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로는 감각이 뛰어나다, 나쁜 말로는 예민하다로 나뉘는 모순적인 나의 모습은 어느 때부터인지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혀왔다. 처음이 아무렇지 않다고 꼭 마지막까지 아무렇지 않을수는 없었다. 언제나 끝은 흐지부지했고 내가 무슨 노력을 한다고 해도 여전히 나는 망가져있었다. 도대체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무너지기 시작했을까.
"전학생."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비록 먼저 피한 건 나였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렇게 떨리는 걸 보면 언제나 '첫'이라는 단어는 설레는 단어임이 틀림없다. 느릿하게 발걸음을 떼어 교탁 앞에 서자 선생님은 이름을 말했고 나는 고개를 숙여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반장. 너가 맡아서 학교 적응 좀 도와주고."
"네."
가운데 세번째 줄에 앉은 한 남학생이 나를 흘낏 쳐다보고선 다시 시선을 내리었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고 천천히 걸어 가방걸이에 가방을 걸어두며 느릿하게 자리에 앉았다. 나같은 건 신경도 안 쓰는 듯 만화책을 꺼내보이던 남학생은 책표지를 넘기고선 첫교시의 종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그 책에 온 신경을 집중한 듯 했다.
수업은 조용하기도 시끄럽기도 했다. 누군가는 필통을 드럼이라도 되는 듯 톡톡 치고 있었고, 누군가는 열심히 글씨를 써 내려갔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조용히 수다를 떠는 듯 했다. 딱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들려오는 말소리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 반장은 눈길 한 번 안 주네. 전학생한테.
- 반장이 언제부터 남한테 관심이 있었다고.
나도 모르게 그 대화의 주인공인 반장을 슬며시 흘겼고 내 시선때문인지 그가 조용히 고개를 들고선 펜 끝으로 내 책을 두드렸다. 아마도 집중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반장과 나의 대화는 오직 펜 끝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반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봤자 학급회의가 그 뿐이었다. 그 날도 반장은 내가 잘못 펼친 페이지를 알려주기위해 펜 끝으로 내 책을 몇 번 톡톡 치며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면 나는 반장이 펼친 페이지를 대강 보고선 그 페이지를 펼친다. 그렇게 학교생활에 거북이마냥 적응해가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생각했다.
도대체 왜 지금 내 주변 사람들이 멈춰있는걸까.
이런 상황을 겪게 된 건 얼마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5교시가 끝나고 나서였으니 오후 2시정도였던 것 같다. 너 숙제 했어? 아마 다음 교시가 영어시간이었고 그 날은 단어 시험을 보던 날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이 대화를 엿들은 게 도움이 될 줄이야. 나는 급히 노트를 펼쳐 단어를 외우기위해 애를 썼던 것 같다. 단어를 외우는 데에는 쓰면서 외우는 게 버릇인지라 급히 펜을 꺼내들던 때였다.
팔꿈치때문에 밀려난 펜들이 떨어졌을 때 둔탁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본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집중력이 뛰어나 주변 소리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 생각했던 나는 멈춘 친구들과 공중에 떠 있는 내 펜을 바라보며 알았다.
"시간이 멈췄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덮고 있던 담요가 그 모양 그대로 공중에 떠 있었고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둡게 변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떼었을 때 내 자리가 빛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았고 아주 느리게 문을 열어 복도로 나왔다. 모두가 멈춘 그곳에서 나 홀로 움직이고 있었고 숨을 쉬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야."
평소에 울리던 내 목소리는 아주 느리게 복도를 메웠고 그 소리의 주변이 미세하게 어두워진 것 같았다. 멈춰버린 시간때문에 얼마나 흐른건지 가늠조차 안 되었고 갈수록 어두워지는 공간에 혼란스러울 때 쯤 다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여 시간을 멈춘 사람일까 급히 계단을 따라 올라갔지만 이미 시간은 풀린 후였다.
허망한 기분이었다. 조금은 나와 비슷한 사람일까 잠깐의 기대같은 것도 있었다. 조금은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나에게 공감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뭐야, 너 방금 저기 앉아있지 않았어?"
"어? 아… 나 화장실 다녀왔잖아."
실망감을 안고 교실로 들어오자 나를 보는 시선이 어째 의심으로 가득 찼다. 급하게 둘러대었지만 여전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흘기던 녀석들도 곧 다른 대화로 빠져나갔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내 시간은 멈추었고 나는 이 시간을 멈춘 사람을 찾고 싶었다. 몇 번의 정지된 시간 속에서 깨달은 건 내가 숨쉴수록 내 주변이 어두워진다는 점과 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새까만 어둠으로 바뀔 때 쯤 그 곳에서 숨을 쉴 수 없다는 점을 발견했다. 아마도 시간이 멈춤과 동시에 공기의 흐름도 멈추게 되는 듯 싶었다.
