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나에겐 일주일 동안 이 꼬맹이를 책임져야 하는 임무가 생겼다. 뭔가가 쫓아오는 것 마냥 빠르게 돌아가는 시침 소리와 옆에서 꼬맹이가 마이쮸를 먹느라 쩝쩝대는 소리 말곤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조용한 이 방 안에서 괜히 점점 더 어색해져만 가는 거 같아 무슨 말이라도 해볼려고 했지만 아이와 얘기 한 번 해본 적 없던 나에겐 수리 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고역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는 하는 지, 입술을 계속 오물거리며 내 눈치를 계속 보던 꼬맹이가 내 소매를 꼭 쥐곤 두 번 정도 잡아당겼다.
형아, 형아.
왜 또. 마이쮸 더 달라고?
아니이.. 그거 말구..
그럼 뭐, 남자애가 말을 잘 해야 여자애들이 좋아하지.
그러자 그 얇쌍한 입술을 삐죽이며 위협하는 복어처럼 볼을 잔뜩 부풀리는데 검지로 쿡 찌르니깐 뽁!하고 소리가 나며 볼이 다시 홀쭉해진다. 내가 그럴 줄은 몰랐는 지 눈만 멍청하게 깜빡이던 꼬맹이의 얼굴을 보니 계속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을려고 입을 막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자 어린 게 눈치는 빨라서 작은 주먹으로 내 팔뚝을 콩콩 쳐대면서 웃지 마, 웃지 말래두! 하며 소리를 질러대는데 저러다 목 상하겠네.
가까스로 웃음을 멈추자 그새 또 삐져선 등 돌린 채 앉아선 아무 말도 안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간지럼을 태우려고 손을 가져가도 쳐내고, 마이쮸를 줘도 던져버리고,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 욕을 다시 삼켰다. 아니 씨발 자기가 웃긴 짓을 하는 걸 어쩌라고, 웃겨서 웃는데 사람한테 그 정도 자유는 줘야 하는 거 아냐? 이래서 애 보는 게 싫다고. 자기 생각만 할 줄 알고. 생각하면 할 수록 정말 말 같지도 않은 행동을 해대는 꼬맹이라 풀어줄 마음이 사라져서 삐져있거나 말거나 티비를 켜서 예쁜 아나운서 누나가 나오는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삑 소리를 내며 티비가 꺼진다. 아, 씨발.
꼬맹이, 너 진짜 자꾸 그럴 거야?
..씨바알.
뭐?
씨발! 형아 씨발이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진짜!
많아 봤자 대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게 눈을 매섭게 치켜뜬 채로 씨발, 씨발 해대는데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다 큰 어른이 해도 싸보이는 욕인데 엄마 젖 찾을 나이인 애가 저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워왔대? 더 이상 참으면 계속 기어오를 거 같아서 확 소리를 지르니까 움찔하면서도 눈은 계속 치켜 뜬 상태인데 불안한 듯 손가락을 계속 꼼지락 거리는 걸 보니 역시 애는 애인 지, 씨발이란 소리는 안 하고 그냥 입술만 오리처럼 쭉 내민다.
너 몇 살이야.
다섯 살.
형 열 일곱이거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선을 자기 손가락으로 옮기곤 손가락을 하나 하나 꼽으며 하나, 두울.. 하면서 숫자를 세는데 아까 씨발거리던 말썽쟁이는 어디 가고 숫자도 제대로 셀 줄 몰라서 낑낑대는 순한 애기 하나만 남아있다. 하긴 애 상대로 화낸 것부터가 유치한 짓이지. 열 넷, 열 일곱, 열.. 열.. 열 셋까지는 어떻게 셌는데 열 넷부터는 세기가 힘든 지 계속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표정을 찡그리는 꼬맹이를 안아다 무릎에 앉혀놓고 조그마한 손바닥 옆에 내 손을 펼쳐주니 놀란 토끼 눈으로 날 올려다본다.
잘 봐, 열 셋, 열 넷, 열 다섯, 열 여섯.
열 일곱!
손가락 하나를 마저 꼽음과 동시에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크게 숫자를 외치는데 영락 없는 유치원 생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마치 어려운 문제라도 푼 것처럼 양 볼을 분홍색으로 물들인 채 맞췄으니 칭찬 해달라는 듯한 표정을 짓길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래, 열 일곱이야. 형이랑 너랑 열 두 살 차이야.
으응, 열 두 살.
그럼 형한테 씨발 하면 돼, 안 돼?
안 돼..
그럼 반말 하는 건?
돼.. 아니 안 돼!
씨발은 나쁜 말인 걸 아는 지 순순히 인정했는데 또 그냥 지는 건 싫은 지, 고집은 쓸데없이 세서는 반말 해도 된다고 말을 하려다 내 눈치를 보고는 바로 안 된다 하는데 조금은 괘씸하지만 일단은 넘어가주기로 했다. 여기서 더 다그쳐봤자 남은 일주일 동안 내 얼굴도 안 보고 집에 간다고 밤새 찡찡댈 거 같으니까. 아까부터 짓고 있던 엄한 표정을 좀 누그러뜨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웃음을 치며 뭐가 그리 좋은 지 꺄르르 소리 내어 웃는데 우는 것보다는 나으니 볼을 몇 번 잡아당겨주곤 말았다.
근데 아까 무슨 말 할려고 한 거야?
그니까아, 있자나.
응, 있잖아 뭐.
형아 이름, 형아 이름 안 가르쳐줬어.
형 이름 찬식이, 공찬식.
찬식이.. 찬이, 찬이 형아.
이름을 가르쳐주자 조그맣게 내 이름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들어올리며 봄날의 햇빛처럼 해사하게 웃어보이는데 순간 어린 애가 아니라 백 년 묵은 구미호라도 되는 줄 알았다. 살다 살다 애기한테 홀릴 줄이야, 어린 게 벌써부터 사람 마음 녹이는 법을 알아서는. 나중에 크면 정말 여자 뿐만 아니라 남자도 많이 울릴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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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이의 씹덕 포인트인 눈과 입술 사진 보니깐 뿌듯하네요.. 제가 쓴 거지만 애기 진영이 너무 귀여워서 녹겠어요.. 끄응..ㅜㅜㅜ 제 로망 쓰다가 제가 심장 마비 와서 먼저 죽으면 어떡하죠.. 아 그나저나 단편으로 쓸랬는데 어쩌다 보니깐 이게 되게 길어질 거 같네요 15편이 아니라 30편도 찍을 거 같아요 느낌이 제발 이번 건 완결 내길 바라며..ㅜㅜ 예쁜 지녕이 조으다 다정다감한 형 찬식이도 조으다.. 이번 주에 발표할 게 두 개나 있어서 한 목요일 쯤에야 올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럼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s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