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던 그는 짙은 땅거미가 방안을 물들일쯤 나갈 채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초경이 되려면 한식경은 남았지만 눈앞에 자꾸만 아른거리는 얼굴때문에 더는 서안 앞에 앉아 있을수가 없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누마루에 서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인 그는 목화를 단정히 신고 옷매무새를 매만진 뒤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음?......"
몰래 나가려고 할때마다 불쑥 튀어나와 놀래키던 하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가 어두운 마당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늘 몸을 숨겼다가 불쑥 나타나던 구석에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고 흥얼거리던 각설이 타령도 들리지 않는다.
기다란 손끝으로 이마를 긁적이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쑨양은 태환을 만나기로 한 시간이 늦어질까 다시 걸음을 떼었다.
어두운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에 다다른 쑨양은 무거운 문을 밀고 밖으로 나서려다 뭔가를 발견하고 서서히 멈춰섰다.
환한 불을 밝히며 문 밖에 걸려 있는 초롱.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환한 불빛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천천히 손을 뻗어 초롱을 손에 쥐고 웃는 나으리의 모습에 하인은 뒷마당에 몸을 숨긴채 괜스레 쑥쓰러워 뒷머리만 긁적였다.
오늘은 달빛 대신 초롱의 불빛이 나으리가 걷는 길을 환하게 비춰줄 것이다.
초롱을 손에 쥐고 어두운 길로 나서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몸을 돌려 뒷마당으로 향했다.
"금옥. 나왔소."
"이제 오시오? 나으리는 아~까부터 자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오~"
"벌써 오셨소?"
놀라 동그랗게 두 눈을 떠올리는 태환에게 금옥은 베시시 웃으며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부엌으로 향했다.
오죽 보고 싶으시면 저러실까...혼잣말을 하는 여인의 목소리에 태환은 얼굴이 붉어져 흠흠..헛기침을 해보이곤
급히 신을 벗고 조심히 문을 두들겼다.
"들어오십시오."
방안에서 들려오는 나으리의 목소리에 태환의 가슴이 갑작스레 쿵쿵- 뛰어댄다.
문을 열기 전, 옷매무새를 살피고 붉어진 얼굴도 곱게 매만진 그는 천천히 문을 당겨 열고 온기 가득한 방안으로 몸을 들였다.
"어찌 이리 빨리 오셨습니까? 천천히 오셔도 되는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바닥만 바라보던 쑨양은 기다리던 그의 등장에 두 눈으로 흘깃 바라보고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고싶어서 일찍 왔습니다. 고.집.쟁.이.라."
"........에.......?"
당황하여 머뭇거리는 모습이 재밌다는듯 얼굴 가득 환한 웃음꽃을 피운 그는 멀뚱히 서있는 태환을 향해 손짓을 해보였다.
"춥습니다. 이리 와서 앉으십시오."
나으리의 농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태환이 쭈뼛거리며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한없이 다정한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태환은 어쩔줄 몰라 이리저리 두 눈만 굴려댄다.
툭툭-
때마침 들려오는 손기척에 어색한 공기가 걷히고 문을 통해 시린 바람이 스며 들어온다.
한상 가득 푸짐하게 음식을 담아온 금옥은 어색하게 앉아있는 두 남자의 모습에 웃음이 비져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삼키고 방안으로 상을 들였다.
그 모습에 여인을 도우려 몸을 일으키던 태환은 어깨를 붙들고 제지하는 나으리때문에 다시 방안에 주저 앉았다.
"여주인께서도 들어오십시오."
태환 앞에 상을 내려둔 쑨양은 문 밖에 서있는 금옥을 향해 손짓을 해보였다.
그 말에 여인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쳐보인다.
"아닙니다~ 두 분이서 좋~~은 시간 보내셔요~ 부족한거 있으시면 말씀하시고요."
어색한 분위기에 두 눈만 꿈벅이는 태환을 향해 금옥이 빙그레 웃어보이고 천천히 문을 닫고 돌아섰다.
여인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둘만 남은 방안에 또다시 정적이 흐른다.
대화방에서 만날때에는 할말이 그렇게도 많았건만, 지금은 눈 한번 마주치는것이 왜이리 낯간지러운 것인지
도통 이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아 태환은 두 눈만 굴려댔다.
"한잔... 하시겠습니까?"
손가락만 꼼질거리던 태환은 자신을 향해 주병을 들어보이는 나으리의 모습에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 저는...술을 못하는데..."
잔을 채워주려는 그의 손을 살며시 제지하며 어색하게 웃어보이자 나으리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린다.
"술이라도 먹여야 말문이 트이실것 같아 그럽니다. 한잔만 드십시오."
손사래를 치는 태환의 손을 슬쩍 밀고 잔에 술을 가득 부은 쑨양은 자신의 잔도 가득 채웠다.
