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원했던 그들은 눈 앞의 상황을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듯 뒷통수를 잡고 애써 상대를 외면하고 있었다
종운과 려욱은 상대가 여자라고 확신한채 아침부터 평소 뿌리지도 않던 향수를 손목에 두 번이나 뿌리는 행동을 했고, 연애 한 번 못해본 티라도 내는 듯 주말에 회사도 아닌 그렇다고 경조사도 아닌 데이트라면 데이트인 본인들이 상상한 첫데이트에 진한회색, 푸른색 양복을 입는 것 까지 어찌보면 닮은 구석이 많은 모태솔로 두 명이였다 .
닮은 구석이 많으면 뭐하나, 둘은 서로가 그렇게 원하던 아리따운 여자도, 심지어 여자 사람도 아닌 건장한 20대 남자일뿐 이였다
이 황당하고 비극적인 사건은 멀지않은 과거인 6일전에 시작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을 할때까지 제대로된 연애는 커녕 여자 손을 잡아본건 유치원 소풍때가 전부라는 남자 나 김종운은 29살이라는 나이만큼이나 경조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기 바빴다 그 중에서도 결혼식은 가장 가기 싫어하는 기피행사 1호였는데 그 날도 어김없이 대학 동기녀석의 결혼식을 갔다온 후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 컴퓨터 앞에 앉아 늘 그렇듯이 프로농구를 되돌려보려 하던 중이였다. 일요일만큼은 쉬게 내버려두라며 듣는 사람 없는 불평을 하며 인터넷창을 켰다 배너광고 하나가 눈에 거슬리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마우스를 움직일때마다 따라오니 다른 사이트로 이동할 수도 없는 노릇이였고 어쩔 수 없이 광고를 클릭했다. 인터넷 창이 바뀌면서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랜덤채팅 - 소개팅 전문 사이트> 시대가 어느때인데 랜덤채팅이라니 오래된 구식 사이트인가, 창을 닫으려 마우스를 움직이려다 문득 29년동안 여자사람친구 하나 없어서 겪었던 설움들이 밀려들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대화 한 번 나눈다고 손해 볼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배너를 누르려니 평소에 나지도 않던 땀이 맺혔다 결국 몇 번을 고민한 끝에 [대화 시작]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처음해보는 랜덤채팅에 저절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안녕하세요~' 이 정도면 무난하게 보냈을거라 생각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 시켰다 지금까지 여자는 사귀어본 적 없다는 것 치고는 꽤 순조롭게 대화가 이어지면서 느끼는 점이였는데 이 여자 너무 사랑스럽다 물론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거니와 대화를 나눈지 고작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은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그녀는 미술을 전공해서 지금은 한 광고회사에서 일한다 하였다 미술에 대해서는 아는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대학 얘기나 취직 얘기는 고작 몇 마디 나누다가 다른 주제로 넘어가버렸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통하는게 많다고 느꼈다 음, 적어도 내 쪽에서는 말이다
3시간의 대화 끝에 다음주 토요일로 약속을 잡았다. 평일에는 여유롭게 컴퓨터 따위 앞에 앉아서 채팅을 할 시간이 없다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으면 피곤해 그대로 침대로 쓰러져 버리는데 그것도 시간이 넉넉할때 얘기지 야근을 하고 오면 미처 씻지도 못한채 잠들어 버리기도 한다
번호 교환까지 했겠다 이제 만나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다 방금 감아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털고는 침대에 누워 배게를 끌어안으며 상상했다 분명 그녀는 긴 생머리에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을 것이다 여자의 직감도 아닌 평소에 로또나 심지어 제비뽑기에서도 항상 꽝을 뽑던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해준듯 했다
29년 동안 남들은 흔하게 당첨 된다는 아이스크림 막대에 -하나 더- 조차도 당첨된 적 없는, 심지어는 꼭 당첨되고 말리라는 생각에 이리저리 아이스크림을 뒤적거리다가 주인 할머니에게 혼이 난 적 까지 있었지만 혼이 난 그 날도 어김없이 내가 고른 아이스크림 막대는 깨끗한 나무 막대기일 뿐이였다. 아니직감이라고 하기보다는 '운'이라고 하는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어렸을때 부터 운이 따라주지 않는 일들이 빈번했다 운이 안좋아 생긴 불상사들을 들은 고모는 그 날로 내 손을 잡고 산 속 용한 점쟁이에게 가보았지만 대답은 운이 안좋은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정 그런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운이 좋은, 달리 말해 재수가 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무책임한 말 뿐이였다
이런 내 직감을 믿는게 아니였다 인생 처음 랜덤채팅을 한 날도 여느때와 같이 재수가 안좋았나 보다. 아니 여느때보다는 수 만배 안 좋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런게 아니라면 이렇게 내 앞에 나와 같은 신체구조를 가진 '남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앉아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를 질책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우리 둘 모두 피해자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막말로 이렇게 된거 서로 좋은 형 동생 생겼다 치면 되는게 아닌가
"이것도 인연인데.. 밥 한끼 먹을래요?" 나역시도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온 말이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 앞에 남자는 세상 모든 악감정을 다 담은 웃음을 지으며 코웃음을 친다
"너나 많이 쳐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