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훈
YOU VER.
그날은 비가 세차게 왔던걸로 기억한다.
옆. 몇몇의 벽너머처럼 깊은탄식과 울음소리도 내지아니었고. 지독한 향너머로 침대가아닌 갑갑한 관속에서 깊은 잠을 자고있는
아빠의 관을 쓸며 가슴을 멍이 나도록 두드리지않았다. 엄마는, 매우 소름끼치게 무서운. 잔인한 사람이었다.
소주 두어병과 안주삼아 말린오징어 다리 몇개를 씹으며 유유히 별일 아니라는듯이 바라보았다. 거친숨도. 힘든숨도 아니었다. 매우 고른숨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지인이 올때는 정말로 슬프다는듯 나오지 않는 눈물을 흘려대며 할리우드 액션을 벌이다가도 손님이 가고나면 언제그랬냐는 듯 조의금 액수를 확인하기 바빴다.
손 마디마디가 습습했다. 흰치마 위로 내려잡은 손은 면에 달라붙어 끈적끈적했다. 기분 나쁜 정적. 그렇게 깨고 싶진 않았지만 또한 그 속에서 소름끼치도록 슬픈.
원인모를 섬뜩한 기운과 함께 스며들고싶진 않았다. 지독히 외롭고 무의미한 장례식장 아래그속에서 14살의 나 ㅇㅇㅇ가 있었다.
그 날. 아빠가 트럭에 연한 살이 부딪쳐 으깨지는 그순간까지도. 피를 토하며 힘겹게 숨을 내쉬었던 그 순간까지도. 엄마는 없었다.
분명…. 그남자를 만나러간거겠지. 불륜. 엄마는 다른남자와 사랑을 나누고있었을게 명백했다. 무작정 그렇게 단정짓는게 아니었다.
쭉 지켜봐왔던 엄마의 일륜의 더러운 행위들을 입에 담지않았던 이유는 너무 담는 자체도 치욕스러웠기때문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싸움이 잦았다. 너무 당연스러운일이었다.
'돈'을 보고 결혼한 엄마에게 잘나가던 사업에 집이 휘청거릴정도로 실패한 아빠가 좋게 보일리가 없었으니까.
겨울날. 바람이 잘들어오는 잠옷에 걸친건 달랑 가디건 하나. 양발 안신은 맨발엔 슬리퍼와 운동화를 거꾸로 신은채로
무작정 달려 택시를 잡았다.
익숙치 않은 기계음과 어수선한 복도 틈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서 지나가는 간호사 언니들의 팔을 덥석덥석 잡으며
무작정 아빠의 이름을 댔다. 콧물.눈물범벅으로 추한꼴로. 딸꾹질을 연발하면서.
상반신 전체가 피투성이인 흉측한꼴로. 갔다. 가버렸다. 온몸이 흰천으로 덮일때까지 날 봐주지도 않은채로. 그렇게.
아빠가 뉘인 침대옆 서랍위로 피로 물든 흰 봉다리에는. 마른 미역과 쇠고기 한근이 있었다. 그리고…. 목걸이 하나.
내 이니셜이 박혀있는 은색의 목걸이. 나 미역국 끓일줄몰라. 쇠고기도 미역도 다 좋아하지 않아.
나는 목걸이같은거 필요없어…. 왜이리 성급히 간거야. 하필. 그날….
그날은. 내. 생일이었는데….
고상한척. 착한척. 가식적으로 늘 그래왔었다. 옆방너머로 농염한 신음소리와 야한 농담. 그리고 얕은 웃음소리도 들렸다.
그사람과 행복하겠지. 좋아죽겠지… 그리고. 내가 더이상 사라졌으면좋겠지. 둘의 사랑이 방해되니까.
전부터 ~그럴걸? 에서 멎었던 소문은 삽시간만에 퍼졌다.
불륜.
외간 여자집에 외간 남자가 찾아가는 것도 의심쩍은데 참 들어맞게도 우리집에는 그 어떤 방음벽이 없다.
아빠가 죽은 후로부터 엄마의 이중생활은 더욱 음탕해졌고 노골적이었다.
