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용이 발걸음을 내게 맞추며 자연스럽게 어깨 위로 자신의 팔을 올렸다. 그런 권지용과 나를 보곤 옆, 뒤에서 걷고 있던 아이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쟤야? 권지용이 그렇게 챙겨준다는 얘가? 근데 쟤 왕따라며. 작게 수근거리는 소리가 내 귓가에 날카롭고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권지용도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은건지 고운 인상을 찌뿌리곤 날 내려다 봤다. 권지용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푹 숙이니 정수리 위에서 살풋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부담스러워?"
"……."
"저런 나쁜 말 들, 신경 쓰지마."
어떻게 신경 쓰이지 않을수가 있겠어. 제 일이 아니라고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내뱉는 권지용이 야속해졌다. 어떻게 보면 내가 이렇게 따돌려 지는 것도 권지용 제 탓인데 권지용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도,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여전히 날 챙겨줬다. 교실까지 계속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와 내 자리의 의자까지 꺼내 날 앉혀주기 까지 했다. 공부 열심히 해, 알았지? 라고 속삭이는 권지용의 음성이 너무 달게 들려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권지용과 날 돌아보는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착하다. 하며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곤 권지용이 제 친구들에게 장난을 걸며 자신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살짝 고개를 들어 권지용의 등을 바라봤다. 지용아… 난 너를……. 막지 않으면 진심이 흘러나올 것 같은 입을 꾹 깨물었다. 아…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던건지 첫 번째 줄 끝에서 날 노려보고 있던 옛 친구-A-와 눈이 마주쳤다.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야,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아!"
"부탁 했잖아, 권지용이랑 같이 다니지 말라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권지용은 오늘 집에 일이 있어 같이 못 가서 미안하다며 내 손에 막대사탕 하나를 쥐어주곤 교실을 빠져나갔다. 반 애들이 다 나가기도 전에 날 쏘아보고 있던 A가 씩씩 거리며 다가와 가방에 필통을 넣고있던 내 머리채를 잡아 끌었다. 짧은 비명을 지르며 A가 이끄는 곳으로 질질 끌려갔다. 빠져 나오려 고개를 틀 때 마다 두피가 뜯겨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이 따랐다. 결국 움직이지도 못 하고 그대로 가만히 앉아 A가 퍼붓는 욕설을 가만히 듣고 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한 공간 안에서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굴었다. 아이들의 무관심 보다 더 슬픈 건 옛 친구였던 A가 따돌림을 주도하고 나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른다는 게 더 슬펐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솟구쳐 오르는 눈물을 다시 밀어넣었다.
"야, 대답해봐. 야, 야."
"……."
"권지용한테 꼬리치는 게 수준급이야, 썅년. 너 때문에 권지용한테 말도 못 걸어. 틈만 나면 네 옆으로 달려가는 권지용은 미운데 내가 권지용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나랑 눈 마주치고 권지용 내치지도 않는 네가 더 싫어. 혐오해. "
"…내가, 내가 시켰어? 나도 싫어. 그런데 권지용이 그렇게 행동하는데 나보고 뭘 어쩌라는건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다가 결국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니 A가 움찔하더니 그대로 손을 들어 내 뺨을 내리쳤다. 아……. 뺨에 알싸하게 퍼져오는 아픔에 입을 다물었다. A가 또 한 번 내 뺨을 내리쳤다. A가 이렇게 내 뺨을 내려친 건 처음이였다. 밀려오는 아픔보다 A가 날 때렸다는 점에 놀라 고개를 들어 A를 쳐다봤다. A는 맞은 나보다 더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A가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뻗다가 다시 스르륵 손을 내렸다. A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막 소리쳤다.
"그럼 그냥 죽어! 꺼져버려. 네 모습이 우리 눈 앞에 보이지 않도록 그냥 꺼져. 난 네가 권지용 앞에서 콱 뒤져버렸음 좋겠어! 알아?"
"…지금 뭐하는 거야."
"……아."
크게 울려퍼지는 A의 고함 소리 가운데서 딱딱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났던 교실문 쪽을 쳐다보니 권지용이 교실을 나갈 때와 똑같은 차림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A가 권지용을 발견하자마자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린건지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권지용이 걸음을 옮겨 우리 쪽으로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급하게 손등으로 눈물 자국이 난 볼과 눈을 슥슥 부볐다.
"지금, 뭐하는 거 냐고 물었잖아."
"…지용아, 그게…."
"ㅇㅇㅇ, 너한테 물어본 거 아냐. 나 얘 한테 물어본거야."