"4층 복도."
그러니 나는 나의 능력을 이용해 아주 미세한 어둠을 쫓아가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것도 나에게는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그저 시간이 멈춘 것을 인지했을 뿐 나 또한 이곳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그 사람이 10분이라는 시간을 멈추면 나는 고작 5분정도 체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았을 때야 내 주변이 필름처럼 끊겨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또는 운이 필요했다.
-
그 사람을 어떻게 찾아내야할까 고민을 너무 깊게 한 탓일까 나를 부르는 소리에도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옆에서 반장이 나를 건드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들어 나에게 걸어오고 있는 선생님을 마주했다.
수업 중 딴짓을 했다는 이유로 교실 뒤로 쫓겨나 책이나 멍하니 읽는 척 하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고 창 밖 어느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저 사람인가싶은 마음에 급히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5분, 어느 때보다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던 날이었다.
"저기요. 잠시만 멈춰봐요!"
"저요?"
"혹시…."
이 사람에게 어떻게 물어야할까. 온갖 생각이 빠른 시간안에 스쳐 지나갔지만 딱히 생각나는 물음은 없었다. 시간을 멈출 수 있어요? 혹시 저번에 시간을 멈추셨나요? 어떻게 물어보든 이 사람이 아닐 때에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내저을 수 밖에 없었고 잠시 싱겁다는 듯 웃어보이던 그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났다.
하교길에 내 주변을 모래바람이 쓸고 지나갔다. 하교 시간에 짬을 내어 축구를 하던 놈들 탓이 분명했다. 굵은 모래에 살갗이 따가워져 팔짱을 끼고 모래바람을 피하기위해 뛰기까지 했다. 한동안 그 사람을 찾아 헤메느라 신경을 써서일까 머리가 지끈거리고 평소보다 더 예민해진 듯 했다. 작은 소음들이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교복 주머니에 들어있던 이어폰을 꺼내 귀를 막아버렸다.
밤만 되면 수많은 고양이 울음이 내 고막을 찢을 듯 했다. 이 어두움만 찾아오면 수없는 경적소리가 나의 스쳐지나가고 찬바람이 내 살갗을 파고 들어오는 듯 한다. 베개에 머리를 대면 바로 잠에 빠질 정도가 되서야 비로소 온전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전까지 나는 그저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내 귀를 찢는 고양이가 있는 곳, 경적이 울리는 차, 찬바람이 떠나가는 그 모든 것을 느끼고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이 나타난다면 반겨줄거야. 나는."
"당신이 나타나면 한결 편하지 않을까? 나는."
"당신이 있으면…."
이 어두움이 조금 덜 무섭지 않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밤 냄새가, 새벽 냄새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이었다.
"도망가고 싶다."
아무런 향기도, 소리도, 느낌도 나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나도 내가 멀쩡하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너무 늦은걸까, 너무 헛된걸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끝나고 나니 밀려오는 잠 때문에 한껏 무거워진 몸을 겨우 일으켜 침대로 향했고 베개의 향기가 내 코를 찌른지 얼마되지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은 등교길을 조금 더 재촉했고 평소보다 15분정도 일찍 도착했던 것 같다. 주번만 아니었어도 조금 더 자는 거였는데. 아쉬움의 한숨을 푹 쉬고선 어제 잘 말려둔 칠판 지우개와 물통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섰다. 물통을 수도꼭지 바로 밑에 두고선 물을 틀어 물이 채워지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내 고막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물통에 물이 거의 다 채워져서 지우개를 적셔볼까 했던 나는 내 손을 멈춰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표면에 붙어 스르륵 떨어지던 물방울이 멈추고 나를 괴롭히던 소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손으로 물을 가를 때 그 물은 내 손끝의 흔적이라도 되는 듯 그 자리 그대로 머물렀다.
빨리 찾아야했다. 그 사람이 얼마동안 이 시간을 멈출지는 모르니 평소보다 훨씬 많은 걸음으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3층, 2층까지 밝기만 했던 빛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 어둠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빨리 걸었던 게 탓이었을까 한꺼번에 숨을 몰아쉬자 내 주변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내 주변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그가 보였다. 밝은 곳에 가만히 서 있는 그 사람이 보였다.
"너였구나."
"… …."
"반장."
지하 1층. 숨을 몰아쉬던 네가 서 있었다. 그 어두운 곳에서 네가 서 있었고 나는 숨을 얕게 내쉬었다. 너와 내 공간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덮어버렸고 놀란 기색이 역력한 그는 너와 내가 있던 시간을 풀어버렸다. 곧 등교를 하는 학생들의 말소리가 내 고막을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