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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가는 준비가 그렇게 신났던 적은 처음이었다. 아니, 채영의 인생을 통틀어 그렇게 신났던건 처음이었다. 술 취해서 고성방가로 동네에 민폐를 부린적은 있지만 맨정신에, 부모님 앞에서 대놓고 '나 지금 신이 나요.' 하는 얼굴과 말투로 밥을 퍼먹은 적이 결코 없었다. 새 학교로 전학을 간지 두어달 쯤 되던 어느 날, 처음으로 채영은 밥상 앞에서 학교가기 싫어! 하고 소리지르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매끈한 검은색 자동차의 몸체가 약간 떨리다가, 곧 힘있게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꺼졌다. 새로 전학갈 학교에선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다니라는 엄마의 말을 들어 첫 등교날 대중교통을 이용했었고, 그 후로 채영은 모든 종류의 대중교통을 증오하게 되었다. 정상 시간에 등교를 해본적이 없으니 출근시간 지옥철의 어마어마함을 채영이 몸소 느껴볼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이미 만차인것 같은데 평온한 얼굴로 자신을 꾹 밀어넣고 지하철에 발을 내딛는 직장인의 얼굴을 힐끗 쳐다본 채영은 곧 풍겨오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암내에 헛구역질을 해야했다. 바로 다음 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타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일은 채영의 인생에서 워스트였다. 그 후로 채영은 경호원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등교했다. 유난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다시 지옥철에 발을 들일 용기가 없어서 채영은 입 다물고 차에서 내렸다. 그래도 학교에서 조금 먼곳에 내리는건 채영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다른 애들이 경호원이 자동차를 운전해주고 자신의 하교시간까지 기다려 준다는걸 알면 엄청나게 유난스러운 부모님이 계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 사실 채영은 여린면이 없잖아 있었다.

 

  얼굴 외의 신상은 모르는 예쁜 아이를 1초라도 빨리 보고싶다는 마음으로 채영이 짧은 다리를 휘적이며 횡단보도를 향해 걷는데, 왼쪽 대로에서부터 걸어오는 여자애가 채영의 옆에 서서 멈췄다. 다른 음악을 찾으려고 아이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던 참이라 그냥 별 생각 없이 음악 찾기에 열중이었는데,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튀어나가는 여자애의 뒷모습을 그제야 정식으로 본 순간 채영은 어! 하는 소리를 음성으로 낼 수 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중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자동차에 타서도, 그리고 자동차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향해 걸으면서도, 심지어는 음악을 바꾸려고 아래 위로 폰스크린을 슬라이드 하던 순간까지. 단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는 아이의 뒷모습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맨뒷자리 자신의 자리에 앉아 칠판을 바라보면 보지 않으려 해도 볼 수 밖에 없는 그 동그란 뒷통수. 누가 봐도 예쁜 아이 었다. 내일 꼭 만나면 친해져야지. 자기전까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역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대단했던지 채영은 다가갈수도, 말을 걸수도 없었다. 그저 그 동그란 뒷통수가 정갈한 걸음걸이에 약간씩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만 뒤에서 멀거니 지켜봐야 했을뿐. 교문앞의 신문을 챙기는 아이를 보며 채영은 멋쩍게 웃었다. 도대체 종이로 된 신문을 실제로 본게 몇 년 만이지, 하면서.

 

 

 

 

 

 

 

 

 

  미나의 성격은 조금 유난스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교했다. 정교하다는 단어가 사람의 성격에 붙는 수식어가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비뚤어져선 안되었고, 항상 올곧은 자세를 유지해야 했으며, 심지어는 친구들에게 주어지는 관심 마저도 1%의 차이 없이 동등해야 했다. 미나의 세계 안에서 어느 하나의 과함이나 모자람은 존재하지 않았고 마음은 늘 고요한 바다처럼 잔잔했다. 완벽주의와는 살짝 다른 성향이었지만 시험 문제 하나 틀리는것도 일종의 모자람으로 여긴 미나였으니 남들 눈엔 지독한 완벽주의자로 비춰지는 적도 많았다. 언젠가 자신에 대해 독한년이라고 뒷담을 하고 다닌다던 전교2등의 만행에 대한 소식을 우연찮게 들었을 때에도 미나는 그저 속으로 한번 완벽주의자는 아닌데, 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남들 보다 조금 더 정교하다는게 득이면 득이었지 손해 보는 일은 없었기에 자신의 성격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던 미나가 본격적으로 자신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한것은 첫 남자친구를 사귀고 부터 였다. 미나의 남자친구는-지금은 구남친이지만.-미나와 조금 닮아있었다. 외모적으로도 그러했고, 성격적으로도 그러했다. 미나는 사실 자신이 아주 지독한 외로움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자신과 티끌만큼이라도 닮은 그 남자아이를 보고 호감 비슷한것을 느끼게 되었다. 미나를 거절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곧 둘은 연애 비슷한것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서로가 서로를 불편해하는 상황이 잦아졌고 종국에는 남자친구의 이별 통보로 미나의 첫 연애는 싱겁게 막을 내려야 했다. 아직도 미나는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뒤돌기 직전 중얼거리던 몇 마디의 글자들을 어렵지 않게 기억한다. 그것은 일종의 트라우마다.

