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한가운데 핀 모란 (부제: 꽃이 피고 지듯이)
제 6화 : 연민 (1)
"이제 기억나십니까?"
자신을 떠올린 듯한 모란의 표정을 보며 정국은 장난스레 웃으며 물었다. 약간당황한 듯 보이는 황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올라간 손이 무안해 슬며시 내리며 이내 다시 표정을 고치고는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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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황자님이라고 하셔도 야심한 밤에 황후전에 찾아 올 수는 없습니다."
"..단호하셔라.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다음에 입궐 하는 날, 아주 날이 밝을 때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 때는 꼭 반겨주셔야 합니다."
황자가 나가고 긴장이 풀린 모란은 쓰러지듯 금침에 누웠다. 이리 늘상긴장해야 하는 곳인가 이 황궁은.. 어제 오늘로 피곤한 것 투성이구나.모란은 머리를 짚으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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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스 일어난 모란.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해가 중천이다. 어서 옷을 갈아 입고 문안인사를 드리러 가야지. 늦잠이나 잔 자신을탓한 황후는 얼른 옷을 바꿔 입었다. 자신의 옷을 입혀주는 아이. 어제부터모란의 시중을 들었던 아이 중 하나였다.
"참으로 어여쁘구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소녀, 말이옵니까?"
"그럼 여기 너와 나 말고 누가 또 있느냐?"
"..소녀 미천하여. 이름이 없습니다."
"참말인가? 그럼 다른 사람이 너를 어떻게 부른 단 말이냐?"
"그냥.. 이 년 저 년.."
"그게 무슨.. 되었다. 내가 이제부터 너의 이름을 제비라고 부르겠다. 제비꽃에서 딴 이름이다. 어떠냐?"
"예? 양반이나 가질 수 있는 화명(花名)을 제가 어찌?.."
"너와 나 둘이 있을 때만 그리 부를 터인데 무엇이 걱정이냐?"
작고 소담스러운 것이 제비꽃을 닮았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지어지는것이 귀여운 아이구나. 할미마마께 문안인사를 다녀 온 모란은 자신의 시중을 드는 또 다른 궁녀들의 이름을물어보고 말을 붙이며 그들과 친해지려 노력하였다. 거만이라고는 하늘을 찌르는 듯하여 황제의 천하가 자신의것인 듯 오만하고 방자한 일홍과 오자마자 주위를 살뜰히 챙기는 모란은 정말 천지차이였다. 이 날부터궁녀들 사이에서도 정말 어질고 참말로 아랫것들을 보살필 줄 아는 참한 황후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덧궁녀들과 친해져 이리저리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 누군가가 왔다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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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황자님께서 오셨습니다!!"
할미마마에게는 세 자식이 있었는데 첫 째가 선황제이시고 둘 째가 현 황제의 아버지이고 셋 째가 정국의 아버지이다. 황자 전정국. 그 역시 무예가 출중하여 촉망 받고 있는 인재였으나폭군의 행패에 현 황제와 함께 반란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현 황제가 무조건 신임하고 아끼는 자이기도하였다. 황제가 그에게 관직에 들어 곁에 있으라고 사정사정을 하였으나 정국은 귀찮은 일 많고 어디 얌전히점잔 빼고 앉을 성격이 아니라며 한사코 거절하였다. 저번 밤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았던 황자. 모란은 자신이 그리 더러운 것 쫓아내듯 하여 기분이 상하였을까 혹시 걱정하였다. 정말 날이 아주 밝을 때 오셨구나. 그녀는 얼른 궁녀들을 물리었다.
"안녕하십니까? 황후 마마."
"예.. 황자께서도 안녕하십니까?"
모란은 떨떠름하게 황자의 인사를 받았다. 황자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실실 웃고는 마치 제 방처럼 털썩 그 자리에 주저 않았다. 참 거침이 없고 스스럼이 없는 사내다. 황제와 황자. 이 둘에게는 같은 피가 흐를 터인데 어찌 이리 다를까? 황제가 얄쌍한 얼굴에 서늘한 눈매를 가졌다면 황자는 이목구비가 모두 뚜렷하였고 동글동글한 눈매를 가졌다. 차가워 보이는 황제와 따뜻해 보이는 황자. 정말이지 상극이다.
"무엇입니까? 설마 아직도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저는 참말로 황자가 맞습니다!!"
"압니다."
"헌데, 왜 아직도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것입니까? 제가 저번에 분명 저가 오면 반겨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큰 키에 강인한 몸. 얼굴을 보니 아직 앳된 것이 이제 갓 성인이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덩치는 큰데 하는 행동이 어린 아이 같다. 황후가떨떠름한 얼굴로 묻자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떠 보이며 역정을 내는 황자다. 저는 정말황자가 맞다며 두 손으로 저의 가슴을 팡팡 두들기기도 한다. 반겨주지 않아 투정을 부리는 모습도 영락없는어린 아이다. 모란은 황자의 행동이 귀여워 궁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진심으로 웃었다.
"왜.. 웃는 것입니까?"
"귀여워서 그럽니다."
