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인 '자살가게'와
애니메이션 '파리의 자살가게'와는
결말이 같지 않음을 밝힙니다.
배경만을 모티브로 했으니
위 작품을 보신 분들도, 보실 분들도 맘놓고 읽어주세요ㅎㅎ
어서 오세요.
오늘따라 더욱 침울한 날이죠?
저희 자살가게에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자살하기 아주 좋은 날씨다. 어둡고 칙칙한 골목들 사이로 빛이 쏟아지기는커녕 외마디의 비명만이 가득했다. 시작은 내 뜻대로 이루진 못하여도 끝마저 제재 당한다니 아름다운 도시 파리와는 이질적인 법도였다. 이는 지친 이들에게 이루어 말하지 못할 씁쓸함이었다.
공공장소에서 자살을 할 시에 벌금형을 치르겠습니다. 글쎄, 정말 저 문구대로 공공장소에서 자살을 할 시에만 벌금형을 치렀다면 나는 이 나라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을 테다. 오직 자살한 사람을 찾으려 혈안이 된 경찰들에게는 사건 따위가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이에 높아지는 범죄율과 자살률은 한순간에 증거자료로 둔갑해버렸다. 소위 높은 자리들이 나날이 돈독에 올랐음을 증명하는 자료 말이다.
3시간 동안 걸었다. 고작 3시간을 걸어 다님과 동시에 16명의 자살을 목격했다. 나는 그들이 역겹지 않았다. 또한 안쓰럽지도 않았다. 그들은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토록 바랬던 끝을 보았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부러워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흔한 이유조차 없었기에 다시는 볼 수 없을 그들을 더욱 선망하였다.
아주 깊숙이 숨어든 골목 끝자락엔 주황빛의 가게 하나가 놓여있다. 무심하게 쓰인 간판을 보아하니 3시간의 발걸음이 옳은 듯했다. '자살가게' 간판에 쓰인 네 글자 그대로 자살을 기원하는 사람이라면 자살을 파는 가게다. 더 정확히는 빠른 자살을 돕는 물건들을 판다. 이 가게에서는 어떤 독약도 구입이 가능하다. 덕분에 자살카페나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꿈의 가게로 불릴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집 안 대대로 물려지는 이 가게는 주인이 얼마 전에 바뀌었다고 했다. 노부부가 하다가 그 아들이 물려받음에 틀림이 없었다. 삶이 두렵고 지긋지긋했다. 나는 드디어 정리할 기회를 가진다. 가족이며 친구며 그 무엇도 내게 주어진 적이 없었다. 배움이 짧고 감정 소모가 길었다. 그렇게 태어남과 죽음에 앞서 나를 아는 이는 없었다.
"어서 오세요."
.그는 자살가게를 운영한다고 믿기 어려울 사람이었다. 슬그머니 올리는 입꼬리에 깜빡하면 본 목적을 잃기가 쉬웠다. 그는 까만 터틀넥을 입고서 까만 표지의 책을 들여다봤다. 흑돌같이 까만 머리의 흑임자같이 까만 눈동자, 글자처럼 까만 구두와 어둠처럼 까만 벨트. 그의 바지만이 까만색이 아닌 머스터드 색이었다.
"오늘따라 더욱 악연을 끊어내기 좋은 날씨네요.
아 그러니깐 제 말은, 죽기 좋은 날씨라고요."
어떤 상품을 찾으시나요? 내 곁에 깊게 다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짙게 깔린 그림자에 고개를 들 엄두조차 못 내던 나에게서 그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주었다. 무언가 심기에 거슬렸다.
이 사람은 죽음을 파는 처지면서 곧 죽을 사람에게 왜 이렇게 친절한 것인가. 장사꾼들은 다 이런가, 이럴 줄 알았으면 마트에 들렀다가 와볼걸. 꼬여도 한참 꼬인 심기가 또 말썽이었다.
"어떤 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나요?"
그가 옮기는 발자국들을 따라 밟아 보았다. 그의 보폭이 큰 탓에 한없이 바보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높은 찬장에서 6개의 유리병을 꺼내주었다. 손을 번쩍 들어 꺼내는 그의 허리는 곧디곧았다. 분명 죽으러 왔던 곳인데 이상하게 숨이 가파진다. 당신이 나의 죽음을 예견한 것도 아닌데 입이 메마른다.
"고통 없이 죽기 위해서는 미세한 독을 과다 섭취하시거나
잠이 드시기 전에 독버섯을 드셔도 좋아요."
"아무래도 한 번의 시도로 끝내는 게 좋으실 테니
독버섯들 추천해드릴게요."
"아뇨.
미세하다는 독으로 주세요."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뒤틀렸음을 느꼈다. 애써 웃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덕지덕지 화딱지가 붙어 있었다. 선택의 이유를 물어오는 그에게 차마 살고 싶어졌다고 말하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살가게에서 삶을 구걸하는 처지로 바뀌었다는 건 양심에 가책이 느껴지는 말일 테니 말이다. 이유가 없다고 둘러댔다. 이건 그를 마주했음의 대한 고마움의 대가, 배려이다.