권지용이 내 말을 끊곤 손가락으로 내 앞에 앉아 울고 있던 A를 가르켰다. A가 그런 권지용을 보더니 아예 고개를 쳐박고 더 서럽게 엉엉 울어댔다. 그런 A를 가만 쳐다보던 권지용은 아무 말 없이 내 손목을 붙잡고 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툭툭 서툰 손길로 내 팔뚝에 묻은 먼지들을 털었다. …잠깐만, 지용아. 내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던 권지용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내 가방을 들고 내게 내밀었다. 울고 있는 A는 보이지 않는 다는 듯 권지용은 집에 가자. 하며 내 손목을 잡고 자신쪽으로 날 끌어 당겼다. 제자리에 버티고 서있자 권지용이 고갤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치다가 곧 인상을 찌뿌렸다.
"잠깐만, 지용아."
"…야."
"A가 울어, 지용아."
"너도 울었잖아."
"난 원래 잘 울잖아. 근데 A는 잘 안 울어."
"…어쩌라는거야."
"달래줘."
"……."
"부탁이야, 지용아. 제발……."
권지용이 한참을 나와 시선을 마주치다가 결국 먼저 고갤 돌리고 말았다. 싫어. 그렇게 말한 권지용은 다시 내 손목을 힘주어 잡곤 억지로 날 교실 밖으로 끌었다. 아까 운 탓에 힘이 빠진건지 권지용의 손을 뿌리칠 수 없어 권지용이 끄는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교실엔 여전히 A 혼자 울고 있었다.
학교 밖 까지 아무 말 없이 날 끌고 온 권지용은 신호등 앞에서 잡고 있던 내 손목을 놔줬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내 손에 깍지를 끼며 손을 잡아왔다. 이렇게 권지용과 손을 잡은 건 처음이였다. 숨이 멎는 느낌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그렇다고 권지용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 빨간불이 켜진 신호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권지용도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내 손을 잡고 있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나 유학 간대."
"……."
"유학이 아니라 이사인가. 아빠 직장이 해외로 발령나서 내일 당장 간다고 하더라, 나한테 말해주지도 않고. 집에 가보니 해외 갈 준비 다 끝냈더라."
"……."
"너한테 처음 말하는거야."
"……."
"서운하지도 않아? 오늘처럼 네가 이렇게 당하고 있을 때 멋지게 구해 줄 사람도, 아침마다 학교 같이 갈 사람도 없어."
"……."
"그리고, 지금 널 누구보다 좋아하고 있는 사람도 네 곁에 없어."
그냥 권지용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마지막 말에 깜짝 놀랐다. 놀란 맘에 급하게 고갤 돌려 권지용을 쳐다봤다. 권지용의 옅은 색 눈에 내 모습이 또렷히 비쳤다.
"좋아해. 많이."
"……."
"그리고 많이 미안해. 네가 이렇게 된 게 다 내 탓 같아서."
"…나도, 나도 많이 좋아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용기를 냈다. 수십번 밖으로 흘러나오려 하던 말을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용아, 좋아해… 내가 이렇게 된 건 네 탓이 아니야. 미안해. 그냥, 모든 걸 네 탓으로 돌리고 싶었어. 그냥 많이 좋아해, 지용아. 작은 내 목소리가 부우웅 하고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에 묻혔지만 권지용은 다 알아들었다는 듯 아이처럼 웃으며 날 보고있었다. 나도 어느 때 보다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맞잡은 두 손에 꾹 힘을 줬다. 그렇게 손을 잡고 말 없이 신호등을 건너고, 깜깜한 골목을 지나고, 우리 집 앞 까지 뚜벅뚜벅 걷기만 했다.
그게 마지막이였다.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고 권지용은 우리집 까지 그렇게 날 데려다주고.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웃으며 제 집으로 돌아간 권지용은 그게 진짜 마지막 모습이였다. 권지용은 다음 날 학교에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훌쩍 해외로 떠났다. 담임 선생님은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권지용의 소식을 전했고 반 아이들은 그런 권지용을 욕하며 아쉬워했다. 그렇게 권지용이 없는 학교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와 달리 똑같이 지나갔다. A는 일주일 후 자퇴를 했다. 이유는 모른다. 자퇴하기 전 내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를 한 채 그렇게 그대로 자퇴를 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 가는 기분에 우울했지만 그래도 웃었다. 그리고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말을 걸었다. 점점 내 곁엔 친구가 하나 둘 씩 생기기 시작했다. 권지용과 친했던 남자 애들이랑도 많이 친해졌다. 또한, 열심히 공부 해 원하는 대학에 수시를 넣어 합격도 했다. 매일이 행복했다. 그렇게 평범하다면 평범한 내 일상이 1년이나 지났고, 우린 졸업을 한다.
