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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우석 이동욱 샤이니
민트맛설탕 전체글ll조회 413l 1

 

 

백번째 첫키스



 

한국으로 돌아가기 바로 전날이다. 나 혼자. 나 혼자 귀국하기 바로 전날. 왜 여권을 잃어버려서 진짜. 잃어버릴 거면 다른 걸 잃어버리지 왜 하필 여권이야.


카메라가 꺼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울리는 목소리들에는 힘이 없었다. 카메라가 꺼지고도 한참을 억지로 즐겁게 떠들었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했다. 살얼음판 같던 가식적인 즐거움은 내 우울한 한숨으로 깨졌다. 형은 왜 하필 여권을 잃어버렸어여. 지민이가 시무룩하게 물어왔다. 그러게, 나도 참 궁금해. 힘없이 웃어보이며 한숨처럼 말을 뱉었다. 다들 안타깝다는 듯 한마디씩 던졌다. 왜 그랬냐, 아쉽다, 진짜 가야 되냐, 다른 방법은 없는 거냐.


그 와중에 윤기형은 말이 없었다. 그저 한심해 죽겠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젓다가, 다시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윤기형이 작게 숨을 내쉬더니 픽 웃었다. 적당히 놀고 들어가자. 내일도 찍어야 되는데. 남준이 너도 비행기 타면 자기 힘들잖아. 말을 마치고 형은 먼저 들어간다며 일어섰다. 대충 파투나는 분위기다. 아쉽다.



*



방으로 돌아와서도 한참 잠이 안 왔다. 짐은 이미 다 챙겼는데. 지금까지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머릿속을 스쳐갔다. 하나하나를 곱씹었다. 이건 이랬었고, 저건 저랬었고. 좋았는데. 가기 싫다. 아 진짜 여권. 왜 난 그걸 잃어버려서. 까지 생각하다 정신을 차렸다. 어차피 잃어버린 거고, 자책한다고 잃어버린 여권이 새삼 나타날 리도 없었다. 이미 끝난 일 그냥 받아들여야 마음이 편한데. 자꾸 머릿속에 잃어버린 여권이 떠돌았다. 뭔가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창문가로 다가갔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그래, 어차피 내일 떠날 거, 마지막으로 내 눈에 풍경이나 가득 담아 가자. 겉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서서 만난 건 카메라를 든 윤기형이었다. 카메라를 들고는 있는데 사진은 안 찍고 있다. 그냥 손에 들고, 멍하니 앉아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괜한 장난기가 발동해서 조용히 발소리를 죽였다. 슬그머니 다가가 어깨를 확 감싸 안았다. 소리는 없었지만 품 속의 몸이 살짝 굳었다가 이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좀 놀라는 척이라도 해 주지. 이렇게 담담한 반응이라니.


형, 저인 거 알았어요?

어 알지.

재미없게. 어떻게 알아요?

뭐..체구나 향이나 뭐 그런 거?


안은 채로 팔에 코를 대고 킁킁거려 보았다. 뒤돌아서도 향이 맡아질 정도면, 내가 체향이 좀 센 편인가. 내 코에는 바람 냄새밖에 안 느껴지는데. 어깨를 으쓱하고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하늘 사이로 드문드문 별이 보였다. 한참을 말없이 보다가 윤기형을 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넌 왜 여권을 잃어버려.

나도 몰라요. 아 진짜. 이거 막 나중에 누가 줍는 거 아냐? 주워서 우리 트위터에 김남준씨 여권 습득했다고 멘션 오고 그러면.


살짝 구부정하게 앉아서 그런가, 내려가 있는 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뒤통수에 닿던 바람이 멈추었다. 그 자리를 형의 손이 채웠다. 다정스럽게도 아니고, 장난스럽게도 아니고, 애정이 넘치는 손길도 아니었다. 그저 심심한 토닥거림이었다. 형이 손길만큼 무덤덤한 말투로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괜찮아 뭐..액땜 거하게 했다고 생각하자.

와,액땜.이 정도면 다음 앨범 3관왕은 해야 할, 그 정도는 되는 액땜인 것 같은데요.


장난스럽게 중얼거리자 형이 내 뒤통수를 꾹 눌렀다. 몇 번 억세게 헤집더니 손을 뗀다. 고개를 들고 어깨를 안은 팔을 풀었다. 형이 힐끗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씩 웃어보이고 형의 왼편으로 가 앉았다. 형의 시선이 다시 하늘로 향했다. 나도 형의 시선을 좇았다. 하늘을 보고 있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형, 하늘 보다 보니까 생각나는 거 있는데. 웃음이 한껏 얼룩진 내 목소리에 이상하다는 듯 형이 나를 봤다. 실실 웃으며 말을 꺼냈다. 우리 첫키스 한 날이요.



