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도경,"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랜만에 보네요, 우리."
"도경수 여기 있는 거 다 알고 왔으니까, 숨길 생각하지 말고 당장 불러."
"여기 그런 사람 없는데, 잘못 찾아오신 것 같아요."
"...내가 잘못 찾아왔다. 재밌네. 세훈아, 웃어줄 때 당장 도경수 내 앞으로 갖다놔."
방금까지 작업을 한 듯 옷에 유화 물감 냄새를 잔뜩 풍기며 장난스레 웃는 세훈이 경수에게 향하는 백현의 발걸음을 막았다.
"그런 사람 없다니까요."
"안에서 울음 소리 들려, 나와."
"있어도, 보고싶어요? 안 무서워?"
"뭐,"
"그렇게 피해다녔는데 이렇게 찾아온 아저씨도 징글징글 하네요."
"허,"
여전히 당돌하고 자기보다 큰 세훈을 올려다보며 볼을 툭툭 쳐준 백현은 세훈을 툭 밀치고 울음 소리가 새어나오는 방으로 향했다.
찾았다.
침대에 앉아 울고있는 도경수가 보였다.
10년을 넘게 못 본 얼굴은 예전과 같다.
울고 있는 얼굴에 당황하기도 잠시 자꾸 굳는 표정을 애써 웃음으로 가리고 다가갔다.
"가."
"숨은 이유는."
"좋은 말로 할 때 나가."
"내가 널 못 찾을 거라고 생각했어?"
"오세훈, 당장 변백현 데리고 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다가온 세훈이 몸을 떠는 경수를 일으켜 백현에게 고개만 까딱해 인사하고는 방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허, 하고 웃으며 바라보던 백현은 제 집인 양 쇼파에 앉아 집을 눈으로 훑었다.
'색의 귀재'
똑같은 그림만 판을 치던 미술계에 갑자기 나타난 경수를 일컫는 말이였다.
흔하지 않은 색감과 그만의 감각은 백현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경수는 금방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의 그림에 투자를 하던 백현도 똑같이 그의 성장을 지켜봤다.
그리고 큰 사고가 났다는 소식과 함께 사라졌다. 항상 그를 졸졸 쫓아다니던 꼬마 오세훈과 함께.
세훈의 부축을 받고 방안에 들어와 세훈에게 백현을 얼른 돌려보내라는 말을 하고 확신을 받아낸 후에야 침대에 누웠다.
세훈의 몸을 건드리면서 묻은 건지 제 손에 묻은 회색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경수는 붉어지는 눈시울을 다시 손으로 가려버렸다.
알록달록한 제 그림을 좋아해 날 따라다니던 세훈의 그림에서 어두운 색을 찾아 볼 수는 없다. 특히 검정색과 회색은.
다시 손에 잔뜩 묻은 검정색을 바라보고 눈을 천천히 깜빡 깜빡 거린다.
몸을 일으켜 창 밖을 바라봤다.
예전과 변함없는 단정한 걸음걸이로 걸어나가는 백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회색빛이다.
나는 더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내 세상에는 색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