[미안해 집에 오면 네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외식하자 딸 사랑해]
부모님은 일 때문에 졸업식에 오지 못하셔서 하루 종일 내게 미안하다며 전화를 하고 문자를 했다. 진짜 괜찮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아빠는 걱정이 되는건지 전화도 하고 마지막으로 문자까지 했다. 아빠에게 답장을 보내놓고 운동장 한 켠에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날 부르는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권지용의 친구였고 지금은 내 친구인 남자애가 슬쩍 내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며 오른 손으로는 장난스럽게 브이자를 하며 내 얼굴을 가렸다. 야, 손 치워! 소리를 지르는데 그 때 찰칵 하고 사진이 찍혔고 지잉 하고 곧바로 사진이 나왔다. 몇 번 탈탈 털곤 사진을 확인하던 친구가 배를 잡고 깔깔 웃어댔다. 모두들 우르르 몰려가 사진을 확인했다.
"아, 이게 뭐야! 야!"
"ㅇㅇㅇ 존나 웃겨! 표정 봐!"
"야, 이 사진의 포토제닉은 너다. 그러니까 이 사진 너 가져."
내 얼굴을 가린 친구를 향해 소리를 지를 때 찍혀 입을 쩍 벌리고 찍힌 내 모습이 꽤 우스꽝스러웠다. 결국 마지못해 사진을 받아들었다. 그렇게 졸업식이 끝나고 친구들이 하나, 둘 손을 흔들며 연락해! 하며 교문을 나섰다. 졸업장과 꽃다발을 정리하려고 운동장 구석 벤치에 앉아서 꽃다발을 정리하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은 어느 때 보다 예쁜 파란색으로 눈 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 학교에 처음 입학 할 때에도, 기억 끝자락에 잊혀져 가고 있는 권지용과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리고 권지용이 떠날 때에도, 하늘은 언제나 파란색이였다. 난 언제나 그 파란 하늘 밑에 있었다. …권지용과 함께. 권지용이 떠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하늘. 그 눈 부시도록 파란 하늘에 예전에 기억을 떠올렸다. 파란 하늘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난 변하지 않았어. 너도 변하지 않았어?"
하늘이 속삭이는 게 아니였다. 남자치곤 살짝 높은 목소리, 그렇다고 여자라고 하기엔 낮은 그런 오묘한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왔다. 급하게 고개를 휙 돌렸다. 벤치에 놓아둔 꽃다발 하나가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걸 알면서도 차마 주울 수 없었다.
"……."
"졸업 축하해."
네이비색의 트렌치 코트를 입고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든 권지용이 맑게 웃어보였다. 권지용의 얼굴에서 파란 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권지용이 내게 다가와서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냈다. 받을 수 없었다. 지금 내가 보는 게 권지용이 맞는건가 싶었다. 어느새 키도 훌쩍 커버린 것 같고, 선도 남자다워졌다. 낯설었지만 분명 권지용이였다. 손을 가만 뻗고 있던 권지용이 꽃 안 받아? 하고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대답도 없이 와락 권지용을 안았다. 권지용이 잠시 당황한 듯 주춤거리더니 내 등 뒤로 팔을 감아 자세를 고쳐 날 안았다.
"진짜, 권지용이야?"
"좋아해, ㅇㅇㅇ."
"진짜, 권지용이네."
"대답이나 해. 난 변하지 않았어. 너도 변하지 않았어?"
"……응. 여전히 좋아해, 지용아."
내 대답에 권지용이 소리내어 웃었다. 권지용을 만나면 울 것 같았는데 직접 겪어보니 눈물도 나오질 않았다. 그냥 마냥 좋다. 권지용에게 안겨있는데 시야에 파란 하늘이 들어왔다. 살짝 웃었다. 저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변하지 않는 것 처럼, 권지용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변하지 않았다. 계속 변하지 않길 바라면서 서로를 더욱 세게 껴안았다.
* * *
엄청 기네요.. 上, 下 편 나뉘어서 쓰려고 했는데 그냥 이렇게 한 꺼번에 다 썼어요
다 읽으신 분들은.. 용자입니다T.T 쓰다보니 길어져서 저도 안 읽었어여ㅋㅋㅋ.. 그러니까 오타 주의!
끝날 때 쯤에 하늘 이야기랑, 난 변하지 않았어. 너도 변하지 않았어? 이거 친구가 책에서 봤는데 너무 좋은 구절이라며 보여줬는데.. 진짜 좋더라구여ㅋㅋ
그래서 인용...아닌 인용을 했슴당(_ _)ㅋㅋ... 혹시 알아보시는 분 계실까봐여..
뭐.. 이번 내용은 딱히 설명할 것도 없고 설명하면 스크롤 압박만 심해질까봐 안 할게요
여러분 조은 불금 보내세요~^^.. 어이쿠 이미 토욜이네..ㅎㅎ.. 행쇼!
어쩌다보니 연속 3편이 이어서 학원물이라능ㅋ....ㅋㅋ....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