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커플
09
기회는 예상치도 못 한 순간에 예고도 없이 찾아오고,
"영화 할래?"
"엥? 영화? 저요?"
"어."
"갑자기 무슨 영화요?"
"지금 찍고 있는 거. 작은 역할이긴 한데 감독님이 너랑 어울릴 거 같다고 네 얘길 꺼내시길래."
"헐…."
"씬은 많이 없고, 거의 조연 수준으로 짧은 거니까 아마 힘들지는 않…."
나는 욕심이 많다.
"네!!!!"
"아. 놀래라."
"할래요. 저 할래요. 나, 나!"
민윤기 씨의 영화에 적은 분량으로 출연을 하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은 민윤기 씨였고, 여자 주인공은 아주 예쁘고 또 예쁜 라이징 스타 김하연 씨가, 서브 여자주인공 역할에는 전에 민윤기 씨와 호흡을 맞췄던 채유진 씨, 그리고 나는 여자 주인공의 착한 여동생 역할. 뭐, 짧게 말하자면 비중 없는, 민윤기 씨와는 거의 만날 일 없는 멀고도 먼 사이였다. 내 캐스팅이 확정이 되자마자 민윤기 씨와 나의 동반 출연에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제대로 촬영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된 영화였다.
계획에 없던 영화 출연을 흔쾌히 허락해주신 사장님 덕분에 내 컴백 준비는 뒤로 미뤄졌고, 나는 연습실에서 춤연습을 하는 대신 연기 연습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 연기를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과 함께였고, 가끔 시간이 날 때면 민윤기 씨가 연기를 지도해주기도 했다. 물론 아주 잠깐. 비중 없는 내 역할과는 달리 비중이 어마어마한 그는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영화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촬영장으로 향하던 날. 차를 오래 탔더니 밀려오는 멀미에 눈을 꼭 감고 있는데, 손에서 울리는 짧은 진동에 슬그머니 눈을 떴다. 휴대폰을 확인하자 민윤기 씨에게서 메세지가 도착해 있었다.
「어디」
배시시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하고 피실 피실 웃으며 답장을 눌렀다.
「가고 있어요,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그래」
그래, 하는 무심한 그의 말에 뭐라고 답을 쓰나 고민하던 중 촬영장을 향하던 차가 부드럽게 멈춰섰다. "다 왔어." 하는 매니저 오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차 문을 열자 큰 호텔이 보였다.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살짝 쓸어 넘기는데, 저 멀리 카메라 사이로 민윤기 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에 민윤기 씨를 찾은 스스로를 대견스러워 하며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고개를 돌리다 우연히 나를 발견한 민윤기 씨가 손을 가볍게 들어 아는 척을 해왔다. 눈이 마주치는 스태프 분들께 차례대로 몸을 푹 숙여 인사를 하자 민윤기 씨가 내게로 몇 걸음 걸어왔다.
"빨리 왔네."
"일찍 출발했어요. "
"표정은 왜 그래."
"저요?"
"어."
"제 표정이 어떤데요?"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민윤기 씨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곤 말했다.
"피곤해 보여서."
"아, 멀미가 좀 심해서요. 저는 괜찮아요. 민윤기 씨는 오늘 좀 잤어요?"
내 물음에 민윤기 씨는 누가 봐도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두어번 저었다. 그런 민윤기 씨의 모습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쉬는 시간에 눈이나 좀 붙이지. 안타까운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는 내 눈빛을 느낀 그가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가볍게 튕겼다.
"뭘 봐."
"못생긴 민윤기 씨요."
"어쭈."
"눈이 완전 빨개요."
"괜찮아. 뒤에 감독님 오신다."
뒤를 향해 고개를 까닥이는 그의 행동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감독님이 오시는 것이 보였다. "인사 드리고 올게요!" 하며 발을 떼는 내 말에 민윤기 씨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찍을 첫번째 장면에는 민윤기 씨와 채유진 씨, 그리고 나. 세명이 등장했다. 호텔 파티였고, 나는 극중 언니의 부탁으로 민윤기 씨에게 편지 같은 걸 전해주기 위하여 민윤기 씨를 만나러 호텔에 가 그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파티장 뒤쪽에 민윤기 씨가 있다는 얘길 듣고 그쪽을 향해 걸어가는데, 채유진 씨와 민윤기 씨의 목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유리문 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와인잔을 들고 있던 채유진 씨는 민윤기 씨에게 잔을 내밀었다. 민윤기 씨는 피실 웃으며 채유진 씨를 바라보았고, 채유진 씨는 오묘한 매력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받아요."
