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 영화 '건축 학개론' 中
'양
아
치
의
순
정'
01
권순영이 이상해졌다.
…이게 무슨 일 일까. 조용히 정면을 응시한체 눈만 꿈뻑거리다가 옆자리에 앉아 태연하게 턱을 괸체 앞을 바라보는 권순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기는 개뿔. 멀리서 가방만 툭 던진체 교실을 빠져 나가기 바쁜 권순영인데(하도 많이 던져서 언제 한번 내 머리를 맞혔었다.) 무슨 병에 걸린건지, 도통 교실 밖을 나갈 생각을 하질 않았다. 덕분에 난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지만. 짝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녀석의 병문안(?)을 등 떠밀려 다녀오긴 했지만 그 이후로 달라진 건 하나 없었다. 단지 깨달은게 있을 뿐. 아, 권순영은 나를 존나게 싫어하는구나!
"야."
"…어?"
호랑이도 제 말하는걸 안다더니,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권순영이 맘 속으로 저를 씹고 있는 나를 용케 알아 차린건지 단조한 음성을 허공으로 내뱉었다. 놀라 저를 쳐다보는 나를 빤히 쳐다보길래 살짝 눈을 굴리자 작은 한숨과 함께 권순영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뒤적거려서 찾은 것 치곤 큰 액수의 배춧잎 한장을 내게 내밀었다.
"빵 사와."
"…뭐?"
두 귀를 의심했다.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빵? 멍청하게 되묻는 내가 어지간히 답답했는지 녀석은 "…아." 하는 탄식을 뱉으며 구겨진 미간으로 뒷 머리를 작게 털었다. 그래 권순영이 왜 얌전히 있나, 했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만원을 멍청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문득 느껴지는 녀석의 시선을 마주하자 마자 나는 자존심이고 뭐고 그대로 만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녀석의 눈매가 미친듯이 매서워서 그런건 아니다. 진짜로.
"…무슨 빵?"
"아무거나."
"……"
"야."
"…어?"
"…돈 남으면 너 꺼도 사."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진 뒷모습에 순영은 작게 욕을 읊즈리며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돈이 안 남을리가 없지 시발 이게 뭐야! 한심한 제 모습에 못이겨 그대로 책상에 엎드린 순영 뒤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 미친놈 진짜, 개웃겨. 엎드려있는 순영의 뒷통수를 탁, 탁. 몇 대 쳐가며 웃던 민규가 제 손목에서 느껴지는 압력에 그제서야 입가에서 웃음을 지웠다.
"진짜 뒤질래?"
"…아아, 미아안 순영아. 너가 진짜로 할 줄은 몰랐어."
"…내가 시발, 김여주 아침 먹이겠다고…."
그런 순영의 깊은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던 여주의 눈빛이 순영의 머리속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허탈함에 가득 찬 순영의 모습에 민규는 새삼 여주의 존재에 대해 박수를 쳐주고 싶다. 와, 사람을 이렇게 바꾸어 놓는구나.
"……"
"……"
지금 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게 피자빵인지, 퍽퍽하다 못해 빡빡!한 스펀지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여주가 제가 사온 빵은 관상용으로 대처하고 있는 순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빵을 저렇게도 좋아했구나. 제가 사온 빵을 책상위에 올려놓곤 10분째 바라만 보는 순영에 여주는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가득 찼다. 스믈스믈,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막은 순영이 갑자기 여주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야."
"어?"
"이거 너가 사온거 맞지?"
"…어."
지가 시켰으면서 당연한걸 쳐 묻고 있어. 가뜩이나 상한 자존심을 건드린 순영에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린 여주의 입술은 삐쭉거리며 순영을 곱씹기 시작했다.
"허헝-"
빵을 씹고있던 여주의 입술이 일순간 멈췄다. 옆에 들리는 …분명 웃음 소리 같은 소리에 여주는 뻣뻣하게 고개를 순영에게로 돌렸다. 빵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 순영의 모습에 여주는 씹던 빵을 뱉을 뻔했지만 권순영 앞에서 무슨 꼴을 당하려고. 차마 씹지 못한 빵을 그대로 목구멍에 넘겼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빵을 뜯지도 않고 가방에 넣는 순영의 행동을 여주가 멍하니 지켜보았다.
"뭐, 안먹어?"
"…아,아니 먹어."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언제 웃었냐는듯 제게 표정을 굳히는 순영에 여주는 허겁지겁 빵을 뜯기 시작했다. 뭐라도 안 씹으면 시공간이 오그라 들것 같아서였다. 저 새끼는 오덕후가 분명했다. 제가 사온 케로로 빵을 보고 히죽거리는 순영의 모습이 머리 속을 스치자 여주는 뭐라도 본듯 몸을 바르르 떨었다. …타로로 스티커 나온다고 좋아하는거 아냐? 제가 사준 빵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하늘을 날아갈 듯 좋아하는 순영을 여주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것이다.
집에가서 냉장고에 보관해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