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빛의 등장에 기쁘고 신이 났다. 그 사람은 그때와 같이 앞장서서 걸으려했고, 나는 그 걸음이 수를 더해가도 움직이지않았다. 그는 그의 뒤를 따르는 걸음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뒤를 돌아 나를 보았다. 나는 그때 기쁨과 함께 심통이 난 상태였던 것 같다. 다시 만나서 좋은데 또 가려고하니까. 그 사람은 역시나 다시 내게 다가오지도 않고, 왜 오지않냐고 묻지도 않은 채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빛을 내 코 앞까지 둘 뿐이었다. 그 빛에도 내가 움직이지 않자 그가 집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그제야 나는 걸음을 떼 그 사람을 붙잡았다. 그를 붙잡은 내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붙잡지도 않았고. 왜 붙잡았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냥 나를 내려다봤다. 그 얼굴을 올려다보며 나는 더듬더듬 말했었다. 그 날은 감사했다고, 그런데 왜 오지않았냐고, 계속 여기서 기다렸다고, 내가 손전등을 들고 있어서 안 온거냐고, 나 집에 데려다주려고 온거냐고, 근데 왜 또 가려고하냐고, 왜 말은 안하냐고, 내가 누군지 아냐고. 두서 없이 이것저것 묻고 말했다. 그가 사라질까봐 그를 꼭 붙든 채 다다다 내뱉는 내 말을 그는 가만히 듣고 서 있었다. 내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대답은 없는 그에 괜히 눈물이 터진 나는 왜 답은 안하는지, 혹시 안 들리는건지 웅얼거렸다. 눈물을 닦느라 어느 한 손이라도 놓으면 사라져버릴까봐 눈물을 닦지 못했다. 뿌옇게 눈물이 시야를 가려도 그저 눈을 꾹 하고 감거나 깜박일 뿐이었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떼어내고, 나를 안아들었다. 안아들고 집으로 향하면서도 여전히 훌쩍이는 나를 달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목을 감싸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어도 떼어내지않았다. ㅡ 그의 움직임이 멈춰서 집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나는 그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이번에도 그는 나를 떼어내지않았다. 그에게 매달린 채로 나는 약속했다. 사실 혼자 얘기하고 혼자 다짐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매일 갈게요, 가서 기다릴게요, 손전등 안 가지고 갈게요, 낮에도 오면 안돼요?, 아니다 오기 전까지 무섭긴한데 괜찮아요 오고싶을 때 오세요, 다음엔 대답해주세요, 이것도 아니다 안해도 괜찮아요, 듣고있어요?, 이건 들어야 해요, 꼭 오세요, 내일 만나는거에요, 내일은 또 내일의 내일에 만나는 거에요, 그 내일의 내일은 또 그 내일의 내일의..뭐지? 어쨌든 계속 오는거에요 알았죠?. 그 사람은 대답 대신 무릎을 굽혀 내 발을 땅에 닿게 해줬다. 나는 팔을 풀고 서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아직 눈꺼풀에 매달린 눈물을 소매로 닦은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약속해요."하고. 방금 주절주절 다 얘기하긴 했지만 대답을 안했으니까 내게 가장 확실한 수단을 제안했던거다. 꼭 지켜야하는 맹세를 하고싶었다. 내밀어진 내 손을 바라보고만 선 그의 손을 잡아 약속도 하고, 도장도 찍고, 복사도 했다. 그때도 손을 빼진 않아도 역시나 나를 따라 손을 움직여주진 않은 그였지만 약속을 받아냈기에(내가 한거였지만)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약속한거에요!하고 외치며 그에게 손을 붕붕 흔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내 발걸음은 할머니 댁에 온 후, 아니 일곱살 인생 중 제일 경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