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한참을 섞여있던 두 사람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떠올린 두 눈에 가득히 들어오는 촉촉히 젖은 까만 두 눈.
그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한쪽 손을 들어 단정한 눈썹을... 동그란 눈매를... 작은 숨을 토해내는 입술을 매만지다,
제법 흐려진 뺨의 상처에 손끝을 멈췄다.
하얀 뺨에 붉은 선 하나를 긋고 어깨를 떨며 울던 그 날이... 마치 어젯밤의 일인것처럼 선명하다.
눈앞에 떠오르는 그 날의 모습에 쑨양의 짙은 눈썹이 일그러지자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 뺨에 머문 커다란 손을
태환이 겹쳐 잡았다.
그러고는 그의 이마에 살며시 입맞춘다.
"팔의 상처는... 이제 다 나으셨습니까?"
이마에 닿아오는 부드러운 입술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묻자, 그 물음에 얼른 입술을 떼어내고 태환이 쑨양을 바라봤다.
입가에 떠오른 엷은 미소.
겹쳐 잡았던 손을 끌어 살구빛 저고리 고름에 손을 가져다대는 태환의 행동에 쑨양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물든다.
별 뜻 없는 행동인지... 고름을 풀러도 된다는 뜻인건지... 쑨양은 순간 머리속이 멍해졌다.
고름 끝에 시선을 두고 깊은 생각에 빠진 그의 모습에 태환은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한듯 그의 손을 끌어 단단히 묶인 매듭을 당겼다.
천천히 풀어지는 매듭... 살며시 벌어지는 저고리 사이로 보이는 그의 하얀 살결에 쑨양은 마른 침만 간신히 삼켰다.
"저는... 괜찮습니다..."
두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건네오는 그의 말에 쑨양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하얀 깃에 손을 가져다댔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살구빛 저고리를 벗겨내자 꼭꼭 숨겨져 있던 그의 보드라운 피부가 손끝에 닿아온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저고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그안에 모습을 드러낸 팔의 흉터.
고운 피부에 자리잡은 상처를 손끝으로 쓰다듬던 쑨양은 고개를 숙여 그 위에 살며시 입술을 포개었다.
"..흡...."
따스하면서도 간지러운 느낌에 그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고 태환은 두 눈을 질끈 감아내렸다.
길게 이어진 상처를 따라 닿아오는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
입술 사이를 비집고 살며시 흘러나오는 그의 따스한 숨결에 태환은 눈썹을 찡그리고 그의 목언저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젠... 못 놔드립니다."
살짝 거칠어진 음색으로 말을 내뱉은 쑨양은 그대로 태환의 허리와 등을 감싸 침장 위로 천천히 뉘였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촉촉히 젖은 두 눈을 깜박이는 태환을 바라보다 쑨양은 고개를 숙여 하얀 목에 입술을 묻었다.
"흐...흣..."
자신의 팔을 붙들고 작은 숨을 힘겹게 토해내는 모습에 쑨양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두 눈을 꼬옥 감고 입술만 깨물고 있는 그.
손끝으로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을 살며시 매만지자 꼭 감은 두 눈이 떠올려진다.
"그렇게 바라보시면.......... 너무 창피...."
태환의 말이 끝나기도 전, 쑨양은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고 두 손을 잡아 자신의 목 뒤로 감쌌다.
붉은 그의 입술에... 하얀 뺨에.. 부드러운 목에 따스한 숨을 물들이다 가슴께에 묶인 치마끈을 천천히 잡아 당겼다.
"안된다고 하시기엔... 이미 늦으셨습니다."
귓가에 나지막이 들려오는 나른한 목소리에 두 눈을 천천히 떠올린 태환은 코끝에 닿아오는 그의 포근한 향에
살며시 미소 지었다.
목덜미에 닿는 간지러운 숨결.
쇄골에 깊숙히 박히는 말캉하고 부드러운 입술의 느낌.
무거워진 눈꺼풀을 내리감은 태환은 입술을 비집고 터져나오는 신음을 그의 입술에 빼앗기고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하는 그의 손끝을 따라 점점 깊은 낙원으로 빠져들어갔다.
얼굴에 닿아오는 밝은 햇살에 눈가를 찡그리며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렸다.
방금 일어난 일인듯 생생하게 꿈에 나타난... 그 날 밤의 기억.
입술에 닿아오던 그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는것만 같아서 태환은 매마른 입술을 손끝으로 쓸어내리고 푸흐흐..웃어버렸다.
누마루 위에 톡- 하고 내려앉아 맑은 울음소리로 아침을 깨우는 새의 지저귐에 그는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고
이불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흐음~"
눈가를 비비며 문을 밀어 열자, 포근한 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날씨 좋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은채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동자가 생기로 반짝인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안녕'이라는 마지막 인사는 하지 않았다.
마중을 나온다면 그대로 붙잡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에... 청나라로 떠나던 날, 배웅을 나가지 않았다.
자신을 붙잡고 싶어질 그보다... 잠시 떠나는 그에게 눈물을 보일까봐 태환은 나갈수 없었다.
아쉬움 가득한 눈동자가... 아쉬움 가득한 눈물이... 잠시 떠나는 그의 발목을 잡을까봐 태환은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 뒷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그가 두고 간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가 떠난 뒤, 하루하루가 흘러... 어느덧 봄.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이며 초록의 나뭇잎을 흔든다.
"음... 오늘 알아볼게...노리개랑...꽃신...아! 비단 비단~"
종이에 적힌 목록을 눈으로 훑으며 마당을 가로질러 나가던 그가 눈앞에 불쑥 나타난 손 하나에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춰섰다.
눈앞에 들이밀어진 약과 하나.
미간을 찡그리고 얼른 받으라 거듭 내밀어지는 손에 태환은 살포시 웃어보였다.
