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1억
BGM
"……."
그는 나를 무방비한 상태로 만들었다. 예전부터 그랬지.. 그만 보면 마음이 놓이는 게 이상했다. 그는 참 이상한 것 투성이다.
그리고 그가 날 보고싶었다고 한 것도
"밖에 나가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역겨운 냄새 풍기던 사람이 지하실에서 나가면 어떻게 지내는지 그게 궁금했던 거네요."
내가 생각하는 그런 보고픔이 아닌 건 알고있다.
"그런 뜻 아니에요."
"맞잖아요. 나가서는 어떻게 사는지.. 그 힘들었던 기억들을 갖고도 얼마나 잘 사는지 그게 궁금했던 거잖아."
"……."
"그럼 날 이렇게 또 찾아올리가 없잖아. 아, 내가 생각보다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마음에 안 들었나? 내가 뭐 트라우마라도 갖고 살았어야했나봐."
"……."
"어떡해요. 2년만에 온 나는 당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시시할 텐데요."
그는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듯 했다. 흥분해서 할말을 다 한 나는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선 그를 바라보고있으면 그가 내게 말한다.
"다 말했어요?"
"……."
"이제 내가 말해도 되죠?"
"……."
"일단 그때의 일들은 잊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구요. 예상했던대로 잘지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고, 시시한 마음보다는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
"2년 동안 찾아오지 못한 건 미안해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그쪽을 찾아서 연락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그런 방법으로 그쪽이랑 마주하기가 싫었어요. 그쪽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요."
"……."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
"왜 나한테 화가 나있어요? 2년 전 마지막 날도.., 지금도 화나있잖아요."
그는 내가 단단히 화났다는 걸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왜 자신에게 화가 나있냐며 차분하게 물었고.. 난 또 바보처럼 눈물이 나왔다.
그때의 일을 얘기하면 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왜 울어요."
"……."
"따지려던 건 아니었어요. 미안해요."
"…아빠가 사고를 당하셨대요."
"……."
"그래서 가봐야해요."
나는 지금 이 순간 그로 인해 울어버려놓고 아빠 핑계를 댔다. 아빠가 다친 게 안 슬픈 건 아니다.
아마도 아빠 생각에 슬픈데 그까지 날 방해하니 더 슬펐던 것 같다.
"데려다줄게요."
"……."
"귀찮게 안 할테니까 타요."
아빠가 있는 병원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그와 나는 아무말도 없었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는지.
"……."
내가 훌쩍 소리를 내며 울고있으면 그가 내 눈치를 한 번씩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럼 나는 고갤 돌려 밖에 시선을 두었다. 귀찮게하지 않을 거라는 그 말을 지키기라도 하는 듯 그는 말하고 싶은 걸 삼키는 듯 했다.
그러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고, 나는 그 손수건을 받지않고 무시하면 그가 나지막히 말했다.
"그래도 눈물은 닦고 가야되지않겠어요?"
여전히 손수건을 받지않으면 그가 내 손에 직접 손수건을 쥐어주고선 핸들을 잡으며 말했다.
"자식 눈물 보고 좋아할 부모 없어요."
고개를 숙여 그가 내게 쥐어준 손수건을 보았다. 직접적으로 그와 처음으로 살이 닿았다.
느낌이 너무 이상했다. 그를 힐끔 바라보면, 그는 나를 신경쓰지않는다는 듯 앞만 보며 운전을 했다.
나는 바로 차에서 내려 아빠가 있는 병실로 침착하게 향했다. 원래 나였다면 급히 울며 달려갔을 텐데.
그가 옆에 있어서였을까.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너무 걱정이 됐고 보고싶었기에 소리를 지르고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빠..!"
"…혜야.. 엄마가 연락했구나?"
혜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아버지는 혜의 뒤에 있는 준혁을 보고 놀란 듯 했다. '자네..'하며 말 끝을 흐리면 준혁이 고갤 저었다.
마치 아는 척 하지 말라는 듯 보였고, 아버지는 급히 어색하게 허허- 웃으며 혜를 보았지만 혜는 왜 그러냐며 아버지에게 조용히 묻는다. 마치 아버지의 행동이 준혁을 아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 아니야. 누구..누구시니?"
"…아, 그냥 아는 사람.. 괜찮아? 얼굴은 또 왜 이렇게 상처가 많아."
"일하다가 그랬는데.. 너무 걱정 마라. 엄마는 왜 전화를 해서.."
"엄마는 어디갔어?"
"일 하다가 온 거라 금방 갔어."
"…아빠 혼자 두고 갔다고?"
"괜찮다니까~"
아버지의 발목엔 금이갔고, 얼굴에는 상처들이 가득했다. 시간도 늦었으니 나중에 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혜는 눈물을 꾹 참고선 고갤 끄덕였다.
크게 안 다쳤으니 다행이야. 아버지는 자신에게 목례를 하는 준혁을 한 번 바라보더니 작게 말했다.
"부탁 하나만 합시다."
"……."
"저희 딸 집에만 좀 데려다주시겠어요? 시간이 늦어서요."
아버지의 말에 혜는 아빠-! 하고선 소리를 크게 내었다가도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죄송하다며 고갤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준혁은 뒤에 서서 조용히 대답한다.
"…네."
그와 함께 밖에 나와서는 한참을 말 없이 먼 곳만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아빠가 한 말은 잊어요. 걱정돼서 하는 소리였을 거예요."
"내가 좀 안 그럴 것 처럼 생겼나?"
"…네?"
"이 늦은 시간에 여자 혼자 버스나 택시 타라고 보낼 것 같이 생겼어요?"
"……."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기도하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아빠는.."
"……."
"아무튼 그렇게 생각해서 말한 건 아니에요.."
"알아요."
"……."
"친구 없죠?"
"네?"
"농담이랑 진담 구분을 못하네."
"…친구 있거든요!"
"알겠어요. 미안해요. 타요."
"……."
"난 아버님이 부탁해서 들어주는 건데. 나 나쁜 사람 만들 거예요?"
나는 저 말에 어이가 없어서 콧방귀를 작게 뀌었다. 그가 나에게 농담을 건넸다. 한 번도 그가 나에게 농담을 건넸던 적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차갑기만 해보였던 그는 마냥 내가 상상했던 차가움만 있던 게 아니라 생각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그에게는 동네에서 내려달라고했고, 내리면 그도 날 따라 내려 배웅을 해주는 듯 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는데. 그를 바라보며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안 했는데 그는 왜 나에게 친절할까 궁금했다.
그를 뒤로하고 몇발자국이나 걸었는데.. 그가 아직도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그럼 난 큰 결심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둘, 셋 하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그가 아직도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럼 나는 그에게 다시금 터벅터벅 걸어가 바라보았다. 그렇게 가깝지도, 멀지도않은 거리였다.
"지하실에 있었을 때요."
"……."
"내가 불쌍했어요?"
내 말에 그는 한참 나를 바라보았고, 나도 그를 한순간도 놓치지않고 바라보았다. 그럼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본 채로 말했다.
"아니요."
"…내가.."
"……."
"역겨웠어요?"
"…아니요."
"그럼 됐어요."
난 바보다. 소희 언니가 내게 말한 것들을 믿지 않고있었다. 그가 그렇게 얘기한 적 없는 걸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믿으면 편하니까 그렇게 믿으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의 대답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그때만 생각하면 한없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던 내가 그때 일을 떠올리니 내 인생중에서 조금은 슬펐던 기억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됐다고 대답을 하고나서 뒤돌아 집으로 가는 길에 눈물이 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때는 왜 그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지않았을까. 사실은 의심조차 안 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