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제가 좋아하는데 비 노래라서 아이유 - Rain Drop
[바로X산들] 단비
…아, 우산!
아무것도 모른채 내 옆에서 히히덕거리고 있는 녀석을 살짝 흘겨보다 그만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심상치 않은 내 표정을 보고 이정환이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왔고, 이에 내가 한숨을 쉬며 우산 안 가져왔어, 대답하자 잠시 멍하니 내 얼굴을 보고 있던 이정환이 배시시 웃는다.
"고작 그딴 거로 똥 씹은 표정 하고 있었어?"
"뭐가."
"내꺼 같이 쓰면 되는 거 갖고……."
"아침에 좀 말해주지. 나 원래 잘 덜렁거리는 거 알잖아."
내 우산 쓰면 된다니까! 정말 내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건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말한다. 부산 사투리 억양이 묘하게 섞인 서울말이 썩 나쁘지 않다.
"다 큰 남자 둘이서 한 우산 쓰고 가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어."
"사이 좋은 친구로 보겠지."
"…말을 말지."
그래, 우산은 같이 쓸 수도 있는거지. 살다 보면 비가 오는데 우산을 안 가져와서 친구랑 같이 쓸 수도 있고 그런거고. 근데 문제는…….
"아, 비 오고 나면 날 더 더워지는데!"
오늘 한 우산 아래 함께 걸어가야 할 사람이, 이정환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그래도 내는 비 오는 날씨 좋다. 비 냄새도 좋고……."
내가 티내지도 못하고 몰래 몇 년째 혼자 좋아하고 있는, 이정환이라는 거다.
비 냄새가 좋다며 눈을 감고 평소 즐겨부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상에 얼굴을 대고 푹, 엎드린다. 얼굴은 이쪽으로 돌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또다시 한 번 웃어주고는 잠에 빠져버린다. 책상에 눌린 볼살이 눈까지 차오를 기세다. 그것마저 사랑스럽게 보인다면 내가 미친거겠지? 사랑스럽다니! 이런 오글거리는 생각을 내가 하게 될줄이야, 그것도 이정환을 보면서!
*~*~*
그러고 보면 이정환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확신했던 날도 이렇게 비가 왔었다. 작년 봄, 여름을 앞두고 보슬보슬 내리는 비에 그 날 잡아뒀던 약속을 제대로 실행할수는 있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라 우산을 챙겨 나가 늘 만나던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주머니를 울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꺼내보니 만나기로 했던 찬식이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 아 미안 성적표 숨긴 거 들켜서 외금당함 폰도 곧있음 뺏김 개찌질이됨ㅠㅠ ]
[ 그리고 진영이 형은 못 온대 몇 년만에 친구가 외국에서 왔다고 ]
그렇게 둘 다 못온다고! 안 그래도 동우형이 어제 갑자기 빠진다고 해서 김샜었는데……. 그럼 나랑 이정환이랑 둘만? 미미하게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그 때는 내 마음이 되게 애매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든, 혼자서든 녀석을 '친구' 라고 칭할 때마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고 가슴 속이 답답해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딱히 이렇다 하고 결론지을 말이 없었다. 그 때 한 번 더 휴대폰이 울렸다.
[ 갑자기 가족모임 잡혔다 끝나는대로 갈 수 있으면 가ㄹ께 ]
…그냥, 그 문자를 보자 뭔가 치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난 너를 보러 약속에 나온건데. 안 그래도 비까지 와서 나오기도 귀찮았는데, 그래도 휴일에 네 얼굴 한 번 보겠다고 나온건데. 끝나는대로 올수 있으면 오겠다고? 그냥 멍한 느낌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우산만 들고 서 있었다. …안 오겠지, 안 올거라고 생각했다. 답장도 없이 휴대폰을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집에 와버렸다. 장난은 많아도 본성은 착한 놈이라 또 약속을 갑자기 깬 것에 대해 엄청난 미안함을 느끼고 있을 이정환의 얼굴이 눈앞에 생생했다. 이상하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으……."
그대로 소파 위에서 잠들었나 보다.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기에 일어나 무심코 확인한 시계가 6시 5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3시간이나 자버렸네. 전화를 막 받으려는데 상대방 쪽에서 지친 듯 벨소리가 뚝, 끊겼다. 그리고 액정에 부재중전화 15통이 떴다.
발신인은 진영이 형 2건, 나머지는 다 이정환.
- …여보세요?
"야 이정환."
- 선우야 니 어디야?
"……."
- 킁, 아, 콧물……. …응? 어디냐니까?