"……."
"그 영화 봤어요?"
"무슨 영화."
"이거 다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라고 말하는 영화, 그거요."
"……."
"나 지금 이거 마시고 그쪽한테 키스할 거에요. 안 피하면,"
"……."
"우리 사귀는 거에요."
천천히 말을 마친 채유진 씨는 입에 와인을 한 모금 머금은 채로 천천히 민윤기 씨에게 다가갔고, 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들의 장면을 몰래 훔쳐보다가 이내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뒷걸음질을 치던 중 옆에 놓인 캔을 건드려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순간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자 우연히 여기로 시선을 돌린 채유진 씨와 눈이 딱 마주쳤다.
원래 대본은 나와 눈이 마주친 채유진 씨가 아무렇지 않게 눈을 감으며 다시 키스에 열중하는 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채유진 씨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곤 눈이 아주 살짝 가늘어졌다. 마치 눈으로 웃고 있는 듯 했다. 왜… 웃지? 날 보고?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채유진 씨의 웃음이 묘하게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이려나. 아주 아주 짧은 순간 눈으로 웃은 그녀는 이내 눈을 감고 민윤기 씨와의 키스신에 집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감독님의 "오케이." 소리에 채유진 씨가 민윤기 씨에게서 천천히 떨어지며 말했다.
"이번 와인은 맛 좋네요. 그쵸, 윤기 씨."
채유진 씨의 물음에 민윤기 씨가 별다른 표정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달아."
그런 민윤기 씨의 말에 채유진 씨가 씩 웃으며 민윤기 씨의 입술에 제 손을 뻗었다. 입술 가장자리에 묻은 와인을 엄지로 살짝 닦아낸 그녀의 행동에 민윤기 씨가 한쪽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채유진 씨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묻었길래."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나는 왠지 모르게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데 제 손으로 입술을 한 번 더 닦은 민윤기 씨가 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 민윤기 씨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나도 모르게 민윤기 씨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친구가 이렇게 보고 있는데, 다른 여자랑 키스신을 마치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인 건 정말 너무하잖아! 물론 내가 진짜 여자친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래도 나는 여자친구 역할에 굉장히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어깨를 으쓱 하며 날 바라보는 민윤기 씨의 시선에 나는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그 다음 장면은 예상치 못한 키스신의 목격에 혼란스러워 하던 내가 민윤기 씨의 개인 사무실과 같은 곳에 편지를 두고 오는 장면이었다. 책상 위에 두고 사무실을 나오던 중에 사무실로 들어오던 민윤기 씨와 딱 마주치고, 그럼 민윤기 씨는 나에게 누구냐고 묻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얼른 자리를 피하고, 민윤기 씨는 그런 나의 팔을 붙잡아 나를 돌려 세우고. 누가 보낸 거냐고 그가 물으면, 나는 언니의 이름을 작게 말하고 사무실을 나가는 장면이었다.
별로 어렵지 않은 대사들과 함께 혼란스러운 감정만 표현해내면 되는 일이라 순조롭게 잘 촬영을 진행하고 있던 중, 민윤기 씨가 나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올려다 본 민윤기 씨의 표정은 정말로 낯선 표정이었다. 표정이 없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한 표정. 정색을 하고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에 순간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를 올려다본 채로 입을 꾹 다물었다. 촬영 중이라는 사실도 잊고서.
"누가 보낸 거지?"
나를 향해 대사를 내뱉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곤 그대로 굳어 있으니 감독님의 "컷." 소리가 들려오고, 그제서야 나는 내가 촬영 중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나를 잡고 있던 민윤기 씨의 손이 풀리고, 민윤기 씨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풀어진 표정으로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네… 네?"
"왜 멍 때리냐고."
"아, 갑자기, 대사를 까먹어서…."