그렇게 독이 든 소량의 향수를 샀다. 정확히는 우리 집까지 배달을 맡겼다. 또 소량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다. 하필이면 125 유로를 맞추지 못해 123유로만을 지불해야 했었다. 자살가게에 찾아온 손님에게 2유로는 사람 간의 정이라며 깎아주는 그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역시나 소량의 향수로는 어림도 없었다. 향수는 마시는 것도 아닌 맡는 용도인지라 더욱 효과가 미미했을 것이다. 어김없이 당신을 찾아갔다. 그는 죽지 않으면 전액 환불한다는 조건으로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환불을 가장한 사심으로 다시 한번 찾았다.
어제와는 달리 손님으로 북적였다. 나에겐 새로운 관경이었으나 그에겐 어김없는 모습이었을 테다. 자살가게는 암암리에 알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사가 되었으니깐.
모두 하나같이 흑백의 건물을 품은 안색이었다. 칙칙하고 암울한 분위기의 그들과 같은 표정이었을 어제를 생각하니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그는 오늘도 죽음을 팔고 있다. 이런 우중충한 곳에서 살아가는 그에 대한 의문이 드디어 나를 반겼다.
그는 왜 자살을 하지 않을까. 가업을 이을 사람이 없어서? 자살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어느 하나도 죽지 않을 이유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손님들에게 싱그럽게 웃음 짓는 그에게는 죽지 못해서 살아간다는 게 가당치도 않았다.
"저 어제 향수 사갔던 사람인데요.
향수로는 죽지 못해서요."
그의 안색이 티 나게 나빠졌다. 퉁명스레 환불을 하겠다는 소리냐며 물어오는 그에게 나는 주눅 들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 적은 당신이 처음인지라 모든 게 겁나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얼마나 멍청했던지, 이게 사랑인지도 몰랐다. 그저 당신은 삶을 불어주는 바람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지 나의 첫사랑이라고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환불 말고
구매하러 온 건데요 ..."
그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그런 건 빨리 말하지 그랬냐는 그의 목소리는 꽤 커져있다. 이렇게 말 한마디에 휙휙 바뀌니 겁도 났고 웃기기도 했다. 또 한번 당신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웃는 방법도 모르는 내가 당신을 따라 웃는 연습까지 했었으니깐 당신은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다.
"오늘은 어제처럼 쩨쩨한 향수 사가지 마시고
독버섯 사 가세요. 독버섯."
그의 신난 모습에 덩달아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죽음을 목표로 한 여성과 죽음을 도우는 남성이 같이 웃고 있다. 나조차 이상하다 여겼는데 당신이라고 못 느낄까. 당신에게는 가지 않았으면 했던 생각들은 가버렸고 이에 내게는 오지 않았으면 했던 말들이 와버렸다.
"근데 왜,
웃고 계세요?"
"분명 저희 가게에서는
웃으시는 분들이 없으신데."
아차 싶었다. 당신이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볼까 벌벌 떨렸다. 그들에게는 주어진 가족과 집이라는 게 내게 없다는 이유만으로, 고작 그런 이유로 나를 유린하던 생각이 번쩍이는 번개처럼 요동쳤다. 구토가 나올 듯이 메슥거렸다. 금방이라도 악다구니를 지를 만큼 울음이 찼다.
아 이제야 기억이 났다. 내가 자살을 바랐고 이곳으로 발걸음을 했던 가장 큰 이유. 가장 큰 트라우마가 유일무이한 기억이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찾았다. 이와 동시에 그를 향하던 사랑을 죽여버렸다. 나에겐 사랑이 사치다.
"나가세요."
"당신은 살아갈 가능성이 있으니
가라 할 때 가세요."
말도 안 되는 전개였다. 당신은 문을 열어주며 내게 살아가라 하였다. 당신은 죽음을 팔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감정적이고 여려서 당신은 나를 경멸하지 않았다. 돌이 되어가는 내게, 당신은 망치를 내던지지 않고 물을 뿌려주었다. 덕분에 부서지지 않고 비옥한 토지가 되었다.
쭈뼛이며 그를 향해 걸었다. 느릿하게 걷는 내내 그에게 무엇으로 말을 시작할지 고민이었다. 나는 유창한 말솜씨도 없었고 고급스러운 단어들도 몰랐다. 남들에게서 들은 단어들만으로 20년을 버텨왔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제가 웃었다고 해서 살아갈 자신은 없어요."
"그저 당신이 따뜻해서 나까지 웃어버린 거예요.
이게 다 당신이 따뜻해서 그래요."
벙찐 그를 뒤로하고 다시는 걸음 하지 않을 골목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섰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의 삶에서 나란 존재는 콩알보다 미미하다. 영양가 없이 빈 겨 같은 사람. 잡을 가치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팠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식칼 하나를 샀다. 할 말도 다 했겠다, 욕조에서 편안히 눈을 감기 위함으로 커다란 식칼을 샀다. 더 이상의 미련은 구질한 모습만을 초래한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죽기 전에 걷는 파리의 거리는 나를 제외하고 모든 게 빛났다.
열쇠를 더듬거리며 집 앞을 다다랐을 때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자살가게란 문구의 봉투를 들고 서있는 그를 보았는데 다리가 멀쩡한 게 이상한 사실이었다.
"아 미안해요.
진짜 어디서 소리 소문없이 죽었을까봐
나는 보내고 나서도 계속 걱정 돼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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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ㅠㅠ
가독성 제로로 찾아 뵙네여..
매번 칭찬해주시는 여러분들 기대에 못미쳐 너무 죄송합니다ㅠㅠㅠ
매번 어두운 분위기여서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ㅠㅠㅠ
길게 적는거 어렵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