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집 안은 조용했다. 나는 조금 붉어진 얼굴을 하고서 멀뚱히 옆에 서있는 김민석을 쳐다봤다. 그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나는 그의 머리를 흐트러뜨리고는 그의 손에 힘없이 들려있는 캔을 뺏었다. 그리곤 곧바로 주방으로 넘어가 그것들을 작은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집어 넣었다. 입구에 캔이 걸려 잘 들어가지 않자 무력으로 집어넣으니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에서는 '분리수거 해야지.' 하는 김민석의 잔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무시했다. 술이 센 편이 아니라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나는, 취기가 조금씩 올라오자 머리가 아파오는게 느껴졌다. 미간을 꾹 누르다가 결국 주위에 보이는 식탁 의자를 아무렇게나 빼내어 그 위로 앉았다.
평소에는 잘 치우지도 않던 식탁 위를 괜히 손으로 닦아내고는 바로 후회했다. 보이지도 않는 먼지들이 내 손에 덕지덕지 묻은 기분이였다. 작게 욕을 내뱉으며 손을 탈탈 흔들어 먼지를 다시 털어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옷 소매로 이마를 닦았는데 옷에서 얼핏 김민석이 지니고 있던 향기와 비슷한 향이 났다. 그를 안고 토닥였을때, 그때 향이 베었나보다 싶었다. 향수를 쓰지 않는 나로써는 누군가에 의해 같은 향이 베일수도 있다는 사실이 괜스레 신기했다. 웃음이 나왔다.
김민석은 아무말 없이 내가 하는 행동을 보기만 했다. 서로간의 대화가 없으니 공기 중에는 오직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적절한 온도에 맞춰진 보일러가 웅웅거리며 가동되는 소리, 바깥의 도로에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들이 어수선하게 들려왔다. 먼저 방에 들어가면 될 것을 괜히 고집을 피우는게 아닌가 하고 반복적으로 생각하던 찰나에, 그가 먼저 내 뒷모습에 대고 '잘 자.' 하고 간단한 인삿말을 남겼다. 나는 그 말이 심장까지 파고듦을 느꼈다. 그리곤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닫혀진 공간에 둘만 남게되니 여간 껄끄러운게 아니였다. 먼저 들어가서 자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내가 바라던건 이게 아니였는데. 나는, 웃어주진 못해도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내일 아침에 보자고 하려고 했는데. 나는 건조해진 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가 신고있던 슬리퍼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와 동시에 의자를 빼고 일어나 냉장고 앞으로 가 얼음칸 문을 열었다. 시원한 얼음이 먹고 싶어졌다. 반대편에서는 방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조심스럽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냉장고 안을 둘러보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세워 돌렸다. 내가 바라보는 곳엔, 방금 전까지 나를 지켜봤을 김민석이 더이상 서있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 곳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걸어갔다. 아무런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문에 손을 대었다. 문 하나를 두고도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자연스럽게 심장이 요동쳤다. 중요한건 그것이였다. 지금 김민석과 함께 하고 있는건 그 남자가 아닌 나라는 것.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너였고, 출생지와 생김새부터 취향까지 모든게 나와 안 맞는 너였지만, 그런 나를 이만큼이나 바꿔놓은것도 너이기 때문에 며칠 사이에 널 갖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이런 나를 책임지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영원히 너는 모르게 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후, 머리를 짚으며 방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그 후 새벽에 머리가 아파와 어렴풋이 다시 눈을 떴을때, 누군가 내 침대 옆을 조용히 스쳐 지나간걸 본것도 같았다. 작고, 익숙한 향을 풍기는 누군가가. 또 얼핏 내 등을 두어번 토닥여줬던것 같기도 한데 익숙한 손길은 아닌걸 보니 아마도 내가 꿈을 꾼것 같다. 귀신일리는 없고, 그렇다고 출장 나가있는 엄마일리는 더더욱 없고. 김민석일리도 절대로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전혀 없으니까.
그는, 나에게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요즘 Ⅳ
w. Shelter
"세훈아."
간밤에 몇 번이나 꿈을 꿨는지 모르겠다. 자꾸 내 옆을 왔다갔다 하는 어떤 사람 때문에 꿈에서 깼다가, 다시 잠들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난 아직도 꿈을 꾸고 있나보다.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럴리가 없는데.
"해장하자. 일어나야지."
나는 몸을 돌려 웅크렸다. 꿈이라고 믿고 싶은건지,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길 바라는건지. 그럼에도 나는 이미 지금 내 옆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현실임을 알고 있다.
"오세훈. 형이 북어국이랑 다 만들어놨는데 안 일어날거야?"
그런 달래는듯한 말투는 익숙하지 않다. 왜, 그런 일은 또 왜.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서 그런거라면 별로 할 말 없다. 어쩌면 간밤에 내 옆을 왔다갔다 했던 그 사람도 너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내가 모르는척하면 그게 현실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아닌걸로 되어버릴테니까. 인정하는 순간 나는 당장에 일어나 그를 껴안아버릴지도 모른다. 마블링처럼 모든 생각들이 섞여 아무렇게나 퍼져나갔다. 내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게 느껴졌다.
"안 일어난다 이거지.."
그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두 눈을 꾹 눌렀다. 그리고는 곧 내 몸 위로 덮어진 이불이 홱 벗겨졌다. 힘 있게 이불을 발 아래까지 내려버린 그가 어울리지 않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추워서 잠 안올거야, 이렇게 하면. 너 감기 걸릴걸."
"......."
"몸에 바람 들어가서 감기 걸리기 싫으면 일어나는게 좋을거에요, 세훈아."
"......."
"엄청 안일어나네."
하루아침에 기분이 괜찮아진걸까. 그의 말투에 웃음기가 보인다. 나는 금새 따라 웃었다가 다시 입을 꾹 눌렀다. 곧 내 뒤에서는 그의 한숨이 들려온다. 어쩔수 없지, 하며 방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제서야 슬며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부러 창문을 열어둔건지 추운 바람이 새어들어왔다. 추위가 느껴져 발 아래로 내려간 이불을 끌어올렸다. 나는 김민석을 생각하며 조금 더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내 방문이 벌컥 열리는게 들렸다.
"이럴줄 알았어!"
"......"
내가 안자고 있다는걸 진작부터 알았는지 김민석이 성난 발걸음을 하며 내 옆으로 달려오듯 걸어왔다. 앞머리까지 갈라지면서 달려오는게 웃겨서 나는 자는척 하는걸 그만 두고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형, 웃기네요."
"뭐가 웃겨. 뭐가!"
"국자는 뭐에요, 또."
"이거? 너 북어국 끓여주려고 지금 다시 끓이고 있었다. 왜."
"아...뭐야. 진짜 만들었어요?"
그는 어울리지 않게 앞치마를 두르고 국자를 들고 있었다. 국자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는 콩나물이 떨어질것 같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되물었다. 방문이 열려있으니 익숙하지 않은 음식 냄새가 퍼지는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말로 해장국을 만들고 있었나보다. 하지만 속지 않기로 했다. 술은 나만 먹은게 아니니까. 제 속이 불편해서 만든거겠지.
"그럼. 진짜 만들었지. 너 주려고."
하지만 곧 뒤이어 말하는 김민석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상태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올렸다. 그러자 곧 내 어깨 위를 팡팡 두들기는 김민석의 매운 손이 느껴졌다. 엄청 아프다.
"어렸을때 어머님한테 꽤나 혼났겠다 너. 부르는 소리에 일어나지도 않고. 창문을 열어놔도 안일어나, 밥 해준다고 해도 안일어나."
"형이나 많이 먹어요. 어차피 나 주려고 끓인거 아니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같이 먹으려고 끓였다니까."
"..됐어요. 형 먼저 먹어요, 나 기다리지 말고. 나는 조금만 더 잘게요."
왜 나는 김민석한테 이렇게밖에 말을 못하는걸까. 제대로 따뜻한 말 한 번을 해주는 일이 없다. 미안하지만,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김민석이 해주는 북어국은 무슨 맛일까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쉽게 넙죽 먹고 싶지는 않다. 자고 일어나면 속은 말끔히 해독되어있겠지.
"아, 정말 섭섭하게 그럴거야?"
"......."
"없는 재료 구하려고 밖에까지 나갔다 왔어. 새벽부터 장사하는 사람들 찾아가서 샀다고!"
"......."
"먹고 다시 자. 응?"