불륜이라는 손가락질보다 더 아팠던건. 엄마였다.아빠가 가루가되어 공기중으로 흩어진 바로 그다음날. 엄마는 내가 잠들었다는
가정하로 외간남자와 함께 있었다. 외간남자…. 지금의 새아빠라는 작자와 함께. 화장실 주위로 널려진 속옷들. 그리고. 방으로 가까워
질수록 더 짙어지고 거세지는 날카롭고 앙칼진 그 신음소리.
숨쉬기가 버거웠다. 갑갑했다. 조금씩 조금씩. 칼로 손목을 그을때마다. 의미모를 두려움이 해소되는 아이러니한 느낌이었다.
죽지않을만큼만. 조금만. 이 상황을 벗어나고싶었지만. 자신이없었고. 그렇다고 견디기에는. 고통이 필요했다. 엄마의 체온이
녹아 흐르는 피를 자해라는 이름의 더럽고 섬뜩한 일종의행위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거둬내고싶었다.
두분다 맞벌이인지라. 유난히 출장과 야근이 잦았다. 물론 없다고 쳐도 별볼일없이 무미건조하게 돌아갔다.
단지. 한지붕아래 튼 새오빠와 함께 지낸다는 것만 빼고는 별달리. 점심시간에 가끔 식당아니면 매점에서 새오빠와 마주칠때가 있었다…만.
딱히 별 신경은 쓰지않았다.
"…에?"
잔뜩 고기반찬과 과일만 배급받은채로 내 바로앞에 앉은 지연이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왜?"
"너 남자친구랑 사이가 왜이렇게 서먹해? 분명 마주친거 봤는데, 그냥지나가네… 싸웠어?"
"남자친구라니…무슨소리야."
"그 3학년 오빠. 너가 등하교때 늘 같이오가던 오빠말이야."
"아… 그런거아니야 김지연."
"흐음…?"
의심어린 얼굴을 씻지않고서 몇번을 힐끗힐끗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심한 태도로 받은 배식 반찬을 먹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만
이내 흥미를 잃었다는듯이 능숙한 젓가락질로 잔뜩 쌓인 고기를 먹기시작했다.
그냥. 엮이기 싫었다.
알고있었나…. 알수없게 일찍 가고. 굳이 뒷문으로 돌아서갔는데.
짜증나.
학교에선 옥상위를 올라가는건 금기되있지만 녹슨데다가 꽤 오래된 문손잡이는 꽤 쉽게 열수있었다. 옥상에 올라온지 1년 됐을까.
이따금 선생님의 심부름이 없는 이상 시험기간이건 제집마냥 점심시간마다 문제집이랑 mp3를 챙겨 몰래 올라오곤했다.
아무도 없는 나만의 장소. 하늘과 탁트여서 그게 참좋았다.
유일하게 아는 사람은 지연이뿐. 점심시간마다 여기로 온다는걸 알지만 방송부원으로 늘바쁜탓에 같이 온적은 없다.
mp3 이어폰을 끼고서 키려할때 옆에서 미묘하게 바스락 소리가 났다.청각이 단순히 예민해서가 아니었다. 가까이서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필시 분명했다.
뭐지?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얼굴에는 책을 덮고. 긴상체를 쭉 뻗고. 다리를 꼰 우리학교 남학생이있었다.
나만의 공간인줄알았는데… 이젠 어디로 가야하나.라며. 씁쓸한마음을 안았다. 흥이 너무 예고없이 쉽게 빠져버렸다.
이어폰줄을 다시말고서 마이주머니에 챙겨 넣고 나가려할때 그 학생은 긴 하품을 하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의도치 않게 봐버렸다.
언뜻 눈이마주쳤을때 이목구비가 뚜렷이 너무도 한눈에 들어왔다. 여자 못지않게 예쁜 쌍커풀이진 눈, 적당히 그슬린 피부. 살짝 삐딱하게 올라간입술선.
새 오빠다. 덜 깬 눈은 하품한탓에 촉촉히 젖어있었고. 볼한쪽에는 눌린듯 벌게있었다. 이상하게도. 몸이 움직이지않았다.
