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왜요!?" "저도 몰라요. 외과병동 입원시켜준다고 해도 굳이 내과로 가겠다고." "아니, 내가 외과에 있는데..." "뭐, 아내 분 신경쓰일까봐 그러는 걸 수도 있죠?"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앞에서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어. 그러니까 보통 병원 의료진들이나 가족들이 입원하면 대부분 자기 병동에 입원시키기 마련인데, 백현이는 굳이 내과병동에 입원하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내과로 입원수속을 밟았다는거야. 그러니 속이 터지지 않고 배길 수가 없지. 응급실 침대에 곤히 잠들어있는 백현이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나는 머리를 짚었어. "내과에 입원하나 외과에 입원하나 똑같이 삼 일동안 금식하고 영양제 맞을텐데. 저도 이해가 안 가네요. 원래 변백현이 학부 때부터 좀 또라이였어요." "삼 일이요? 한 일주일 입원시키면 안돼요?" "그럴 수야 있는데, 쟤가 그렇게 안 하려고 할걸요. 의사 종특이잖아요. 어제도 응급실 탈출한 애가 일주일 입원을 퍽이나..." 하긴...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어. 곧 내과 레지던트가 내려올거라는 말을 남기고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는 바쁜 걸음으로 사라졌지. 하필 병동이 바쁠 때 쓰러져서는, 아니 병동이 너무 바빠서 백현이가 쓰러진 건가. 무튼 종인이는 더 발에 불이나도록 콜을 받고 병동으로 달려갔어. 보호자 의자에 앉아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백현이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 수액이 연결되어있는 팔 부근을 어루만졌어. 살이 더 빠진 것 같기도 하고. 미처 벗지도 못한 안경을 벗겨서 내 가방에 조심히 넣어두고 꾸깃하게 발 밑에 놓여있더 가운도 탁탁 털어서 접은 뒤 백현이 머리 맡에 두었어. 내가 응급실에 몇 번 실려왔을 때 백현이 기분이 이랬을까 싶기도 하고, 백현이 침대에 걸린 '금식'이라는 팻말을 보니 또 며칠 간 음식은 입에도 못대겠구나 싶어 마음이 불편해져왔어. "...잠이 오냐?" 얄미운 마음에 볼따구를 꼬집고 싶었지만 겨우 든 잠이 깰까 싶어 그만뒀어. "아니..." "어?" 대답을 바라고 말한 게 아니었는데, 낮게 들려오는 대답에 깜짝 놀라서 웅크리고 있던 몸을 바짝 폈어. "깼어? 미안, 더 자." "종인이는? 몇 시야?" "다섯시 좀 안됐어, 종인이는 올라갔고." 내 대답에 몸을 일으킨 백현이는 살짝 인상을 쓰더니 바로 침대 밑을 쳐다보며 신발을 찾았어. 내 신발은?하는 물음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 어디 가게? "올라가야 돼, 다섯시에 회진있어." "안돼, 너 입원해야된대." "무슨 입원이야? 안 해도 돼. 그리고 입원이건 퇴원이건 내과 레지 내려와야 되는거 알잖아, 얼른 다녀오면 돼." "입원해, 해야 돼. 너 올라간 사이에 내려오면 어떡하려고?" "걔네도 5시 회진이야. 손 잡고 같이 내려올게. 그리고 입원은 됐네요, 나 일단 다녀와서 얘기하자." 씨잉...내가 울상으로 말싸움에서 패배를 맛보고 있는 사이 변백현은 팔에 수액을 고정시켜놓은 반창고를 손으로 급하게 떼고 있었어. "어, 야, 그걸 왜 떼?!" "올라가야된다니까?" "폴대 걸어서 끌고 가, 너 삼십분도 안 맞았어." "많이 맞았네. 얼른 다녀 올," "...안 먹는다." "뭐?" "나도 밥 안 먹는다고. 과일이고 요플레고 아무것도 안 먹을거라고." 내 말에 백현이가 반창고를 잡아뜯던 손을 멈추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어. 살짝 굳은 듯한 표정에 나는 움찔했지. "아, 아니...그러니까 내 말은, 화 내지 말고 백현아..." "알았어, 아니야. 화낸 거 아니야. 반창고 어딨어? 네가 평생 맞으라면 평생 포도당 맞고 살게." "아니, 아니이...그런 말이 아니라...너 가운에 없어?" 가운 앞 주머니에 있어. 백현이의 말에 내가 얼른 반창고랑 시져를 꺼내서 싹둑싹둑 세개를 잘랐어. 혹여나 떨어질까 싶어 정말 대학생 때 배웠던 정석대로 백현이 라인을 고정했어. "폴대는, 안 끌면 안될까..." 백현이는 정말로 창피하다는 표정을 지었어. "나 응급실 온 것도 창피한데..." 알았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나를 확인하곤 백현이는 수액팩을 주머니에 쑤셔넣었어. "역류 안 하게 조심히 다녀와. 빨리 와야 해." 내 말을 끝으로 백현이는 다시 가운자락을 휘날리면서 응급실을 급하게 빠져나갔고 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지. 