"......."
"밥 좀 먹고 다시 잠들면 되잖아. 그땐 안깨울게. 그때는 네 옆에 왔다갔다 하지도 않을게."
"......."
꿈이 아니였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꿈인줄 알았는데, 간밤에 내 옆에서 나를 지켜본건 김민석이 맞았다. 그런데 왜. 잘 자라고 인사하고 방에 들어가서 다시 나오지 않았던 너였는데, 어째서 내 자는 모습을 지켜본 것일까. 나는 덮고 있던 이불을 확 내려 상체를 일으켰다. 수백개의 알람보다 나는 너의 그런 말 한마디에 심장이 깨어난다. 몇 년간 미동도 없던 내 심장이 전혀 뛰어본적 없는 방향으로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왜요."
"......."
"왜 그랬는데요?"
"......."
"단지 잠 못자게 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런건 아닐거 아니에요."
"...어. 그런건 아니였어. 난 그냥 너 자는 모습이 보고싶었어."
"그러니까 왜요."
"왜냐고?"
"......."
"뭘 그런걸 또 따지고 들어. 그냥 이럴때는 나와서, 형. 맛있게 먹을게요. 이 한마디만 하고 밥만 좀 먹고 들어가면 안돼?"
"......."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네. 아, 어제 네가 날 데리러 와준게 고마워서 그랬어. 내 잠을 포기해서라도 너 자는 모습 봐주고 싶었어. 그래서 그랬어."
"...알고 있었어요?"
그것까지는 모를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김민석은 모든걸 간파하고 있었다. 그럼 내가 왜 그랬는지도 알까.
"모르는게 이상한거 아니야? 눈에 띄게 뛰어오는 사람이 있었어. 내 시야에는 그게 다 보였는데 모를거라 생각했어?"
"......."
"먹기 싫으면 말아. 더 자는게 편하다면 그럼 더 자. 미안해."
"......."
"..이따가 배고프면 다시 끓여서 먹고. 간은 다시 맞춰놓을게."
장난스러운 얼굴은 싹 거두고 진지하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충분히 내가 의문을 갖게 만들기에 적합했다. 나는 나를 등지려는 김민석을 볼 수 없었다.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곧 바로 그의 손목을 잡아 세웠다. 힘없이 나에게 붙잡힌 손목은 많이 얇았고, 또 미웠다.
"그럼 내가 왜 그랬는지는 알아요?"
"...뭐?"
"내가 왜 당신 기다렸는지는 아냐고요. 알면서 모르는척 했다면, 내가 물어보려고요. 궁금해서."
".....아니."
그럼, 됐다.
"...됐어요 그럼."
"왜 그랬는데?"
"아니요. 집에 혼자 있기 심심해서."
"그랬구나."
"네."
"...그래서 지금은 어쩔건데. 나와서 밥 먹을래?"
나는 그를 한 번 주시했다. 그리고는 그를 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석이 그제서야 환하게 웃으며 잡힌 손목을 풀어내고 내 팔을 잡아 끌었다.
나는 힘없이 그에게 끌려가 어느새 식탁 앞까지 도착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식들이 아주 보기 좋았다. 가정부 아주머니가 만든것보다 조금 더 맛있어 보였다.
"얼른 앉아."
"..뭐 전입주부라던가, 그런거 해본적 있어요?"
"아니. 왜?"
"아니에요."
"아, 상다리 부러질것처럼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재료가 조금, 아니 조금 많이 한정되어 있더라. 오늘은 가정부 아주머니도 안계셔서 만들어진 반찬도 별로 없더라구. 그래서 그냥 급한대로 아무거나 만들어봤어.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속 정화시킨다 생각하고 먹어."
"보기에는 아줌마보다 더 나은.."
"응?"
"....아, 아니에요."
누가 보면 술을 진탕 마신 사람네들인줄 알겠다. 찬찬히 반찬들을 둘러보자 김민석은 분명 가볍게 차렸다고 했는데, 계란찜에, 볶음 김치에, 오뎅볶음, 그리고 제육볶음까지 한식으로 식탁 위를 도배해놨다. 뭐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놨을까. 나는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다 무엇을 먼저 먹을지 고민을 하다가, 젓가락을 내리고 식탁 가장 가운데에 위치한 북어국을 숟가락으로 한 입 떠먹었다.
"......."
"......."
우리 엄마가 한것보다 훨씬 낫다는 평이 절로 나오는 맛이였다.
"형."
"..응?"
"솔직히 말해봐요."
"뭘?"
"가정부 했었죠."
"야. 너는 맛있다는걸 그렇게 표현하냐?"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맛이 나올수가 없어요. 솔직히 말해요, 진짜."
"남자라고 이런거 만들면 뭐 다 가정부에, 그런건줄 알아? 어릴때부터 내가 다 만들어 먹어서 그래. 밥 같은거."
"......잘 먹을게요."
나는 씨익 웃어보이고는 젓가락을 들어 내가 좋아하는 오뎅 볶음에 가져다 댔다. 한웅큼 가져와 밥 위에 얹어놓고 야금야금 먹었는데, 해장 제대로 한다 싶었다. 제육 볶음은 또 언제 어떻게 만들어낸건지. 정말 맛있었다. 나는 그대로 밥 한공기를 다 해치워냈다. 옆에서 자기는 먹는둥 마는둥 내가 먹는것만 뚫어지게 쳐다보던 김민석은, 내 밥이 다 비워지는게 보이자 시원한 물도 가져다주고 목에 밥알이 걸려 켁켁 거리는 내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다.
"나 신경쓰지 말고 형이나 먹어요."
"이런 말 들어봤어?"
"뭘.."
"네가 먹는것만 봐도, 난 배 불러."
정말 아무렇지 않게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면서 저런 말을 하는 김민석을 보면 적응이 안된다. 나는 금방이라도 토 나올것같은 표정을 짓고서 숟가락을 탁 소리나게 내려놨다. 그러자 김민석은 나보다 더 삐진 표정을 지으며 코를 훌쩍였다. '안먹어?' 하고 물어오는 김민석의 말에 나는 다시 수저를 들고 국을 하염없이 퍼 마셨다. 그러자 다시 피식 웃는 김민석이 보였다.
"맛은 있나보네. 열심히 먹어줘서 고맙다."
"내가 지금 엄청 배가 고파서 그런거거든요."
"그럼 넌 맨날 배고파야겠다. 내가 맨날 해줄거거든."
"가정부 아주머니 있는데 뭐하러 그래요. 힘드니까 이런일은 이제 오늘로 끝내요."
"싫은데."
"끝내요."
"싫어."
"....아, 그럼 말던지요."
사실 이 맛있는 반찬들을 오늘만 먹는다는건 좀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짜증 내는척, 다시 밥을 한웅큼 퍼 먹었다.
그러고보니 의문이 들었다. 그는 나를 처음 만났을때만 해도, 이런 말투가 아니였던것 같았다. 귀엽네, 어쩌네, 자기는 자기보다 큰 사람이 좋네. 게다가 뭐. 다른거? 뭐든 자기보다 큰게 좋다고 했던 그 낮은 목소리가 갑자기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도 떠올렸다. 아, 장난이라고 했었지. 참.
"오늘 어머님이랑, 아빠 오겠다."
"네. 그렇다네요."
"밖에 비가 많이 내리는데..마중 나갈까?"
"..오늘 어디 안나가요?"
"응. 주말이잖아. 일요일 아침인데 내가 어딜 나가겠어."
"..음.."
"같이 나갈래?"
"뭐..그러던지."
"마트 가서 같이 장이나 보고 들어갈까?"
"엄마랑, 아저씨랑 형이랑 나랑. 이렇게 넷이서요?"
"응. 정말 가족같아보이고 좋겠지?"
새삼 이 남자는 가족이란 것에 대해 그리움이 어딘가 모르게 존재하고 있다는걸 느꼈다. 나는 그런 생각은 자주 하지 않는데 김민석은 평소에도 가족이 많이 그리웠나보다. 그래서 그 사랑을 김민석의 애인에게서 보충 받은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따지면 남자를 사귄다는것도 납득이 간다.
"나는 상관없는데."
"......."
"근데 엄마가 싫어할거에요."
"...아.."
"밖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을거거든요. 그리고, 좀 마트같은데 가는거 싫어해서요."
"음...."
"....정 가고싶으면."
"......."
"...나랑만 가던지요. 싫으면, 말고."