아직도 네가 누군지 모르겠어. 계속 만나면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슬픈건 너도 네가 누군지 모르는것 같다는 거야. 넌 대체 누구야?

  슬픈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던 남자친구는 아무 말 없는 미나를 뒤로 하고 떠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유난스러울 정도로 중심, 완전함에 집착하는 성향은 유년 시절 어머니의 교육에서 비롯된것이라고 생각했다. 멀리 갈것도 없이 미나의 어머니 또한 미나와 약간 비슷한 면이 있었다. 어머니의 손을 거친 미나의 방은 항상 깔끔했으며, 적당한 햇볕을 받은 방은 늘 같은 온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와 미나도 약간의 차이점은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칠때면 미나는 항상 답답함을 느낀다. 차이가 있다는건 알겠는데 말로 풀어 설명하지 못하는 탓이다. 몸으로는 자신이 어머니와 다르다는걸 느끼고 있는데 말과 글로 풀어내지 못하니 미나는 여전히 어머니가 약간은 멀게 느껴진다.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며 웃는 어머니를 마주할때면 미나는 이유없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미나는 자신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으려 자신을 더욱 바쁘게 만들고는 한다. 생각을 하면서 무언가가 해소될 때도 있는데 아직 까진 득보단 실이 크다. 그래서 미나는 채영의 존재가 고마웠다. 관심을 오롯이 한쪽으로 집중할 무언가가 생긴게 좋았다. 억지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끌리는 무언가는 정말 오랜만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사실 이미 미나는 채영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걸 시작했다. 반 아이들도 채영이 무어라고 뾰족하게 알진 못하는것 같았지만. 두달전에 전학온 아이인데 어디서 전학을 왔는지, 어디 사는지, 누구와 친한지 등등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수업시간에 주로 잠을 자지만 이상하게 수학시간엔 집중을 하고 심자도 꼬박꼬박 하고 간다는게 다였다. 그리고 또 채영이 학교에서 손에 꼽을만큼 인기가 많다는것? 그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앞으로 예쁜 아이와 어울려 알콩달콩 조금은 유치한 하이스쿨 로맨스를 즐기게 될것이라는 채영의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맨 앞자리의 예쁜 아이는 하루종일 자리에 앉아 멀리서 보기에도 지루해 보이는 책을 종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원래는 안경을 끼고 다니는지 두꺼운 뿔테 안경을 이따금씩 치켜 올리는게 다였다. 뭐, 그 모습은 채영의 기준으로 살짝 섹시했기에 그 모습을 보는게 채영의 하루 낙이었다. 이제야 눈에 들어와 보게된 것이지만 예쁜 아이는 몸매도 좋았다. 그렇게 넋놓은 사람 마냥 죙일 앞자리의 아이를 훔쳐보던 채영은 문득 아이의 신상 정보가 궁금해져 옆에 앉아있던 짝꿍에게 말을 걸게 되었다. 낯 가리는 성격이긴 한데 필요할땐 곧 잘 말을 꺼내고는 하는 채영이라 부끄러움은 없었다.

 

 "쟤 이름이 뭐야?"

 

  내가 니 짝꿍인데 왜 내 이름은 안 묻고 쟤 이름을 묻니, 하는 표정으로 조금 어이없게 채영을 쳐다보던 옆자리의 짝꿍의 시선이 채영의 검지 손가락이 가리키는 위치를 따라 천천히 이동한다. 채영의 손가락 끝에 미나가 걸려있다. 미나? 설마 우리반 반장 미나의 이름도 모를까 싶어 그렇게 중얼거렸는데 채영은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이름이 미나구나. 미나에 대해 조금 더 알고싶어 지지만 차마 신상 정보를 아는대로 털어놓으라 말할 수는 없어 속앓이를 하는데, 수다쟁이 짝꿍이 알아서 미나에 대한 정보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미나는 말이지, 공부도 짱 잘하고 인기도 엄청 많아. 교내 대회 나갔다 하면 상은 다 미나꺼야. 저번에 우리학교 잘생긴 선배도 미나한테 고백했었어. 그 선배 좋아하는 사람 내가 아는거만 해도 열손가락을 넘는데.. . 마치 자신의 딸램을 자랑하는 엄마가 된것 마냥 열과 성을 다해 미나의 우월함에 대해 늘어놓던 짝꿍의 벌게진 얼굴을 보던 채영이 그제야 두 달은 늦은 질문을 꺼냈다.

 

 

 "근데 넌 이름이 뭐야?"