"너는…어딘데……."
- 공원 앞이지. 너, 킁, 전화 안 받길래 화났나 해서…….
"…그래서 언제부터 기다렸어?"
- 그냥…여기저기 니 갈만한데 가보다가….
"그니까 몇시부터 기다렸냐고."
- …4시 좀 넘어서부터……. 크흥, 진영이 형은 못 온대서 찬식이한테 전화했는데 폰은 꺼져있고……. 그래서 니한테 걸었지.
"…우리 집이라도 와보지 그랬어."
- 응? 아…사실 가봤는데, 초인종 눌러도 답이 없길래. 왜? 너 집에 있어?
아무것도 모르고 거의 두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 이정환을 생각하니 갑자기 큰 죄책감이 들었다. 오늘 약속 다 무산됐다고 연락이라도 해둘걸. 또 바보같이 기다리고 있을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우산을 챙길 틈도 없이 빠르게 집을 뛰어나갔고, 머지 않아 가까운 공원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이정환이 보였다. 가족 모임이라고 외식하러 간 곳에서 바로 약속장소로 온 모양인지 우산도 없이 머리부터 젖어있었다. 얼마 전부터 감기기운 있다고 찡찡거리더니 비를 맞고 더 심해진 듯 계속해서 코를 훌쩍이던 녀석이 이쪽을 보더니 멋쩍게 웃으며 뛰어왔다.
"다 젖겠네. 니 이럴 거면 내보고 집에 오라고 연락을……."
나도 모르게 이정환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안아버렸다. 놀란 듯 몸이 굳어진 이정환이 곧 왼쪽 손을 올려 내 머리 위를 덮어주더니 하는 말이,
"젖는다니깐……."
"니가 더 많이 젖었잖아……."
"괘안타. 별 걱정을 다해…크흥!!"
"너 감기 걸릴 것 같다 그랬잖아……. 어디 들어가 있지."
"금마가 낯간지럽게……. 진짜 어디 좀 들어가자. 선우 니 멋낸 머리 다 젖는다."
"……."
이정환의 말에 대꾸도 않고 그대로 녀석을 안고 있었다. 비도 오고 날이 쌀쌀했지만 상관 없었다. 이정환이 너무 따뜻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비를 맞고 돌아다녔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따뜻할 수 있는걸까. 내리는 빗방울에 옷이 젖어들어가는 것이 느껴졌고, 맞닿은 가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심장소리가 이정환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그렇게 녀석을 안고 있었다.
급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비에 쫄딱 젖은 이정환을 집으로 데려와 수건을 하나 쥐어주니 젖은 머리부터 탈탈 털어내며 닦았다. 젖은 머리카락이 놈의 하얀 얼굴에 달라붙었고 이상하게 침이 목에 고여 꿀꺽, 삼켜냈다.
"나 올지 안 올지도 모르면서 기다렸냐, 멍청아."
"올 거 같아서……."
"……."
"아무 연락 없는 거 보니까 그래도 이대로 두진 않겠다 싶었지. 올끼라고, 선우 니가 데리러 올끼라고 계속 그라고 기다렸다."
"…내가 더 늦게 갔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늦게라도 올거라고 하니까 됐지. 근데 선우야. 나 배고픈데……."
두근. 두근.
늦게라도 올거라니까 됐다니, 정말 미련하기도 하다. 근데 난 그런 너의 모습을 보고 평소에 느끼던 것의 몇배로 빠른 심장박동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지.
내가, 널 좋아하는구나.
*~*~*
그렇게 끙끙 앓아온지도 1년이 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이정환과 그런 너를 좋아하는 나 사이가 애매하게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해온것도 1년.
"가자."
넌 자연스럽게 우산을 꺼내들고 내게 손짓한다. 어색하게 내가 이정환 곁으로 다가가면 그런 내 팔을 끌어 우산 안으로 잡아당긴다. 차마 딱 붙을 용기까진 나지 않고 조금 거리를 두고 서니 왼쪽 어깨가 비에 젖었다.
"이만큼 온나. 다 젖는다."
내 허리에 둘러진 손에 힘을 주는 너의 행동에 어쩔 수 없는 척 가까이 붙어본다. 또 다시 온몸이 떨리며 이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에 가슴부터 찡하게 아려온다. 아, 안 되겠다. 이대론 안 될 것 같다. 당장이라도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해버릴 것 같아.
"…먼저 갈게."