우물쭈물하며 눈을 피하는 내 행동에 민윤기 씨가 내게 손을 뻗어 내 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가득한 곳, 그리고 공식적으론 공개 연인인 우리. 그는 이렇게 타인의 시선이 가득한 곳에선 한없이 다정한 남자친구 연기를 계속했다. 갑자기 닿은 그의 손에 내가 움찔하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또 긴장했네."
"아녜요…."
다시 갈게요, 라는 감독님의 말에 조금 전처럼 다시 각자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금 촬영이 순조롭게 이어지고 또 민윤기 씨가 내 손목을 잡는 장면에 다다랐다. 다시 한 번 내 손목을 잡은 민윤기 씨, 그런 민윤기 씨를 올려다보는 나, 불과 몇분 전과 또 다른 민윤기 씨의 싸늘한 모습, 또 굳어버린 나.
정말 별거 없는 장면이었지만 계속 굳어버리는 나 때문에 이 장면은 다섯 번을 넘게 반복하고 나서야 오케이 싸인을 받을 수 있었다. 화가 날 법도 한데 감독님께서는 그저 날 좋게 봐주시는 눈치였다. 그럴 수도 있지, 아직 신인인데, 하며 호탕하게 웃는 감독님의 모습에 감사함을 느끼며 촬영된 장면을 보기 위해 모니터로 걸음을 옮기는데, 모니터의 옆쪽에 앉아있던 채유진 씨가 몸을 일으켰다. 차가운 밤공기를 막기 위해 덮고 있던 담요를 대충 내려놓은 그녀는 파티에 어울리는 짧은 원피스 차림에 구두 차림이었다.
또각또각 내 옆을 걸어가던 채유진 씨가 내 옆을 지나가던 순간, 꽤나 날카로운 목소리의 혼잣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남자친구 빽만 믿고 연기 연습은 안 하나봐."
갑작스러운 채유진 씨의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내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내 시선을 느낀 건지 피식 웃으며 내 옆을 지나쳐 갔다. 방금 그거, 나보고 한 말이지…? 남자친구 빽이라는 말에 한 번 울컥, 그리고 연습을 안 한다는 말에 두 번 울컥. 내가 최근에 연기 연습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울컥 해서 한 마디 쏘아대고 싶었지만 나는 바보처럼, 조금 전 민윤기 씨와 촬영을 하던 그 때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섣불리 큰 소리를 내봤자 여기는 내 편이 아무도 없었고, 여기서 나는 가장 힘없는 존재임이 분명했다.
아, 내 편…. 아무도 없는 건 아니려나. 혹시나 싶어서 고개를 들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있는 민윤기 씨를 힐끔 바라보았다. 민윤기 씨는 내 편이려나. 혹시나 민윤기 씨가 조금 전 채유진 씨의 말을 들었을까 싶어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그는 아무래도 못들은 듯했다. 그는 그저 머리 손질을 받으며 제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씩 치워내는 중이었다.
기회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위기 또한 예고 없이 내게 찾아왔다.
초반에 나오는 장면은 모두 촬영을 마쳤고, 당분간은 영화 촬영이 없어서 보컬 연습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한창 연습에 열을 올리던 중,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에 휴대폰 화면을 확인한 나는 나도 모르게 엥? 하는 소리를 뱉었다.
"김태형?"
얘가 무슨 일로 전화를 했지.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귀에 가져다 대는데, 내가 뭐라고 입을 뗄 틈도 없이 건너편의 태형이가 빽 소리를 질러온다.
-누나!!!
"아, 깜짝이야. 왜. 갑자기 왜 그렇게 부르는데."
-누나 괜찮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하, 어떤 미친 새끼가 진짜.
"뭐야, 다짜고짜 전화해서 괜찮냐는 소리는 뭐고, 미친 새끼는 또 뭐야."
-아직 못 봤어?
"엥? 뭘?"
의아한 목소리로 되묻는 내게 태형이가 짧게 대답을 해온다.
-메세지로 보낼테니까 지금 당장 봐.
