똑같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다 물어봐. 저기 길거리의 5살짜리보다 못하다고 다 그럴거다."
"아, 형!"
"청용 선배~너무하삼!"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다래는 청용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겉모습은 멀쩡하다 못해서 왠만한 여자들은 다 울리게 생겼구만 속은 왜 저럴까, 회의적인 생각을 하며 입에 물고 있던 빵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마저 하던 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래의 손가락이 컴퓨터 자판 위를 현란하게 움직였고 마우스의 화살표가 모니터 화면을 휘저어 다녔다. 그렇게 작업하기를 30분이 지나서야 끝이 났고 프린트 버튼을 눌러 출력하였다. 옆에 배치된 프린트에서 끼리릭 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출력되었다.
출력된 프린트물을 집게로 찝어 들고 성용과 자철, 청용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들에게 자신이 작업한 작업물을 보여주며 설명을 곁들였다.
"선배. 이것 좀 봐주세요."
"어? 뭔데?"
"이번 실종자들 리스트요. 사진이랑 신상정보, 실종된 예상 시간과 장소를 덧붙여서 만들어봤어요. 보기 편하게..."
"오~ 멋진데."
프린트물에 찝힌 집게를 떼어내고 한장씩 들어 훑어보았고 프린트물을 보고 있는 세 사람에게 다래가 말을 덧붙였다.
"제가 이거 만들면서 봤는데 공통점이 있어요."
"뭔데? 더 추가적인게 있어?"
"하나같이 미인(美人)이라는거? 뚱뚱한 사람도 없이 다 늘씬날씬에다 왠만큼 얼굴이 되더라구요. 아무래도 범인이 예쁜 사람만 납치하는 것 같아요."
"미인...미인이라..."
꽉 막힌 도로의 교통체증이 살짝 뚫리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며 성용은 종이에 담긴 실종자들의 사진과 글을 뚫어질 듯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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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이~뚜이~ 제3화입니다.
새로운 인물이 나왔습니다. 다래양과 청용군ㅎㅎㅎ
이 두사람도 형사^^
이번 편에서도 쑨양의 직업은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ㅅ'
다음편에 나오겠습니다.
범인은 도서관에 왜 갔을까요?^_^ 팔색조 같은 살인범...ㅇㅅㅇ
※ 오타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