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한가운데 핀 모란 (부제: 꽃이피고 지듯이)
제 1화 : 모든 인연의시작 (1)
화국. 연화 39년.
국명이 따로 있었지만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화국. 이 이름은 별칭임이 틀림 없었지만 황제 본인도 이 나라의 백성도 모두 자신의 나라를 화국이라고 불렀다. 별칭과 걸맞게 꽃이 만연한 나라. 모든 백성이 꽃을 사랑하여 지체있는 양반이라면 자신의 여식의 이름을 꽃의 이름으로 지을 정도로 아낌의 정도가 남 달랐다. 모든 집에는꽃이 넘쳤고, 향기가 만연했다. 여자의 이름이 꽃이라서 그런지화국은 꽃뿐만 아니라 미인으로도 유명했다. 아름다운 것이 많은 나라.그 곳이 화국이었다.
꽃이 넘치는 것은 궁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궁에 넘치던 꽃에 피칠갑이 된적이 있었다. 바로 연화 37년. 지금으로부터 2년 전. 폭군이왕위에 올랐을 때이다. 황제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폭력적인 정치를 일삼던황제. 그의 공포 정치에 모든 이들은 머리를 조아려 바들거렸다.
권불십년. 아무리 높은 권세라도 10년은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워낙 흉악했던 그의 권세는 2년이지나자 바로 꺾였다. 그리 칼부림을 좋아하던 폭군은 자신의 사촌의 칼에 맞아 숨을 거두었고, 그 사촌은 폭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민윤기. 바로 현 황제다.
무예에만 뛰어날 뿐 문예에는 관심이 없었던 현 황제는 혈기 왕성할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올라서 그런 것인지 황실의일에 금방 실증을 내었다.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모르니 그대들이 알아서 결정하시오. 라고 하고는 나 몰라라 하기 바빴다. 궁에서 칼부림만 하지 않을뿐 정사를 돌보는 일에는 폭군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모든 이들이 전 황제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정책은 양반들을 위한 정책만이 만들어졌다. 황제는 모든 정사를뒤로 하고 매일을 술과 여자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가끔 타국과 벌이는 전쟁에서나 눈에 띄게 활약할뿐이었다.
그런 현 황제에게도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의 이름은 백일홍. 일홍의아비는 현 황제의 개국공신으로 현 실세나 다름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덧 백씨 집안을 제 2의 황가라고 부를 만큼 그 기세가 대단하였지만 현 왕은 술과 일홍. 그둘에 정신이 팔려 그 소문을 알아채지 못했다. 현 황제에게 여자라는 존재를 처음 알려준 백일홍을 그는당연히 황후 자리에 앉히고 싶어했으나 백일홍은 이미 혼인을 했었다. 하지만 일홍의 남편이 일찍 죽어그녀는 과부가 되었고 그런 그녀가 평생 혼자 일 것을 불쌍히 여긴 현 황제는 그녀를 첩의 자리에 앉혔다. 물론반발이 심했지만 전장에 서기만 하면 존재감을 발휘하여 강할 대로 강해진 왕권과 위세가 대단한 백가의 힘에 견줄 세력은 없었다.
폭군이 왕위에 오르자 그의 행패를 보고 기가 찬 자가 있었다. 그의이름은 유 현. 그는 5살 때부터 천자문을 다 뗄 정도로수제였던 자이다. 유씨 가문은 예로부터 왕을 섬겨온 충신가문이었으나 폭군의 기가 막힌 행패를 보고는감히 충언을 할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관직을 내려 놓은 후 수도를 내려왔다. 유 현에게는 딸이 있었는데그녀의 이름이 유모란 이었다. 꽃의 왕이라는 모란. 그녀는아직 피지 않은 한 떨기의 꽃이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아 미색이 옅으나 필시 자라나 성인이 되면 모란이라는그 이름에 걸 맡게 아름다운 미인이 될 여자였다.
“아버지, 모란이가 왔어요."
유 현의 눈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란의 버선코가 보인다. 버선코가마치 모란 같이 앙증맞다. 유 현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을 말 없이 들여다본다. 자연과 하나 되어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려 하였으나 내려오자마자 걸려버린 원인 모를 병에 그는 몸 져 누워있었다. 모란이 방에 들어오면서 들고 온 탕약을 마시며 그녀를 한 없이 들여다 본다.
“심부름 좀 하거라. 모란아."
“예?"
“심부름 말이다. 이 편지를김 훈. 그 자에게 전해주거라."
“예. 아버지."
“너도 이제 혼인을 할 나이가 되었지 않았느냐?"