나는 마지막 남은 밥을 한 번에 다 퍼서 먹고,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내어 휴지에 감싸 식탁위에 아무렇게나 굴렸다. 볶음 김치를 입 안에 한 번 넣고, 씹었다. 아주 잠시라도 조용한 정적이 흐르는 지금같은 때가 제일 민망하다. 나는 컵에 물을 따라 마시고 괜히 김민석의 눈치를 봤다.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없이 식탁 위를 조용히 쳐다볼 뿐이였다.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지, 뭘 저렇게 뜸을 들이고 진지하게 생각한대.
"...좋아."
그 말에 놀란건 오히려 나였다. 둘만 가는건 재미없다고 싫어할줄 알았는데 가잔다. 그리고 그가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향했다.
"어디 가요?"
"옷 갈아입으러!"
"어디 가게요?"
"장보러! 바보야!"
"...지금 가겠다는거에요?"
"응. 너 밥 다 먹을때까지 기다린건데? 바보."
"아, 진짜 저 사람이."
가족이 미끼였고 그거에 걸린 물고기가 된것만 같았다. 김민석의 웃음이 마치 그렇다는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가족을 마중나가는건 관심도 없었다는듯, 나랑 바깥을 돌아다니는게 하고 싶었다는듯.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닌, 김민석의 얼굴이 그 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괜시리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민석은 내가 얼마전에 자신의 위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을 못하는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해맑게 아침까지 해줄수 없다. 싫지만은 않았던건지, 아니면 내가 받아들일수 있냐는 말에 받아들일수 있다고 대답한게 진심이였던건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사과하고 싶었다. 이참에 해야겠다. 다른때는 민망해서 그런 말도 꺼내지 못할테니까. 아니, 갑자기 왜 그러냐고 화를 낼까. 아니면 이미 다 잊어버려서 기억에는 없을까. 아니면 내가 그 애인보다 잘 못해서 축에도 안끼워주는걸까. 또 그렇게 생각하니 배알이 꼴렸다.
밥 없이 반찬을 집어먹다가도 기분이 묘해졌다.
왜, 정말 아무렇지 않아하는건데..?
시내까지 나가려면 교통수단이 불편하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나는 김기사 아저씨를 불러 조금만 움직여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는 바로 데려다주겠다며 나와 김민석을 거리낌없이 바로 차에 태웠고 우리 둘은 옷을 껴입고 바깥 구경을 나섰다.
"어머님은 무슨 음식을 좋아하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가 지긋이 물어왔다. 기사 아저씨가 후방을 보려는건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앞좌석에 배치되어있는 백미러로 나와 김민석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는게 보였다. 나는 말없이 그런 백미러를 쳐다보다가, 기사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조금 당황한 눈치를 보이자 아저씨가 먼저 눈을 피했다. 그리고 나는 백미러에 시선을 두고 얼굴은 그를 향해 돌렸다.
"엄마는 일식 좋아해요."
"일식이라.. 스시, 그런거?"
"뭐...그런것도 포함해서 일본 음식은 다 좋아해요."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
"가정부 납셨네."
"고마운 분인데 해드릴수도 있는거지, 질투 나?"
"아니요."
"넌 뭐가 먹고싶은데?"
"난, 유부초밥이요."
무심하게 유부초밥을 좋아한다는 말을 던졌더니 그가 나를 노려보는게 느껴졌다. 나는 웃지않는 얼굴을 하고서 노려보는 그의 얼굴을 아프지 않게 톡 쳤다. 그리고 김민석은 힘없이 고개가 돌아가다가 얼굴을 건들고 조용히 밑으로 내려놓는 나의 손을 가만히 보고는 내 손을 다시 잡아 들어올렸다.
"뭐해요."
그리고는 내 손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깍지를 껴서 잡는다.
"손 잡는거 해."
또 내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다. 이 남자는 왜 시도때도 없이 내 감정에 혼란을 주는건가. 아니, 처음부터 혼란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내 감정은 이미 내가 알고 있었고 문제는 김민석의 마음이였으니까. 또 장난이라도 치려는건지 왜 자꾸 나에게 잘해주려는건지 모르겠다. 아침에는 유례없이 음식을 만들어주질 않나, 지금은 내 손을 잡고 있질 않나. 나는 그를 뭐하냐는 듯이 무심하게 쳐다봤지만 그는 나를 힐끔 보며 웃기만 한다.
이러니까 꼭...형제가 아니라, 커플 같잖아.
"...이러지 말라고 했잖아요."
"뽀뽀 하지 말라는 소리 아니였어? 손 잡지 말라고는 안했.."
"쉿. 조용히 말해요."
나는 그의 입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조용히 하라고 타일렀다. 기사 아저씨가 들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흐르기 시작했다.
"재미없어, 오세훈."
"..왜 또 그런 앙칼진 모드인데요? 또 나 놀리려고 작정했어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런 은밀한 대화는 제발 집에서만 했으면 좋겠다. 여간 눈치보이는게 아니였다. 김민석이 잘 안들린다고 표정을 찌푸리기에 다시 기사 아저씨의 눈치를 보고 귀에 더 가까이 대려 하자, 운적석과 뒷 조수석 사이에 칸막이가 쳐졌다.
"......."
"......."
아주 조용히 내려오는 칸막이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존중받는 느낌에, 괜히 더워졌다. 나는 그때 김민석의 손을 홱 뿌리치고 입고있던 셔츠의 깃을 다시 고쳐잡았다. 김민석도 조금은 당황했는지 내쳐진 손을 입고있던 옷 주머니에 넣으며 괜히 창밖을 바라보는둥 딴짓을 했다.
"..내가 형때문에 못살지."
"....뭘."
시내에서 가장 큰 대형마트에 도착했고 내가 먼저 차에서 내린 뒤 김민석이 곧 바로 따라 내렸다. 그의 주황빛 머릿결이 오늘따라 어두워보인다.
아무렇지 않게 그의 손을 잡아 이끌어준 나는 금새 표정을 굳혔다. 언제부터 이렇게 바깥까지 함께 나돌수 있는 사이가 되게 된걸까. 어제 저녁에는 나는 이 사람을 어루고 달랬고. 그런데, 오늘 김민석은 왜 아무도 만나러 가지 않는거지. 보통 쉬는 날엔 대부분 애인과 함께 하던데.
"들어가자."
"김민석 형."
"응. 나 춥다."
"오늘 왜 어디 안갔어요?"
물어보면서도 참 빨리도 물어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나는 질문할 타이밍이란거 잘 모른다. 궁금하면 바로 물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어이없는 시기에 애매한 질문을 하자 김민석이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쉬며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가 잠시 뜸을 들이고 대답했다. 눈은 웃지 않았지만 입술이 웃고 있었다. 날마다 다른 인상이다.
"쉬는날이니까."
"쉬는날이니까. 왜 안갔냐고요."
"약속이 없어서."
"왜."
"꼭 누구를 만나야돼? 쉬는날이면 나도 그냥 평범하게 쉬면 안돼?"
"아니, 그렇다는건 아닌데."
"나랑 오기 싫었던거야? 그렇다면 말을 하지. 다 와서 그러는게 어딨어."
"아. 그런 뜻 아니였어요. 싫은게 아니라."
"뭐."
".....애인 만나러 안가냐는 소리였어요. 보통 이럴때..데이트 하잖아요. 나는 아무도 없으니까, 만날 사람 없으니까 집에 있다고 치지만."
"........"
"그래서..보러 안나가냐고 물어보려고 한건데. 말이 좀, 그랬네."
나는 내 등을 강타하는 칼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떠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발끝을 꿋꿋히 세워놓고 괜히 딴청을 피웠다. 자꾸만 궁금해진다. 오늘 안만나면, 내일은 만나는지. 내일 안만나면 그 다음날에는 만날건지. 왜 물어보냐고 하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 그냥. 이유를 알면 그나마 보내주기 쉬우니까. 시간을 모래시계로 잰듯마냥 기다리면 되니까. 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는 늘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대체 언제부터 뭐때문에 나는 너에게 이토록 집착하게 된걸까. 알 수 없다. 사람은 하루하루 감정이 다른 동물이니까. 나는 언젠가부터 나를 이렇게 정의하기로 했다.
"바보야."
"......."
"어제 내가 말한건 뭘로 들으셨어요."
"......."
"싸웠다고 굳이 말해야 알아들을거야? 다퉜어."
"....아."