그리고 곧바로 도착한 메세지 두 개. 무슨 얘기길래 이렇게 난리인가 싶어 메세지를 쭉 읽어내려가던 내 표정이 천천히 굳기 시작했다. 태형이가 보낸 건 다름아닌 찌라시였다. 뜨고 싶었던 가수 A양은 배우 B군의 인기를 등에 업기 위하여 B군을 협박하여 쇼윈도 커플을 자처, 공개 연애 중이며, 뜨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A양은 최근 영화 감독에게 성상납을 하는 대신 역할 하나를 꿰찼다는 내용. 내용을 쭉 읽어 내리던 내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흔한 내용이었지만, 가수 A양과 배우 B군, 공개 연애, 영화, 그 모든 것들은 나를 묘사하고 있는 듯했다.
그 다음 메세지 또한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대기업 간부들에 금전적인 목적을 위해 돈을 받고 성매매를 하는 여가수 A와 B. 설마 여기서 말하는 여가수 A 혹은 B가… 나라는 거야?
-누나? 다 읽었어?
아직 끊기지 않은 전화기 너머로 태형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천천히 휴대폰을 다시 귀에다 가져다 대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뭐야?"
-지금 누나 찌라시로 돌고 있는 것들이야. 씨이발, 학교에서 어떤 미친 놈들이 읽으면서 키득대고 있길래 봤더니 무슨 그딴 말도 안 되는….
"하…."
-진짜 아닌 거 알아. 누나가 무슨 성상납, 성매매야. 미친.
그러게. 너무나 황당한 상황에 아무런 말도 못하는 내게 태형이가 다시 한 번 말을 건네왔다.
-누나네 소속사에서 잘 해결해 주겠지만 그래도 누나도 알고 있어야 할 거 같아서.
"그래… 고마워. 이거, 많이 퍼졌어?"
-어. 생각보다 많이 퍼진 거 같더라.
"…그렇구나."
멘붕에 빠진 내게 태형이는 꽤나 다급한 목소리로 종 쳤어, 수업 듣고 다시 전화할게, 라며 전화를 끊었다. 끊겨버린 전화를 귀에서 뗄 생각도 없이 멍하니 있던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스르륵 휴대폰을 잡고 있던 팔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그 찌라시는 뭐고, 아니, 대체 애초에 성상납과 성매매는 대체 어디서…. 기가 차서 멍하니 벽만 바라보던 그 때 누군가 연습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칵 소리와 함께 익숙한 매니저 오빠의 얼굴이 보이고, 나는 오빠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너… 봤어?"
내 눈물을 확인하곤 당황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오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내가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로 말했다.
"저… 어떡해요, 오빠?"
찌라시라는 건 참 무섭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이야기가 거론이 된다면 아니라고 반박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찌라시라는 건 아는듯 모르는듯 다들 조용히 쉬쉬하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이야기였다. 따라서 나는 아닌 이야기를 아니라고 해명을 하기도 어려웠고, 더불어 다른 사람들도 그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할 뿐 나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성매매 이야기의 최초 유포자를 찾아 책임을 묻겠다는 소속사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내 스케줄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하루에도 몇개씩 들어오던 행사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민윤기 씨와의 영화 동반 출연에 힘입어 처음으로 따내었던 광고 촬영 또한 무산되었다. 순수한 이미지를 원하는 광고였는데, 좋지 않은 소문이 광고 캔슬의 이유라면 이유였다.
행사나 음악방송을 간다고 해도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 찌라시의 파급력이 얼마나 컸던 건지 사람들은 나를 보며 수근거리기 바빴고, 스케줄이 줄어든 것과 더불어서 그런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나는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갔다.
이러다 정말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내 이야기라고 떠돌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헛구역질이 났다. 휴대폰은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로 꺼둔지 오래였다. 쇼파에 가만히 누워 아무 것도 없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매일을 그냥 이렇게 보내고 싶었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곳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이렇게.
그러던 중 오랜만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초인종 소리인줄 알았는데 초인종 소리가 아니라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였다. 여섯개의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끝나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매니저 오빠인가 싶어서 "왜 왔어요…." 하고 힘 없는 소리를 뱉는데, 들려오는 목소리는 매니저 오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휴대폰 좀 켜."
"어, 어?"
생각치도 못한 민윤기 씨의 목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켜 문쪽을 바라보자 민윤기 씨가 한쪽 손에 종이가방을 든 채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놀란 내가 그를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으니 그가 내 앞으로 다가와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딱, 소리가 나게 쳤다.
"민윤기 씨…?"
"뭐야."
"……."
