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뱀파이어 전정국 X 정국의 먹잇감 너탄
09
진득한 요괴의 피가 섞여있는지라 정국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피를 마시며 살아야했다. 아이의 앞에서 처절한 눈물을 흘린 날 뒤로 기생집에 뜸했던 정국이 서서히 피에 목말라가고 있었다. 인간을 보면 저도 모르게 붉게 변하는 눈과 몸속에서 타들어갈 것만 같은 피의 흐름이 정국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아이를 보아서라도 인간의 피를 마시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그것 역시 쉽지 않았다. 모든 본능이 피를 위해서만 태어나고 만들어졌는데 어찌 단번에 바뀐다는 말이냐. 정국이 쩍쩍 갈라진 입술에 침을 발랐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정신에 그는 기생집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오랜만에 오시네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급하다."
정국을 맞이한 건 기생집의 주인이 아닌, 정국이 잠시나마 아꼈던 그의 정체를 아는 기생이었다. 이전과 다른 목소리였던 것 같았으나 정국은 그것 따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평소라면 확실하게 구분했을 정국이었지만 혼미하여 가릴 것이라고는 없는 상태에서 똑같은 화장에 화려한 한복을 입은 두 여인을 누구라고 단정짓지 못하는 정국이다. 매일 갔던 방에서 초조하게 정국은 기다렸다. 정신을 놓지 않으려 손톱을 깨물기도 했다.
그때 문이 옆으로 열리며 한 여인이 소심하게 들어왔다. 정국이 벌떡 일어나 문을 쾅소리가 나게 닫고는 여인의 팔을 잡아당기고 곧바로 정국의 송곳니가 여인의 목 깊숙이 파고들었다. 예전보다 빠르고 넉넉하게 피를 들이키는 정국이다. 여인의 가파르게 뛰던 심장이 결국은 멎고야 말았다. 정국이 얼굴과 여인을 잡던 팔을 내려놓으니 스르륵하고 방바닥에 쓰러지는 혈색없는 여인을 뒤로 기생집을 빠져나왔다. 피를 마시니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입가를 소매로 쓸고 자신이 머무는 산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저 자를 잡아라!!!!!!!"
밤공기를 느끼며 걷던 중, 정국이 멀리서 외치는 소리에 뒤를 돌았다. 횃불을 들고 쫓아오던 자, 창을 든 자 등 한 무리가 정국을 보고는 냅다 달려왔다. 위협을 느낀 정국도 달리기 시작했다. 조용하기만 하던 마을이 시끌벅적해졌다. 집에서 잠을 자던 이들이 밖에 나와 상황을 지켜보며 쫓기는 정국을 구경했다. 그제야 정국은 기생집에서 저를 맞이하던 여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너였구나, 내 정체를 모조리 밝힌 것이. 속이 부글부글 끓는 정국이었지만 일단 자신을 따라오는 무리의 시선에서 자신을 없애야했다.
"산신령님이신데…"
"누구?"
"아니, 아니에요."
유별난 체력과 빠른 다리가 지금 기량을 발휘했다. 여유로운 바람이 정국에게는 칼처럼 다가왔다. 볼이 얼얼했다. 일각(15분) 가량을 뛰어서 그런지 정국도 서서히 숨이 차올랐다. 이미 정국을 쫓던 자들을 따돌려 그의 주변은 한산했다. 무릎을 잡고 턱끝까지 찬 숨을 뱉어내던 정국이 마른 침을 삼켰다.
"이제 이곳도 못 있겠군."
언뜻 보이는 산 안의 제 처소가 불에 갇힌 듯했다. 그간 쌓였던 윤기와의 추억, 산신령이라 칭해주며 자신들의 순수함을 뽐내던 마을 아이들의 발자국, 무엇보다도 아이와 처음 만나고 사랑을 말하며, 울고 웃었던 빛나는 순간들이 순식간에 불에 타올랐다. 정국의 텅빈 눈동자는 정국의 씁쓸한 마음을 알려주었다. 정국이 잠시 멍해졌다. 아- 정말 끝인 것이구나. 가슴 한 쪽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파왔다. 가장 정들었던 여기가 끝이구나. 이별은 몇 번을 하여도 쉽사리 적응되지 않는 만남이었다.
산과는 더 멀어졌지만 아이가 머무는 집과는 더욱 가까워졌다. 주변을 살피며 살며시 아이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조용하여 다행이었다. 아이가 잠에 들 수 있어 다행이었다. 삐거덕, 문을 열었다. 석진에게 한 이불은 안 된다며 한 방 안에 두 이불을 깔아놓는 아이 덕분에 정국의 걱정이 덜했다. 자는 모습도 어여쁘다, 매번을 말하지만 넌 어여쁘다. 제 볼에 닿는 차가운 손에 아이가 느즈막히 눈을 떴다. 잠을 자서 그런지 푹 잠긴 목소리였지만 정국에게는 청량한 새소리로 들렸다.
"산신령님, 늦은 밤에 어인 일이세요?"
"이제 이곳에 오지 못할 것 같다."
"예, 예?!"
