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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데 전체글ll조회 573l 2

몽롱한 어둠에 젖어든다. 

주위의 자극을 차단하고 기나긴 복도를 걷는 데에만 집중한다. 


 

처음엔 닫힌 천장이, 그다음엔 세워진 벽이, 마지막으로 발을 디딜 수 있는 바닥이 느껴진다. 

감겼던 눈꺼풀을 뜬다. 어두운 복도의 끝에는 낯익은 문 하나가 있다. 

오래된 놋쇠 문손잡이를 천천히 돌리면 기괴한 신음을 내며 문이 열린다. 


 


 


 

게임 스타트. 


 

한솔은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선물 상자를 열었다. 도구는 짧고 예리한 단검, 배경은 활기찬 뉴욕의 한복판이다. 오늘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버논은 다섯 살 이후 가보지 않았고 한솔은 전시회 때문에 적어도 세 번은 오갔다. 그가 후드를 푹 눌러쓰고 어느 틈에 인파 속으로 섞여들었다.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거리를 걷는다. 그의 눈에 모퉁이를 돌아가는 환자복 차림의 남자가 담겼다. 돌아보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의 시선은 그림자를 좇는다. 어깨를 누군가 툭 치고 지나간다. 경고다.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더 힘들게 죽을 거라는 경고. 오 분이 지나도록 타겟을 발견하지 못하자 그는 조금씩 초조해져 갔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신이 도우시는지 저 멀리서 버논의 갈색 머리가 보였다. 빙고. 

한솔은 단검을 꼬나 쥐고 버논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빠르게, 더 빠르게. 한솔이 따라오는 것을 눈치챈 그는 웃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참, 취향 한번 독특하기도 하지. 버논은 왁자지껄한 시장으로 발길을 튼다. 제법 귀찮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솔은 색다른 수법에 미간을 찡그렸다. 머리만 더럽게 좋아서. 버논이 오렌지가 산같이 담긴 박스를 엎어 버린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상인들 틈을 비집고 한솔은 그를 쫓아 달려나간다. 이제 버논은 골목 사이로 뛰어가 오래된 건물의 비상계단을 오른다. 두 개씩, 어느 때는 세 개까지도 거뜬하게. 철제 그물 같은 계단은 밑이 훤하게 다 보인다. 까딱하다간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서 한솔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눈앞이 핑핑 돌았다. 일부러 이 코스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포기한다면 그는 먹혀들 것이다. 끝내는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입술을 깨물고 남은 계단을 기어이 올랐다. 

옥상에 올라 숨을 몰아쉬며 한솔이 난간을 흘끗 곁눈질 해 본다. 저 너머를 뛰어넘으면 쉽고 간단하다. 그러나 솔의 시선을 알아차린 버논이 다가와 한솔을 때려눕혔다. 버논은 너무나 다정한 눈빛으로 한솔이의 뺨을 연달아 갈기고 묻는다. 


 

형제여, 도대체 어딜 가려고 그래.” 


 

여기서 나가려고.” 


 

네 발로 걸어 들어왔잖아.” 


 

그래, 여기는 그 자신의 발로 걸어 들어왔다. 매번 이렇게 죽을 걸 알면서도 한솔은 버논을 찾아온다. 그 대가로 버논의 손에 들린 단도는 한솔의 가슴팍을 몇 번이고 내리찍는다. 저릿한 통증에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을 몰아쉬며 한솔은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어쩌면 그는 이것으로 속죄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 일에 대한 죄책감이 솔의 팔다리를 결박한 채 무기력하게 칼날을 받아내도록 내버려둔다. 버논 최, 혹은 최한솔. 둘 중 하나가 이 모든 죄악을 피로 씻어내야 이 기나긴 싸움이 끝날 것만 같아서다. 

우리는 끝장을 봐야 해. 한솔의 입에서 단어가 핏방울처럼 툭툭 터져나왔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 버논의 폭력으로 인해 한솔의 몸이 그저 무디어져만 가고 있었다. 그가 눈을 감았다. 


 

삐, 하고 작은 신호음이 들린 것만 같다. 표백제 냄새가 떠도는 침대에서 깨어난 솔은 그것이 바이탈 모니터에서 규칙적으로 새어나오는 소리임을 알아차린다. 소리가 섞여 잘 듣지 못했는가보다. 그는 낯선 고요 속에서 찢겼던 몸뚱이를 이리저리 비틀어 본다. 놀랍도록 허무한 감각이 꿈의 여운처럼 길게 남는다. 꿈에 젖은 채 멍한 상태에서 눈치채지 못할 만큼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그곳에 버논이 서 있었다. 어떻게, 라는 의문이 미처 생길 틈도 없이 그가 침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한솔은 다급히 창가로 바이탈 모니터를 집어던지고 곧이어 제 몸을 날린다. 그는 등에 꽂히는 날선 단도의 감촉과 고통에 묘한 해방감을 느끼며 아찔한 창밖으로 떨어졌다. 