이래서 의사랑 만나면 마음고생한다는 건가 싶었어. ㅡ "알았어, 미안해..." "앞으로 그런 나쁜 말 하지 않기야, 약속해." "약속할게..." 입원 수속을 밟고 꾸역꾸역 내과병동으로 입원한 백현이 앞에서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을 걸어 약속하고 있었어. 백현이는 내게 자기가 일평생 들었던 말 중 가장 가슴아팠던 말이라 말했고, 그래서 내 얼굴을 다시 마주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미안하다 고백했어. 병원 침대에 마주앉아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내게 백현이는 두 팔을 펴보였어. "이리 와." 병원복을 입고 있는 백현이 품으로 기어들어가 가슴에 얼굴을 묻었어. 일주일도 넘게 맡지 못했던 백현이 냄새에 눈물이 글썽거리려는 걸 꾹 참았어. "네가 해 온 음식 내가 너무 매몰차게 거절해서 미안해, 너도 내 말에 욱해서 그랬던 거지?" 다시금 그 때가 생각나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어. 생각하니 아까워 죽겠네... "어디있어? 유부초밥." "...쓰레기통." "아..." 내 말에 백현이가 짧은 탄식을 내뱉었어. 그게 벌써 삼일 전인데, 백현아...사실 그 날 집에 가자마자 음식물 쓰레기통에 죄다 부어버렸지만. 다음에 나랑 같이 만들어서 먹자. 백현이의 언제 지킬 수 있을 지 모르는 약속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백현이 몰래 운다고 소리죽여 울었는데, 백현이는 알고 있었던 건지 나를 품에서 슬쩍 떼어내곤 눈가에 눈물을 닦아줬어. "이제 집에 가, 자고 내일 출근해야지." "여기서 잘래. 혼자 자기 싫어." "병원 불편해. 가서 자고 내일 나 보러오면 되잖아, 응?" "너도 나 입원했을 때 집에 안 갔잖아." "그야...너는 몸도 무거우니까 그렇지." 아직 무거울 때도 아니거든요. 내가 입을 비죽였더니 백현이가 내 입을 손으로 톡톡 쳤어. "일주일 넘게 나 혼자 잔단 말이야...아침에 혼자 깨는 거 싫어." 내 말에 백현이는 또 한없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내가 한 말을 금방 후회했어. "아니, 뭐...어차피 잠만 자는 건데, 괜찮아. 근데 오늘은 너랑 잘래." "그럼 네가 여기서 자." 내 말에 백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침대에서 내려왔고 나는 기겁을 하며 두 손으로 백현이를 막았어. "미쳤어? 안돼. 올라가." "그 침대 좁고 추워. 이불 하나 더 가져올테니까 누워있어." 이불을 가지러 병실을 나간 백현이의 뒷모습을 확인한 뒤 나는 그대로 침대 밑의 보조침대를 끌어내어 몸을 눕혔어. 여기에 누워서 꼼짝않고 올라가지 않을 생각이었지. 불편하다는 백현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편안함을 느꼈고 오늘 하루종일 정신없었던 탓인지 금세 눈꺼풀이 무거워졌어. 하암, 하고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곤 노곤한 몸에 눈을 꿈뻑였어. 백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되는데... ㅡ 왜 그런 느낌 있잖아, 지각했을 때 눈이 번뜩 떠지면서 불안함이 엄습해오는 그 느낌. 그 느낌으로 아침에 눈을 턱 떴어. 눈을 뜨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건 내 시선 아래에서 잠들어 있는 백현, 백현.... "...아, 미쳤어..." 어제 보조침대에서 잠들었던 나는 백현이가 옮겨놓았던 건지 환자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고 백현이는 보조침대에서 몸을 웅크린채로 조용히 잠들어있었어. 제 키보다 몇뼘은 짧은 침대 탓에 새우자세로 자고있는 걸 보니 어젯밤의 나를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 저걸 깨워서 위로 올려야하나, 아니면 더 자게 내버려둬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아무래도 편하게 자게 해야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왔어. "백현아, 변백현." 몸을 흔드는 내 손에도 백현이는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어. 나도 백현이처럼 번쩍 들어서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 "백현아..." 백현이 얼굴을 어루만지며 팔을 흔들었더니 그제야 백현이 인상이 조금씩 구겨졌어. "으응..." "일어나 봐, 올라가서 더 자." "...으, 자기야..." "졸려? 올라가, 여기서 자지 말구." "나 팔 아파...부었어?" 팔? 