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핀잔
: only one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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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몇 번이고, 다시 또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그렇게 아침은 찾아왔고, 그는 밤 사이 나를 살피러 오는 일 따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터였다.
밤 사이 잠깐 든, 풋잠에 아이가 나왔다. 처음 난민 구호 활동을 갔을 때, 맺게 된 인연의 아이였다. 전쟁으로 제 부모도 형도 다 잃은 아이였는데, 마지막으로 본 게 - 사 년 전인가.
전쟁이 끝난 줄 알고 향한 현장에서 처음 본 아이였다. 무릎께에 상처를 입은 아이를 데리고 현장에 설치된 부스로 향하려는데, 갑작스레 총성이 들려왔다. 나는 처음 듣는 총성에 아이를 감싸고 있던 손을 떼어내버렸다. 너무 놀라서. 그러자 아이는 제 작고 야윈 몸으로 나를 다독였다. 당시에는 아이가 내게 한 말을 해석하지 못했는데, 후에 그 나라 언어를 배우며 뜻을 알게 됐다.
괜찮아.
잠깐이야.
어찌됐든 그 아이가 맥락없이 내 꿈에 나왔다. 분명 깨어날 때까지만 해도 또렷한 내용이었는데, 다시 떠올리려 하니 아무 형상도 기억나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기억나는 건, 꿈 속 아이의 말과 나를 감싸 안아주던 찰나의 온기 뿐이었다.
*
더 이상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정확한 사실을 알아야 했고, 필요에 의한 선택을 할 때였다. 내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지. 이러한 상태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었다.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나는 의자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순간 다리에힘이 들어가지 않아, 의자와 함께 꽤 요란한 소리로 넘어졌다. 아... 아파. 나는 무릎을 비비며, 다시금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내가 다시 일어서려함과 동시에 그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의자를 붙잡고 몸을 일으키려는 나를 보고 물었다.
"뭐하냐."
쟤는 저 말 말고 할 줄 아는 말이 없나. 뭐만 하면 뭐하냐고 물어. 모든 것이 변한 상황 속,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게 뭐냐 물으면 그의 '뭐하냐'를 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말을 받아쳤다.
"...넘어졌다."
그는 내 말에 제 고개를 내저으며 내게 걸어왔다. 손이라도 잡아주려나 했는데, 손은 무슨. 나를 지나쳐간다. ...나 왜 쟤한테 바라는 게 점점 많아지져. 나는 나를 지나 정수기 앞에 선 그을 바라봤다. 나는 다시 혼자 몸을 일으키려, 의자를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가 내 뒤에서 팔 사이에 제 팔을 넣어 일으켜 주었다. 덕분에 의자에 앉게 된 나는 다시 멀어지려는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가 짐짓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 역시 동시에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할 지 알 것 같았거든.
"뭐하냐."
"뭐하냐."
그가 어이없다는 듯, 제 팔짱을 끼며 싱크대 뒤로 몸을 기댔다. 이 자리에서 세상 잃은 것처럼 울던 애가 밤 사이 무슨 바람이 불어, 저를 놀릴거라고 생각했겠어. 나는 두어 번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나 정확한 사실들을 알고 싶어. 뭐가 옳고 뭐가 틀린 건지. 내가 지금까지 봐온 것들이 전부 다 거짓인지. 사실은 정말 하나도 없는건지.
봐야될 것 같아.
그래야,
나도 길을 찾지.
언제까지 여기에 숨어서 너랑 울고 불고 할 수는 없어.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하는 데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이고 싶어.
...그리고 가족이 한 일이잖아.
내 가족이.
이렇게 모른 척 하는 건.
비겁하니까.
좀 도와주라.