옥빛 잔을 들어 보이는 나으리의 행동에 태환도 쭈뼛거리며 잔을 들어보이자 챙- 하는 소리와 함께 서로의 잔이 부딪힌다.
두 눈을 내리깔고 시원하게 한잔을 비우는 나으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태환도 미간을 찌푸리며
술잔을 입에 살며시 가져다댔다.
"....후...아....헤헤~"
술을 못한다더니... 그말이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주춤거리며 자신을 따라 홀짝홀짝 잔을 비우던 그가 겨우 술 한잔에 얼굴이 발그레졌다.
하얀 뺨에 홍조를 띄우고 뭐가 그리 좋은지 자신을 바라보며 방실방실 웃는 모습에 입술을 비집고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온다.
조금 전까지 눈도 못 마주치더니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끝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쑨양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앞에 놓인 술잔을 집어들었다.
"더 드셨다가는 큰일 나시겠습니다."
"...어? 아뉩니다... 저는 갠차는데... 나으리가 취하신거 아니십니꽈~?"
어느새 혀까지 꼬여 뺏긴 잔을 쥐고 놓지 않는 태환의 고집에 쑨양은 피식- 웃어보이고 잔에서 손을 떼어냈다.
옥빛 잔을 두손으로 들고 조금 남은 술을 마저 마시는 그를 바라보다 쑨양은 닭살을 발라내 그 앞으로 내밀었다.
입에 가까이 가져다대자 방실방실 웃으며 아기새처럼 입을 아- 하고 벌리는 그.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붉은 입술을 살며시 벌리는 그 모습에 쑨양은 순간 흠칫...하며 얼른 고기를 입에 넣어주고
괜스레 헛기침을 해보였다.
"나으리도 드십쇼-오."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닭살을 발라내 아- 하며 젓가락을 들이미는 모습에 쑨양은 차마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위에 둔채 급히 받아 물었다.
흡족한 표정으로 웃는 그 웃음에... 예쁜 눈짓에 쑨양은 닭을 씹지도 못하고 마른 침만 간신히 삼켰다.
"아!"
뭔가가 생각난듯 손뼉을 치며 눈을 맞춰오는 모습에 쑨양은 또다시 그의 붉은 입술이 눈에 가득 들어와 얼른 시선을 돌렸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부탁이 있다는 그.
말해도 되느냐 묻는 그에게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천천히 입을 뗀다.
"편하게 말씀하셔요. 나으리께서 저에게 존칭을 쓰시는건...아니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지금도 불편치 않습니다."
"안됩니다아~ 지체 높으신 분께서.....그리 할수는 없습니다...!"
"아니...저는 괜찮은데..."
"제 이름을 불러보십시오~ 태환아~ 이렇게요!"
"아............."
"얼른요~오~"
방실방실 웃으며 편하게 이름을 불러달라 재촉하는 모습에 쑨양은 손끝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신분이 다르다 한들... 제 또래인 사내에게... 그것도 정인에게...
쑨양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입술만 오물거렸다.
"태환아~ 라고 불러보십시오~!"
어느새 곁에 다가와 소매끝을 붙들고 흔드는 그의 모습에 쑨양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를 흘깃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ㅌ...태..환아.."
조심스럽게 흘러나온 다정한 목소리에 태환의 눈이 반달로 휘어진다.
"네. 나으리."
"흠...태...환아-"
"네~ 나으리~!"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고운 얼굴에 그를 바라보는 쑨양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진다.
소매 끝을 붙들고 방실거리며 웃는 태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쑨양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잡고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품안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온기.
자신의 어깨에 폭- 기대어 안긴 그의 심장소리를 듣던 쑨양은 커다란 손으로 그의 여린 등을 다독이며 천천히 두 눈을 내리감았다.
고르게 내쉬는 그의 숨이... 쿵쿵 뛰는 심장소리가... 입가에 살며시 미소 짓게 만든다.
늦은 저녁.
불이 환하게 켜진 기방으로 발을 들인 누군가의 모습에 이리저리 분주하게 손님을 맞던 기생 몇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어머나...이게 얼마만에 오시는 겁니까~? 그동안 왜 오지 않으셨습니까?"
고운 얼굴에 웃음을 담고 자신을 맞이하는 여인에게 김재호는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곳에서 나를 반기는 사람도 있소? 불청객이 아니었던가."
차분한 어조로 농을 건네는 그의 모습에 여인은 잠시 멈칫했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어찌 그런 말씀을..."
"농이오. 그보다... 누구를 좀 만나러 왔소."
어깨를 살며시 두드려주며 누군가를 만나러 왔다는 그의 말에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누구를..."