소리를 크게 지르는 아이에 정국이 급하게 손으로 아이의 입을 막았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짜고짜 찾아온 것은 좋았으나 들려오는 말은 아이를 풀죽게 만들었다.
"조용히, 남편이 깬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왜 여길 오지 못하는지 설명부터 해주세요."
"…마을에 알려졌다,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게."
"그게, 그게 왜…"
"내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미안하구나."
애써 정국은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슬픈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좋은 것만 보여줘야지. 황당하던 아이의 얼굴은 차차 슬픔에 젖었다.
"산신령님이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갈 겁니다."
"…안 된다, 위험한 길이니."
"산신령님 없는 길이 더 위태롭습니다. 지금 따라갈게요."
"널 위험한 곳에 내놓는 건 내가 싫다. …잊으면 그만인 것이다."
정국의 말에 아이가 울먹였다. 잊으면 그만인 건 결코 정국도, 아이도 아니었다. 매몰차게 몰아내려는 정국의 마음없는 말 뿐이었다. 정국의 얼굴도 점차 굳어져갔다. 불편하게 앉아있는 아이를 정국이 세심한 손길로 눕혔다. 눕자마자 눈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머리카락에 젖어들었다.
"잊지 못합니다."
"……"
"산신령님도 그런 거 아니십니까?"
"……"
"대답 좀 해보세요. 나는 절대 여기 혼자 못 있으니까."
눈물에 베개가 젖어들어갔다. 순간 정국의 입술이 아이의 왼쪽 눈, 오른쪽 눈에 닿았다. 그리고는 어둔 방에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서로의 눈을 마주보다가 이내 정국이 아이의 도톰한 입술에 저의 입을 갖다댄다. 물컹하게 들어오는 혀에 아이가 눈을 번쩍 떴다. 얼굴에 맞닿는 정국의 감촉, 떨리면서도 신비스러운 정국과의 입맞춤은 아이를 얼떨결하게 만들어 눈물을 멈추게 했다. 오랫동안 서로의 혀가 엉키다가, 정국이 입술을 떼고는 짧은 입맞춤으로 끝냈다.
"그럼 다음에, 다음에 다시 찾아올 터이니 오늘은 이만 자거라. 눈이 부을 것이야."
다음에 다시 올 때까지 생각을 정리하라는 뜻으로 말을 내뱉었다. 아이와 이별하고 싶지 않은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지만 자신을 쫓는 이들을 피해 다른 거처로 옮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들켜서 목을 베일 수도 있고, 사지가 찢겨나갈 수도 있었다. 만약 들킨다면 죽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며, 힘든 일에는 소중한 아이를 껴들이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지 않는 아이를 보고 정국이 큰 손으로 아이의 눈을 덮었다.
"정말 다시 올 거죠?"
"정말이다."
"빨리 올 거죠?"
"그래. 빨리 올 것이다."
그럼 이제 가보세요, 눈 안 뜰게요. 아이의 마지막 말에 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아이의 눈에서 손을 떼지 못하다가 석진이 뒤척일 때 정국은 어두운 방을 나갔다. 입맞춤의 후유증은 둘에게 떠날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빨리 오겠다는 정국의 말을 기억하며 아이는 주변과 떠날 준비를 했다. 첫째로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벗으로 지내와준 태형과의 이별이었다. 서로의 벗이기도, 부모이기도, 철없는 동생이기도 했던 태형을 보지 못한다니 이제야 친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녀석과 저가 좋아하던 떡을 사 그의 집에 갔다. 아직 혼인을 올리지 않아 제 본가의 옆집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태형이었다.
"어, 김탄소? 웬일이냐?"
"웬일이라니? 섭섭하다, 야. 매일 봤으면서."
"하긴. 그렇지? 그 남자는 잘 해주냐?"
"어. 잘 해줘. 너네 부모님은?"
"방에. 이제 뭐… 우리 아부지, 어머니 차례인 것 같다. 이제 나도 혼인 좀 하려고."
아이를 그렇게나 예뻐해주던 태형의 부모님도 태형과 떠날 듯했다. 씩씩하게 웃는 태형에 아이도 함께 웃었다. 아이의 웃음 안에는 아픔이 깃들어져 있었다. 거의 가족과 같았던 세 명이 떠나버릴 것이다. 태형의 곁에서 더 머물어 부모가 떠나면 그를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듬어주고 싶었다. 힘들었던 나를 감싸준 친구 태형처럼 자신도 그에게 의미있는 친구가 되었으면 했다. 허나 정국과 가려면 둘중에 하나는 포기해야함에 아이는 절망했다.
"이거 떡 먹어라. 오다가 주워왔어."
"…주웠다고?! 이걸?"
"바보야! 농담이지! 그렇게 살면 너 확 간다?"
"사돈남말하네. 결혼 먼저 했다고 철든 척이냐?"
이제야 둘은 평소처럼 짓궂은 농담을 하는 장난스런 벗으로 보였다. 더 있다가는 정말 떠나기 싫을 것 같아 황급히 마무리를 지었다.
"잘 지내고, 부모님… 못 도와줘서 미안."
"뭘. 난 다 혼자 할 수 있거든?"
"진짜? 혼자?"