눈도 뜨지 못하고 팔부터 아프다고 말하는 백현이에 얼른 수액이 들어가고 있는 팔을 살폈어. 백현이 말대로 팔은 라인이 빠진 건지 퉁퉁 부어있었고 빨갛게 혈관이 터져있기까지 했어. "응, 부었어. 기다려봐, 갈아줄게." 백현이가 잠결에 많이 뒤척였나, 안 그래도 아픈 애가 주사부위까지 퉁퉁 부어있으니 속상한 맘에 발걸음이 빨라졌어. 우리 병동으로 올라가서 처치실에 수액세트를 새로 챙긴다음 다시 내과로 내려와 백현이 주사부위가 부어서 내가 갈아주겠다고 말해 둔 뒤 병실로 들어왔지. 그러게 그냥 외과에 입원했으면 좀 좋아. "잠 깼어? 그냥 자고 있지..." "여기 욱신거려서...깼어." "자면서 뒤척였어? 어제 밤만 해도 괜찮더니." "그랬나봐, 줄 다 꼬여있었어." 백현이는 울상을 지으며 반대쪽 팔을 내밀었어. 지혈대로 팔 위쪽을 동여매고 톡톡 손으로 쳐서 혈관을 찾았어. 익숙하게 포장을 뜯어 바늘로 혈관에 찔러넣으니 백현이가 따가운지 움찔했어. "아파?" "하나도 안 아파." "거짓말." "이제 혈관 잘 찾네, 내가 안 도와줘도." "아쉬워?" "살짝." 진심으로 아쉬운지 입술을 비죽거리는 백현이를 보고 웃음이 터졌어. "네가 대학생때부터 많이 도와주긴 했지." "그거 핑계로 너 많이 만났잖아. 혈관 잘 보이게한다고 나 운동도 하고 그랬다? 팔굽혀펴기, 이런 거." "그래서 성공했네, 우리 백현이."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뿌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백현이었어. "출근하기도 전에 일했어, 너 때문에. 나 씻고 출근해야겠다." "스테이블한 하루 되세요. 얼른 퇴근하고 와." 백현이의 덕담을 뒤로 한 뒤 빛의 속도로 씻고 대충 화장품도 찍어바른 뒤 바로 위층인 병동으로 올라갔어. 어제랑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날 본 수쌤은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으셨고 나는 괜찮다는 듯 웃어보였어. "백현쌤은 좀 괜찮구요?" "네, 6병동 입원해있어요. 진통제 맞으니까 멀쩡해요." "빨리 나아야할텐데요, 보다시피..." 수쌤이 말끝을 흐리며 곁눈질로 가르킨 곳에는 허둥대는 종인이가 서 있었어. "...인턴쌤 사고칠까봐 무서워 죽겠어요." "...내일이라도 변쌤 퇴원 시킬까요?" "마음같아서는 그러고 싶어요." 한숨을 폭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수쌤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인이는 차트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어. 오늘은 오더목록을 더 면밀히 살펴야겠다고 다짐하며 모니터 앞에 앉아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어. 매일같이 일의 시작은 똑같이 바코드 뽑기로 시작했지. 일정한 소리를 내며 줄줄이 뽑혀나오는 바코드를 톡 끊어다가 차트에 알맞게 붙이고 마우스를 움직여 오더목록을 체크했어. 오늘은 퇴원환자가 많아서 바쁠 것 같은 하루였어. 차트에 잔뜩 떠 있는 빨간색 알파벳 d를 보며 새어나오려는 한숨을 꾹 참았어. "퇴원 약, 퇴원 약이..." 없네. 퇴원 지시를 내려놓고 퇴원 약 처방은 하지 않은 게 또 일을 두번 하게 됐어. 욱하고 올라오려는 화도 꾹 참아 누른 뒤 약간 높은 톤으로 종인이를 불렀어. "인턴 쌤-, 여기 퇴원환자 약 처방 안 올라왔는..." "아이구, 기다려요 김간." 고개를 빼꼼 내민 내 시야에 보인 건 종인이가 아니라, "야, 너 왜 여기있어?" 장난스런 말투로 기다리라 말하는 백현이었어. 깜짝 놀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그 사이 백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스테이션으로 들어와 내 옆에 있는 컴퓨터에 로그인을 하고 마우스를 딸깍거렸어. "야, 변백현..." "게스트리티스...라니티딘 7일치 넣으면 되겠어요, 처방 사인 났을거예요." "아니, 왜 여기 있냐고. 오늘도 일하래?" "그쵸, 저도 위경련인데 위염환자 처방이나 하고 있고...인생이 조금 기구해요." "장난치지 말고." "이 환자는 저처럼 안되게 복용지도 꼼꼼히 부탁해요." "...변백현." "알잖아, 종인이 아직 혼자 일 제대로 못하는 거. 조금만 도와주고 갈거야." 변백현이 말하는 조금만은 조금만이 아니었으니까...그게 문제였어. 분명 오늘 종인이 당직 서기 직전까지 붙어있을 게 눈에 뻔했어. - 죄송해요ㅠㅠ... 사실 오래 전에 써둔 건데 살짝 짧은 감이 있어서 뒷내용 더 쓰고 올려야지! 했던게 두달이 훅 지나버렸네요 그래서 그냥 짧은 대로 일단 올립니당~.~ 다음 편은 더욱 알차고 긴 분량으로 가져올 것을 약속할게요 ㅠㅠ 항상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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