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카페에서 일하던 경수는 며칠전부터 계속 똑같은 자리에 남자 손님 한분이 일정한 시각으로 가게에 들르는 걸 눈치챘다.
잘생긴 외모에 선이 굵직굵직한 남자상인 그 손님은 주문할 때 경수 말고 한명 더 일하는 여자 알바생이 있는데도 계속 경수 줄에 서서 주문을 받는다.
경수는 어느새 매일 오후 2시 그 손님이 자기 줄에 서 있는지 확인하고, 서 있으면 기분이 괜시리 좋아지곤 한다.
그 손님이 자기에게 주문을 할 때마다 들려오는 저음의 남자다운 목소리, 잠깐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모두모두가 경수의 심장에 작은 떨림이 느껴지게 만들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2시가 되어도 그 손님이 오질 않았다.
갑자기 사고라도 난 걸까, 아님 이 가게의 커피 맛이 질려서일까, 아님 약속이 있는걸까..아 뭐야,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
"저기요, 아메리카노 한잔이랑 그린티라떼 한잔 주문이라구요"
"아 예, 죄송합니다 손님. 곧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 남자를 생각하다가 주문한 내용을 듣지 못했다. 바보같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그 손님이 오던말던 나랑 무슨 상관..?
"예 여기 주문하신 아메리카노와 그린티라떼 한잔 나왔습니다."
그러나 평소 알바할 때 보다 경수는 손님들한테 짓던 상냥한 미소가 잘 나오질 않았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거지..? 딱히 기분 나쁜 것도 없는데..
딸랑딸랑-
가게 문 위쪽에 달려있는 종소리가 격하게 울리는 순간이다.
분명 그 가게문을 여는 손님이 급하게 문을 열다 두 개의 종이 서로 급하게 맞닿는 바람에 세게 나는 종소리인게 분명하다.
누가 저렇게 급하게 들어오길래 종소리가 요란해, 맘에 안드네 하여튼. 마음속으로 경수는 괜히 그 종소리를 탓했다.
괜시리 심술통이 난 경수는 다음 손님의 주문을 받을 때 아예 손님 얼굴을 쳐다볼 생각도 안하고 고개를 아래로 떨구며
"주문 도와 드리겠습니다." 라고 퉁명스럽게 손님을 대했다.
헉...헉...헉...허....ㅎ.....
급하게 뛰어온 승현은 그런 경수의 딱딱한 태도에 당황했고,
그런 퉁명스런 표정을 본 그는 경수의 갑작스런 불친절한 태도에 미간이 찌뿌려졌다.
뭐야, 안 좋은 일 있었나? 왜 저렇게 입이 툭 나와있지? 풉, 입술도 도톰해가지고 붕어같기는.
입술을 쭉 내민 경수의 모습마저도 귀엽게 보이는 승현은 경수의 표정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뭐야 이 손님? 왜 이렇게 주문을 안하고 있어 나 바쁜데.
계속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는 경수는 주문을 안하고 있는 손님이 슬슬 짜증이 났다.
경수는 그 손님이 주문을 하기도 전에 바쁜 티를 내며 커피 기계라도 만지는 시늉을 해야겠다 싶어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렇게 매몰차게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바람에 승현은 당황하기 그지없었다.
어..어..?
자신의 얼굴도 안 보고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 경수에게 약간의 상처를 입은 승현은 울상이 되어버렸다.
늘 자신에게 다른 손님들보다도 상냥하게 대했던 그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저러는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뭔가 약간 서러운 감정이 들었다.
경수의 환하고 어린아이같은 순수한 미소를 보고싶어서 뛰쳐왔는데, 자신의 그런 노력을 몰라봐주고 냉정하기만 한 오늘 경수의 태도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어쨋든 주문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경수에게 얼른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싶어 급히 메뉴판을 쭉 스캔하고는 왠지 달달한게 땡기는 오늘이기에 바닐라 라떼를 주문했다.
" 여기 바닐라라떼 한잔이요 "
그 남자다.
이제는 목소리만 들어도 경수는 한번에 알아볼 수 있다. 그 손님, 아니 그 남자라는걸.
보통 남자 목소리 톤보다 훨씬 낮은 저음의 달달한 목소리. 누가 들어도 설레게 하는 이 목소리.
그늘이 낀 경수의 얼굴이 한순간에 환하게 밝아졌고 심장 박동 수가 조금씩 빨라져오고 있었다. 얼른 그의 얼굴을 보고싶었다.
그러나 퉁명스럽게 그를 대하고 있던 터라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바람에 갑자기 반갑게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 어쩌지. 무슨 말로 다시 앞으로 돌아보지..? 아! 그래!
"네, 주문 받았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봤다, 그 남자 얼굴.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건 경수의 본능이었다. 멈춰지질 않았다. 멈출 수가 없었다.
뛰어오느라 약간 식은 땀이 나서 가파른 그의 숨소리,
남자다운 얼굴 선, 적당히 입술선이 선명한 그의 입술, 오똑한 콧대, 길고 매섭게 생긴 눈이지만 자신에겐 부드러워 보이는 그의 따뜻한 눈 하나하나가
경수에겐 설레고 또 설렐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경수의 함박웃을 보자마자 저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건 승현도 마찬가지이다.
풉, 그럴 줄 알았어.... 괜히 걱정했잖아?
자신에게 해맑게 웃는 경수를 보자마자 위안을 얻은 승현은 다시 편하게 마음을 고쳐먹고 경수를 지긋이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한참동안 현혹된 경수는 아차, 맞다 주문한 바닐라라떼! 라고 속으로 자신을 다그치며 커피기계로 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쪽-
지금 이 순간은 어떤 달달한 커피보다도 더 달달하고 달콤한 순간이었다.
짧은 입맞춤에 경수는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갑작스런 순간이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승현을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승현은 그런 경수의 동그란 눈마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를 다시 한번 지긋이 바라보고는 다시 한번 경수의 입술에 다가가며 눈은 경수의 눈과 초점을 맞추고 나지막히 속삭였다.
" 지금 나랑 뽀뽀한것보다 더 달.달.한 바닐라 라떼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