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해가 짧아지고 벌써 차가운 바람이 온 몸을 스쳐간지도 꽤 됬다. 춥다. 정말 춥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웠다. 차가운 바람이 불때면 자연스레 세훈이를 생각하곤했다. 세훈이는 차가운 바람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도 좋아했다. 자기처럼 하얀 눈이 좋다고 말했다. 어두운 밤길이 갑자기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까만 밤하늘 하얀 눈송이가 내려왔다. 분명 첫 눈 이었다. 작년에는 세훈이와 같이 첫눈을 맞았었다. 그땐 따뜻한 세훈이의 품 안에서 맞았지만 지금은 세훈이도 그 누구도 아무도 없다. 단지 나 혼자일 뿐이다. 세훈이는 봄이 오기전 작년 2월에 미안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사라져버렸다. "세훈아, 보고싶어". 눈송이들이 시작되는 저 먼 하늘을 보고 말했다. 들을리 없겠지만. 나를 놔두고 가버린 너를 많이 원망해봤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그저, 어디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고싶을뿐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따뜻한 이불 속으로 몸을 던졌다. 푹신한 침대와 부드러운 이불이 내 몸을 감싸안았다. 세훈이와 처음 같이 사랑을 나누었던 날의 세훈이의 품과 비슷했다. 부드러운 살결과 따뜻한 품. 나를 위에서 아래로 쳐다보며 긴장하지말라고 내 얼굴을 만져주었던 큰 손.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을 때의 그 느낌. 따뜻한 젤리같은 혀가 맞닿 았을 때의 느낌. 봉긋 솟은 가슴을 어루만주어주었던 손길과 처음 느껴보는 아픔과 느낌.살짝 풀린 눈과 미간의 주름과 입술사이로 흘러나오던 소리. 그리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숨길. 평소 같지 않게 유난히도 세훈이가 많이 생각났다. 그럴수록 난 외로워졌다. 그 날 꿈에 아니, 난 실제라고 믿고있지만 믿겨지지않는 꿈을 꿨다. 세훈이가 나타났다. 내 배게와 목 사이로 나온 하얗고 마르지만 다부진 팔이, 가느다란 손가락과 선분홍색의 손톱이 분명 세훈이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도 내가 기억하는 세훈이의 품 속 이었다. 고개를 돌려 보고팠던 얼굴을 보고싶었지만, 사라질 것 같은 느낌에 혼자 울먹이며 아직도 벽에 걸려있는 세훈이의 사진만 쳐다보았다. '사라지지마..' 마음 속으로 수십번도 외쳤다. 그게 현실인지 현실이 아닌지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채 잠에 들었다. 그 후로 종종 그런적이 몇번 있었다. 너무나 현실같은 꿈. 나는 작은 희망을 걸고 하루를 지새울 준비를 했다. 에너지 드링크와 커피를 많이 마셨다. 밤 열두시, 침대 위 다리를 끌어안고 세훈이를 기다렸다. '얼른와줘 세훈아.보고싶다.' 3시간 정도가 지난 것 같았다. 역시나 내가 꾼 현실은 꿈이었던 걸까. 오피스텔 그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카페인은 아무런 소용이 없던 것이였을까, 나도 모르게 무릎에 이마를 대고 잠들었다. 잠깐 정신이 들었다. 목이 뻐근해야 정상인데, 생각해 보니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 손 위로 올려진 희고 큰 손. 역시, 꿈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고싶었다. 눈을 마주치면 제일 먼저 보고싶었다고 말 할 생각이었다. 머리에 힘을 주어 일어나려고했다. "가만히 있어." 그 손이 내 얼굴을 만져주었다. 가만히 있어. 이젠 정말 확실해졌다. 세훈이다. "세훈아." "왜?" "보고싶었어." "나는 더 보고싶었어." 절대 헤어질 수 없다는 듯이 서로의 손을 꼭 맞잡았다. 세훈이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쉽게 다가가지 못 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차가운 인상에 무표정을 하고 있으 면 무서워서 세훈이를 처음 본 친구들이 다 당황했었다. 하지만 먼저 웃으며 인사하는 세훈이를 보고는 다들 오해를 풀기도 했다. 차가워 보이지만 손은 따뜻하고, 나를 향 한 마음은 누구보다도 뜨거웠다. "저번에 첫 눈 왔었는데, 봤어?" "이번에도 너랑 같이 첫 눈 맞이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인가 싶어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세훈이의 얼굴을 보려했지만 세훈이가 또 손으로 내 머리를 제 어깨위에 오게 했다. 왜 자꾸 얼굴을 못보게 하는 건지 궁금했다. 내가 못 본 사이에 다치기라도 한 걸까?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거나...