"예전... 초연과 함께 일했던 아이오. 아직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오늘 만날 수 있소?"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조심히 건네오는 그의 물음에 여인은 놀란 눈빛을 지어보였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러니 내 방으로 잠시만 들이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초연이란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싫어하던 그였건만,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에 여인은 당혹스러웠다.
비어있는 방으로 그를 들여보낸 여인은 곧 데리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긴 복도를 걸어나갔다.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문에 닿는 손기척과 함께 실로 몇년만에 보는 여인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에 김재호는 술잔을 상위에 내려두고 여인을 향하여 손짓을 해보였다.
"이리와 앉으시오."
늘 험한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그였건만, 무슨 연유인지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는 모습에 여인은 두 눈만 동그랗게 떠올렸다.
가까이 와서 앉으라는 그의 부름에 여인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 앞에 몸을 낮춰 앉았다.
"다름이 아니라, 몇 년 전 초연이 죽던 날... 별다른 일이 있었던건 아닌지... 혹, 기억나는것 없소?"
"글쎄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오래전 일이라 쉽사리 떠올리지 못하는 여인의 모습에 김재호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잔을 들어 한모금을 삼켰다.
이제와... 무엇을 알려하는가.
이미 여인은 죽고 없는데... 난 왜 이곳을 찾아와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가.
술 한잔을 비워낸 그는 잔을 상위에 올리고 쓸쓸한 눈빛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주병을 든 여인은 그의 잔에 술을 부으려다 불현듯 머리속을 스치는 기억 하나에 눈빛을 반짝였다.
"아..! 나으리~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사온데..."
"무엇이오?"
"초연이 죽기 전 사람을 하나 불러 나으리 댁으로 서찰을 보냈습니다. 혹, 그것을 받으셨습니까?"
"...서...찰...?"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두 눈을 지그시 내려감은 그는 아무리 생각해내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 서찰에 미간을 찡그렸다.
"확실하오? 나는 그날 아무것도 받지 못했소."
"확실히 기억합니다. 그날 초연이 보낸 것이 확실합니다."
확실히 기억한다는 여인의 말에 김재호는 다시 그 날로 기억을 되돌렸다.
...서찰이라...
눈썹을 찡그리며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이내 뭔가를 떠올리고 여인과 눈빛을 마주했다.
"알 것 같소."
"기억이 나십니까?"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며 되묻는 여인에게 고맙다고 말을 건넨 김재호는 술값을 여인의 손에 들려주고 몸을 일으켰다.
기생들의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급히 기방을 빠져 나온 김재호는 차가운 겨울 바람에 두루마기자락이 흩어지는대도
발을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무거운 대문을 밀고 들어가 인사를 건네는 하인을 지나쳐 뒷마당으로 걸음을 옮긴 그는 오래 전 추억이 담겨있는
담벼락 앞에 다가섰다.
어릴적 초연의 글 공부를 위해... 그 이후에는 남들의 시선을 피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 이곳에 두었었다.
초연과 마음이 오가고 나서는 연서를 남겨두는 장소로 활용을 했었는데...
자신의 예감이 맞다면... 초연이 보냈다는 서찰은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강압으로 초연을 기방으로 보내고 단 한번도 와본적이 없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김재호는 움직이는 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천천히 발을 떼어 담벼락에 가까이 다가간 그는 손에 익은 돌 하나를 천천히 잡아 당겼다.
".............."
흔들리는 돌 사이로 묵은 흙이 떨어지며 그 밑으로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된 시간을 알리듯 비바람, 흙에 얼룩진 곱게 접힌 종이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천천히 상체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편지를 집어든 김재호는 쿵..하고 떨어지는 가슴을 애써 달래며 천천히 펼쳐들었다.
「이 편지를 보실쯤이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겁니다.」
늘 그리웠던 여인의 고운 글씨체에 김재호의 눈시울이 붉어져간다.
서안 앞에 곱게 앉은 여인은 떨리는 손으로 붓을 집어 들었다.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에 두 눈을 깜박이자 뜨거운 눈물이 하얀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마지막이 될 그를 향한 마음이기에 초연은 눈물에 글씨가 번질까 붉은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초연이 바랬던것은 온전한 그의 '마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두었던 정인.
자신을 어여삐 바라보는 도련님에게 초연은 첫 마음을 주었다.
그저 바라만봐도 좋다고... 그저 곁에 있게만 해달라고 매일 밤, 달빛에 간절히 빌었었다.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도련님의 눈빛 또한 나와 다를게 없다고 느꼈던 그 때.
두 사람을 향해 행복이 아닌 처절한 불행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아비에게 무참히 짓밟혔지만... 초연은 도련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해한 아버지의 죄를 알게 될까... 늘 가슴을 졸였다.
그것을 알게 되면 무너질까봐... 자기 자신을 책망하며 괴로워할까봐 초연은 늘 두려웠다.
