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봄날이었다. 인적이 드문 거리에 만개한 연한 분홍빛이 휘날렸다. 코 끝을 간질이는 향이 달콤했다. 너는 그곳의 아름드리 나무 밑 그늘 속에서 서있었고 나는 멀찍이서 그런 너를 바라보았다. 바람은 기분 좋게 너를 쓸어내렸다. 너는 아직 나를 눈치채지 못한듯, 웃고있었다. 이윽고 너에게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울리는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본 너는 네가 지금까지 내게 너와 함께 있으며 보았었던 그 어떤 표정보다 밝아보였다. 아니, 너는 핸드폰을 바라보기도 전 컬러링을 들을때부터 행복해하고 있었다. "응... 온다.. 어.. 당연... 사랑..." 신경쓰지 않으려해도 반사적으로 너의 통화내용에 귀가 기울여져 몇마디 너의 말을 엿들을수 있었다. 너는 몇마디 더한 후 통화를 끝내고는 익숙한 음으로 허밍을 했다. 갑자기 저릿해오는 느낌에 주저 앉을뻔 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소리를 내지 않으며 서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밝아 보이는 표정을 짓는것도, 핸드폰 컬러링 소리만으로도 행복해하는것도,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하는것도 모두 너에게 익숙해져 있는것 같았다. 작게 쓴웃음이 났다. 지금이라도 너의 앞에 달려나가고 싶었다. 그럴수 없었다. 내가 나타나면 너의 그 행복한 표정이 금이 나 깨져버릴것만 같아서. 그래도, 통화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이번 한번만. 딱 한번만 하자. 이렇게 한번만 하고, 그만 하자. 선을 그었다. 뒷걸음질 쳐 네가 희미하게 보일정도로만 물러섰다. 내 머리는 어느새 지워버린 너의 번호를 기억했고 내 손으로 지워버린 너의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초조한 신호음이 갔다. 곧 너의 컬러링 소리도 어렴풋이 들려왔다. 좀 전의 컬러링과는 다른 소리였다. 액정을 확인한 너의 표정이 깨져버린 도자기 같았다. 네가 내 전화번호를 보고 찡그리는 모습이 아릿했고 내 전화번호를 기억해주는것이 설레었다. 너는 조금 고민하는듯 하더니 마땅찮은듯 차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일이야." 너에게 할말은 많았는데 정작 시작을 무엇으로 해야할지 모르겠다. 무슨말로 시작을 해야 네가 기분나빠하지 않을까. 고민하고있는데 너는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할말 없으면 끊자." 나는 너와의 통화가 혹시라도 끊길까 전전긍긍하며 아무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마디를 꺼냈다. "그러니까," 그때 저 멀리서 아른거리는 실루엣이 보였다. 너는 차가움을 가장했지만 여전히 행복함이 묻어나오는듯한 톤으로 내게 말했다. 그 행복함이 나를 향함이 아니었음에도 기뻤다. "응. 알았어, 나중에 통화하자." 그리고는 더이상 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참 넋을 잃고 있다가 통화료가 부과된다는 소리에 정신이 확 들었다. 고개를 들어 너를 보았다. 너는 누군가의 앞에서 아까의 찡그린표정은 거짓이었다는듯이 웃고있었다. 바람이 한번 더 불어와 너와 실루엣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더이상의 분홍빛은 없을거라는 듯이 꽃잎이 휘날렸다. 마치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같았다. 저 속에 내가 대신있었더라도 저렇게 아름다웠을까. 아니, 아니겠지. 너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몸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너의 행복한 모습을 보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억지로 걸어갔다. 나중은 없을것이다. 그리고 너에게 전화할 일도 아마 없겠지. 다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종료를 눌렀다. -벚꽃. END- bgm. Epitone project-봄날, 벚꽃 그리고 너 --------------- 묵혀놨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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