**
(호석 시점)
울음 소리가 잦아 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어 그녀를 살폈다. 새벽빛 아래 웅크린 그녀의 몸이 참, 작았다. 나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굽혀, 잠든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꿈을 꾸려나. 아니, 꿈은 꾸려나. 어둠 속에 그녀를 던져두고 온 기분에 계속해서 마음이 복잡했다. 내 나름의 위로였는데. 되려 더 큰 상처를 준 건가 - 싶어.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녀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여태껏 강하게 잡아온 것과 반대로, 아주 조심스럽게. 행여나 깨질까, 사라질까. 서툴지만 천천히 그 작은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잠깐이야.
무의식에 흘러나온 말이었다. 내가 흘린 말에 그녀가 몸을 뒤척였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 방으로 향했다. 방 문을 닫자마자 문에 등을 기댔다. 서서히 해가 떠올랐다.
**
(탄소 시점)
그를 따라 온 회사였다. 그는 지금껏 제가 모아온 모든 정보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기사와 보도자료를 보여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뉴스에서 들은 모든 것들이 서서히 읽히고, 그 상황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그런 치졸한 행동들이었다. 백 번 천 번 이해해서, 이익만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이해 되지 않는 단 하나가, 그 모든 이해관계를 무너트렸다.
그 모든 일을 꾸민 게, 아빠.
내 아빠라는 사실이.
모든 가정의 오류였다.
*
아빠를 만나러 간 검찰청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면회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손 쉽게도 나를 들여 보내줬다.
뉴스 내용대로라면 또 내 예상대로라면 아빠는 조사실에서 이틀 연속 조사를 받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빠는.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
정장 자켓 카라깃에 벳지를 하나씩 붙이고 있는 자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파에 몸을 기대어, 한 쪽 다리를 꼰 채로. 나를 발견한 아빠는 찻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냐고. ...그러게. 왜. 나만. 얼굴이 상했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빠와 함께 차를 마시던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덧붙였다.
충격이 컸나보네. 자네도 참, 귀뜸 좀 해주지.
아, 이 친구가 첫째? 그 해외봉사였나. 뭐 한다는 친구?
듣던대로 미인이네. 앉아서 차 좀 들어요.
가업에서는 완전히 손 뗐다고 했었지? 그래서 그런가. 이번 일에 많이 놀란 모양이네. 원래 이 쪽 일이 다 그래요.
아빠는 미동조차 없는 내게,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말했다. '앉아서 얘기 좀 하자. 딸.' 나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눈 앞의 상황을 부정했다. 나는 뒷걸음질 치며, 아무렇게나 뒤로 손을 뻗어 문 손잡이를 잡아챘다. 그 순간, 나보다 빨랐던 손짓이 문을 열었다. 이 방으로 들어오려는 자들이었다. 나는 파리하게 떨리는 몸을 애써 힘을 줘 감춰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자들은.
엄마와 동생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잠시 놀란 듯 했지만, 이내 곧 태연하게 어디에 있었냐고 나를 꾸중했다. ...다들 왜 아무렇지 않아.
"...다들"
"일단 앉ㅇ"
"어떻게 이래?"
방 안의 모든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나는 주먹을 강하게 쥔 채로 물었다. 아니, 다들... 다들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러자 엄마는 몸을 일으켜 내 손목을 잡아왔다.
"앉아서 얘기하자. 엄마아빠가 다 설명해줄게. 응?"
"...앉기 싫어요. 그냥 지금 바로 말해주세ㅇ"
내 말을 끊은 건, 동생이었다. 그녀는 꼬고 있던 다리를 힘 없이 풀며 말했다.
"또. 또 자기만 착한 척."
"...야"
"따지고 보면 여기서 제일 이기적인 게 누군데?"
"..."
"자기 일 하겠다고 회사일이고 집안일이고,다 버린 게 누군데!"
"..."
"이제와서 관심 있었던 척이야. 왜."
"..."
"그렇게 하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일이나 실컷해. 사람들 구하고 싶다며. 봉사하러 떠날거라며. 그게 꿈이라며."
"..."
**
(3인칭 시점 / 과거)
"하늘아!"