더렵혀진 자신의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갈수 없어, 그의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초연은 그를 밀어내고 또, 밀어냈다.
하지만...돌아오는것은 자신에 대한 그의 한결같은 사랑이었다.
그와 같은 마음이나 내보일 수 없는 마음.
그를 사랑하나 말 할 수 없는 마음.
그것이 늘 가슴을 짓이겼다.
밀쳐내려는 자신때문에 점점 망가져가는 그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자신으로 인해 변해가고 있는 그가...
그로 인해 도련님과 자신에게 향할 벌이... 초연은 두려웠다.
「 단 한순간도... 도련님을 향한 마음을 져버린적은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도련님의 온전한 마음. 그 하나뿐이었습니다.
하나, 이 세상에서는 그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내 마음의 정인이 아닌... 다른 이들의 품에 안겨 평생을 살아야한다면...
이제는 그만...그 끈을 놓고 싶습니다.
저로 인해 망가져가는 도련님이.. 저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하시는 도련님이 걱정입니다.
제발...저를 잊어주시기를...
도련님께 죄를 짓고 가는 미련한 여인을 원망하시기를...」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김재호의 눈동자에서 뜨거운 눈물 방울이 떨어져내린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들고 읽어내려가던 그는 마지막 줄에 적힌 글에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이번 생에서는 이 마음을 다하지 못하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제 마음에 품은 이는... 도련님뿐이었습니다.」
차가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편지에 얼굴을 묻은채 오열했다.
눈물로 얼룩진 그의 뺨을... 시린 겨울 바람이 살며시 매만지고 지나간다.
금옥의 인사를 받으며 주막을 나선 두 사람은 시간이 늦어 인적 하나 없는 어두운 길을 천천히 걸어나갔다.
이제는 제법 술이 깼는지 비틀거리지 않고 곧-게 걸어가는 그를 다정한 눈빛으로 내려보다 슬그머니 손을 뻗어
시린 바람에 빨개진 태환의 손을 잡았다.
그 기척에 그가 놀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본다.
흠..하고 헛기침을 해보인 쑨양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채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말없이 묵묵히 걷던 두 사람은 어두운 길 한켠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잠시 멈춰섰다.
차가운 바람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곁을 지나는 낯선 이의 모습에 태환은 흠칫 놀라 나으리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 살짝 비틀었다.
그 기척에 쑨양은 손에 힘을 주어 태환의 손을 더욱 세게 붙들었다.
"그대는 세상의 눈이 두렵습니까."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적막함속에 나지막이 울리는 물음.
그 물음에 태환은 고개를 바닥으로 떨군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저로 인해 다치실 나으리가..... 걱정이 됩니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하는 그의 말에 쑨양은 서서히 걸음을 멈추고 태환의 어깨를 살며시 쥐어 자신을 향해 돌려세웠다.
"저는....."
"............"
"그대가 제곁에 머물지 않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대를 볼 수 없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가까이에서 그대를 바라보고 이렇게 만질수만 있다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 쑨양은 그의 하얀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저는 세상의 눈 따위는 두렵지 않습니다."
동그란 눈을 깜박이며 눈을 맞추는 태환의 까만 눈동자... 무슨 말을 해야할까 붉은 입술을 살며시 연 그의 모습에...
쑨양은 천천히 자신의 갓에 달린 끈을 당겼다.
단단히 묶인 매듭을 풀어내고 갓을 손에 든 쑨양은 천천히 상체를 숙여 태환을 향해 나지막이 속삭였다.
"제 입술이 잠시 그대의 입술에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그 물음을 바로 이해하지 못해 예...? 라고 되묻는 태환의 붉은 입술 위로 쑨양의 부드러운 입술이 마주 닿는다.
뜨거운 숨과 함께 다가온 말캉한 느낌.
긴 속눈썹이 희미하게 떨리는 나으리의 꼭 감은 두 눈을 바라보던 태환은 입술 위를 부드럽게 배회하는
낯설지만 간지러운 느낌에 천천히 두 눈을 내리감았다.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그친 줄만 알았던 겨울의 하얀 눈송이가 살포시 떨어져 내린다.
***
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
이제... 설화는 2-3편을 남기고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끝인데 막판에 글이 안풀리네요ㅠㅠ
매일 올리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가 않아요...
어쩌면...아쉬워서 그런지도 몰라요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마지막까지 열심히...최선을 다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저녁 먹는 내내 태환의 입술에서 눈을 못떼던 쑨양이ㅋㅋㅋㅋㅋ
결국은 했네요..해냈어요...추카추카 쑤냥~ㅋㅋㅋ
늘 재밌게 읽어주시고...응원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항상 드리는 말씀이지만! 감사합니다♡
다음이야기로 만나요!
좋은 밤..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