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1억
BGM
나는 그의 말에 잠시 벙쪄있었다. 나는 또 그것도 모르고 그를 피하기만했으니까.
"…미안해요."
"혜 씨가 미안할 건 없어요. 오해할만한 상황이었는데.. 제가 말을 안 했던 거잖아요."
"……."
"미안해요. 말 못해서."
그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한 소리도 아니었고.. 이런 상황이 일어날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갑자기 생긴 상황에 당황을 해버렸다.
대화 주제를 바꿔야하나 생각을 한참 하다가 결국 내 방을 한 번 바라보고선 그에게 말했다.
"야경 선물이요.. 고마워요."
"……."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다 받고..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방에서 야경을 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친구분한테 부탁을 하긴 했는데요.. 알아서 예쁘게 꾸며주셨겠죠?"
"볼래요?"
"그래도 돼요?"
"네. 들어오세요."
어떤 의심조차 하지도않은 채로 그를 집에 들어오라고했다.
"…예쁘네요."
그와 함께 내 방에 들어온 건 너무 어색했고, 어떻게 해야될 지도 모르겠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어색하지도 않을 텐데.
이 사람이랑은 왜 이렇게 낯간지럽고 ..어쩔 줄을 모르겠지.
그러다 책상 위에 두었던 맥주와 육포를 본 그에 혼자 찔려서는 말했다.
"…혼자 맥주 마시려고 사왔거든요. 자주.. 마시는 건 아닌데.."
자주 마시는데 왜 난 거짓말을 하는 걸까.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다. 나는
"같이.. 마셔도 돼요?"
그를
"…네! 좋아요."
2년 전부터 좋아했음을 확신하고있다. 알면서도 계속 부정을 하고싶었던 거였다.
2년 전 지하실에 그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던 내 모습이.. 그를 좋아하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최근까지만 해도 나 혼자 편하려고 생각한 것 때문에 악연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않았다. 오히려.
"준혁 씨는 편의점 육포 한 번도 안 먹어봤죠?"
"그쵸?"
"어때요?"
"맛있는데요."
"그쵸. 저도 처음 먹어보고 놀랐다니까요. 그나저나.."
"……."
"너무 예뻐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
그와 나는 인연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결혼한 남자랑 한바탕 했어!? 가만히 두면 안 돼!!"
"수영아.."
"미친놈이 바람을 필 거면 다른 사람이랑 하던가 왜 너한테 그런대!?"
"…야."
"뭐!"
어제 그와 나는 정말 건전하게 맥주 반캔씩 마시며 별 얘기도 하지않았다. 그런데도 그렇게 어색하지도않았다.
한여름의 트리를 보며 중요하지도않은 얘기를 나누다가 그렇게 그는 나에게 내일 일하려면 쉬어야되는 거 아니냐며 자리를 비워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수영이는 나를 보자마자 그 새끼는 어떻게 됐냐며 욕을 하기 바쁘다.
"오해였어. 결혼한 거 아니래."
"뭐? 어떻게하면 그런 오해를.."
"…그냥."
"……."
"나 혼자 좋아해. 그 사람."
내 말에 수영이는 에? 하고 잠시 벙쪄서 나를 보다가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결혼한 게 아니면 너무 정확해지는데 이 상황이?"
"뭔 상황?"
"그 사람이 너 좋아하잖아."
"……."
"아니라고 하지 마라. 너도 알고있잖아."
그가 동정심 떄문에 날 찾아온 게 아니라면 저건 분명하다. 내가 연애를 안 해본 것도 아니고..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저것쯤은 나도 알 수가 있었다.
"그래도.."
그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뭔가 섣불리 확신하고 아니라면 실망하는 내 모습이 상상이 가서.. 그게 두려워서 인정하기가 싫었다.
"맞다고해도 나만큼은 아닐 거야."
"그냥 고백해봐! 백퍼야. 아닐 수가 없다니까?"
에이- 하고선 오픈 준비를 하고있으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누구지? 조용히 말하며 전화를 받으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 혜 씨 출근했어요?
"…어? 제 번호 어떻게 아셨어요?"
- 어제 저한테 전화했잖아요.
"아.. 그랬죠... 출근했는데.. 왜요?"
- 잠깐 앞에 좀 나와줄래요? 5분 뒤면 도착하거든요.
"네? 아, 네."