"어제 만나고 와서부터 연락도 없고, 나도 연락 아직 못하고 있고. 사실 그럴 이유도 없어."
"...아. 뭐..크게 싸운거에요?"
"네."
"......."
기분이 좋지 않아보인다. 나 때문인가. 눈치 없이 물어본 내가 짜증나서 그런건가. 하지만 크게 싸웠다는 말에 조금 의외였다. 그냥 한 번쯤 다투는 가벼운 말씨름이라도 했는줄 알았더니, 그가 이렇게까지 정색하는걸 보면 정말로 크게 싸운게 맞는것 같다.
하지만 다퉜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 한켠에 미지근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나 지금 좋아하는건가. 그런 상황, 좋아하면 안되는데. 안된다고. 안돼. 오세훈, 웃지마. 나 왜 웃음이 나오려고 하지. 아, 상변태같다.
"너 왜 웃어?"
"..나요? 아, 안웃었는데요."
"지금. 웃고있잖아."
"언제."
"지금도. 봐."
"........."
결국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아, 씨발. 미친놈으로 보이는거 한순간이네. 욕먹을 준비 해야겠다.
"좋은가봐. 내가 애인 만나러 안간다고 하니까."
"아니야."
"맞네. 뭐."
"아니라니.."
"세훈아."
".....네."
"평범하고, 평범하지 않고는 어디에도 없어."
"........."
"...너도 한순간이야. 선 긋는거."
그가 알수 없는 말을 하고는 내 뒷통수를 쓰다듬었다. 입고 있는 옷이 커서 그의 손이 내 머리를 만진다기보다 옷 소매가 만진다는 말이 적합할 것 같았다. 두껍게 느껴지는 손바닥이 내 머리를 이리저리 만졌다. 그리고는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씨익 웃는다. 그리고는 먼저 앞장서서 마트의 입구로 들어갔다. 나는 가만히 머리를 대주다가 눈을 몇번이나 깜빡였다.
그가 알수없이 뱉어낸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말, 나도 한 번에 달라질수 있다는 그 말.
....설마, 들킨건 아니겠지. 설마..
"형."
그는 내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이미 저만치나 멀어져 있었다.
너는 왜 자꾸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건데.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는다.
다시 평온한 얼굴로 돌아온 김민석과, 그의 눈치를 보고 있는 내가 있다. 우리는 생활용품 코너에 먼저 들렸다. 김민석과 그의 아버지가 이사를 오면서 몇가지 사지 못한게 있다며 내 손을 끌고온 곳이였다.
신기했다. 얼마전에는 분명 너와 너의 그 남자가 손을 다정하게 잡고 나의 매장 안으로 돌아와 지금처럼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그리고,
"이거 보여주세요."
직원을 불러 지금처럼 똑같이 매장 안의 물건들을 구경했더랬지. 지금은 물론 식기를 보여달라는 말이였지만.
맘에 드는 그릇과 식기세트가 있었는지 자신의 키가 닿지 않는, 물론 내 키도 닿지 않는 높은 선반에 놓여진 그릇들을 보며 직원에게 손짓했다. 내가 조금만 더 컸으면 직접 내려줬을텐데 김민석 눈에도 내가 내리기엔 조금 벅차보였는지 하릴없이 직원을 불렀다. 키가 정말 컸던 남자 직원은 쉽게 손을 뻗어 그것들을 내려 주었다. 나뭇잎 모양이 심플하게 자리잡은 모양의 하얀 도자기 그릇이였다.
"예쁘다."
"..그릇이 뭐 예쁘면 다인가."
"다는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보기에도 예뻐야 밥 먹을때도 기분이 좋지 않겠어?"
"글쎄요. 밥 먹을땐 밥에만 집중해서 잘 모르겠는데."
"난 이걸로 할래."
"..그러시던가요."
나는 입고있던 야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김민석이 그 그릇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직원과 몇 마디 대화를 하는 사이, 나는 조금 옆으로 빠져 선반 밑에 있는 몇가지 다른 주방용품등을 보았다. 나름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라 진열장의 치수라던지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의 양호한 점이라던지 이것저것을 나도 모르게 체크하고 있었다. 맘에 들지 않는 단점들이 서서히 눈에 띄기 시작할때 김민석이 내 옆으로 쪼르르 걸어와 내 팔을 잡았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 가자."
"샀어요?"
"음....다음에 사려구."
"왜요?"
"가격이 조금, 세."
"얼마라는데요?"
"저게 유명한 도자기 만드는 회사에서 나온 그릇인가봐. 그래서 조금 많이 세."
"비싸면 얼마나 비싸다고. 저런 그릇같은게."
"비싸다니까. 저거 땅에 떨어뜨려도 안 깨진대."
"그래서 비싸대요? 안에 테이프라도 붙여놨나보지."
"말하는거 하고는. 가자."
"맘에 드는거 맞아요?"
"음..나는 마음에 드는데. 뭐 값 뿐만이 아니라 그냥 나중에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필요하다면서. 또 언제 나와서 사려고요."
"아~ 됐어. 그냥 가자."
애써 아쉬운 눈치를 보이고 있는데 어떻게 뭘 그냥 가라는 말인지. 나는 아까 우리에게 그릇을 내려주었던 직원이 다시 선반 위로 주섬주섬 올리는걸 보고 다시 코를 훌쩍였다. 감기가 오려는지 자꾸만 코가 나오려고 한다. 빤히 그 직원을 가만히 쳐다보자 김민석은 내 팔을 끌어당기며 가자고 재촉했다.
"초밥 재료 준비해야돼."
나를 보며 휘어지게 웃는 그눈이, 나를 따라웃게 만들었다.
식품 코너로 넘어오자 김민석은 물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도대체 저 사람은 몇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대처하는 나와는 정말로 다르다. 표정이 너무나 다양해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다가도 다시 진지하게 생선들을 간파하는듯한 눈빛을 한 김민석은 옆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에 바빴다.
"아, 좀. 천천히 가요."
"지금 세일한대."
"개그해요? 세일 하면 뭐 얼마나 한다고."
"얼마나 하냐니. 진짜 싸게 사면 3만원은 아낄수 있는데."
"자린고비."
"자린고비가 만든 음식은 누가 다 먹었더라."
"....아, 야비해."
김민석은 콧방귀를 뀌며 또 다시 한바퀴를 빙 둘렀다. 나는 더이상 따라붙을 힘이 없어 그냥 똑같은 자리에 서서 김민석이 알아서 오기만을 기다렸다. 여자들도 아니고, 어떻게 여자보다 더 저렇게 열심히야. 대체 우리 엄마같은 사람한테 뭘 얼마나 더 잘보이겠다고. 하지만 다시 내가 있는 자리로 역주행해서 뛰어오는 김민석을 보며 어렴풋이 미소가 새어나왔다. 웃고 싶지않은데, 왜 자꾸 나를 웃게 만들어. 괜히 짜증난다.
"저기로 가자."
"골랐어요 드디어?"
"저기도 후보야."
"..후보.."
엄마가 좋아하는 일식이 처음으로 싫어지는 날이였다.
김민석은 나를 억지로 끌고가 생선 이것저것을 둘러보았다. 정말 직접 손질해서 해드릴 생각인가. 일식 코너에서 그냥 손쉽게 초밥 몇개 사다놓고 대충 테이블에 장식해놓으면 우리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감격하실텐데. 아니, 다녀와서 식사는 하실까. 나는 김민석의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해맑게 웃으며 아주머니들과 얄쌍하게 대화하는걸 보니 나는 또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이 생선 손질하기 엄청 어렵죠?"
"아니 요즘은 손질해서 나와. 총각은 그냥 사가기만 하면 돼."
"아. 그래요?"
"그럼. 그리고 지금 이거랑, 이거랑 사면 칠 천원에 해줄게."
"정말요?"
생선의 비릿한 냄새가 점점 코를 자극해온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데 김민석은 냄새를 맡지도 못하는지 잘 발라진 생선들 앞에 쪼그려 앉아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다. 나와 비슷한 야상을 입고 있었는데, 모자가 유난히 큰건지 그의 머리를 잡아먹고 있었다. 아까부터 그는 야상에 파묻혀서 얼굴만 겨우 내밀고 있었지만. 그의 뒷통수를 만지고 싶은걸 참았다.
