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정)
제1막 1장
w. 이달콤
세상 모든 존재는 불완전하기 마련이니, 무언가를 깊이 사랑한다는건 필연적으로 슬픔을 동반하는 일.
하지만 슬픔을 간직한채라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우현아, 우현아!"
아침부터 요란스레 신원전을 뛰어다니며 분주히 누군가를 찾는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온 마당을 뛰다니며 소리를 치던 성종이 뒷뜰 나무에 기댄 채 눈을 감고있는 우현을 발견하곤 씩 웃으며 그쪽으로 뛰어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눈을 가늘게 뜨고는 성종을 지켜보던 우현이 놀라 달려온다.
"마마, 괜찮으십니까."
넘어진채로 얼굴을 든 성종이 배시시 웃어보인다. 그리고는 그렇게도 불러대던 이름을 또 다시 부른다.
"우현아."
"...호를 불러달라 하지 않았습니까."
성종을 일으킨 우현이 하얀 의복에 묻은 흙을 털어주며 조용히 말한다. 그 말에 금세 볼을 부풀리며 입을 삐죽이는 성종의 얼굴이 아직 어린 티를 내는듯하다.
"도윤이란 이름은 너무 딱딱하단 말이야. 너한텐 우현이가 더 잘 어울려."
"대비마마께서 아시면 역정을 내실겁니다."
"뭐 어때, 내가 그렇게 부르겠다는데. 혼나도 내가 혼나."
하여간, 못말린다니까.
우현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내젓고는 성종을 데리고 나무 아래에 가 앉혔다.
"소인은 왜 그리도 찾으셨습니까."
"아, 맞다 맞다. 이거 봐라!"
성종은 달려오느라 제 손 안에 꼭 쥐고 있던 꽃반지를 보여주려 주먹을 폈다. 하지만 너무 꽉 쥐었던 탓에 손바닥 위에는 다 뭉그러진 풀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어? 찌그러졌어..."
아직도 마냥 어린아이같은 성종은 금세 풀이 죽어선 시무룩한 표정으 짓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현이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뭉개진 꽃반지를 집어들고서 뒷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같은 종류의 꽃을 따 모으기 시작한다.
"...?"
의아한 표정으로 그것을 지켜보던 성종의 곁으로 다가온 우현이 꽃 여러개를 이리저리 엮더니 금세 꽃목걸이를 만들어선 목에 걸어준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듯 성종의 얼굴이 환해진다.
"우와, 진짜 이쁘다!"
꽃목걸이 하나에 기뻐하며 목에 걸린걸 만지작대는 모습에 우현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찌해서, 무얼 해도 저리 사랑스럽단 말인가.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누군가 저쪽에서 성종을 찾는 소리가 들려온다.
"백아야."
"아바마마!"
제 아비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성종의 뒤를 따른 우현이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예서 뭘 하고 있었느냐."
"아바마마, 이것 보시어요. 우현이가 이것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신이나서 자랑하는 성종이 마냥 귀여운지 만면에 미소를 띈 혁이 우현에게 말한다.
"늘 백아를 잘 챙겨주어 고맙네."
"황송하옵니다."
"그런데 백아야. 너 아직도 도윤을 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냐?"
"전 그리 부르는 것이 더 좋사옵니다."
"허나 이제 멋진 호가 생기지 않았느냐."
"그 이름은 너무 딱딱합니다. 그리고 우현이는 제게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까. 남들과 똑같이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허허, 알겠다 알겠어. 그럼 원하는대로 부르려무나. 한 배에서 난 형제가 아니랄까봐, 그 마저 네 형님을 닮는구나."
성종의 고집이 꺾기 어렵다는 걸 잘 아는지라 혁은 그저 웃으며 허락해주었다.
"그런데 어딜 가십니까?"
"오랜만에 하림이 유생들과 축국 대결을 한다 하여 구경가는 참이다. 너도 가겠느냐?"
"아...예, 아바마마."
그렇게 따라간 축국장에는 한창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성종은 마련된 자리에 앉아 흙먼지 날리는 축국장 속 제 형을 눈으로 좇았다. 그의 형이자 아랑국의 왕세자인 성열이 구슬땀을 흘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큰 키와 훤칠한 외모를 가진 그는 유생들 사이에서도 곧잘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어릴적부터 받아온 교육 덕에 학식도 뛰어남은 물론 무술에도 일가견이 있어 궁녀들의 연모 대상이요, 제 또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존경받는 왕세자였다. 또한 누구에게나 다정한 성격이며 고풍스러운 몸가짐 덕에 그는 한림(嫺滲) 이라 불렸다.
우현이 성종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동안 누군가 곁으로 와 하녹 어깨를 턱 하고 잡았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동료 무사이자 성열의 호위를 담당하는 성규다. "놀랬잖아." "넌 맨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음유시인도 아니고. 한쪽 눈도 그렇게 앞머리로 가리니까 더 음침해 보이잖아." "남이사. 넌 안 하냐?" "축국엔 관심 없는거 알잖냐. 저하께서도 아시니까 냅두신거지." "그랬나." 궁에 들어와 13년을 호위무사로 함께 자란 사이인데도 무심하게 뱉어지는 우현의 말에 성규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우현은 늘 이랬다. 저를 비롯해 다른 궁중 사람들에겐 이리도 무뚝뚝하면서 대군 곁에만 있으면 그렇게 다정할수가 없었다. 원래 그렇다는거야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성종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현과 성규에게로 다가왔다. "우현아." "예, 마마." "다시 뒷뜰 가자. 나 꽃목걸이 만드는 거 가르쳐 줘. 성규형 안녕!" "강녕하셨습니까, 마마." "당연하지. 우리 형 잘 부탁해." "염려 마십시오." "가자, 우현아." 우현과 성규가 동시에 고개를 살짝 숙여 예를 갖추고, 우현은 성종을 따라 저 멀리 사라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성규가 나즈막히 한 마디를 내뱉고는 돌아선다. "나쁜 새끼." --------------------------------------------------------------------------------- 어제의 예고편에 이어 첫화 들고 왔습니다 :) 제목은 역시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오타 발견시 댓글로 살짝쿵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