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주세요..! 브금이 첨부되지 않아요...렉인가ㅠㅠ.... - "구질구질해," "우중충해." 기분이 그랬다, 이상하게 다운되는 날. 집에 있자니 모든 게 맘에 썩 들지 않았다. 괜히 우울해지는 기분, 비참해지는 기분, 삶이 너무 평범해진 느낌. 난 황홀함이 그리워졌다. "어디든 집구석보단 천국일테니," 난 결심했다, 그리고 이어폰과 핸드폰만 챙겨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바깥 공기가 훅 들어왔다. 벌써 황홀한 기분, 일년만에 맞이하는 가을 저녁공기는 이토록 신선하구나. 늘 학교에만 있던 시간이라 그런지 이 시간에 학교가 아닌 다른 공간에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고 공기도 맑은 것이 기분까지 맑게 정화시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난 학교에 있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늘 그러곤 했다. 우리학교는 야자보다는 자유로운 오후자습이 있는데, 학교 분위기나 질 자체가 지극히 평화롭고 평범한 학교라 그런지 따로 신청해서 듣는 것도 아니고 잡는 선생님도 없었지만 많이들 오후자습을 한다.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난 공부하려고 듣는 수업이 아니였다. 내 목적은 김너봉, 그 애를 보기 위함이였다. 그 애는 항상 오후자습을 들었고 난 일년 넘게 걜 눈여겨 보는 중이다. 근데 오늘은 피곤했는지 집에 먼저 갔다. 많이 피곤했는지 친구한테 기대어 칭얼거리며 교문을 나서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운동장 옆 벤치에서 음악을 듣는 척 그 앨 흘깃흘깃 바라봤는데 자꾸 미소가 지어졌다. 그 애를 보겠다고 오후 자습을 들은지도 5개월, 성적도 올랐다. 그래 최승철, 그 애도 보고 성적도 올리느라 고생 많았다! 그 애도 없는 오늘 오후자습, 들을 필요가 있나? 재끼자! 그렇게 난 여느 날들과는 다르게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4시, 아직 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공기에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높은 하늘 아래의 늦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서 있자니 맘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였다. 그 아이와 함께 걷고 싶다, 걷고 싶다. 작년 이 맘 쯤에도 내 마음 속엔 그 아이가 있었지, 그랬었다. 그 때도 아마 '그 애랑 걷고 싶다'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 뭐 사실 어디든 그 애랑 걸으면 천국이겠지만. 피곤하다던 넌 어딨을까? 집에서 자고 있을까? 공주님이네, 완전. 아니면 친구들이랑 시내에서 놀고 있을까? 반전매력이네. 아냐, 시내에 나갔다가 다른 남자가 번호를 따 가고 연락을 하다가 남자친구가 생겨 버리면 어떡해? 으, 상상도 하기 싫다 정말. 이런 저런 생각, 아니 사실 네 생각만 가득가득 띄우며 집에 왔는데 막상 집에 오니 따분했다. 그 아이를 보고 있을 시간에 보지도 못 하고, 이게 뭐야! 우중충했고 지루했다. 그렇게 뒹굴거리며 의미없는 30분을 보내고, 결심했다, 나가겠다고. 갈 곳이 없어 고민했지만 일단 어디든 가 보겠다는 의지를 챙겨 나온 만큼 발걸음이 가는대로 걸었다. 저녁이 되니 도로엔 퇴근하는 자동차가 많았다. 버스정류장은 사람이 복작복작했으며 스쳐가는 버스는 사람으로 가득차 빈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도 선선하니,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기며 10분 가량 무작정 걷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거리까지 왔다. 왔는데, 왔는데,,,, "....와..."
세상에, 하늘이 너무 예뻤다. 어쩜 이래? 낮에는 구름이 한 점도 없더니만 저녁이 되니 핑크빛 몽글몽글한 구름도 있었고, 코튼블루색의 솜사탕을 찢은 듯한 구름도 있었고. 붉게 곱게 물든 하늘이 정말정말 황홀했다. 나오길 잘했다, 최승철. 여유 찾아 나왔다가 황홀함에 젖어 들어가겠네. 진짜, 황홀함이라는 말보다 더 완벽한 표현도 없었다. 나는 지금 사거리의 중심에 서 있다. 왼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사거리의 서쪽으로 쭉 뻗은 길의 보이지 않는 그 끝까지 붉은 하늘이 가득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하늘에 닿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달려가야 비로소 닿을 수 있을까.' 잡고 싶었다. 손을 뻗어 끌어 오면 구름이 손에 있을 것만 같았다. 꿈만 같았다. 아니 최승철 미친놈아, 핑크빛 하늘 사이로 자꾸 그 아이가 아른거리면 어쩌자는 거야, 그냥 아주 김너봉이한테 완전 미쳤네. ...보고 싶긴 더럽게 보고싶네, 진짜. 핸드폰을 꺼내 이 필터, 저 필터 넣어보며 하늘을 열심히 찍었다. 카메라조차 하늘을 눈에 담는 것 만큼 예쁘게 담아내지 못해 화가 났다. 자꾸 김너봉생각이 난다, 그 와중에. 김너봉, 계속 널 시선으로 쫓다 보면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언제까지 손을 뻗어야 비로소 닿을 수 있을까. 하늘 같다, 그 아이는. 예쁘잖아, 헤헤. 순간 하늘을 담는 내 시야로 비눗방울이 날아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새로 오픈한 아이스크림 가게 앞 삐에로가 불어주는 것 같았다. "와!!! 비눗방울~" 네살 정도 돼보이는 아이가 비눗방울을 쫓고 있었다. 계속 비눗방울을 쫓고 있었고 어느새 내 시선은 그 아이를 쫓고 있었다. 귀엽다, 진짜 귀엽다. 김너봉이만큼은 아니지만. "어어, 너무 높은데, 너무 빨라...!" 비눗방울이 가을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게 어린 아이에겐 다소 버거웠는지 잠시 멈칫하고는 시무룩해진 아이였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비눗방울을 쫓는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헤헤,헤헤헤! 잡았당!! 형아! 삐에로형아! 더 불어주세요!" 결국 비눗방울에 손을 대 터뜨리고는 과즙 터지듯 행복하게 웃는 아이였다. 삐에로에게 가 자랑을 하며 더 불어달라고 하는 아이가 보였다. ...! 그래, 최승철! 너도 계속 쫓으면 되잖아! 그럼 닿겠지, 언젠간. 아이를 보고 떠올랐다. 교훈을 얻은 느낌이였다. 계속 널 바라보면 알아주지 않을까? 아이처럼 적극적으로 더 좋아하자! 적극적, 고..백? ......!! 하늘에서일까? 아니면 구름? 비눗방울이 가져다 준 걸까? 갑자기 용기가 샘솟았다. 너한테 고백할 용기가 샘솟았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는데 계속 네가 머릿속을 맴돌아 늦은 밤까지 잠이 오지 않아 물이라도 마시러 부엌으로 나갔다. 내일이면 다시 널 볼 수 있겠지, 꼭 내일 마음 전해야지. 새벽에 물을 마시면서 혼자 다짐했다, 나는 너에게 턱끝까지 차올랐던 그 말을 내일 꼭 하리라고.
"너 예뻐, 정말 예뻐. 좋아해 김너봉. 열일곱부터, 늘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