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
by. 워커홀릭
"붕어빵 먹고 싶다."
"붕어빵? 아까 사거리 지나올 때 보니까 팔던데."
"근데 왜 안 사왔어?"
"ㅎㅎ 그러니까. 미안. 같이 사러갈까?"
왜 안 사왔냐는 말에 바로 사과하고는 나가자고 옷을 챙겨 입는 이 사람이 내 남자친구다.
나랑 무려 14살이나 차이나는. 배우. 이진욱.
"와, 진짜 춥다. 입김 나오는 거 봐!"
"목도리 하라니까. 추워서 감기 걸린다, 이제."
"저는 젋어서 쉽게 안 걸려요 어르신!"
"네 네~ 좋으시겠네요~ 어르신이랑 만나고."
이제 어르신이라는 말에는 상처도 안 받는 오빠랑은 벌써 만난지 4년이 지났다.
솔직히 4년 전에 나 25살이었는데 39살이랑 만날 줄 누가 알았겠냐.
흫- 오빠랑 별 거 아닌 말들을 주고 받으며 걷다 보면 금방 붕어빵 장사를 발견했고
딱 3개만 사서 돌아가는 길이다.
"이렇게 추운 날 붕어빵 1개만 먹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웅"
"자기는 입도 짧은데 먹고 싶은 건 진짜 많아."
"그래서 나는 오빠가 좋아. 먹고 싶은 거 한 입씩만 먹어도 오빠가 다 먹어주니까."
"그래서 좋은 거야?"
"아니. 잘생겨서 좋아하는데."
단호한 내 말이 웃겼는지 크게 웃는 오빠를 따라 웃고 있는데
어떤 한 여자분이 조심스럽게 다가오시더니
"헐.. 안녕하세요⋯. 저⋯ 채은 배우님 진짜 팬인데..! 아니, 그.. 진욱 배우님도 좋아하는데..!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내 팬이라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우리 둘 다 배우로서 인지도가 있기도 했지만 열애설이 뜨고 난 후에는 알아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첫 열애설이 뜨자마자 쿨하게 인정하고 남들 눈치 안 보고 데이트 하는 우리는 사진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헐 제 팬이세요? 대박!!! 사진 찍어요! 완전 좋아요!!!"
"그.. 진욱 배우님도.. 같이 찍어주시면 안 돼요?"
"당연히 되죠!!!!"
그렇게 내 주도하에 우리는 셋이 사진을 찍었고 나랑 오빠 사이에 여성 분이 서있는 구도가 되었다.
나의 파워 EEEEE 성향으로 어색함 없이 빠르게 많은 사진을 찍었고 헤어질 때가 되어서는
"이거.. 붕어빵! 저희 진짜 방금 산 건데!
제가 드릴 건 없고⋯ 붕어빵이라도 드실래요?"
내 팬이라는데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오빠 손에 들려있던 붕어빵 봉지를 건냈다.
"⋯네? 드시려고 사신 거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사진만으로도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에이, 아니에요! 저는 이미 먹어서 상관 없어요!!
이건 오빠 건데 그냥 드셔도 돼요!
제 팬이라니까 뭐라도 드리고 싶어서.. ㅎㅎㅎ"
맞지, 내가 먹을 붕어빵은 다 먹었으니 줘도 상관 없지!
내 말이 맞지? 하는 표정으로 오빠를 올려다보니 'ㅎㅎ드셔도 돼요. 괜찮아요!' 하며 웃어보이는 오빠다.
그렇게 소녀 팬 손에 붕어빵 봉지를 쥐어주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길에서 내 팬이라고 하는 사람 진짜 오랜만에 봤어요. 그래서 뭐라도 주고 싶었어."
"오랜만? 나는 자기 팬이라는 사람들 맨날 보는데-"
"진짜?"
"응. 길에서 나 보면 맨날 자기는 어딨냐고 물어봐.
옛날엔 나도 인기 진짜 많았는데."
"지금도 많아."
"아무튼- 예뻐 죽겠어."
응? 말이 왜 그렇게 되지.
붕어빵도 (나만) 먹었겠다, 오늘의 할 일을 끝낸 내가 씻고 나올 동안 오빠는 쇼파에 앉아 대본을 읽고 있었다.
