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두 글자를 들었을 때 좋아서 함박 웃음을 지어내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 반대로 몸서리를 치며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방긋 방긋 웃고 있는 애기들을 보아도 곧 있으면 저 얼굴을 찡그리며 큰 소리를 내며 울어댈 걸 생각하게 돼서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보통 외동이라 하면 동생 있는 애들을 부러워 할 줄 아는데 주위 친구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동생이 아니라 큰 짐덩어리 같아서 부럽기는 개뿔. 어렸을 때 엄마에게 껌딱지처럼 붙어다녀 아버지가 침대에서 힘을 쓸 수 없게 만든 어린 시절의 나에게 박수라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애기를 멀리하며 순탄하게 지내 온 17년 인생에 아주 큰 걸림돌을 하나 던져준 건 다름 아닌 바로 옆 집 부부였다.
왕래도 안 하다가 갑자기 오렌지 주스를 사들고 와선 이번에 아는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을 가야 하는데 애를 데려갈 수가 없어서 일주일만 맡아달라고 하는데. 일주일은 커녕 한 시간도 애기랑 단 둘이만 있어본 적이 없는 나는 처음엔 거절할려다가 애절해보이는 아저씨의 눈빛에 결국 수락을 하긴 했다만..
..애기는 어디있어요?
진영아, 형아한테 인사해야지.
아빠 뒤에 숨어선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던 꼬맹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들 생각을 안 하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날 흘끗 보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아저씨는 당황한 듯 애써 웃으시면서 '진영아, 인사해야 착한 어린이지' 하며 자기 아들을 달래셨지만 뭐가 불만인 건지 고개를 들긴 커녕 아예 쓰고 있던 빨간색 털모자를 꾹 눌러써버린다. 누군 자기가 좋은 줄 아나, 싫어도 나랑 일주일 동안 지내야 하는데 저렇게 딱딱하게 굴면 나 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나마 다행인 건 여자애가 아니라 남자애라 핸드폰 쥐어주면서 애니팡 하라고 하면 얌전히 있을 거 같아서 한시름 놓았다. 한참을 그렇게 내 집 문 앞에서 자기 아들과 씨름하시던 아저씨는 시간을 보시더니 이제 가봐야 한다며 내 손에 15만원을 쥐어주시고 그대로 가버리셨다. 아 물론 꼬맹이도 두고. 아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꼬맹이는 아빠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지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얌전히 고개를 들어서 날 쳐다보았다. 눈싸움 하자는 것도 아니고 괜히 오기가 생겨서 나도 뚫어져라 보니 살짝 놀란 듯 또 다시 모자를 눌러쓴다. 아, 사내 새끼가 답답하게 구네. 머리 위에서 달랑거리고 있는 빨간 방울을 잡아당겨 모자를 벗길려고 하자 놀란 건지 뺏기지 않을려고 두 손으로 꽉 쥔 채 버티는데 이건 좀 귀여운 거 같다.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얼굴을 보니 눈가와 코 끝을 붉힌 채 훌쩍이고 있는데 눈물 콧물 질질 짜가며 울던 다른 애기들이랑은 달리 귀여운 걸 넘어서서 더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으응, 하디마아.. 시러.. 이름이 뭐야? 알려주면 안 할게. ..진영이. 성은 어디다 빼먹고 왔어, 성 없어? 정진영! 성이 없냐고 말하자 울컥한 건지 소리를 빽 지르곤 뒤로 물러서는데 자기 발에 자기가 걸린 건지 엉덩방아를 쿵 찧고는 또 다시 울 것처럼 어깨를 들썩거린다. 아 얘 진짜 괴롭히는 맛 나네. 여담이지만 초등학교 때 남자애들이 치마를 들추는 건 정말 안에 있는 속옷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애들 반응이 재밌어서 들추는 거다. 약속대로 방울을 놓아주고 꼬맹이 신발을 벗겨서 안고 집 안으로 들어왔는데 미처 생각을 못 한 게 지금 내 방은 더럽다. 어느 정도냐면.. 돼지 우리 정도? 여기다 앉힐 수는 없어서 발로 대충 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구석으로 밀어내니 꼬맹이가 또 쫑알거리기 시작한다. 우리 집은 깨끗한대.. 그럼 집 갈래? 혼자 있으면 괴물이 와서 잡아먹을텐데. ..아니야! 괴물 없어! 있어, 걔한테 넌 간식 수준일 걸. 말하면서 검지와 엄지로 꼬맹이 코를 잡고선 살살 흔들어대니깐 그 작은 손으로 날 막 때려대는데 의외로 손이 매워서 금방 놓아버리고, 주방에서 겨우 하나 찾아 낸 마이쮸를 손에 들려주니 혼자서 주섬주섬 껍질을 까선 입 안에 쏙 넣고 껍질은 공처럼 말아서 나한테 도로 준다. 야, 내가 무슨 쓰레기통이냐..? 진영이 이 날 모자 쓴 모습 보고 너무 감동 먹어서 쓴 거 맞아요..ㅋㅋㅋ ㅇㅇ에 17살 찬식이랑 5살 진영이 조각으로 쓴 것도 저예요 같은 사람입니다..ㅁ7ㅁ8 아마 많으면 15편 쓰고 끝낼 거 같아요 그냥 진영이가 애기애기한 모습이 너무 쓰고싶어서ㅜㅜㅜ 아무튼 걸어본다 흥해라! 공영 흥해라!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