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e Sivan - SUBURBIA
셤실
아침이 되었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지. 진절머리났던 어제는 금방 지나갔다. 하지만 어제의 일은 지나갔다고 끝난 게 아니였다.
계속 머리속에 남아있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눈을 꼭 감아도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난 이 반복되는 실수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하기 싫던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역시 나에게 사회생활이 맞지 않은 건지,
아니면 내가 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이 너무 많은 건지 그들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외면했다.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굳은 살정도야 거뜬히 생겨야 한다고 하며 그들의 비수를 막아냈다.
느꼈다. 내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회생활과 교우관계가 나에게 되돌아와 뒤통수를 치다니. 나는 당황하지 않은 척 애썼지만 그들은 이제 나를 비웃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 한켠에서 누군가 내 마음을 도려내는 듯 아파왔다. 이 느낌이 너무 싫다. 나는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다. '도망쳐왔다'고 표현해야 될 것 같다.
나는 그와 조그마한 다툼이 있었을 뿐인데.
차라리 내가 그를 붙잡고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그를 끌어내면 상황이 나아졌을 수도 있는데.
농담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나는 집에 도착해서 목울대까지 차오른 울음과 의미없는 화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었다. 그와의 만남이 고팠던 건지, 그에게 미안한 감정을 토대로 그를 찾아가고 싶었지만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내가 그에게 했던 말처럼
그는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그 생각을 접었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그는 진짜로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그와의 새로운 세상, 그와 함께 있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애인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집착하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맞다. 우린 애인 사이도 아니고 고작 5일 만난 사이인데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나는 사람도 보았다.
주변에도 남자는 널려있는데 왜 굳이 그 사람을 고집하느냐 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를 만나면서 나는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오묘함, 신비로움, 궁금함(아마 이건 어릴 적에 한번 쯤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말로 표현하기에는 굉장히 나에게 부끄러웠던 사랑.
너무 순식간에 느낀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그의 성격이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외모 역시 나를 홀리는 요소가 되었긴 했지만 말이다.
아아. 아무리 이렇게 생각해봤자지. 이미 지나간 사랑에 대해 미련을 남겨두면 그 미련이 남는 사람만 상처를 입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발언했지만 나는 그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
그는 이제 나에게 오지 않겠지.
나는 창문에 놓아두었던 푸른 꽃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가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준 선물인 그 꽃에 무언가 징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였다.
눈으로 살펴보고 꽃잎을 살살 들어보다가 그만 꽃잎 한송이가 떨어져나왔다. 영롱하게 빛났던 꽃잎의 푸른 색깔은 내가 잠시 택배를 받으러 잠시 밖에 나갔다 온 사이
금새 시들어있었다. 나는 우선 이렇게 된거 초콜릿 상점이라도 가보자 라는 심정으로 나 스스로는 그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파란 목도리를 목에 꽉 매고 코트를 입고 나섰다.
상정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주말에다가 방학이라서 그런지 다들 많이 모여있었다. 화려하게 빛나는 조명을 잔뜩 감아놓은 나무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에 맞추어 열심히 움직이며 돈을 쓰거나, 돈을 벌었다. 그 부대끼는 와중에 초콜릿상점을 찾느라 정말 힘들었다.
나는 초콜릿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과 달콤함의 사이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무엇과 달콤함이라고 말했는데, 잘 못들었다.
수많은 인파속에 껴있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이곳에는 종업원이 적었다.
그때 갔었을 때는, 딱 3명밖에 없었다. 나이들어보이시는 할아버지, 초콜릿을 만드는 젊어보이는 사람, 그리고 키큰 판매원이 있었다.
그들의 분위기는 활기차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무언가 어두움이 느껴졌다. 나는 얼른 초콜릿을 사들고 집에 가기위해서
재빨리 종류와 놓여져있는 초콜릿과 가격을 탐색한 후, 밀크초콜렛과 초코쿠키 한봉지를 골라 계산대에 두었다.
"저기요, 계산좀....." 나는 종업원에게 계산을 받기 위해 그를 불렀지만 그는 멍을 때리고 있던건지 내가 계산해달라는 말을 한 수백번 했을 때,
그제서야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계산을 하면서 그가 입을 뗐다. "늦게 계산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혹시 저희 가게에 불편한 점이나 좋은 점이 있으시면 한문장만 적어주시고 가주세요-."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돈을 놓고 이상한 분위기가 맴도는 그 초콜릿가게를 벗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내 곁에서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나는 안심할 수 없었다.
왠지 모를 불안한 분위기가 나를 엄습해오면서 나는 그가 떠난 이후 처음으로 무서움이라는 걸 느꼈다.
"이봐요!"
"예?" 나는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키큰 종업원이 서있었다.
"저기... 영수증 받아가시라고..." 머리를 긁적이며 나에게 영수증을 건네는 그의 모습을 보니 김원식, 그가 생각났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고개를 들어 눈물을 삼켰다.
우울함 안에 갇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꼴이 정말 죄수가 된 느낌이 들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종업원의 손에서 영수증을 빼앗듯 가져가 들고 달렸다. 달렸는데도 슬프다. 슬프다는 기분은 언제나 느껴왔지만, 이번엔 사랑으로 인한.
차갑고 무서운 그런 묘한 기분이라 나는 더욱 얼굴을 찡그리게 되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계속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쫓아오지 말라고.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수많은 인파가 이곳을 자리잡고 있는데, 왜 내가 공허함을 느끼는 걸까?
왜 내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