같은 배우로서 대본을 볼 때는 괜히 건들고 싶지 않아 옆에 조용히 앉아 핸드폰을 하고 있는데,
[나 오늘 길에서 이진욱 이채은 배우 봤음]
인터넷에 누가봐도 아까 만난 팬 같아서 글을 눌러봤다.
아니 아까 길 가다 채은 배우 봐서 팬이라고 사진 찍어달라 했거든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이진욱 배우랑 같이 나 사이에 낑겨서 사진 찍어줌 ㅋㅋㅋㅋㅋ ㅠ
한 장도 아니고 연타로 개많이 찍어줌 ㅋㅋㅋㅋ 내 배우라 하이텐션인 건 알고 있었는데
진짜 가까이서 보니까 장난 아니더라 .. 진욱 배우도 텐션 못 따라가는 느낌이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더 웃긴 건 ㅋㅋㅋㅋㅋㅋ 헤어질 때 나한테 붕어빵 봉지 쥐어줬어 ㅅㅂ ㅠ
자기들 지금 사서 오는 길인데 자기는 다 먹고 오빠 거 남은 거라 가져가도 된다고 뭐라도 주고 싶다고 ㅋㅋㅋㅋ
하 다시 생각해도 개웃겨 어리둥절 진욱 배우님 ,.. 표정을 난 잊을 수가 없다.. ㅋㅋㅋㅋ
_ 아 미친 붕어빵 ㅈㄴ 귀엽다
_ 채은이 붕어빵 좋아하는데 1개 먹으면 질린다 했었잖아 ㅋㅋㅋ 기본으로 사서 1개 먹었나 보네 ㅋㅋㅋㅋㅋㅋ
_ 나도 길가다 좀 마주쳐보고 싶다 ㅅㅂ
_ 여전히 잘 사귀는구나 댕댕이들 ㅠ
⋯ 뭐야 내 텐션이 그렇게 높았어?
혼자 핸드폰하면서 흐흫- 거리고 있으면 대본을 다 읽은 오빠가 날 쳐다보며 물어본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비밀."
"별 게 다 비밀이네요."
"오빠 내가 아까 붕어빵 막 내 마음대로 줘서 기분 나빴어?"
"아니?"
"기분 안 나빴어?"
"응. 왜?"
"그냥 문득. 누가 내 먹을 거 뻇어서 남한테 주면 나는 너무 기분 나쁠 거 같아서."
"ㅋㅋㅋㅋ 누가 먹깨비 아니랄까봐."
"아니이- 생각해보니까! 내가 먹으려고 갖고 있었는데 막 마음대로 주면!!! 내가 잘못했어."
"먹고 싶은 생각 없었어- 잘못 안 했어."
"또!! 혼자만 멋진 어른인 척."
"그래서 좋아하는 거 아니야?"
"잘생겨서 좋아한다니까."
내 말에 윙크를 날려주는 오빠를 보고 있자니 그냥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웃음이 난다.
한참을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꺄르르 거리며 웃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고..
만난 지 4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별 거 아닌 걸로 행복하고 즐거운 걸 보면 내가 어지간히 오빠를 좋아하나보다.
"오빠."
"응-"
"크리스마스 선물 받고 싶은 거 있어?"
"자기 사랑."
"그건 크리스마스 아니어도 맨날 주고 있는데."
"더 받고 싶어."
ㅎㅎㅎㅎㅎ그게 뭐냐고. 진짜 이 사람 나한테 제대로 빠졌네.
"나는 받고 싶은 거 있어!"
"뭔데?"
"오빠 사랑"
"ㅋㅋㅋㅋ뭐?"
내 말에 웃음이 터진 오빠는 그대로 날 끌어안고는 얼굴 곳곳에 뽀뽀를 퍼붓는다.
"아아- 진짜로 받고 싶은 거 있어."
"내 사랑 말고 또 뭐가 필요해."
"나아.. 아니, 말하기 전에 무조건 알겠다고 대답하기로 약속해!"
"⋯약속."
"진짜지?"
"무서운데? 뭔데 그래."
"음⋯ 반지! 커플링."
"커플링?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알았어."
"진짜?????"
"응.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커플링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