왜? 하고 궁금한 듯 날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수영이에 나는 '잠깐 앞에 나오라는데?'하고 대답을 했고, 수영이는 또 그것 보라며 호들갑이다.
고갤 저으며 먼저 나가있으려고 나왔을까.
"누나! 여기서 뭐해요!?"
"아, 잠깐 아는분이 나오라고해서."
"오호~ 남자친구? 그때 그 분!?!"
"남자친구 아니야 인마."
나한테 어깨동무를 하고선 비웃는 동생에 고갤 저으면 동생이 음흉하게 웃으며 레스토랑으로 들어섰고, 곧 차가 내 앞에 선다.
그가 차에서 내리는데...
"뭐예요!?"
"…대충 이 정도 될 것 같아서 사오긴했는데. 남으면 혜 씨가 다 마셔요."
카페에서 이것저것 사온 것 같은데.. 이걸 왜 나한테 주는가. 그게 너무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의 표정은 그저.. 그냥 나에게 사주고싶었다는 듯 너무 순수하게 보여서였다.
"감사해요.. 바쁘실 텐데."
"바로 가야죠."
"…잘 마실게요."
"네. 근데.."
"네?"
"아까 그 동생분이요."
"…아, 네."
"혜 씨 좋아해요?"
"에!?!?!?!"
너무 크게 놀랐나. 그가 덩달아 놀라서 나를 바라보고 픽- 웃는데 바로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절대.."
"…알았어요. 뭘 그렇게 놀래요."
"……."
"또 연락할게요."
"네. 고마워요 정말.."
그가 보기좋게 웃어주며 차에 탔고, 나는 큰 종이가방을 든 채로 멀어지는 그의 차를 보았다. 그도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건.. 느낌으론 알 수 있다.
모르면 그게 바보지.. 근데 확실하게 물어보기가 두려운 거야.
준혁은 점심시간에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럼 태오가 대표실로 들어섰고.. 준혁의 표정은 그렇게 반가운 표정이 아니다.
"길게 말 안 해."
"……."
"너 혜 씨 옆에서 뭐하는 거야?"
예상했다는 듯 태오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준혁을 바라보았고, 준혁은 태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2년간 혜를 따라다니던 태오가 소름이 끼친다는 듯 태오를 바라보면, 태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형은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한혜 얘기야?"
"이상한 소리말고 내 말에 대답이나 해."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게 궁금했어. 형은 출장가서 한국에 없으니까.. 그 사람 옆에는 아무도 없을 거란 생각한 거고."
"……."
"근데."
"……."
"제일 괴로운 건.."
"……."
"그렇게 옆에 붙어서 보고있으면서도 내가 해줄 게 없더라."
"……."
"그래서 그게 더 괴로웠어. 그 사람이 밝게 지내는 걸 볼 때마다 그럴 때마다 내 잘못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서.. 그걸 위안 삼았어."
"……."
"형이 나 미워하는 거 알겠는데. 난 그 사람한테.."
"됐다."
"……."
"고생 많았어."
태오는 준혁의 말에 당황한 듯 눈물이 고인 채로 준혁을 바라보았다.
"네가 잘못한 거 없으니까 그만 자책해. 그 사람도 네 잘못이라고 생각 안 할 거야."
"……."
"착해빠져가지고 어떻게 세상 살아갈래."
태오는 처음으로 듣는 준혁의 차가운 듯 다정한 말에 작게 웃음이 나면서도 눈물이 흘렀다.
점심을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배고파서 힘겹게 일을 보고있으면 익숙한 사람이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한혜?"
"……."
언니는 웬 나이가 좀 있는 남자와 같이 레스토랑에 들어섰고.. 언니가 내 눈치를 보는 듯 했다.
"야 가서 알아서 주문해놔. 맛없는 걸로 주문하기만 해봐."
"……."
"너 입맛 너무 구려. 얼굴만 예뻐가지고.. 으유.."
소희 언니의 애인인 듯 했다.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간 남자를 한 번 바라본 언니가 뻘쭘하게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았고, 나는 그런 언니에게 시선조차 주지않았다.
내가 신경쓸 일이 아니니까. 관심을 줄 일이 아니었다. 가까운 사이도 아니니까.
안타깝게도 다들 바빠서 내가 언니의 주문을 받아야했고, 언니가 주문을 하기 전에 내게 말한다.
"네가 추천해줘."
"……."
"비싸고.. 모두가 좋아할만한 그런 음식."