"굳이 안 챙겨도 되오~"
"안됩니다요~ 살이 조금이라도 빠지시면 나중에 소인이 죽습니다요."
"한끼 굶는다고 마르진 않소~"
끼니를 거르고 나가려는 태환을 붙들고 굳이 간식을 챙기는 하인의 마음씀씀이에 태환은 고마워졌다.
손에 든 종이를 접어 옷 깊숙히 넣고 약과를 받아들자 그제서야 벽에 세워둔 싸리빗자루를 챙겨들고 하인이 마당 정리에 나선다.
"오늘은 조금 늦을수도 있소!"
"오늘'은' 이 아니라 늘 늦으십니다요! 나중에 나으리 오시면..."
태환은 받아든 약과 반을 갈라 잔소리를 시작하려는 하인의 입에 쏙- 집어 넣었다.
커다래진 눈으로 태환을 바라보는 그.
그 표정이 재밌다는듯 깔깔거리고 웃어보인 태환은 또다시 잔소리가 시작될까 얼른 대문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일찍 들어오셔야 합니다요! 설ㅎ..아니, 도련님!"
"알았소~! 잔소리 좀 그만 하시오~!"
"늦으시면 소인이 또 찾아다녀야 합니다요!"
대문을 붙들고 한참을 걸어나갈때까지 들려오는 하인의 목청에 태환은 졌다는듯 어깨를 한껏 늘어뜨리고
힘없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잔소리쟁이라더니... 나으리 말씀이 틀린게 하나 없었다.
슬~쩍 돌아본 대문 앞에 여전히 걱정 가득한 얼굴로 서있는 그 모습에 태환은 한숨을 푹- 내쉬고
혹, 그가 따라나설까 장터까지 힘껏 내달렸다.
"왔소?"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 인사를 건네는 비단 가게 주인에게 눈인사를 해보인 태환은 가게 앞에 내걸린 한복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서 있었다.
가게 앞을 지나는 많은 여인들의 시선이 태환의 손끝에 걸린 한복에 집중된다.
걸음을 멈추고 가까이 다가와 옷을 홅어보는 시선에 태환은 슬쩍 한걸음 물러나 여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곱다~ 요즘 여기에서 만든 옷 많이 입는다던데."
"나도 들었다오. 멋 좀 부린다는 여인들은 한벌씩은 꼭 가지고 있다 하던데?"
"아직도 안샀소? 난 여기서 한벌 쫙- 맞췄는데~"
이곳에서 옷을 샀다는 여인의 한복을 슬쩍 훑어본 태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이오? 여기 옷인지 알려면 소매 끝단을 뒤집어 봐야하오~"
"맞다니까! 우리 선비님이 사주신건데?"
맞다고 호언장담하는 여인의 옷을 다른 여인이 확인하려하자 태환도 슬쩍 그 틈에 끼어 눈을 굴렸다.
뒤집어진 소매 끝단에 붉은 실로 새겨진 이름 하나.
'솔화'
그 이름을 본 여인네 둘이 뒤집어지듯 웃는다.
"가짜요! 가짜를 사주셨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는 여인네의 낯빛에 두 여인은 곧 웃음을 멈추었지만 놀림을 당한 여인은
그대로 가게 앞을 벗어나 저멀리 걸어나간다.
급히 뒤쫒아가는 두 여인의 모습을 쫒던 태환은 그제서야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때문에 얼른 입을 가렸다.
"뭐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있소?"
어느새 곁에 다가와 묻는 주인의 목소리에 태환을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그럼에도 웃음은 멈추질 않는다.
"우리 누이가 만든 옷 흉내내는 곳 있소?"
"엥?"
"솔화라는 가짜가 있는 모양이던데~?"
"어~ 있지 있지~ 요즘 자네 누이 옷이 워낙에 잘 팔리다보니 비슷하게 만들어 파는 곳들이 생기더라고! 어허이~참!"
"그만큼...반응이 좋다는 건가?"
"그럼~그럼~이번에도 주문이 많이 들어왔소! 누이가 고생이 많겠어~"
품안에 꼭꼭 넣어둔 종이 하나를 꺼낸 주인은 얼른 태환에게 넘겨주었다.
접힌 종이를 펼쳐내자 줄줄이 나열된 주문 목록들.
손에 꼽히는 양반가 규수들의 이름까지 적힌걸 보니 입소문이 많이 나긴 난 모양이었다.
손끝으로 이마를 긁적인 태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보이고 좌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알았소~ 약속에 맞춰 가지고 오겠소!"
"그려~그려~"
"아! 그리고! 노~란 비단 열필 준비해 주시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보이는 주인에게 잘 부탁한다 인사를 건넨 태환은 비단 가게를 나와 곧장 장터의 가운데로 발길을 돌렸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끼어 여인들의 장신구 가게로 향하는 그가 기분좋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
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ㅎ
원래 더 써야하는데!! 오늘은 여기까지...헙ㅋ
두,세편이면 끝나겠다 했는데...어쩌면 30회까지 가겠네요~
한 편당 분량을 조~금 줄여서요;;;
한편에 여러 상황을 적으려니 복잡한듯 해서 끊었습니다~ㅠㅠ
지난 이야기에 이어 끈적~한 이야기가 오늘까지 이어졌는데...
전 재주가 없어서...끊었어요ㅠㅠㅠㅠㅠㅠ
아름다운 그림은...독자분들의 상상력에 맡기겠습니다!!ㅎㅎ
봄.
쑨양이 떠나고 벌써 봄이 왔네요~
오늘 중,후반부에는...알쏭달쏭한 모습들이 좀 보였죠?
ㅎㅎㅎ
다음이야기로 다시 찾아올께요~
늘 재밌게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기 조심!! 꼭 조심!! 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