"에? 귀엽다니요? 어엿한 사내대장부에게 그런 말은 실례입니다. 저의 나이도 황후마마의 나이와 같은데 제가 귀엽다면 황후마마도 귀여운 것입니까?"
"어려 보여 귀엽다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귀엽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도.. 귀엽다는 말은 사내대장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토끼 같다.. 모란은 정국을 보고 토끼 같다고 생각하였다. 하얗고 동글동글하다. 말투도 그렇고 이리저리 통통 튀는 것이 마치토끼가 뛰어가는 것 같다. 남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나이는같지만 저보다 어린 행동을 하는 황자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한편, 자신을 어린아이 보듯 하는 황후의 모습에 저 나름대로 심통이 난 황자는 입이 대빨 나왔다. 그냥 저를 의심하는 눈초리에 변명을 한 것뿐이고 자신을 남동생 쳐다보듯 보는 황후에 발끈한 것뿐이었다. 귀엽다니..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그나저나.. 어제는 왜 절 찾아온 것 입니까?"
"어제요? 아.. 그야 어질기로 소문난 황후폐하가 어떤 분이신지 옛날의 소문이 참인지 확인하러 왔지요."
"소문이라뇨?"
"황후께서 수도에 사실 때, 이름 꽤나 날리지 않으셨습니까?"
"예?"
"아니, 왜 황후께서 전에 가문, 학문, 성품에 그리고 미모까지 출중하다 소문이 자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분이 황후가 되 셨다고 하기에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수도를 떠난 것이 13살 때의 일이 온데.. 그 때 저에게 그런 소문이 있었습니까?"
"모르셨습니까?"
"예.. 몰랐습니다."
살짝 벙쪄 보이는 듯한 모란. 그런 소문이 정말이지 있었단 말인가? 아이고.. 부끄럽구나.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소문이 과연 사실이군요. 이리 미인이시니."
"..저를 놀리지 말아주시옵소서."
"놀리지 않았습니다. 진담이옵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 참! 그나저나 제가 황후 마마를 뵈러 온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지요."
"..무엇입니까?"
"히히, 나중에,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야 궁금해서 저를 기다리실 것 아닙니까? 더욱 반겨주실 테고 말입니다. 오늘은 황제 폐하께 다른 볼 일이 있어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황후는 나가는 황자에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배웅하였다. 참으로 괜찮은사내인 것 같다. 궁 안에 들어와 사람을 대할 때 늘 긴장을 하였던 모란이다. 그런 모란이 처음으로 긴장을 내려 놓고 마음 편히 대화한 사내였다. 비록짧은 대화였지만 이리 마음이 편안하니 황자에게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는 것이 틀림 없다. 자주저의 처소를 들리셨으면.. 따뜻한 미소를 가진 정국으로 인해 답답하고 공허하였던 궁 생활이 잠시나마밝아졌다. 좋은 사람인 것 같다. 황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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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황자 전정국이 그날 밤에 그녀를 찾아 온 이유는 소문 때문이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소문이 거짓인 것은 아니었다. 진짜돌았던 소문인데 뭐.. 죄책감이 조금 있었지만 진실을 알면 동정한다 생각할까 일부로 거짓말을 하였다. 그날 궁을 돌아다니다 황제가 또 일홍의 처소로 들어가는 것을 본 정국. 황제가되기 전에는 여자를 돌 같이 보시던 분이었는데.. 대체 무슨 재주로 그를 홀린 것인지.. 일홍은 참 대단한 여자다. 혀를 끌끌 차던 황자가 발걸음을 옮기며우연히 시야에 든 것은 황후전이었다. 첫날밤에도 소박을 맞았다고 들었는데 저리 불이 켜져 있는 것을보니.. 황제를 기다리는 것인가? 이런 야심한 밤에 황제는첩에게 갔단 말이다. 황후전을 안타깝게 쳐다보던 황자. 그는곧 황후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자도 깊어진밤에 황후전에 황제가 아닌 남자가 들어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허나 황제가 오기전까지 저리 불을 환하게 키고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릴 황후가 불쌍하여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서황제가 오늘 이 곳에 들리지 않을 것이니 얼른 불을 끄고 잠이나 자라고 하여야지. 허나 문을 열자 황제가아닌 저를 보고 기겁을 하는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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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진정하세요. 황후 마마. 절 모르시겠습니까?"
"그대가 누구이든 야심한 밤에 이리 황후의 처소에 찾아 올 수는 없습니다."
"..저는 황자 전정국입니다. 그 때 가례식에 앉아 있던 저를 보지 못하였는지요?"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못 알아보다니.. 약간 실망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고 황후전을 나갔다. 곧 황후전에 불이 꺼지고 잠자리에 몸을 뉘였을 황후. 정국은 불이 꺼진 황후전을 확인하고는 뒤를 돌아 제 갈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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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평생 황후에게 하지 않으리. 자신을 동정해 찾아갔다는것을 알면 속상해 할 것이 눈에 훤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 간 또 다른 이유. 그것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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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우리의 만남이 가례식 때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그대는 알까?"
정국은 또 황후전을 한참 바라보다 이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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