"오랜만에 봐서 얼굴도 까먹었어?"
"아뇨, 그게 아니라…."
그러고 보면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긴 했다. 찌라시가 터진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휴대폰이 꺼져 있으니 연락을 할 방법도 없었고. 놀란 내 표정은 신경쓰지 않는 듯 그가 내가 앉은 쇼파 옆에 걸터앉았다.
"아, 그, 비밀번호 어떻게 알았어요?"
"매니저한테 물어봤어."
"아…."
"너 집에 틀어박혀서 안 나온다길래."
무심하게 말을 마친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그의 시선을 받고 있으니 그가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야."
"……네?"
"밥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니 그가 한숨을 짧게 내쉬곤 가지고 온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종이가방 안에는 죽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 두 개가 자리잡고 있었다.
"여태 밥도 안 먹고 뭐 했어."
"그냥…."
우물쭈물, 뭐라고 말을 못하고 죽이 담긴 그릇만 품에 꼭 안고 있으니 민윤기 씨가 별다른 질문 없이 내게서 플라스틱 통을 가져갔다. 뚜껑을 열어 내 앞의 테이블에 올려둔 그는 내 오른손에 숟가락을 꼭 쥐어주며 말했다.
"먹어."
"……."
"일단 먹어. 먹이려고 사온 거니까."
그런 그의 말에 그를 한 번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숙여 죽을 바라보았다가. 잠깐 망설이던 나는 천천히 죽을 한 숟갈 떠서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오랜만에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입맛이 없어서 한 입 겨우 삼키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그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아요?"
"뭐가."
"…민윤기 씨는,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을게 뭐 있어."
"그치만…."
다시 한 입 꾸역꾸역 입에 넣고 삼킨 내가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말했다.
"민윤기 씨가 싫어하는 그 소문도 제 꺼랑 같이 돌고 있잖아요…."
"뭐. 아, 공개 연애 중인 배우 B군이 실제로 게이라는 거?"
"……."
"한두 번 듣냐, 그 소리."
무심한 그의 말에 죽을 뜨다 말고 멈칫하는 나를 발견한 건지, 그가 내 손 위로 그의 손을 덮어 죽을 한 숟가락 뜨며 말했다.
"아닌 거 알아."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민윤기 씨를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민윤기 씨는 다정하게 씩 웃으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우리 메리, 아직 첫키스도 제대로 못 해봤는데."
"아, 진짜아……."
"성매매 뭐 그딴 건 무슨 엿 같은 소린지."
"……."
"그치?"
다정한 그의 목소리, 그리고 날 믿어주는 그 말.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고인 눈물은 금세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우는 나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은 민윤기 씨는 손을 뻗어 다정하게 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네가 이렇게 방 안에만 박혀 있어."
"……."
"넌 잘못한 게 없는데."
넌 잘못한 것이 없다. 다정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민윤기 씨의 그 말이 기폭제라도 된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찌라시가 터진 이후로 제대로 울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꾹꾹 누르고 참기만 했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다 내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러던 중에 들려온 민윤기 씨의 위로가 너무나도 다정하고 또 다정해서.
안녕하세요! 커플링이애오
8화로 온 저를 좋아해주셔서 폭풍 감동.. 또 다른 정주행 독자님들이 생겨서 또 감동.. ♥
암호닉은 다시 받기 시작하려고 해요! 예전 암호닉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아서..
암호닉 언급 해주신 분들은 다 새로운 마음으로 루팡해 왔어요!
암호닉은 언제든 신청해주시면 됩니당! 혹시나 제가 추가 못했다면 둥글게 말해주셔요!
오늘은 메리의 수난 퍼레이드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 그래도 길다!! 그쵸!!
달래주는 윤기야 사랑해... 다음 편에도 윤기가 달래줄 거니까 미리 다음편의 달래주는 윤기도 기대해주시구... ㅎㅎㅎㅎㅎ
아 혹시나 잊으셨을까봐!
태형이는 메리의 친동생(남동생), 채유진 씨는 예전에 윤기와 달의 후예에 함께 출연한 여자 주인공이었어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오 윤기의 애기들!
<윤기의 애기들>
개나리 룬 땅위 왼쪽 컨버스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흑설탕융기 류아 도리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