*



그 날도 어김없이 작업실이었다. 스케쥴 없다고 윤기형은 하루 종일 작업실에 박혀 있었다. 사귄 지 얼마나 됐다고. 카톡을 해도, 문자를 해도 읽씹. 열다섯번만에 받은 전화에다가는 바쁘니까 끊으라는 말이나 던졌다. 오기가 생겨서 숙소에서 뒹굴던 몸을 일으켰다. 옷을 대충 입고 랩으로 발을 옮겼다. 맥주라도 사갈까, 하다 그만뒀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도 아닌데 뭘.


랩 안은 어두컴컴했다. 컴퓨터는 절전 모드로 돌아가고 있고, 윤기형은 노트에다 뭔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형은 항상 종이와 펜을 들고 다녔다. 가사는 종이에 써야 된댔다. 그래야 뭔가 잘 된다나. 윤기형. 살갑게 불러 봐도 툭 떨어지는 건 왜 왔냐는 무심한 대꾸였다. 심지어 돌아보지도 않았다.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기껏 왔는데. 그냥 동생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애인인데.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 건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윤기형 뒤로 갔다. 분명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었을텐데도 형은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허리만 숙여 형의 어깨에 턱을 괴었다. 뭐 하길래 애인 왔는데 이렇게 쌀쌀맞아요 형은. 피실거리면서 능글맞게 물어보자 형은 가차없이 손으로 내 양 볼을 쥐어잡아 눌렀다. 가사 쓰잖아 가사. 눈이 있으면 좀 보라는 듯 형은 내 볼을 잡고 노트를 보게 했다. 볼 안쪽의 여린 살이 어금니에 눌려 고통을 호소했다.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 형의 손을 떼어냈다. 애초에 오래 잡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던지 세게 눌렀던 것에 비해서는 쉽게 떨어져 나갔다.


그러고도 한동안 형은 나를 보지 않았다. 몇 번을 불러도 무시, 무시, 무시. 옆에서 빤히 보고, 안고, 목을 물었다가 다시 안고, 찔러도 보고. 한참을 반복하고 나서야 결국 형이 스루를 포기했다. 쓰던 펜을 던지듯 내려놓고 의자를 돌려 나를 보았다.


아 진짜. 너 원하는 게 뭐야 대체. 왜 와서 난리야. 오늘 좀 잘 된다고 지금.


짜증이 한껏 묻은 목소리다. 뭐, 작업하는 데 방해하는 거 싫어하는 거야 알고 있다. 그치만, 간만에 생긴 휴일인데. 이렇게 하루 종일 작업실에 있고. 이런 게 한두번이었던가. 사귀기 시작하고 휴일이 몇 번이 있었는데. 매번 작업하러 간다며 형은 내가 깨기도 전에 작업실로 가버렸다. 깨 보면 형은 항상 사라져 있고. 휴일마다 얼굴 볼 틈이 없었다. 그니까 이번 한 번만 양보 좀 해줘요. 나한테.


아, 별거 아니고. 형이랑 데이트?


뭔 소리야 이건 또, 하는 표정으로 형이 나를 바라보았다. 꿋꿋하게 무시하며 실실 웃어보였다. 형의 표정이 발전하고 있다. 떼어낼 궁리를 하는 게 보였다. 형이 말을 꺼내기 전에 입을 막아 버렸다. 데이트 안 해줄 거면 키스 한 번 찐하게 해주던가. 뭔가 말하려던 형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당연히 당장 일어나 데이트건 뭐건 빨리 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형은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뭔가 이상한데. 내가 낚인 건가. 의자에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참다 못한 내가 쭈그려 앉아 고개를 들이미려고 할 때 형이 고개를 들었다. 나가자 일단. 말을 꺼냄과 동시에 형은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을 내 뇌는 똑바로 인지하지 못하고 작동을 멈췄다. 빠른 걸음으로 가 문고리를 잡은 형이 뭐 하냐고 타박을 준 후에야 나는 얼떨떨하게 일어서 형을 뒤쫓아갔다.


밤공기는 좀 서늘했다. 작업실 안은 따듯했는데. 찬바람을 맞자 뇌가 다시 제 기능을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형을 보니 겉옷 없이 얇은 긴팔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있다. 형 그러다 감기걸려요. 형은 다시 들어가 겉옷을 가지고 나오려는 나를 말렸다. 어차피 금방 들어갈 거라고 웅얼거리면서. 당연히 숙소로 간다는 건 줄 알았다.


형 가는 길에 춥잖아요. 그리고 겉옷 저거 그냥 두고 갈 거에요?

뭘 두고 가. 챙겨 갈 거야.

그니까. 근데 왜 갖고 오지 말래요?

뭔 소리야 자꾸.