결국 김민석은 아주머니와 귓속말을 소곤소곤 하더니 세가지 종류의 생선을 들어올렸다. 대충 보니 연어가 있는것 같았다. 그리고 광어, 우럭. 앞에 써있는 이름표를 보았다. 저것들을 김민석은 어떻게 탄생시킬까.
"가자."
"다 샀어요?"
"완전 잘 샀어."
"주부시네요."
"아무래도 오늘은 초밥보다 회가 나을것 같아."
"회도 뜰줄 알아요?"
"방금 다시 배웠어."
"...우리 집에 사시미 없어요."
"나 있어."
"....뭘 그런걸 가지고 다녀요?"
"아빠랑만 살았을때 내가 자주 회 떠드렸거든. 옛날에 횟집 알바 한적도 있어서 그런거 잘 만들어."
"아. 네."
신이나서 재잘대는데, 그 입술이 너무 예뻤다. 귀여움에 눈이 멀었나...왜 자꾸 이런 생각을 하는거야.
뚫어지게 그의 입술을 보았다. 그러자 김민석이 웃는 얼굴을 서서히 누그러뜨리더니 내 눈에 자신의 눈을 홱 하고 마주쳤다. 나는 깜짝 놀라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김민석이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그런데 한다는 말이.
"내가 회 뜰줄 안다고 하니까 뭐. 무섭냐?"
"뭘요. 내가 언제요."
"사시미 들고 다닌다니까 무서워?"
"아, 내가 언제."
"너도 말 안들으면 사시미 뜰거야."
차라리, 내 마음을 모르고 저렇게 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 좋아해서 네 입술만을 뚫어지게 봤다고 생각했으면 오히려 내가 그 사시미에 찔리고 싶을지도 모를테니까. 어느샌가 자꾸만 위험한 생각을 하는 내옆에는, 김민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주먹을 들어 내 배를 툭툭 찌르는듯한 제스쳐를 하며 자꾸만 다가왔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그를 밀어냈다.
김민석은 의외로 도도하지 않았다.
처음 볼때는 정말 도도하고, 보통 남자들과는 다르고, 또 엄청 까다롭고 까탈스럽고 여성스럽다고 생각했다. 그의 여성스러우면서도 곱게 뻗은 눈매가 그런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말하는 폼도 제법 여자 같았다. 남자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내가 귀여워서 맘에 든다고 했을때는 정말 미친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김민석에게는 절대로 그런 모습따위 보이지 않는다. 만들어진 성격인지, 아니면 그것도 원래 그런 성격의 일부인지. 아직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아직 어려운 사람이다. 넌.
- 네가 마음에 들었다는 소리야.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만큼은, 장난이 아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 곳에 피어나고 있었다.
너라는 사람이 그 곳에 물을 주면, 아마 미친듯이 자라날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최대한 너를 밀어내야 한다. 그 마음은 나 혼자서 물을 주고 가꿀수 있게. 너라는 사람이 직접 가꾸면 나는 정말 어디까지 가게 될지 모른다. 내 머리를 뚫고 나와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게 될지도.
오세훈이라는 세상을, 아직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집에 돌아가기 전 김민석은 잠시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자리를 비웠다. 생선 외에도 회를 만들때 필요한 각종 재료들을 함께 샀는데 그 모든것들은 나에게 맡겨졌다. 진동하는 생선의 비린내가 왠지 싫지만은 않았다. 김민석이 이런걸 좋아하면, 나도 똑같이 좋아해줘야 하는건지.. 오세훈 인간 다 됐다.
"잘 오지도 않는데..나는 뭐 살거 없나."
마트에 잘 오지 않는 나는 온김에 다른것들을 더 둘러볼까 했다. 김민석이 돌아오면 한 번만 같이 돌아다니자고 부탁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아까 김민석이 사지 않은 그릇들이 떠올랐다.
가격은 끝내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살 수 있을것 같았다. 김민석도 살 수 있었겠지만 그는 과하게 소비하지 않는듯 했다. 그래서 저번에 그의 애인이 시계를 세트로 산다고 했을때 엄청나게 만류했었지. 눈에 띄게 알뜰하진 않아도 나름 검소한 남자였던것 같다.
나는 시간을 보고, 아직 2분밖에 흐르지 않은것을 확인한 후 빠르게 주방용품 코너로 뛰어갔다. 손에 대롱대롱 메달려 있는 마트 봉지가 무게를 더해주었다.
화장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그 곳에 아까 봤던 키가 큰 남자직원이 서있었다. 뛰어온 덕에 신명나게 갈라진 앞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그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아까 왔던 사람인데요."
"아. 네 고객님."
"아까, 저랑 같이 있던 사람이요. 그 사람이 골랐던 그릇 어디있어요?"
"아 여기 있습니다. 꺼내드릴까요?"
"잠시만요."
그가 손짓하는 곳에 또 빠르게 걸어가 아까와 같은 선반 위를 쳐다보았다. 혀로 입술을 훑으며 아까 그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나뭇잎이 가장자리에 그려져있는 하얀색 도자기 그릇, 그래. 저거다.
"저거 세트로 좀 주세요."
"세트로 구입 하시겠습니까?"
"네. 가격은 말씀 안해주셔도 상관 없으니까 일단 저거 포장해주세요."
"아, 금방 해드리겠습니다."
"빨리 좀 부탁드려요."
김민석이 나 기다린단 말이야.
대충 남직원이 포장해준 큰 박스를 한 손으로 들쳐 업고서 뛸 수는 없으니 빠른 걸음으로 김민석이 있을 화장실쪽으로 걸었다. 대충 카드를 내밀고 알아서 서명까지 해달라고 하자 일취월장으로 알아서 계산해준 그 직원덕에 빠르게 계산 할 수 있었으나, 조금이라도 기다렸을 김민석에게 마음이 쓰여 거의 축지법을 쓰다시피 왔다.
"아, 씨. 그릇 주제에 존나 무거워 진짜."
결국 욕이 튀어나온 나는 김민석을 만나기 위해 표정을 고쳐잡았다. 괜히 세트로 샀나. 엄청 무거워 죽겠네. 안에는 뭐가 이렇게 달그락 거리는거야. 원 플러스 원 물건이라도 넣어줬나..
"...어딨어."
화장실의 근처에 다다랐는데 김민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 쪽 손에 들린 무거운 봉지와 어깨에 들쳐메고 있는 큰 박스를 번갈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화장실 가까이에 가도 아무도 보이지 않자 조금 불안해졌다. 병신같이 나는 김민석 번호따위도 모르고 대체 뭐하고 있는건지.
"김민석!"
불러도 대답이 없다. 나는 결국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서 그를 찾아보기로 했다. 남자 화장실인지 여자 화장실인지 문패를 번갈아가며 쳐다본 나는 정확히 남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김민석..어딨나."
화장실 안은 무척이나 깨끗했고, 심지어 상쾌한 향기까지 퍼져나왔다. 그리고 화장실 내부에 칸막이가 쳐진 칸은 한 곳 뿐이였다. 말소리가 들리는것 같은데, 지금 저기에 있는건가.
"김민..."
- 어째서 너는 왜, 늘 네 생각만 해..?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김민석의 목소리가 맞았다. 조금 높으면서도, 약간 쇳소리가 있는. 전화를 하는 중인것 같았다. 그래서 아직 그 안에 있었구나. 그런데, 왜 내 앞에서 하지 못하고. 들키기 싫은 무언가라도 있는건지.
- ...아직은 널 볼 자신이 없어.
어깨에 올려진 큰 박스가 점점 무거워짐이 느껴졌다. 소리가 나지 않게 그것들을 잠시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봉지는 여전히 손목에 메달아 놓은채로 칸막이가 쳐진 그 문 앞으로 다가갔다. 반대편에 있는 거울에는, 문에 귀를 기울이고 소리를 들으려는 내 모습이 비춰졌다. 그 잠깐의 순간에, 내가 조금 안쓰러워졌다. 그리고 김민석도.
너는 지금, 누구를 볼 자신이 없다고 하는건데.
- 네가 싫다고 말 한적 없어. 나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던것 뿐이야.
조금은, 아주 조금은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나왔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을때마다 대충 무슨 대화를 하는 중인지 알 것 같았다.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그와의 애인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다퉜다면서, 오늘은 약속이 없다고 조금은 주눅이 들어 말하던 김민석의 표정이 떠올랐다. 마음이 조금 아려왔다.