그 말을 들은 모란의 얼굴이 살짝 붉은 듯 하다. 김 훈. 이 자는 유 현의 오랜 벗으로 유 현이 관직을 포기하고 내려와 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와 함께 동행한 인물이었다. 김 훈의 자제인 김태형은 그녀와 미래를약속한 사이다.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사이지만 남녀칠세부동석인지라 먼 발치에서만 지켜보던 김태형. 그와 결혼을 약속하고 정식으로 대화하게 된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어려서모란이 방 안에서 수를 놓는 법을 배우고 있을 때 마당을 누비고 다녔던 장난꾸러기에 개구쟁이였던 그는 어느덧 키가 훌쩍 자라고 어깨가 넓어져 그녀와나이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어엿한 성인 남자 태가 났다. 모란. 그녀는태형 옆에 있을 때 자신의 조그마한 가슴이 콩콩거리며 방아를 찧는 듯한 소리를 종종 듣고는 했다.
이는 태형도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 모란의 집을 들락날락하면서 수를놓으며 베시시 웃는 그녀를 보고 첫 눈에 반한 지도 몇 년째. 자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 모란이라는 것을듣자 양반 가의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눈을 빛내며 자신의 집 마당을 뛰어다녔다고 한다. 처음 그녀와마주보고 대화를 했을 때, 한창 여물어 져가는 여인네의 모습인 모란을 보고 가슴이 벅차 오르기도 했다. 이 사람이 자신의 아내가 될 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자신의 아버지를 붙잡으며 며칠을 이것이 진정 사실이냐고물어봤다고 한다.
똑똑똑
“누구십니까."
“유 현의 여식입니다. 김훈 대감님께 전할 편지가 있어 대감님을 뵙고자 합니다."
대문이 열리고 모란이 들어오자 그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뛰쳐나온 김태형의 모습이 보였다. 갓도 제대로 메지 않고 헐레벌떡 버선발로 신을 구겨 넣은 그의 행색은 웃긴 듯 하였으나 모란의 눈에는 전혀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를 보자 가슴이 콩콩 방아질을 하는데, 그것은태형도 마찬가지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들 사이가 간질간질하다.
“오셨습니까?"
“네.. 김 훈 대감님을뵈러 왔습니다."
김 훈 대감의 방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 서로 눈도 제대로못 마주치고 우물쭈물 저들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꼴에 김 훈 대감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쩜… 저리 부끄러워해서야 첫날밤이라도 제대로 치를 수 있을 런지...
“이 편지가 무슨 내용인지 아느냐?"
“예?"
“편지 말이다. 집안을빨리 합치자고 하는구나... 유 현 대감이 말이다."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이는 모란과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태형. 방 문을 열고 들어 온 김 훈 대감 부인은 대감 옆에 앉아 편지를 확인하더니 미소를 짓는다. 선남선녀가 아닐 수 없다. 제 자식이지만 정말 수려한 얼굴. 그런 그와 잘 어울리는 모란. 아직 어릿내가 나기는 하지만 귀한상인 것은 확실했다. 부끄러운 모란과 기뻐하는 태형을 바라보는 두 부부의 입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모란이 나가고 태형이 그녀를 바래다주러 따라나간다.
“저리도 좋을 까요."
“그러게 말이요. 눈만마주쳐도 저러니…"
“저 아기가 날이 갈수록 어여뻐지니 여인으로 피면 두고두고 곱다는소리를 들을 것 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미운데 없는 며느리 감 아니오."
“영리하고 사리분별이 밝으니 저 아이가 안사람이 되면 그 사내는 평생흥복이겠지요."
“우리 태형이의 처복이 실로 크군."
“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필시 영민할 것입니다."
모란은 대감 부인이 이것저것 챙겨준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녀를빠르게 뒤 따라온 태형. 말 없이 그녀가 든 보따리를 대신 든다. 옆에서어깨를 마주하고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미 부부나 다름없어 보였다. 큼큼 괜히 헛기침을 하는 태형과옆에서 조용히 얼굴을 붉히는 모란. 말 한마디 없이 걸을 뿐이지만 그들이 서로를 힐끔 힐끔 쳐다보는눈에는 애정이 가득하다.
그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며 가슴이 막 간질간질하던 그 참이었다. 시끄러운말발굽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저 멀리에서 몇 십 필의 명마가 거침없이 숲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냥을하려는 모양인지 활과 칼을 하나씩 차고 있는 사내들의 모습이 보였다. 길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을 아랑곳않고 달려오는 말들. 태형은 그 말들에 치일 뻔한 모란의 어깨를 재빠르게 감싸 안고 자신의 품 안에넣었다.
자신의 말에 치일 뻔한 사람을 뒤돌아 쳐다보는 사람.
그청년은 힐끗 뒤를 돌아보더니 불을 뿜으며 자신을 쳐다보는 태형을 향해 비죽거리는 웃음을 보였다.
그들은 알까 이 비극이라면 비극이고 희극이라면 희극인 만남이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저렇게 말을 거칠게 몰고 간 이가 바로 이 화국의 황제라는 것을. 말을타고 가던 황제도 자신의 운명이 될 사람들을 저런 식으로 만났다는 것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암호닉 환영!!*
*여자 주인공 이름 : 모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