시선을 땅으로 돌리고 툴툴거리는 형의 귀가, 밤인데도 눈에 띌 만큼 붉은색이다. 이상하다 싶어서 귀 쪽으로 손을 뻗는데, 형이 단호하게 말을 뱉었다.


너 니가 아까 말한 거, 지켜라.


아까 내가 한 말? 뭔가 싶어 기억을 되짚고 있자니 형이 손을 뻗어 내 뒷목을 콱 잡아 아래로 끌어당겼다. 아 왜이렇게 커 진짜. 잠깐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형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초점이 안 맞아 희부옇게 변한 형을 밀어내기도 전에 입술에 따듯한 게 꾹 눌렸다. 곧이어 뭔가 촉촉한 게 입술을 살짝 핥고 떨어졌다. 이게 뭐야.


정신이 슬슬 돌아오기 시작하자 작업실 앞 골목에는 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난 거지. 핸드폰을 꺼내서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니, 나오고 한 십오분 쯤 지난 거다. 그래서, 왜 기억이 없을까. 정신이 돌아오며 기억도 슬금슬금 돌아오고 있었다. 그니까, 나와서, 형이, 나한테, 키스를 했다. 키스를. 뭐? 키스를 해?


정신이 확 돌아왔다.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꿈 꾸나 지금. 뺨을 한 대 때려 보았다. 찰지게 짝 소리가 나면서 알싸한 고통이 찾아왔다. 꿈은 아닌데. 그럼 내 기억이 날조된 건가. 오감까지 조작되는 건가. 아니라는 건 내 입술이 잘 알았다. 촉감이 생생했다. 더불어 뒷목도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꿈은 아니라는 건데. 그럼 왜 했지 대체.


기억을 되짚다가 생각이 났다. 내가 아까 분명, 데이트 안 해줄 거면 키스나 진하게 해 달라고 했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절로 속에서부터 비명이 올라왔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길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왜 그딴 소리를 해서. 이렇게 무드 없게 키스를 하고. 심지어 첫키스를. 그냥 키스도 아닌 첫키스를.



*



형이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기분나쁘다는 듯 내 머리를 꾹꾹 눌러댔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아니 누가 진짜로 키스를 할 줄 알았겠냐고. 나름대로 절대 그거 선택 안 할 거라고 생각해서 둔 강수였는데. 그걸 그렇게 깨 버릴 줄은 몰랐었다.


아니 내가 형이 할 줄 알았어요? 난 당연히 안 할줄 알고 아무거나 센 거 꺼낸 건데.

아 그냥 닥쳐 하지마.

왜요, 지금 생각하니까 좀 아쉬워? 더 진하게 할걸?


낄낄거리자 형의 손등이 내 입을 툭 쳤다. 타이밍 맞춰 입술을 내밀었다. 내 입술이 손등에 닿자 형은 짜증스럽게 나를 한 번 쳐다보고 옷에 손등을 문질렀다. 아 왜 그래요. 하고 투정을 부리자 침이 묻었다며 오만상을 찡그렸다. 그래도 그렇지 하는 생각에 입을 댓 발 내밀고 하늘을 보았다. 삐죽거리는 나를 보던 형이 나를 쿡쿡 찔렀다.


왜요. 왜.

준아.

왜요.

나 봐봐.

싫어요 안봐 안봐.

아 좀 봐봐.


살짝 늘어지는 목소리에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돌려 형을 보았다. 형이 눈을 반쯤 뜨고 느슨하게 웃더니 재빠르게 내 뒤통수를 잡고 끌어당겨 내 입술에 제 입술을 눌러왔다. 순간 놀랐지만, 그때랑 지금은 달랐다. 그때는 처음이었고, 놀랐었고, 아무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뭐 몇 년을 사귀었고, 알 거 다 알고, 할 것도 다 했다.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틀었다. 형도 내 움직임에 맞춰 고개를 틀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한참을 붙어 있다 떨어졌다. 형의 볼이 살짝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형이 설핏 웃어보였다. 잘하네 이제. 툭하니 말을 던지더니 다시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주 웃어보이며 형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한두번 해본 것도 아닌데 잘해야죠. 형의 웃음소리가 낮게 울렸다. 근데 진짜 왜 한 거지, 키스는.


그냥 하고 싶어서.

형 첫키스 진짜 아쉬웠나보네요.

별로. 왜, 넌 아쉬웠어?

당연하죠.

그게 왜 아쉬워?

아니 첫키스면 나름 중요한 거고 의미있는 건데 그걸 그렇게 해버렸잖아요. 완전 무드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아쉽죠. 솔직히. 네.