그는 아무래도 어제 그 일로 아직도 풀지 못한 모양이였다. 같이 살자는 애인의 말이 그만큼 충격이였나보다. 나는 지금 현재로는 그의 애인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김민석을 동시에 이해하고 있었다. 그 끝에 내가 서있다면 결국 김민석의 편이 되겠지만.
- 자꾸 그러지 마.
자꾸만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나온다. 숨을 참는게 느껴진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 앉는 소리까지 들린다. 나는 그 소리에 심장이 떨어지는것만 같았다.
김민석, 울리지 마.
- 크리스.
애인의 이름은 크리스. 나보다 먼저 김민석을 가진 그 남자의 이름, 크리스. 나를 세상에서 가장 못된 남자로 만들어버린 그 사람의 이름을 김민석이 지긋이 부른다. 그리고는 옅은 웃음을 흘리는게 느껴졌다.
너 우는거야?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해서 웃는거야. 당장이라도 이 문을 열고 끌고 나오고 싶다. 그리고 당장 전화를 끊고 이 곳을 나가고 싶어.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도 보기 싫고, 그 남자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네가 싫어.
- 우리...그만할까.
"........"
나는 우연히도, 그 자리에서 처절한 김민석의 이별고백을 들었다.
"많이 기다렸지."
눈가가 조금 빨개진 김민석이 허겁지겁 달려나와 내 옆에 섰다. 나는 모든 짐을 들고 진작부터 나와있었다. 그만하자는 김민석의 그남자에 대한 고백을 듣고 나서부터.
"집에..가요."
"응."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마. 아무렇지 않지 않잖아.
"세훈아."
"......."
"그런데 그거, 뭐야?"
"....아. 이거요."
"나 그런거 산 기억이 없는데. 뭐야?"
김민석 몰래 산 그릇세트들을 가르키며 그가 물어왔다. 뭐라고 대답하지.
"..별로 안비싸던데요."
"어..?"
"그릇.. 별로 안 비싸다고요."
"......."
"...좀 무겁긴 한데, 그 무게에 비하면.. 나름 싼 편이네."
나는 내려놓았던 그릇세트 박스를 다시 짊어지고 아무말 없이 마트 봉지를 김민석에게 건넸다. 김민석의 표정은 놀람과 당황스러움으로 번져있었다. 많이 놀랐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래. 무슨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세훈아."
"..네."
"이거, 왜 네가 산거야? 말도 없이. 네가 필요한것도 아니잖아. 설마 내가 필요하다고 해서 산거야?"
"....네."
"너..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래. 내가 언제 이런거 사달라고 했어?"
"......."
"나중에 아빠랑 같이 와서 사려고 했어. 지금 당장은 살 수 없어서 아빠랑 같이 와서 고르려고 했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사버리면 내가 미안해서, 눈치 보여서 어떻게 써."
".....눈치를 왜 보는데요. 어차피 살거면 빨리 사는게 좋잖아요. 잔말말고 집에 가요, 우리."
"왜 눈치가 안보여. 세훈아, 마음은 정말로 고마운데 그거..나 주지 마. 너 써."
"....왜요."
"너한테 그런거 받으려고 여기 온거 아니야. 그런거 아니니까 그냥 너 써. 내가 골라준거라고 생각하고 네가 써."
"........"
웃음이 나왔다. 그냥, 좀 곱게 쓴다고 하면 어디 덧나나.
"그러는 형은요."
"......."
"그러는 형은요. 형네 애인이 시계 사준다는건 어떻게 됐어요? 그건 이거 열배 잖아요. 한 번이라도 차지 않았어요? 나 그때 본것 같은데."
"...그건,"
"형 차고 나가는거."
얼마전 일이다. 그가 향수를 뿌리고 전에 구입한 커플 시계를 꼼꼼히 차고 나가는걸 본 적 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쓰다듬은것도 기억한다. 다 기억한다고.
"왜 그 사람이 준건 쓰고 내가 주는건 안쓴다는거에요."
"그런 뜻이 아니라."
"각별한 사이가 아니라서."
".....뭐?"
"그런 사이가 아니라서. 나랑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여서. 특별하지 않아서. 뭐 그런거."
"오세훈.."
"싫다면 쓰지 마요. 그래요. 내가 쓸게요."
"세훈아. 그런 뜻이 아니라,"
"내가 들거에요. 내가 쓸거니까."
"너 왜 갑자기 기분이 안좋아졌어. 아니야. 쓸게. 줘. 내가 들게, 이리 줘."
"오늘 우리 서로한테 여러번 변명 하네요."
"내가..쓸게. 네가 사준거니까, 내가 쓸게. 그게 맞는것 같아. 미안해. 미안해 세훈아."
".......형은, 진짜로. 나를 화나게 해요."
왜, 김민석에게 얼토당토 않는 성질을 내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나는 그냥 모든게 화가 났다. 내 선물은 받아주지 않는 김민석. 화를 내야만 못이기는척 들어주는 김민석.
"내가...널.."
애인에게 그만 하자고 이별을 고하는 김민석.
"...미안해."
그만 하자는 말이, 나에게 그만 하자고 하는것처럼 들리게 만드는 그런 너.
나는, 그 대답에 싫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런 말 없이 집으로 돌아온 나와 김민석은 몇 시간동안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이 찾아오고, 김민석은 주방으로 넘어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음식을 만들기에 집중하는듯 보였다.
결국 내가 사준 그릇들은 김민석이 쓰기로 했다. 불퉁한 내 표정을 보고서 그가 어찌 할 방법이 없다는듯 내린 결론이였다. 나는, 사실 그가 쓰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 없었다. 구석에 쳐박아둔다 해도 할 말 없었다.
후회가 됐다.
지금 제일 힘들건 김민석일텐데, 이별을 고한 김민석일텐데 왜 내가 갖은 힘든척은 다 했을까. 화난척을 한 내 모습이 갖잖았겠지. 그의 빨개진 눈가를 보고 위로는 못해줄 망정, 다 들어놓고 못 들은척 한게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준 그릇들을 고의적으로 깨뜨린다고 해도 할 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김민석은 내 눈치를 보았다. 너도 힘들면서, 무척이나 힘들면서 왜 티를 내지 않아. 힘들다고 말해. 힘들다고 말해, 그래서 나한테 기대란 말이야. 네가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널 위로해줘야 하니까. 기대서, 네가 자발적으로 기대고 힘들다고 말해서 너를 원하는 나를 나쁜사람으로 만들지 마.
하지만 그렇게 외쳐대도, 결국에 위로를 받은건 나였다.
이제는 궁금해지고 있었다.
김민석은 왜 그 사람에게 헤어지자고 했을까. 같이 산다는게 그렇게 끔찍히도 싫은 일이였을까. 아니면 내가 듣지 못한 무슨 일이라도 있는걸까. 평소에, 크리스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던지 하는 그런것들이 자꾸 내 마음속에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김민석에게서 이별을 고함 당한 그 남자는, 지금쯤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김민석이 그 남자와 헤어지는 상상을 할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기뻤다. 그럼 내가 그 자리를 서서히 채워주면 되는 일이였으니까. 하지만 왠지 그 일이 사실이 되고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니, 마냥 기쁘지 않았다. 왜일까. 왜, 나는 기쁘지 않았을까.
나는 어째서, 그에게 그만 끝내자고 말하는 김민석에게 되려 '싫다.' 라고 대답을 했을까.
"..선물, 잘 쓸게."
침대위에 걸터앉아 핸드폰만 만지고 있는 나에게 얼굴만 살짝 방안으로 밀어넣고 한다는 소리가 그 소리였다. 아침에 봤던 모습 그대로 그는 한 손에는 국자를 들고 나에게 말했다. 그릇 잘쓸게. 저녁 맛있게 먹을수 있겠다- 라고.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보지 않은채로.
많이 힘들어 한다. 김민석은 웃으면서 요리를 하는걸로 보이지만 그의 속은 까만 재가 됐을 거라 생각한다. 왜 아무렇지 않아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고 싶지만 그는 변명조차 하지 않을거다. 그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줄 알테니까.
침대 위로 누워버렸다. 천장이 그저 뿌옇게 보인다. 코 끝이 시려오면서 알싸한 냄새까지 풍겨온다. 감기가 걸린게 틀림없다.
왜, 뭐 때문에. 나는 울고 있는걸까.
그 이유는 이미 내 마음이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저렇게 무참히 버리는 김민석인데, 그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버리면 그 다음번 이별의 고함을 당하게 될 상대가 바로 내가 될거 같아서.