 


 

- 


 

드디어, 완전히 깨어났다. 한솔은 식은땀에 온몸이 젖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이 차 갈비뼈가 아팠다. 미적지근한 액체가 온통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경계를 침범당했다는 사실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이대로라면 그는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전부, . 그는 머리를 흔들어 꿈을 걷어내고 묘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묘 박사는 정원을 한가롭게 거닐었다. 타는 한솔의 속과는 정반대였다. 이따금 멈춰서서 장미 향기를 맡는 박사의 모습은 여유롭기까지 했다. 이십여 년 동안 묘 박사를 봐 온 한솔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박사님. 누구는 몸을 뺏기게 생겼는데 박사님은 장미나 보고 계실 거예요?” 


 

사실, 경계를 침범하는 일은 전례가 없어.” 


 

뭐라고요?” 


 

게다가 너희는 서로 다른 인격이다 보니까 쉽지가 않아. 특히나 버논이의 경우엔 말이다. 저 스스로 안 나오겠다는데 나로선 별수 없지. 기다리는 수밖에.” 


 

묘 박사는 솜씨 좋은 심리학 박사였다. 그가 치료한 환자 중에는 심각하게 미친 사람들도 허다했다. 그런 박사가 별수 없다는 말에 한솔은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라는 말은 그에게 이는 몸의 주인이 또 다른 인격인 운재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박사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을 툭 꺼냈다. 


 

, 난 놈 한번 만나봐라.” 


 

박사가 휘갈기듯 적어준 주소는 한 아동 정신병원이었다. 이지훈이라는 의사의 이름이 그 아래 적혀 있었다. 박사는 전화를 오늘 안에 그의 진료기록을 모조리 보내마고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한솔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박사의 수제자라고는 했지만 이십 년간 맡아왔던 환자의 진료기록을 그렇게 덜컥 넘겨 줄 정도면 얼마나 난 놈일지 현재로써는 짐작도 안 갔다. 무엇보다 그의 모든 것을 묘 박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을지 아직 그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의 내면은 본래 그의 나이보다 지독히 성숙하고 냉소적이었다. 어린 나이에 천재 화가로 추앙받으며 자란 최한솔이라는 존재에게 대중의 시선은 늘 엄격했다. 그는 영감이 메말라서는 안 되었고,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탄성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고 완벽해야 했다. 그의 눈물과 상처는 결코 내비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것을 딱 한 번, 드러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그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었다. 그 일이 없었더라면. 한솔은 의미 없는 후회를 하며 굽이진 도로를 따라 산속으로 차를 몰았다. 

 
 

병원에 도착하자 인상 좋은 수녀님 한 분이 문을 열어 주셨다. 요양원은 담쟁이가 벽을 뒤덮고 프리지어 따위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묘 박사의 정원을 연상케 했다. 그는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는 아이들 사이를 지나 의사의 방 앞에 도착했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한솔은 깊게 심호흡했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그를 긴장하게 만들어서,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고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뜻밖에도 어린 목소리가 들려와 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묘 박사의 수제자라면 적어도 마흔은 돼야 했다. 그가 문을 열자 더 경악할 만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작은 체구의, 정말 많이 봐 줘봤자 자기와 엇비슷한 나이로밖에 안 보이는 남자가 바닥에 앉아 아이들과 기차놀이를 하고 있었다. 기차 레일은 책상과 탁자를 지나 책장 위까지 뻗어 있었다. 전공 서적을 쌓아 만든 기차역에는 봉제 인형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어이가 없어 망부석처럼 서 있는 그에게 의사는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어디가 아프세요?” 


 

어디가 아프냐고? 

그는 살면서 어디가 아프냐는 말을 이토록 간절하게 반문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과연 저 의사가 그가 겪고 있는 불안을 알 수 있을까? 막막한 마음에 한솔의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시간 낭비였다. 오랜 시간 알았다는 이유로 묘 박사를 맹신했다. 전시회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럴 시간에 붓질 한 번을 더 해야 했다. 그가 돌아서서 문을 닫고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날 믿어요.”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묘 박사에게서 독심술이라도 배웠나. 단 한 마디에 마음이 흔들렸다. 묘 박사의 수제자건 뭐건 다 떠나서 그저 이지훈이라는 저 사람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돌아선 것은 그저 그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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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이거슨 완죠니 나의 취향ㅠㅠ
7년 전
독자2
저 이런 거 짱 좋아해요^♡^ 다음화도 기다릴게요!!
7년 전
독자3
와 문체 대박ㅠㅠ 자까님 사랑해요 이런 인셉션 느낌...
7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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