 

 

 

 

 

 

 

 

 

  늘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학교를 도망나와 밖에서 음식을 사먹었으니 새로 사귄 친구 다현과의 식사가 채영의 생에 첫 급식이 되었다. 일렬로 줄을 서서 배식을 받는게 처음엔 농장안의 가축이 된 느낌이었는데, 마침 수요일은 다 먹는날 이라고 비빔밥을 비벼 먹으면서 채영은 급식을 사랑하게 될것 같다고 느꼈다. 인공적인 조미료맛의 소스가 환상적이었다.

 

  다현은 태생이 수다쟁이었다. 비빔밥을 한 입 가득 퍼먹으면서도 학교생활, 자기 이야기, 연예계 가십거리 등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같은 목소리와 톤으로 늘어놓는것을 보면서 채영은 얘도 참 정상은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 아나운서 한번 해보지 그래? 그렇게 툭 던지니까 또 좋다고 어머 그럴까? 사실 내 어릴적 꿈이 아나운서였는데 말이야...온갖 소리를 삼천포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름 뭐냐고 묻지 말걸. 아니, 그냥 미나한테 직접 네 이름은 뭐니? 하고 묻는게 나을것 같았다. 이거 마시고 닥치라는 의미로 급식에 나온 이오를 다현 쪽으로 내미니까 다현이 감동받았다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하트를 내밀어준다.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부른 배를 통통 튀기며 천천히 교정을 걷는 채영과 다현 위로 따스한 햇볕이 내려 앉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에 조금 졸리워지는 참이라 잠을 쫒으려 둘은 급식실을 나와 그대로 산책을 하기로 했다. 나란히 걷는데 자신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을거라고 에상했던 다현의 눈이 딱 채영과 같은 눈높이에 있다. 생각보다 키가 작네. 다현이 조금 더 마음에 들어지는 채영이었다. 자, 각설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미나에 대해 캐물어봐야지. 큼큼, 하고 말할 준비를 하는데 채영은 또 다현에게 선수를 뺏겼다.

 

 "근데 난 너 처음 봤을때 완전 양아치인줄 알았어. 진짜, 맨날 잠만 자고."

 "... ."

 "근데 또 수학수업은 듣더라? 왜 필기는 안하나 늘 궁금했어."

 

  그야 이해를 못했으니까 그렇지. 조금 쪽팔려서 이제 그만 닥치라는 의미로 살짝 웃었는데, 그런 채영의 반응이 긍적의 표시라고 잘못 해석한 다현이 자꾸만 팩트로 채영을 때렸다. 너 수학시간에 왜 맨날 그래프만 그리냐, 인수분해 적어놓고 왜 안하는거야, 루트 왜 맨날 안없애 등등 채영의 속을 긁어놓는 말을 다현이 다다다다 뱉는다. 1초간 다현에게 살인 충동을 느꼈지만 그래도 이 학교에서 말 붙여본 유일한 인물이니 채영은 그냥 다현을 매점에 데려갔다. 나 돈 없는데? 빈털터리송을 부르는 다현을 뒤로하고 친히 소세지빵을 사서 입에 물려주자 그제야 다현이 조용해졌다.

 

 "너 미나랑 친해?"

 "미나랑 안 친한게 더 힘들지. 그 힘든일을 니가 해내고 있는 중이고."

 

  어쩜 말 한마디를 안진다. 진짜 다리 하나 뿌서뿌셔 해버리고 다른 학교로 전학갈까 잠시 망설였는데, 그래도 소세지빵을 두 볼 빵빵히 집어 삼키고 오물거리는게 웃겨서 참기로 했다. 대체 왜 빵 먹으면서 콧구멍을 씰룩이는진 모르겠지만.

 

 "미나로 말할것 같으면, 만화 주인공이야. 외모도, 성격도, 공부도 모든게 다 완벽해. 미나랑 2년동안 같은 반이었는데 미나가 큰소리 내는 모습을 못봤어."

 "교우관계는?"

 "자세히는 모르는데 그냥 두루두루 친한것 같아. 딴 반에 절친 한명 있는걸로 아는데."

 "절친?"

 "응. 중학교때 부터 친구인것 같던데? 절친도 약간 만화 주인공 느낌이야."

 

 

  티키타카가 계속 되는 동안에도 빵 먹기를 멈추지 않던 다현이 빵을 다 먹고는 목 마르다고 목말라송을 불러제낀다. 아 미친새끼. 다현에게 닥치라고 가라데촙을 먹이고 싶었는데 그래도 오늘 처음 말을 트게된 친구에게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느껴져서 매점에서 과수원 하나를 사다가 입에 물렸다. 앞으로 다현과 다니며 돈이 깨질날이 많을것 같았지만 뭐 오늘 다현이 넘긴 정보가 꽤 쏠쏠했으니 기분이 좋은 채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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