..그래서.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었나보다. 시간이 벌써 세 시간이나 흘러 있었다. 김민석은 그런 나를 한 번도 깨우지 않다가 곧 집으로 오고 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서 그제서야 나를 가녀린 손으로 살살 흔들어 깨웠다.
나는 부은 눈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고 김민석은 그대로 뒤를 돌아 내 방에서 나갔다. 어느샌가 내 방에 들어오는게 익숙해졌나보다.
엄마는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왔다. 또 다른 내 예상대로 엄마는 김민석의 아버지와 함께 돌아왔다. 그의 아버지는 큰 손으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김민석을 한 번 끌어안았다. 둘은 마치 여행이라도 다녀온것처럼 피곤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아들들, 잘 있었어? 세훈이는 그새 살이 빠졌고, 또 민석이는 그새 잘생겨졌네."
"잘 다녀오셨어요."
"다녀오셨어요."
"우리 아이들 주려고 엄마가 선물도 사왔어."
"뭘 왜 또 그런걸 사왔어요."
"왜긴. 기념품이지."
"일하러 간게 아니라 놀러 다녀오신거 아니에요?"
"얘는. 아우, 배가 고프다. 그런데 집에 맛있는 냄새가 나네? 오늘 아주머니 안오는 날인데, 누가 요리라도 한거야?"
"민석이 형이.."
"어머님, 식사 준비해놨어요."
"어머. 민석이 네가?"
그가 웃으며 엄마의 팔을 잡고 주방으로 데려왔다. 가만히 서있는 아저씨를 데려오는건 나의 몫이였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아저씨의 팔을 살살 끌었다.
"...오, 오세요. 식사 하세요."
"고맙다."
그는 나를 정말 아들처럼 대하기 위해 다부진 노력을 하고 있었다. 내 머리에 손을 얹고는 한 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억지로 웃어보였다.
주방으로 들어간 엄마는 정말 놀란 소리를 내며 김민석과 식탁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뒤에서 뻘쭘하게 서있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듯, 그랬다. 그리고 아저씨는 익숙한 광경이라는 듯이 내 옆에서 엄지손가락을 조용히 들어올려보이셨다. 나는 또 다시 억지로 웃으며 뒷목을 만졌다.
"민석아. 너 정말 대단한 재주를 가지고 있구나?"
"아니에요. 전에 많이 해봐서 그런것 뿐이에요."
"아니긴. 나도 이렇게 못 만드는데...부모님 오신다고 이렇게 상다리 휘어지게 만들어 놓은건 정말 네가 처음이다. 아들 가지고서 처음 있는 일이야. 세상에-"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정말 감탄해서 하는 소리인지. 정말 놀란듯한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낮부터 생선이란 생선은 다 쓸어모은 김민석이 정말로 제법 맛있는 요리들을 차려놨다. 아침에는 계란찜과 북어국이였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은 야심찬 식당에서만 볼 수 있는 해물전골탕과 연어와 광어 회 모둠이였다. 연어의 붉은 살이 시원하게 발라져있는게 먹지 않아도 금방이라도 입에 갖다 대기만 해도 녹을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반찬들 까지. 모든게 다 고급스러웠다.
김민석은 상당히 손이 까다로운 남자였다. 생각도 까다롭다. 그런 머리 아픈 제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것들을 다 만들어냈는지. 나는 웃지 않았지만, 김민석은 조그맣게 웃고 있었다.
그럼, 됐다.
"우리 아들이 이런걸 좀 잘해. 앉아서 먹읍시다."
"내 아들, 정말 감동이야."
김민석을 서서히 아들로 받아들이고 있는 엄마는 아들이란 말을 서스럼없이 뱉어냈다.
그럴수록 엄마가 미워진다. 아들이라고 불러서 그런게 아니라, 나와 김민석이 정말로 형제로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나도 모르게 각인 당하는것 같아서였다.
"세훈이도 같이 했어요."
저게 무슨 소리일까. 나는 세시간이나 잠들어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한다.
"응..? 우리 세훈이가?"
"네. 제가 알려줬더니 옆에서 금방 하던데요. 잘 하더라구요."
"...어,엄마."
"어서 드세요. 다음에 저랑 세훈이랑 같이 요리하는거 보여드릴게요. 그럼 더 보기 좋으시겠죠?"
"어머. 우리 세훈이도 같이 했단 말이야? 어쩐지, 이 많은것들을 어떻게 다 혼자 했나 했어. 그래. 일단 먹을게, 잘 먹을게 우리 아들들."
"........"
김민석 저건 정말 등신인게 틀림없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건지. 나는 젓가락을 들고 김민석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그는 왜 그러냐는듯 웃었다. 내가 입모양으로 '뭐하는거에요.' 하고 물었지만 김민석은 어깨만 으쓱 할 뿐이였다.
설마 내가 소외감을 느낄까봐 그런건가.
나는 다시 김민석의 허벅지에 손을 대며 '아니라고 해요.' 하고 말했지만, 김민석은 '왜. 괜찮아.'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이내 밥을 떠먹었다. 내가 계속해서 그의 허리를, 허벅지를 건들었지만 그는 나를 보지도 않고 맛있게 반찬을 집어먹었다.
엄마와 아저씨는 나란히 앉아 서로의 밥 위에 반찬을 놓아주기에 바빴고, 나는 그런 두 분을 보며 결국 사실을 말하는걸 포기하고 대충 밥을 씹어먹었다. 울어서 눈이 아팠던 나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않았다. 김민석은 그런 나의 눈치를 보면서 씨익 웃고는 밥을 먹었다.
"정말 맛있어."
"비주얼에 꿀리지 않는 맛이야. 최고야, 민석아."
"감사해요."
"그리고 세훈이도."
"...전 한거 없어요."
끝내 한마디 해버리니 김민석이 나를 노려본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그냥 밥에만 신경을 썼다.
그래. 정말 맛있었다.
한 입 먹고 칭찬하고, 또 한 입 먹고 칭찬하는 엄마는 김민석이 닳도록 칭찬을 해주었다. 그는 그럴때마다 웃으며 더 드세요, 하고 야무지게 대답했지만. 이렇게 보니 나보다 더 아들 노릇을 잘 하는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또 그 모습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어색했지만 부모님 두 분은 만족하고 김민석은 어땠을지 모를 저녁식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자주 이런 음식을 부탁한다는 엄마의 말에 김민석은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 원하시는거 있으면 언제든지 해드릴게요. 또 그런 김민석이 예쁘다고 엉덩이를 두드려주는데, 차라리 내가 엄마였으면 좋겠다. 서스럼없이 김민석을 바라볼수 있게끔.
"설거지는 내가 할게요."
"아니야. 들어가있어, 내가 마저 할게."
"밥도 혼자 다하고. 마무리도 혼자 다 하고. 거짓말을 했으면 그 거짓말에 좀 맞게끔 행동해줄래요. 나도 밥값은 해야지."
"밥값은 내가 할테니까 너는 하지마."
"진짜, 왜 이러는건데요. 좀 내가 하겠다면 하게 냅둬요."
"너도 내가 하겠다면 냅둬. 저리 가있어. 얼른."
어른인척 하는 그 말투가 얄미워져서 홱 하고 돌아섰다. 내 뒤에 대고 풉-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그래. 너 혼자 다해라, 다 해.
"....괜찮아요?"
"뭐가."
"기분..안 좋진 않아요?"
"..안좋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 뭐."
"....낮에 나랑 싸워서 기분 상했을까봐."
"그건 다 끝난 일인데 내가 그걸로 뒷끝 가질까봐."
"혹시 모르는 거니까."
그는, 내 일에서는 아무렇지 않다고 대답하지만. 그의 애인의 일에 있어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나는 김민석의 옆에서 대강 옷만 만지고 있는데, 그때 누군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나와 김민석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현관쪽을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 누구지."
나는 엄마와 아저씨 대신해서 현관으로 걸어갔다. 안그래도 두 분은 같은 방에서 다른 일을 하느라 바쁜것 같았다. 식사할때 듣기로는 내일 어떤 행사에 초청을 받아서 커플룩을 맞춘다고 하던데. 아마도 그 일때문에 많이 바쁠것이다.
"누구세요."
- 문 좀 잠시 열어주시겠어요.
"..누구신데요."
- 김민석 아는 사람입니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성함이."
- ...크리스라고 하는데요. 안에 김민석 있죠.