"……."
"그리고.."
"……."
"남들한테 얘기하지 말아줘. 부탁할게."
언니의 말에 대답을 안 한 채로 나는 언니에게 메뉴 추천을 해주었다.
내 말을 얌전히 듣고있는 언니의 표정은 많이 긴장한 듯 했다. 내가 언니의 이런 모습을 볼 줄 생각도 못했겠지.
"걱정 마요."
"……."
"저는 손님 주변 지인분들을 몰라요. 다 손님같이 저를 경멸하면서 도망쳤거든요."
"……."
내 말에 언니는 많이 당황한 듯 벙쪄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언니에게 큰 불만은 없다.
언니는 그저 나에게 그를 뺏길까 두려웠던 거고, 사람에게 욕심과 질투는 당연히 있는 것이니까. 그저 언니가 불쌍할 뿐이었다.
"야 이렇게 커피랑 간식도 쏘고! 현식이 자식 얘기도 한 거 보면 질투한 거잖아."
수영이가 저렇게 말할 수록 머리가 아팠다. 아무생각도 안 하고싶다고..
일이 끝나야지만 수영이랑 편하게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너무 바빠서 잡담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으니까.
그에게 고맙다고 또 연락을 남길까.. 고민을하며 퇴근을 하려고 나왔을까.
누군가가 옆에서 '저기요'했고, 당연히 나는 나를 부르는가 싶어서 고갤 돌려보았다.
"…어? 사장님?"
"…퇴근하나봐요."
"네.. 그쵸?"
"잠깐.. 대화 좀 할 수 있을까해서요."
"……."
"꼭 해달라는 건 아니고.."
나와 할만한 대화가 없을 텐데.. 어떤 일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거절을 하고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거절을 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어디서 대화할까요?"
사장님과 공원 벤치에 앉아서는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이렇게 뜸을 들일 사이도 아닌데 말이지.. 왜 이 사람을 나에게 대화를 하자고 했을까.
"무슨 일 있으세요?"
걱정은 됐다. 남에게 말하지 못할만한 그런 얘기를.. 아무한테나 말하고싶었던 걸까? 내가 들어줘야하는 걸까.
"미안합니다."
"…네?"
갑작스레 들려 온 말은 미안합니다-였다. 이 사람이 나에게 미안할 게 뭐가 있을까.
"그냥요."
"……."
"꼭 말하고싶었는데요."
"……."
"여전히 용기가 안 나네요."
"……."
"그래도.. 늘 밝아보여서 제 마음이 놓였어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반응을 해야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한참을 가만히 있다보면 할말이 떠올랐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장님이 이렇게 미안해하는 거 알면 다 용서해줄 거예요."
"……."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요."
"……."
"여자친구한테 차였구나?"
장난친 거였다. 하하- 어색하게 웃어보이면 사장님이 애써 웃어보였다. 그리고 왜일까.
사장님은 먼저 일어나 뒤돌아 가는 듯 하다가도 뒤돌아 나를 보며 말했다.
"매일 밝아서 보기 좋았어요."
"…네?"
"응원할게요. 항상."
꽃집은 사라졌고, 사장님도 보이지않았다. 어제 나에게 그런 말을 하고선 사라진 게 조금은 찝찝하고 궁금했지만..
어제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고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다행일 것 같다. 그렇다면 좋을 텐데 말이야..
"뭔 생각을 하길래 부르는데 대답도 안 해요?"
"깜..짝이야.."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사람에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면 그가 나를 빤히 내려다본다. 뭐야.. 언제부터 거기 있었대요.
"준혁 씨는.. 시간도 많네요."
"네?"
"제 퇴근 시간에 맞춰서 앞에서 기다리고있고.."
"……."
"연락하는 사람도 없어요? 나이도 먹을만큼 먹으신 것 같은데.."
내 말에 그는 푸하하- 하고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당황스러워서 그를 올려다보면, 그가 겨우 진정하고선 웃으며 내게 말했다.
"연락하는 사람한테 시간내서 온 거잖아요."
"……."
"지금."
우리가 대화를 하지않고 지냈다면 악연이었을 것이고, 이루어질 수가 없었을 텐데.
우리는 인연이라서 결코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그때와 같은 웃음을 보이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사람...
"마흔살이요!!?!?!!"
최근 들어서 제일 놀란 것 같다.
-
-
-
끝-
깔끔한 마무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