맑은 얼굴의 여자 아이가 방 문을 열며, 방의 주인을 불렀다. 탄소는 제 동생 하늘이의 방을 찾아왔다. 그것도 한껏 상기된 얼굴로. 하늘은 제 책상 위를 빼곡히 채운 문제집을 한 번 살피고는 언니를 바라봤다.
"왜?"
"이것 봐봐!"
탄소는 무엇이 그리 신났는지, 제 품에 가득인 서류 뭉치를 책상 위로 내려두며 말했다. 하늘은 제 책상 위의 문제집이 헝클어지는 데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지만, 탄소는 그런 것쯤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지 신나서 말을 이었다.
나 하고 싶은 게 생겼어! 꿈 생겼어. 나! 어때? 짱이지?
하늘은 제 언니가 가져온 종이 중 한 장을 집어들었다.
종이의 가장 위에는 크고 굵은 글씨로 '난민구호자'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 밑으로는 난민구호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요견 등이 적혀있었다. ...이걸 하겠다고? 하늘은 탄소에게 물었다.
"언니 이거 하게?"
탄소는 정말로 행복하다는 듯, 하늘의 침대에 누워 답했다.
내가 다니는 그 고아원 있잖아! 내가 거기서 엄청난 애를 발견했어. 자기도 힘들면서 다른 사람들 돕겠다고 돈 모으는 애야! 어때? 진짜 멋있지? 어쨌든 그거 보자마자 나 완전 감동 먹고, 막 가슴 벅차고...! 진짜 이런 기분 처음이야!
나도 그런 일 하고 싶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
하늘은 짐짓 얼굴을 구겼다. 별 같잖은 이유로, 제 꿈을 덜컥 정했다. 싶었기에.
그것도 아버지의 회사가 똑똑히 자리잡고 있는 집, 자식이.
-
한 아이는 그 날 제 꿈을 발견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아이는.
제 꿈을 찾지도 못한 채로,
제 언니의 몫까지 스스로 담아냈다.
**
(탄소 시점 / 현재)
방을 벗어났다. 나 빼고 모든 가족이 벌어지는 일들을 알고 있었구나. 그걸 알고도 먹고, 자고, 그렇게 웃었구나. 엘레베이터에 타려는 순간,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이 내 손목을 잡아챘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지민아."
"..."
"...나 좀 ㅅ"
"괜찮지?"
"..."
"너 강하잖아. 괜찮을거야."
"..."
"잠깐만 기다려. 다시 올게."
그의 손에 들린 건, 병원서류였다. 황토색 봉투 위에는 대한병원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봉투와 함께 든 봉투에는 환자복이 담겨 있었다. 지민이는 기다리라는 말을 끝으로, 내가 나왔던 방으로 향했다.
지민이에게, 그에게. 나 좀 살려달라고. 나 좀 도와달라고 할 찰나였다. 그런데 그는, 내게 물었다. '괜찮아?'도 아닌 '괜찮지?'라고. 나는 괜찮아야만 한다는 듯이. 난 강하다고 그래서 괜찮다고.
근데 지민아. 나 안 괜찮아. 하나도 안 강해.
*
나는 미동없이 멈춰있는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일 층을 누른 뒤, 몸을 뒤로 기댔다. 이 엘레베이터가 일 층에 도착하기 전에 선택하고 싶었다. 무엇을 우선 순위로 두고, 무엇을 잃을지. 하지만 일 층에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고도, 정리하지 못했다. 나는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로 향했다. 그러자 기둥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내 앞을 가로 막았다. 익숙한 향기였다. 고개를 들자, 이제는 꽤나 낯익은 정호석. 그가 서 있었다. 그는 나를 기둥 뒤로 데려가며 말했다.
"뭘 지키고 뭘 잃을지 선택한다며."
"..."
"표정을 보니까, 선택한 거 같지는 않고."
"..."
"조금만 기다려봐."
"..."
"선택할 수 있게 해줄게."