그 예감은, 곧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김민석도.
- 김민석을 보러 왔습니다. 좀 열어주셨으면 해요.
"......."
- ..여보세요.
".....그런 사람 없어요."
- 안에 있는거 다 압니다. 당신은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김민석 거기에 있는거 다 알아요.
"없다니까. 잘못 찾아왔어요. 김민석이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요. 가세요."
- 김민석. 문 열어.
점점 시끄러워지는 말소리에, 김민석이 고무장갑을 낀 채로 뚝뚝 물을 흘리며 현관 앞으로 다가섰다. 현관으로 나온건 김민석 뿐만이 아닌 그의 아버지와, 그리고 내 엄마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누구시니?"
엄마가 물어왔다.
"미친 사람이에요."
"미친 사람?"
아저씨가 물어왔다.
"네."
"세훈아, 누구야?"
김민석이...물어왔다.
뭐라고 대답해야, 네가 울지 않을까.
"......."
"내가 열어보마."
현관을 열려는 아저씨의 팔을 나도 모르게 막아버렸다. 아저씨가 잠시 당황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고, 엄마 또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여보, 세훈이 말로는 이상한 사람인것 같은데.."
- 김민석, 안에 있는거 다 알아.
씨발.
진심으로 욕이 나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김민석을 돌아보았고, 그는 놀란 얼굴을 하고서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김민석을 바라보았고 놀란 그를 보고서야 다시 나를 보았다.
"내가 문을 열어보마."
"...아저씨."
"열어보면 누군지 알겠지."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저 상태에서 문을 열면 김민석도, 나도, 크리스도 다 죽는다. 그중 가장 힘든 사람은 김민석이 될 것이다.
크리스라는 사람, 나처럼 김민석에게 집착이 심한 남자인가보다. 집까지 찾아올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어째서. 힘들면 시간을 좀 가져야 할것이 아닌가. 무턱대고 찾아온 모습이 어이가 없어진 나는 한동안 아프지 않던 관자놀이가 아파와 꾹 누르며 김민석에게로 갔다. 그리고 그의 팔을 잡으며 뒤로 돌려 세웠다.
"보지마."
"......."
"너, 안좋을것 같다."
"......."
"방에 들어가 있을래?"
내가 김민석의 얼굴을 잡으며 물어보려 하는 찰나, 현관문이 열렸다. 한 발 늦었다는 소리다. 닥치고 김민석을 방으로 보냈어야 한다.
현관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으나, 모습이 눈에 선명했다. 그리고 김민석의 아버지가 말을 더듬으며 그에게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분위기가, 어색했다.
아는 사람을 반기는듯한 그런 분위기였다.
"크리스. 자네가 여기에 무슨 일로..!"
"...아버님도 오늘 함께 계셨네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 그래. 출장을 다녀왔다네. 그런데 자네가 여기에 어떻게 온건가..! 민석아, 민석아 어서 인사해라."
"......."
김민석의 시선은 이미 내가 다른데로 두게 했기에, 그 남자를 볼 수 없었다. 내가 잡고 있는 김민석의 어깨가 조금 여리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두번째로 보는 그의 모습이였다. 생각보다 말끔한 얼굴이였고, 울었던 나보다 훨씬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묘한 웃음이 가득했다. 김민석의 아버지는 크리스를 보며 안절부절 하지 못한채로 머리를 짚었다가 크리스의 팔을 잡았다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행동을 보였다. 엄마는 그런 아저씨를 보며 당황한 기색을 내비췄고, 그러다가도 크리스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곧 놀란 말투로 입을 열었다.
"어머, 혹시...!"
"반갑습니다. 어머님. 제가 크리스입니다."
그의 인사에 엄마도 곧 경계를 풀고 선뜻 다가가 등을 다독이는 등 친밀감의 표시를 취했다.
아저씨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지금 이 상황은 뭔데. 진작부터 두 사람은 이미 알고있던 사람이였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인데. 대체 엄마랑 저 사람은 어떻게 아는 사이인건데. 예상에도 없던 일들이 자꾸만 몰아쳐오자 내 머리는 곧 깨질듯이 아파왔다.
"부모님들께 인사는 나중에 드릴게요. 저 지금, 민석이 보러 왔거든요."
"......."
"민석아."
"......."
"김민석."
"......."
"비싼 얼굴 좀 보자."
"......."
"얼굴 보기가 이렇게 힘들어. 왜."
"......"
"..넌 가만히 있어도 예쁘고, 그냥 웃기만 하고 있어도 예쁘다고 했지. 내가."
정적이 흘렀다. 조용한 이 집 안에서 그의 육성만이 공기중에 타고 흐르고 있었다. 내 귀에 들리는 그의 말은, 누가 들어도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였다.
그 말에 나는 짐작이 간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저, 저기. 크리스. 그게 무슨..말인가."
"민석아, 얼굴 안보여주네."
"......."
"왜. 예쁜 짓을 안하는 거야."
"......."
"내 말 안듣는거 정말로 오랜만이네."
"......."
"너는 네가 나에게 헤어지자고 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았지. 책임?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 그런건 다 버려도 상관없어."
"...크리스. 지금 그 말이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주게. 대체 무슨 소리인건가, 그게. 헤어지다니. 자네들...좋은 친구 사이가 아니던가."
"내 책임을 따지기 전에, 네가 책임 질것들이나 생각해. 예를 들면 네 아버지라던지."
"...크리스 군. 무슨 상황인지,"
"아버님."
"......."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민석이 좀 잠시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안된다고 해도 데리고 나갈겁니다."
"........"
"민석이 회사 일에 대해 얘기할게 있어서요. 저 녀석, 곧 회사에서 잘릴 예정이거든요."
"........!!!"
"아. 그리고,"
"크리스 군, 잠시만 나랑 얘기하도록 하게. 지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들이 실수를 했으면 똑바로 교육시키겠네. 내가 저 녀석을-"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 단순한 갑,을 사이는 아니거든요 아버님."
"........"
"그런데 그게 문제라고 하네요. 민석이는."
김민석, 너는 왜 저렇게 어리석은 사람을 사랑했어.
"저와 민석이, 친구 아닙니다."
그리고 너는 왜 또 그렇게 울고 있어.
"저희, 오늘 낮에 헤어진 연인 사이입니다."
그리고 나는 또 왜 이렇게 미칠듯 화가 나는건지.
"먼저 끝내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곧 김민석을 회사에서 없앨 생각입니다."
크리스, 너는 정말 치졸한 새끼야.
"찾지 마세요."
나는 찬물을 끼얹은듯한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당장 김민석의 팔을 붙잡고 질질 끌고 가듯이 집의 뒷 문으로 나갔다. 평소에, 문이 두개라고 불만이 많았는데 오늘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깥으로 그 문으로 데리고 나왔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김민석은 미친듯이 떨고 있었다. 하지만 넌 추위 때문에 그러는게 아니라는걸 알아. 너의 눈물을 보는건 아무래도 이번이 두 번째인것 같다.
집 앞에서 차를 대놓고 항시 대기중이던 기사 아저씨 앞으로 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무도 우리를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저씨. 키 좀 주세요."
"아, 도련님. 갑자기 그게.."
"오늘 안에 안돌아올거니까 그렇게 알라고 전해주세요. 저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요."
"도련님. 지갑은 들고 오셨어요? 음주를 하셨다거나, 그런건 아니시죠."
"아니니까 걱정말고 주세요."
면허증이고 뭐고 다 필요없어. 지금은 김민석한테 이 곳은 독밖에 안되니까.
"김민석. 타."
"........"
"씨발....너."
"........"
"....울지 마. 좋은 말 할때 빨리 타."
나는, 죽어도 오늘 너 못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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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 이든 / 너구리 / 치즈스틱 / 연 / 두부 / 텐더 / 히융융 / 초코푸딩 / 모카 / 노란색연필 / 변골반 / 낑깡 / 낫닝겐 / 핫바 / 조무래기 / 홍홍아직도랩을한다 / 올빼미 / 망고주스 님♡
늦게 찾아온 저를 때려주실분 선착순 10분...모집합니다....ㅇ
아무 말 없이, 돌아갈게요.
죄송합니다. 사랑해요.
ㅠ_ㅠ
나름 분량 길게 한다고 가져왔는데, 다음 편부터 절정을 맞이하고 완결이 나올 예정입니다..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하구요, 또 죄송해요..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