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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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결혼中]
전처럼 나를 안아주지도 내 등을 어루만져 주지도 않는 우현이의 모습에 나는 품에 안은 우현이의 몸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정신차려 김성규. 지금은 과거가 아니야 현재를 보란 말이야, 라고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가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래, 과거는 지났다. 내가 아무리 지금 우현을 사랑했어도 지금의 우현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우리가 사랑했던 시절은 지나버린 시간 속에 과거라는 타이틀로 갇혀버렸다.
“.........”
“결혼 축하해.”
“.........”
“축하한다고 말해줘야 될 거 같아서.”
잠시나마 내 비췄던 내 마음을 나는 축하라는 짧은 의미 안에 가둬버렸다. 그래, 이게 정답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이 행동이 맞는 것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나를 보는 우현의 시선과 마주 한 순간, 정말 이게 맞는 거야? 맞는 거니 성규야? 라고 나는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결혼식에 올 거야?”
“응. 친구......잖아.”
“......그래. 친구지.”
“응. 명수랑 꼭 갈게”
“..........”
“애들 기다리겠다. 들어가자.”
“.......저, 이런 말 미안한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저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우현의 행동을 나는 천천히 관찰했다. 우현답지 않지만 익숙한 저 모습, 어디서 봤더라? 분명, 낯이 익은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어 우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봤다. 배 앞으로 맞잡은 두 손을 꼼지락 거리는 우현의 모습을 얼마나 바라봤을까? 길 잃은 강아지마냥 방황하던 우현의 시선이 천천히 들렸고 드디어 나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나는 떠올랐다. 저 모습, 어색하지만 낯익은 저 모습은 분명.
“너한테 부탁이 있어.”
“..........”
부탁. 저 행동은 우현이 무언가를 부탁할 때 나오는 행동이었다. 언제나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던 우현이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아니다 싶은 무언가를 나에게 부탁 할 때 무의식중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현은 그 버릇을 몰랐다. 아무도 모르는 자신조차 모르는 우현의 버릇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나는 언제나 우물쭈물 어렵게 말을 뱉는 우현의 모습을 보며 한 번도 노를 외친 적이 없었다. 그의 눈에서 손짓에서 저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차마, 그런 그에게 노를 외칠 수가 없었다.
“그래.”
“정말......들어 줄 거야?”
“응. 뭐 어려운 부탁이라고”
“아.......아, 고마워. 내가 밥 한 번 살게.”
똑같았다. 부탁을 승낙 받았을 때 그 얼떨떨해 하는 표정과 조금 늦은 타이밍에 올라가는 입 꼬리까지 모든 게 내가 아는 남우현의 모습이었다. 변하지 않았다. 남우현은 3년 전과 그대로였다. 그래, 변한 건 우현이 아니었다. 변한 건 그저 우리가 만든 사랑이라는 감정이었다. 예전처럼 우현의 씰룩이는 입 꼬리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따라 올라가는 걸 느껴 서둘러 우현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직은 마주 보며 웃을 자신이 없었다. 더 있을 수 없다는 걸 느낀 나는 바로 집으로 가기 위해 주점이 아닌 도로로 걸음을 돌리며 핸드폰을 꺼내들며 명수의 번호를 눌렀고 다 누른 열 한 자리에 숫자를 확인하며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저 멀리 뒤에서 들리는 음성에 내 걸음은 멈춰버렸다.
“성규야, 고마워. 진짜, 너무 고마워!”
“..........”
뒤를 돌아서 확인 한 광경은 여태 참고 있던 날 울려버렸다.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양 손을 머리 위로 힘껏 흔들어 보이는 우현의 모습에 나는 생각하고 말았다. 이쯤 어디에서 했던 우현과의 첫 키스는 내가 방금 우현과 함께 있던 그 골목이었고, 어설픈 입맞춤이 끝나고 우현은 나에게 아까처럼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었다. 자신과 사귀지 않겠냐고. 나는 그런 우현의 말에 대답대신 우현이 그랬던 거처럼 우현의 얼굴을 부여잡고 짧은 입맞춤을 했었다. 그리고 입맞춤이 끝나고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한 택시를 타러 우현은 선배들이 기다리고 있는 주점으로 향했었다.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익숙하게 콜택시의 번호를 누르려던 그때, 등 뒤로 내 이름을 부르는 우현의 부름이 들렸고 그 부름에 고개를 돌린 순간, 우현은 나를 향해 환한 미소와 함께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힘껏 흔들어보였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성규야!”
‘고마워! 앞으로 잘해줄게. 평생 헤어지지 말자! 사랑해!’
똑같았다. 그 때와 우현은 정말 내 가슴을 후벼 팔 만큼 똑같았지만 달랐다. 모든 게 같은 거 같았지만 우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우리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듯 너무나 달랐다. 나를 향해 사랑을 외치며 손을 흔들던 우현은 지금 나를 향해 사랑이 아닌 고마움을 외치며 손을 흔들었고. 나에게 사랑을 전하려 입맞춤을 했던 그 골목길에서 지금의 우현은 사랑이 아닌 부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할 수 없는 부탁.