한참을 말 없이 기둥 뒤에 서 있었다. 이게 뭐하는 상황인가 싶어, 답답해 입을 떼려는데. 그 순간 여러 개의 엘레베이터가 동시에 열리며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자.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은, 아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은 아빠의 모양새를 가다듬어 주었다. 동시에 동생은 제 머리칼을 살짝 헝클였다. 박지민은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빠의 옆에 서서 링거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준비가 된 듯, 나와 정호석을 지나쳐 로비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카메라 셔터 소리와 기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기둥에 몸을 기댄 뒤, 주저 앉았다. 그러자 그는 내 앞에 서서, 제 몸을 숙여 나와 시선을 맞췄다. 그는 제 오른팔에 끼워져 있던 팔찌를 빼내, 내 손에 건네줬다.
"나는 너한테 못가."
"..."
"단 한 발자국도, 갈 수가 없어."
"..."
"저 사람들이 네 가족인 이상."
"..."
"그러니까"
"..."
"네가 오는 방법 밖에 없어."
"..."
너가,
나한테.
**
안녕하세요. 겨울소녀입니다!
지금 좋아하는 젤리를 먹으면서, 좋아하는 향초를 켜두고 글을 쓰고 있어요.
행복합니다 :)
여러분도 다정한 핀잔을 읽으시는 동안에는,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아픔에만 너무 치중하시지 마시고, 그래도. 둘이 같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요!
아마 오늘 내일 중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 될 것 같아요 - 왜 지민이가 이 일을 하는지, 다시 돌아왔는지, 돈의 행방은 어디로 향했는지!
오늘은 여자 주인공의 꿈이 정해진 계기가 호석이라는 장면이 등장했어요.
서로의 꿈과 신념이 되어준 아이들이에요.
다정한 사람들
강여우 / 호비요정 / 전정국 극성맘 / 정꾸야 / 지민이 바보 / 홉썸 / #참쁘# / 뾰로롱(하트) / 룬 / 인연 / 찜빵 / 꾸겻 / 뜌 / 1220 / 정구기냥 / 멜랑꼴리 / 윤기윤기 / 방소 / 0894 / 라슈라네 / 늘봄 / 청보리청 / 탱탱 / 컨태 / 미자 / 요랑이 / 엘런 / 쟈몽 / 자몽자몽 / 나비46 / 꾸기얀 / 말랑 / 풀네임이즈정국오빠 / 10041230 / 태누나 / 짐짐 / 고딩정국 / 낮누 / 메리호시기마스 / 고짐 / 굥디굥디 / 토끼 / 민윤기다리털 / 골드빈 / 정연아 / 둘리여친 / 슈가망개쿠키 / 꽃소녀 / 수학여행 / 오십꾹 / 잉챠 / 호바리 /삐리 / 소진 / 130613 / 피카피카 / 쟈가워 / 바순희 / 찰리 / 꾸쮸뿌쮸 / 푸른하늘/ 간장밥 / 탱 / 호비 / 리자몽 / 됼됼이 / 쁘요 / 듀크 / 빵빵맨 / 벚꽃이진(별) / 체리마루 / 헤융 / 슙슙이 / 압솔뤼 / 쿄이쿄이 / 호비의 물구나무 / 바우와우 / 토끼정 / 야꾸 / 지블리 / 저장소666 / 삐삐걸즈 / 민윤기다리털 / 슙기력 / 쿡 / 자몽 / 불타는고구마 / 화이트초코 / 밍뿌 / 달꾸 / 헹구리 / 정꾸기냥 / April snow / 뚜르르 / 맙소사 / 입틀막 / 또또 / 삼다수 /청록 / 코코몽 / 무네큥 / 지팔 /엘런 / 수학여행 / 숙자 / 다민 / 꽃오징어 / 핑크공주지니 / 음오아예 / 노랑 / 스타일 / chouchou / 모찌섹시 / 진진 / 윤기와 산체 / 소뿡 / 귤 / 들꽃 / 모닝커피 / 꾸꾸 / 낙엽 / 신짱구 / 새벽별 / 연이 / 뀨뀨 / 두둠칫 / 뷔밀병기 / 구름 / ~계란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