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별 씨는 항상 그 약을 먹고 있네요.”
급하게 찾아온 두통에 그의 앞에서 약을 먹자 그는 내 약에 대해 물었다.
“신경안정제라고 했었죠, 전에?”
“네.”
“왜 먹는 거예요? 머리가 아파서?”
“비슷한 이유입니다.”
“전에 어디 다친 데 있어요?”
말해본 적 없는 과거에 대해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말하기 싫으면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그의 말은 외려 내가 말하기 편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머리가 아파서 먹는 거라면, 한동안 먹지 않도록 해봐요.”
“매일 머리가 아파오는데 어떻게 먹지 않습니까.”
“혹시 모르죠, 그 약이 도리어 두통을 만드는 것일지도.”
“…….”
“아니면 내성이 생기게 한다거나…….”
“일리는 있는 말이네요.”
“그럼 이제 약 안 먹을 거예요?”
“고려해보겠습니다.”
내 말에 그는 안심한 듯 웃었다.
“아프지 마세요. 건강이 최고예요.”
그의 웃음은 무언가를 무너뜨리는 힘을 가졌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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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집행인의 일지
g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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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보지 않았던 외부인을 만났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얼굴에서 의아함과 반가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학연은 어떤 부탁이든 들어줄 것이 뻔했다. 그는 내게 빚을 졌으니까. 그런 그에게 그의 약통을 건넸다. 여전히 묵직하게 남아있는 약통을 받아든 그는 내게 무엇이냐 물었지만 나는 그에게 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웃더니, 여전하다는 말과 함께 3일 뒤에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그의 연구실을 나와 차에 탔을 때, 두통이 극심해졌다. 약을 먹으려 콘솔 박스를 열던 손을 멈췄다. 한동안 복용하지 않아보라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며칠째 먹고 있지 않은 탓인지 이번에 온 두통은 그 전의 것들과 달랐다. 조금 더 심하게 온 세포를 쪼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고 참으니 몇 분 쯤 지나서야 두통이 가셨다. 뒷머리가 싸해짐과 함께 창문을 열어 온몸이 뒷머리와 같은 온도가 되도록 도왔다. 되레 뒷머리가 뜨거워졌으나 그리 나쁜 기분이 들지 않아 집으로 달리는 내내 찬바람을 맞았다.
집으로 돌아와 집무실 의자에 앉자 과거의 학연이 떠올랐다.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제 동생을 살려만 달라,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게만 해 달라, 청하던 그가 눈앞에 선했다. 까만 피부를 가진 사람이 하얗게 질릴 수도, 빨갛게 달아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너무 오랜만에 외출을 해서인지, 외부인을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쓸 데 없는 과거가 떠올랐다. 사람은 이래서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쉽게 감상에 빠지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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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쟈니] 님, 항상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