"…아, 아니 혼자는 아니고."
"혼자 할 수 있어. 너 최고. 나 그럼 간다, 쉬어라! 정호석한테 안부 전해주고!"
"어. 남편이랑 싸우면 와라."
쉽게 등을 돌릴 수 없었다. 흔드는 손을 내려놓지 못하고 태형이 질려서 들어갈 때까지 뒷걸음질만 쳤다. 진짜, 진짜 잘 지내야해. 좋은 친구도 만나고 좋은 여자도 만나고. 태형의 행운을 빌며 아이는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둘째로는 저의 남편 노릇을 해주던 석진이었다. 살아계신 어머니께 배웠던 음식도 저가 하면 맛이 없어져 항상 목을 긁적이며 상을 내왔다. 언제나 맛있게 먹어주는 석진이 고마웠다. 가기 전 따뜻한 밥이라도 맛있게 먹여주고 싶어 장작불을 떼가며 아이는 밥을 지었다. 매캐한 연기에 코끝이 찡해졌어도 눈을 질끈 감고 여느 때보다 열심히 만들었다.
"오, 이제 밥은 잘 하네요?"
"…당연하지요. 며칠을 밥만 했는데."
"다행이에요. 평생 못 먹는줄 알았네."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했던 처음과는 다르게 이젠 석진과 농담을 할 수 있었다. 친한 오빠같은 석진이 약간은 편해진 듯했다. 수저만 오고가는 방에서 아이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건넛집 남준의 막내인 미아가 당신을 연모한다고 해요."
"부인이 왜 그걸 알려줘요."
"저처럼 못난 아내는 잊으시라구요."
"…하여튼 사람 당황하게 하는 건 참 잘합니다."
그 뒤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석진에게 한 그릇을 더 갖다주었다. 맛있게 먹으니 저도 보기 좋네요. 석진이 또 다 먹자 밥을 더 주려는 아이의 손을 석진이 막았다.
"배불러요. 갑자기 왜 이렇게 퍼다줍니까."
"따뜻한 밥 먹여주고 싶어서요."
"…그 자입니까?"
"예?"
"합방날, 밖에서 기다리던 자요. 둘이 안는 걸 보았는데."
"……"
"전 괜찮습니다. 부인이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건 진즉에 알아챘죠."
아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석진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도 컸다. 누가 보아도 죄책감에 빠진 아이를 보며 석진이 유하게 웃었다. 언제나 아이를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아도, 밥을 하는 게 서툴러도, 한 이불을 덮지 못하는 것도. 처음부터 아이를 여인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꽤 나는 나이차에 앙증맞은 어린 동생으로만 보이는 아이를 감히 만지지도 못했으며 만질 생각도 없었다. 합방날에는 예의상 치뤄야할 관문의 문턱을 넘어보려고 한 것이고.
"안 미안해해도 돼요."
"어찌 그럽니까."
"어차피 서로 부부라고는 안 봤잖아요. 나는 괜찮습니다."
빼꼼 고개를 든 아이가 석진을 보는데, 마침 밖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아이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정국일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앞에 있는 석진을 두고 바로 나갈 만큼 정없는 사람은 아닌 아이였다.
"온 것 같은데, 안 나가봐요? 그 자가 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상은 내가 치울게요. 아, 이제 부인 말고 친한 오라비와 동생 지간은 어때요?"
"당연히 좋지요. 말씀도 편하게 하세요."
"응, 탄소야. 저 자랑 잘 지내."
"네. 미아랑 꼭, 꼭 만나보세요! 잘 지내시고요!"
둘은 한결 가볍게 이별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친절한 석진이 그리울 수 있겠구나. 꾸벅 인사를 하고 아이가 급하게 신을 신고 나갔다. 역시나 집 앞을 서성이던 것은 정국이 맞았다. 그에게 가 양손을 꼭 붙잡았다.
"정녕 나와 함께 갈 것이냐."
"예, 갈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냐."
"당연하죠. 어딜 가든요."
"…가자."
둘의 손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땀이 나도록 맞잡은 손을 함께하고 아이와 정국은 계속 달렸다. 끝없는 허허벌판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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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이제 받지 않씀미다 흐ㅏ헤레ㅐ펟 (제가 뭐라고) 되게 많아서 세보지를 못했어요 슙슙...ㅠㅅㅠ
오늘 드디어!!!!!! 첫!!!!!!!! 키쓰!!!!!!!! 지만 조곰 우울한 분위기지요 죄송해여 요즘 우울해서 우울한 분위기 쓰는 척.....
10일만에 왔어요 죄송합니다 궁뎅이 자진해서 맞겠습니다 져,, 공부하는 닝겐,,~(찡긋) 이지만 공부 하나도 안 해쏘요
석진이.. 넘 착하죠? 울희 독자님덜의 워더가 많더라구여 우리 모두 다같이 맴매파티~~~~
새벽이라 아무말 대잔치 (환장
아 석진이 짝사랑하는 미아 = 아미 ㅎㅎ...... 네 저 센스 하나뚜 없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해요 읽어주셔서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아 지난화 초록글도 감사해요! 너무 늦게 와서 면목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