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뿌존뿌존
돌아오지 못하는 피터를 기다리는 웬디에게.
안녕, 웬디. 많이 보고 싶었어, 너도 내가 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넌 훌쩍 커서 나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잊었을지도 모르겠네.
전보다 자주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해.
네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미루고 미루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걸.
네게 달콤한 말만 잔뜩 늘어놓고선 정작 널 달콤하게 만들어주지 못했어.
나도 이런 내가 참 바보같지만, 네버랜드의 일은 너무 바쁘단걸 네가 이해해주리라 믿어.
웬디, 네 세상은 정말 좋아보여.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네 웃음이 내겐 힘이 돼.
웬디, 이건 영원한 이별편지가 아니야, 내가 네 세계로 갈 수 있을때까지만 기다려줘.
내가 날 만족시키는 그런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만 기다려줘.
넌 내게 따뜻한 햇빛을 쐬어주고, 물도 가득 주었지만 난 아직 작은 나무일 뿐인걸.
내가 널 위한 열매를 맺기엔 내가 너무 작은가봐.
가끔씩 널 위한 조그마한 씨눈을 준비할게, 열매의 시작인 작은 씨눈을.
널 위한 작고 작은 씨눈을 오늘 하나 준비해보았어.
네게 잘 익은 열매를 선물해주지 못해 미안해.
#.1 승관
부여와 고구려의 상관관계
"여자 같다니!"
울먹거리며 제 머리에 꽂혀있던 핀을 하나둘씩 빼던 승관의 얼굴을 기억한다. 왜- 여자같다는게 나쁜 말이야? 부승관 여자같아! 약한 파마끼가 남아있는 승관의 머리칼을 살짝 매만지며 장난스럽게 승관을 노려보면 승관은 얼굴이 가득 빨개져선 씩씩거린다. 난 남자야! 승관이 제 머리에 붙은 핀을 바닥에 다 내던지곤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승관의 위론 누나가 둘, 내 위론 오빠가 둘이라 그런지 승관과 나는 또래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편이었다. 승관은 늘 누나들의 인형이 되었고, 난 늘 오빠들의 레슬링 심판이었다. 그래서 난 승관이랑 있는 시간이 왠지 모르게 편했는데, 아마 그건 오빠들과 다르게 승관에겐 애교, 라는게 존재했기 때문이었을까.
여튼 그 사건 이후, 난 승관을 부여라고 부르기시작했다. 그때 나이, 한국사를 배우기도 전인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단지 부승관여자, 라는 뜻을 가진 애칭이었다. 그렇지만 승관과 나의 친한 친구였던 전교 1등 한솔에겐 좋은 공부 거리였고, 한솔이 제 안경을 으쓱이며 그럼 너는 고구려냐며 비웃는 바람에 내 별명은 고구려가 되어버렸다. 한솔은 그저 잘난체 하고 싶었던거였겠지만, 고구려가 무엇인지 몰랐던 우리에게 그 별명은 내 성인 '고' 와 그때 당시 우리가 알던 가장 심한 욕인 "구리다"를 합친 말로 와전되어버렸다. 한솔은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라며 어버버거렸지만 어렸던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펑펑 울어버렸다. 내가 구리다니! 라고 소리치면서.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도 지금도 그 별명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었다. 서로를 부여와 고구려로 부르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우리는, 이러다가 이름 까먹겠다는 농담을 하곤 했는데, 사실 수능 준비하느라 예전보다 많이 만나지 못해서 그 별명은 이내 내 기억속에서 잊혀져 버렸다. '부승관' 과 '고세봉' 이라는 명찰이 우리의 가슴팍에 붙어있지 않을 나이가 되었을 즈음, 그러니까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즈음, 승관이 고구려 보고 싶다! 하며 카톡을 보내오는 바람에 아 내 별명 고구려였지, 하면서 이마를 통, 두드릴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날 고구려라 부를때면 화가 났었는데, 왜 네가 날 고구려라 부르는 것은 그리도 좋았는지 모르겠다. 너와 나만의 비밀같은 거였다고 생각했던걸까. 너도 내가 널 부여라고 부르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승관아, 라고 부르는 것보다 부여! 하고 부를때 넌 더 해사하게 미소지으며 뒤를 돌았었으니. 그때의 아무것도 모르던 너와 내가 그립다. 그땐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동창회 올거지 고구려?] 채팅이 떠있는 휴대전화의 홀드키를 짧게 누르고 주머니에 집어넣은 후 악셀을 더욱 힘주어 밟는다. 내 마음처럼 빛나는 초록 불이 깜빡거린다. 커다란 자동차를 타고 고구려의 만주벌판을 달려 부여에게로 향하고 있다. 너와의 추억이 떠올라 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