당장이라도 벗어나고싶은데.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있었다.
"…아."
짜증난다.
다듬지 않은채 턱. 갈라진 목소리가 우습진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고 나서야 자각하고 자리를 옮길때.
"…너."
………………….
02. 거리
mirage
대훈 VER.
누군가에게. 그것도 여자에게 선뜻 말을 걸어본적이 꽤 오래되서 그런지. 아니면. 동생이라는 말이 부르고 싶지 않았던건지.
'너'라는 어투가 어색하고 왠지 경계적이었지만 말을 최대한 부드럽게 이으려고 애썼다. 나도 내또래에게 받아본적이 가물가물했지만
나자신이 받고싶기도. 또한. 누군가에게도 꼭 해주고싶던 말이었다.
"너…생일. 축하…한다고."
미역국도, 하다못해. 아빠는 그렇다고 쳐도 새엄마가 막상 자기 자식에게 생일축하 말도 없어서 잘 몰랐는데,
그또한 언뜻 그아이 책상위로 바라본 달력에 친 빨간 색연필이 너무 선명해서 알아챈 것뿐이었다.
정말 그뿐이었는데.
나와 선생님 둘뿐인 상담실 안. 시계 분침과 시침소리가 그날따라 요란스럽게 맞추어 들렸다.
"대훈이가 중학교 3학년때 까지만 해도 성적이 우수한 걸로 들었어…. 전교1등도 했었다면서. 그때일은 잊고…. 응?
기초도 탄탄한데. 기운내고 열심히 한다면 서울권은 들어갈수 있을거야…. "
나름 안쓰러운. 내마음을 전체. 다 꿰뚫고 있다는 듯. 동정하는 얼굴로. 사근거리는 말투와 함께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길을 애써 피했다.
손을 마주 잡아 조곤조곤. 타이르는 목소리가. 왜 그리 가식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지. 거북하다.
"…진로 희망에 너혼자만 안적었던데. 듣기로는 교수가 꿈이었다면서…."
~한테 들었는데. ~했다고 들었는데. '미래형'이 아닌 '과거형'일 뿐이지만. 어떻게. 누구한테 안건지 내 정보까지 익히 알고서 순진한 얼굴로.
더이상 이 지루한. 또한 진전없는 상담을 하고싶지 않았다. 최대한 선생님의 비위를 맞춰주는 태도로. 유순한 탈을 쓰고서.
가식과 더부룩한 동정심에. 거짓섞인 고마움으로 포장하고서.
…선생님. 지겨워요. 이제.
케이크를 자신이 직접 구워주겠다며. 조금 태운 스펀지빵에 짤쭈나 과일통조림을 즐비하게 매꾸기 바쁘셨다.
"그렇게 바빴어? ㅇㅇ생일도 모를만큼? "
"ㅇㅇ 생일. 일때문에가 아니더라도 손꼽을 정도로 잘챙겨주지 못했어요. 어른스러운 애라해도… 너무 당연시하게 날짜도 가물가물해져서원…. "
수줍게 웃으며 사랑놀음을 하는 둘을 뒤로하고서 소파에 앉아 교과서를 집어들었다. 공부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시간이 지독하게 무료했을 뿐이었다.
한장한장.넘겨도 필기하나 없이 말끔했다.아. 오늘 수학시간에 쳤던게 최초였나. 전의 나는 적고 밑줄치는게 뭐가그리 재미났는지.
지금의 나는 도통 모르겠다. 그리고 변한 내모습이 너무 무안하게 당연한것처럼 느껴졌다.
"…다녀왔습니다."
꽤 일찍왔다. 학원이 그리크지않았을 더러 선생님조차 한정되있어. 수학선생님이 출산을 위해 별 수 없이 펑크내버려 매우는 사람 없이 문제풀이만 하고 왔다는 거였다.
아. 왔어? 조금 흥분으로 격양된 새엄마의 목소리가 반겼다.