내가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 했고. 는 속으로 삼켰다. 형이 새삼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다 웃었다. 한참을 웃던 형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첫키스 그게 뭐 그렇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 보면 처음이라는 거 자체가 되게 상대적이잖아. 내가 너랑 사귀기 전에 사귄 사람이랑 키스를 했으면, 너랑 처음 한 키스는 첫키스가 아냐? 아니잖아. 어쨌든 그건, 그. 너랑 한 첫키스가 맞는 거잖아. 의미 부여하자면 첫키스가 한두번이 아닐걸..상황 따라 달라지는 게 처음이고 그런 거지. 내 말 틀려? 그렇게 치면 오늘 처음 한 키스도 오늘의 첫 키스고, 지금부터 몇 분 후에 하면 또 그 시간에 한 첫번째 키스고. 그렇잖아.


미묘하게 수긍이 갔다. 평소의 내 상식을, 대부분의 상식을 아주 깨부수는 소리지만, 이상하게 그런가 싶었다. 새삼 다시 느낀다, 이 형 말 진짜 잘 한다. 아니냐는 듯 나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웃는데, 되게 귀엽다. 그리고 이상하게 멋있어 보인다. 김남준표 콩깍지다. 피식 웃고는 물어보았다. 그럼 오늘 방금 한 첫키스는. 몇 번째쯤 될 것 같아요?


글쎄, 몇 번째일까. 안 세서 모르는데. 웃음기 담긴 답이 돌아왔다. 진짜 몇 번째쯤 키스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사귀면서 몇 번쯤 키스를 했을까. 몇 번을 얼마나 했길래 우리 둘은 이제 서로에게 이렇게나 익숙할까. 생각해 보면 그게 뭐가 중요할까. 진짜.


형 그럼 우리 깔끔하게, 백 번째인 걸로.

왜 백 번째야?

그냥요. 두 자리 수라고 하기엔 솔직히 양심에 찔리고, 그렇다고 또 너무 크게 하기에는 아직 저한테 첫키스라는 의미가 좀 크니까, 적당히 예쁘게 백 번.


형이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환하게 웃는다. 그래, 백 번째로 해라. 백 번째 첫키스. 좋네. 웃는 형을 바라보며 같이 웃었다. 밤공기에 우리 둘의 웃음소리가 섞여들어 흩어졌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이번에는 내가 형을 끌어당겨 가볍게 키스를 하고 씩 웃어보였다. 형은 뭐 한 거냐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웃음을 지우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백한번째 첫키스에요. 내가 그새 형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됐으니까, 내 마음이 좀 달라졌으니까 뭐 이것도 첫키스로 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내 마음이 달라진 상태에서, 좀 더 커진 상태에서의 첫키스.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형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장난기가 들었다. 앞으로 하는 거 다 첫키스인 걸로. 왜냐면! 내가 매 순간마다 형을 더 좋아하고 있을 거거든요. 말이 이어지는 동안 나를 바라보는 형의 표정이 점점 바뀌었다. 진짜 싫다는 표정이다. 아침 일찍 깨어 있을 때나 나오는, 예민함 넘치는 표정이 만면에 가득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형은 나를 노려보며 일갈했다. 미쳤네. 우리 헤어지자.


웃음이 나왔다. 초반에는 장난으로도 저런 말은 안 했다. 예전 같으면 저게 진심이든 아니든 저 한 마디에 엄청 떨었을 텐데. 지금은 저 말로 장난도 칠 수 있고, 그걸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서로가 익숙하다는 게 좋았다. 웃는 나를 보고 형도 같이 웃었다. 그새 하늘이 희붐하게 밝고 있었다.



*



같이 떠날 줄 알았던 길을 혼자 떠나려니 다시 마음이 쓰렸다. 멤버들 모두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부러 더 웃어보였다. 오히려 더 담담하게.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여기서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얼굴이 침울한 표정이면 남은 여행 내내 내가 눈에 엄청 밟힐 거다. 그렇게 되기는 싫었다. 차례로 인사를 하고, 함께했던 스탭분들께도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멤버들한테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어 준 다음 게이트를 나왔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윤기형이다. 카톡 하나가 간단하게 와 있다. 백두번째 첫키스, 한국에서 보자.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큰일났다. 벌써부터 좀 기다려진다. 이러면 안 되지만, 빨리 한국 오면 좋겠다 다들. 안 되면 윤기형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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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헛 랩슈ㅠㅠㅠㅠㅠㅠ 저 이런거 좋아하는건 또 어떻게 아시구 참...ㅎㅎㅎ
글 너무 잘읽었어요!! 혹시 암호닉 받으시나요?

7년 전
민트맛설탕
감사합니다!사실 제가 좋아해서 자급자족...:)
네 암호닉 받아요!!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7년 전
독자2
아 그럼 저 암호닉 [검은여우]로 신청할게요!
감사해요!!

7년 전
민트맛설탕
넵 알겠습니다!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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