‘결혼 할 사람이 우연히 옛날에 찍어뒀던 영상을 봤어. 너가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었는데.......아, 마음대로 보여준 건 아니야. 어쩌다 보니까. 근데, 지현.....아니 그 사람이 니가 부른 노래가 마음에 들었나봐. 너가 우리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줬으면 좋겠다고.......싫으면 안 해도 돼. 안 될 거라고는 했는데 말이라도 꺼내보라고 하도 보채서. 미안하다. 그냥 못 들은 걸로.......’
‘할게.’
‘뭐?’
‘내가 할게. 축가, 니 결혼식 축가 내가 부를게.’
병신, 김성규. 김성규 병신, 머저리, 등신 답답한 새끼야. 니가 왜 남우현 결혼식에 노래를 불러? 축하한다고 말했으면 그만이지 뭐한다고 노래까지 불러 주냐고 이 병신새끼야. 한참을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우현 때문에 나는 볼 위로 떨어지는 눈물도 닦지 못하고 나 자신을 향해 욕을 했다. 팔이 아픈지 한참을 흔들던 손을 내리고는 뒤를 돌아 주점으로 돌아가는 우현을 그리고 주점 안으로 사라지는 우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고맙다고 하잖아. 우현이가 나한테 고맙다고 했잖아. 그래, 이거면 된 거야.”
***
옆에 앉은 동료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며 깨울까 했지만 마침, 외근 나갔던 팀장이 그곳에서 바로 퇴근 할 테니 시간 되면 알아서 퇴근하라 했다고 전하는 여자의 말에 옆에 앉은 동료에게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두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성규씨. 2팀에 김팀장님이 휴게실에서 기다리겠다고 잠깐 나오라던데?”
“김팀장이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중년의 남자에게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가자 정말 남자의 말처럼 휴게실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명수의 모습이 보였다. 멀쩡한 지 사무실 놔두고 왜 저기서 저러고 자는지 나랑 다르게 팀장이라는 직위를 달고 있으면서 체면도 생각 안 하는 건지 매번 말해도 말을 안 들어요,
“김명수.”
“왔냐?”
“넌 니 팀원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 팀장이라는 놈이 휴게실에서 잠이나 자고.”
“..........”
“너 이거 권력남용이야.”
“니가 아직 진짜 권력남용이라는 걸 못 봤나본데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권력남용? 웃기지도 않다. 진짜 권력남용이라는 건 도대체 뭐냐?”
또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인지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명수의 모습을 비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물기가 송글송글 맺힌 음료수가 아직 뚜껑조차 열어지지 않은 채 제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음료수로 손을 뻗어 뚜껑을 따 한 모금 들이켰다. 미지근하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뽑은 지 꽤 된 건가? 미지근해서 그런지 별로 맛이 없는 음료수를 제자리로 돌려놓고는 아직도 진짜 권력남용이 뭔지에 대해 생각하는 명수를 바라봤다.
“더이상 할 권력남용 없으면 말단 대리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김팀장새끼야.”
“........있어.”
“뭐?”
“축가 부르지 마.”
“.........”
“이게 내가 말한 진짜 권력남용이야.”
“명수야.”
“부탁 아니야. 상사로서 명령하는 거야. 김대리 너 남우현 축가 부르지 마.”
명령이라며 부르기만 하면 가만 안 둔다고 으름장을 놓는 명수의 모습에 나는 명수가 어떻게 알았는지 보다 우현이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가 더 걱정이 됐다. 결국, 퇴근시간이 돼서도 고민을 끝내지 못한 나는 일단 집에 가야겠다는 계획과 다르게 회사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뜻밖에 인물에 그 계획도 무산이 되고 말았다.
“뭐 먹을래? 여기는 고등어조림이 진짜 맛있는데 그거 먹을래?”
“그래.”
“이모 여기 고등어조림 2개 주세요.”
남우현은 모르고 있었다. 밥을 사주겠다며 데려온 이곳이 예전 우리가 자주 찾던 맛 집이라는 걸.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저번에 와서 먹었는데 고등어조림이 끝내줬다며 웃으며 말하는 우현의 모습에 나는 그 여자와 온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우현과 나의 추억의 장소가 그녀와 우현의 장소가 되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어때? 괜찮지?”
“응. 맛있다.”
“.........”
“.........”
배가 고팠는지 급하게 밥을 먹는 우현의 모습에 나는 말없이 물이 가득 든 컵을 우현의 앞으로 밀었다. 땡큐. 다정하게 웃으며 컵에 있는 물을 마신 우현이 아직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웃음을 지으며 어서 먹으라는 듯 내 밥그릇을 가리켰다. 아직, 다 먹지 않은 밥을 먹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우현의 모습을 보던 난 손에 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우현에게 물었다.
“뭐 하나만 물어 봐도 돼?”
“응.”
“.......3년 동안 왜 연락 한 번 안 했어?”
예상치 못한 내 질문에 우현은 밥그릇을 보고 있던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봤고 나를 보는 그 표정에는 당황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들어나 있었다. 그런 우현의 표정에 나는 내 앞에 놓인 물을 들이키며 무심코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내 옆으로 놓여 있던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비춰줬다. 나는 울고 있었다. 왜 울고 있는지 나는 나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왜 울고 있는 걸까? 아니, 나는 애초에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나는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그렇게 수많은 질문 속에 나는 단 하나의 답을 찾았다. 우현이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가 너무나 예쁘게 빛나고 있어서라는 아픈 대답을 찾아냈다.
다음편이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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