"어데 가노? 우산도 없음서."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날 보는 이정환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어 그대로 우산 속을 빠져나와 뛰었다.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힘겹게 뛰고, 뛰고, 또 뛰었다. 더 이상 녀석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 벽을 잡고 그대로 기대어 주저앉고 말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런 사소한 일에도 떨림을 느끼는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두려웠다. 솔직히. 괜히 내 마음을 말했다가 지금 이 사이에서 더 멀어져버릴까봐. 그저 옆에서 네 모습을 지켜보는 걸로 충분할 거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했다. 근데 그게 안 되더라. 결국 넌 나에게 친구로만 남을 수 있는 거리에서 벗어난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번엔 어떻게 해서든지 말하고 오자고. 그래야 답답한 마음이 풀어질 것 같았다. 많이 놀라고, 충격을 받겠지만, 그래도 이대로는 내가 답답해 죽을 것 같아서 못 살겠다.
이정환, 내가 간다.
이쯤 되면 비가 그쳤을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이 야속하다. 눈 앞에 이정환의 집이 보이는데 차마 초인종을 누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굳게 마음을 먹고 초인종을 누르자, 나가요~. 하는 이정환의 목소리와 함께 문으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차선우! 니 아까 왜 그냥 갔는데! 지금도 우산 안 갖고 온 거 봐라, 임마."
"정환아."
"뭐."
"이정환."
"아 왜 그러는데!"
꿀꺽, 침을 한 번 삼켰다. 똑바로 이정환의 눈을 보자 또다시 저 순진한 눈으로 날 보는 녀석에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되기 시작했다. 불러놓고 아무 말이 없는 내가 답답했는지 일단 실내로 들이려는 이정환의 팔을 잡았다.
"내가, 너 많이 좋아하는 거 알지."
"응, 알지. 니가 나 엄청 애끼는 거 안다."
"너도, 나 좋아하지?"
"…와 이라노……."
"이정환. 진짜 어이없겠지만 잘 들어. 나 너 좋아한다고."
"아까 말했잖아."
"아니, 그거 말고. 진짜 좋아해."
"…응?"
"막…안아주고 싶고, 안아보고 나니까 뽀뽀도 하고 싶고……. 막 그렇게 너 좋아한다고."
…역시나, 이정환이 굳어버렸다. 안되겠다,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려는데 이정환이 날 잡는다. 호, 혹시?
"옷 말리고 가라. 니 감기 걸린다."
…하이고…….
*~*~*
"여기 수건."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욕실에서 꺼내 수건을 가져다주길래 묵묵히 받아서 머리를 털었다. 꼭, 작년 그 날같다.
말없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옷을 말리고 있으려니 이정환이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아, 아무리 그래도 섭섭한 티를 너무 냈다보다. 애써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려는데 갑자기 뭔가 볼에 쪽, 왔다간다. …이, 이, 이게 뭐야?
"…지금 뭐……."
"뽀뽀하고 싶다매."
……??????????????????
"…무슨 의도로 한 거야?"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
"니 나 안은 적 작년에 딱 한 번밖에 없었잖아. 그럼 그 때부터 이렇게 나 좋아했던거고."
"…맞아."
내 대답에 푸스스, 웃어보인 이정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많이 당황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니가 너무 힘들었을 거 같은거야."
"……."
"그래서 한 번…생각해보려고."
뭘? 내가 물었다.
"나도 너 그렇게 좋아하는 거, 생각해보겠다고."
…아.
심장이 튀어나올 듯 빠르게 뛰어왔다. 아직 이렇다 한 대답은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멀어지진 않았다.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이다. 그 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저도 말해놓고 창피한건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입술 깨물지 마라."
"싫은데."
"그럼 내 뽀뽀한다. 왜, 뽀뽀하면 키스도 하고 싶을 것 같다 그럴라고?"
헉, 정곡을 찔린 기분에 뭐라 하지도 못하고 웃었다. 얘는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갖고 노냐. …뭐, 상관 없다. 어쨌든 희망이 생긴 거니까.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비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생각 없이 옮긴 시선이 닿은 창밖이 맑다. 마치 지금 내 옆에 있는 너의 맑은 웃음처럼 말이다.
비가 그쳤다.
세상을 적셔주던 단비가 그쳤다. 내리쬐는 햇빛은 여전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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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거 짱 좋아하는 바들러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똥손이지만 글 쓰는 거 좋아해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바들 행쇼!!S2
산들이 사투리를 좋아해서 많이 넣었어요 저도 모르게.... 시험공부하다가 뭐하는 건지....
끝까지 봐주신 분들 사랑해요!!! 모두 워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