걱정이 태산이었다. "그 때, 네가 나 보고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온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그리고 왜 자꾸 얼굴 못 보게하는데?" "지금 부터 내가 얘기하는거, 믿어도 되고 믿지 않아도 되는데 마지막에 하는 말은 꼭 믿어." "응?" 세훈이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나열했다. 세훈이는 원래 천사인데, 그 세계에서 나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했다. 그래서 금기시 되는 인간이 되는 약을 먹고 인간 '오세훈'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들켜버려서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돌아갔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보고싶어 다시 한 번 그 약을 먹고 지금 처럼 내려왔는데, 약의 부작용으로 지금은 천사도, 인간도 아닌 상태이고 더 중요한건 사랑하는 인간과 눈을 마주치게 되면 반드시 한 쪽은 죽는다고 했다. 모든 것이 믿을 수 없었지만 마지막 말은 정말 믿기 싫었다. 하지만 믿으라고 했다. 그렇단건 나와 세훈이는 이제 영원히 눈을 못 마주친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이제 우리 눈 마주치면 안되는거야..?" "미안.." "너무 보고싶은데." "내가 눈 감을 테니까 내 얼굴 보고있어." 마주 본 세훈이의 얼굴은 그대로인데 무언가 달랐다. 더 하얗고 주위에서 가느다란 빛이 뿜어져나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세훈이의 눈썹을 한올한올 만졌다. 짙은 속쌍커풀과 곧게 뻗은 코와 말랑한 콧망울, 작은 입술, 밖으로 뒤집어진 귀, 여전히 멋진 어깨. 웃을 때 생기는 입 가의 주름. 나도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세훈이는 손 바닥으로 내 얼굴을 감싸 엄지손가락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 눈 뜬다." 이미 감고 있던 눈을 더 꼭 감았다. 절대로 세훈이를 잃고 싶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고 교감할 수 없지만, 그럴 수록 느껴지는 손의 따스함이 서로에 대한 마음이 더 잘 느 껴졌다. "너 울어라고 나 내려온거 아닌데. 나도 눈물 난다. 네가 못봐서 다행이다. 부끄러울 뻔 했어." "세훈아." "왜?" "안되겠어." "뭐가?" "내가 너 따라서 죽을게. 보고싶어." "그런 말 함부로 할래? 나 화낸다." "너 못보는데 살 가치가 있을리 없잖아. 그 동안은 한 번이라도 너 볼까봐 살아왔던거야. 지금 바로 앞에 있는데, 못 본 다는게 말이 안되잖아. 그냥 내가 너 따라 죽을게. 응?" "그런말 하지마." 처음 사랑을 나눴던 그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 때와 같은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과 맞닿았다. 기억 속 그대로, 소중했던 그 느낌 그대로. 예전처럼 위에서 아래로 날 볼 수는 없겠지만 서로 눈 꼭 감고 기억만 떠올리며 살결을 맞닿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아픔이 머지 않아 쾌락으로 바뀌었고 귀 옆에서 생생하게 들리는 세훈이의 숨소 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날 만져주는 손길이.. 그 짧은 순간에 사랑을 나누고,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눈을 마주보았다. 한번 웃어보고는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고통스러웠던 건지 세훈이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내 위에서 느껴지던 무게감이 점점 사라졌다. 내 눈 밑으로 세훈이의 눈물이 떨어졌다. "다음생에는 인간으로 만나서, 죽을 때 까지 사랑하자. 사랑해." 거짓말 처럼 사라져버렸다. 아무런 흔적도 자취도 없이 그냥 없어졌다. 나는 그저 웃었다. 이제 우리 만날 수 있어. 내가 죽으면 우리 영원할 수 있어 세훈아. 욕조에 차가 운 물을 가득 받았다. 찬 기운이 맴돌았다. 물 속으로 다리를 한 쪽 넣었더니 온 몸에 있는 털이 다 서는 느낌이었다. 닭살스런 소름이 돋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목까 지 물에 잠기게했다. 날카로운 것으로 내 살을 후벼팠다. 세훈이는 더 아팠을텐데... 차가운 물에 흘러나오는 피가 얼 것만 같았다. 점점 정신이 흐릿해져갔다. ㅓ에 입력하세요.천국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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