관문 틈새로 들어오는 찬기운에 문득 현관문쪽으로 시선을 돌렸을때 동생과 눈동자가 마주쳤다.
알 수 없는 표정을하고서. 고개를 돌리고서 방으로 들어가는 동생의 닫힌 방문을
한동안 보다가 이내 교과서로 분산된 시선을 돌렸다. 거슬린다.
괜히….괜히말했나.
생일축하합니다~생일축하합니다~사랑하는 ㅇㅇ이의~생일축하합니다~ 아빠와 새엄마의 생일축하노래가 어두운 거실. 케이크 위로 내뱉는 숨에 흔들리는 촛불아래 퍼졌다.
폭죽이 터진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랜 정적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축하를 받고있는데도. 누구보다 아픈. 상처받은 눈을 하고서 그저 한층한층 녹아내리는 촛농만을 바라보고있었다.
분위기를 얼추눈치챈건지 아빠는 서둘러 저가 촛불을 끄고서는 멋쩍은 듯이 웃었다. 동생은 자리를 박차고서 굳은 얼굴 그대로 나가버렸다.
새 엄마의 표정이 일순간 몸서리 칠만큼 추운 냉기를 담고서 현관문을 바라보고있었다. 분노같기도 했고. 슬픔이 잠시 건너간듯도 보였다.
아빠는 진땀을 빼며 숫자초를 빼내고서 부담스러운 데코레이션을 얹은 케이크를 서투른 칼질로 잘라내어 접시에 담아 건넸다.
능청스러운 말투로 맛도 좋고 몸도 좋은 핸드메이드 케이크라며. 레시피보고 정말 열심히 따라했다며 분위기를 푸려고 애쓰는모습이 보였다.
포크로 크게 잘라 입에 넣은 케이크는 너무 달았다. 단건 당연한일이겠다만은 데코된 설탕에 절은 과일은 거부반응을 충분히 일으킬만 했고
과도하게 많은 크림탓에 느끼하기까지 했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 정말 맛있다는 듯 억지로 웃어보였다. 케이크 한조각은 접시위에 여전히 남아있었다.
12시. 나간 시각은 8시. 평소라면 동생이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서 집에 돌아왔을 시점인데. 아직 오지않았다. 거슬린다.
그래도 동생이라고 챙기는 내모습이 조금은 야비해보였다. 동질감때문에. 내모습을보는것같아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슬부슬 약하게 오던 빗줄기는 매미소리도 묻힐만큼 거세게 내리기시작했다. 아빠가 여전히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전원이 꺼져있었다고 했다.
새엄마는 안방에 들어가 이불을 머리까지 올리고서 나오지 않으시고.
"제가 나가볼게요."
궁금했다. 왜 아픈 표정을 지은걸까. 상처받은 눈을 한걸까. 그리고. 넌 왜 울고있었을까.
2시. 근처 상가. 상점. 거리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친구집에 갔으려나 싶어 찾지 못한채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 근처 가까이로 왔을 때였다.
눅눅한 인영 하나가 보였다. 동생이다. 비를 오랫동안 맞았었는지 새하얀 얼굴로 바들바들 몸을 떨고있었다. 차가운 비에 체온을 다 빼앗긴 모양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동생은 내 앞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방안이 모두 꺼져있었다. 아마 동생을 찾는걸 포기하고 주무시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다행이다싶었다. 업은 동생을 동생의 침대에 조심스레 뉘었다.
불행중 다행인건 열이 오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수건을 가져와 젖은 머리를 털어주고 비에 젖은 팔 다리를 닦아준 후에 이불을 덮어주고서
코코아를 타주려고 일어서려할때였다.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나를 감싸안았다.
"…고마워요."
그 날. 쉽사리 잠에 들 수 없었다.
반가워요~ |
냉큼올리고 갑니다ㅠㅠ!!! 첫작 반응들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ㅠㅠㅠ... 바빠서 길게 말씀드릴순없을것같아요.ㅠㅠㅠ.... 그저 감사합니다. 열심히..쓰도록 노력해볼게요@!! 응원의 말씀들 모두 감사해요^^!!
또윤님♡ 연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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