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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너가 오자고 했으면서." 

 

 

 

 

 

 

 

백현은 위스키 한 잔을 집어들었다. 반면에 찬열은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찰랑이는 위스키잔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지금 찬열의 머릿속은 온통 어젯밤 봤던 그 여자밖에 없었다. 그 뒤로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를만큼 아침엔 베란다에서 눈을 떴다. 일어나보니 꿈인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선명하고, 생생해서, 카메라에 담겨있는 그 여자의 사진들이 꿈이 아니라는걸 증명했기에. 찬열은 지그지 눈을 감았다. 

 

 

 

 

 

 

 

지이이이잉- 

 

 

 

 

 

 

 

요란한 진동 소리를 내며 백현의 전화가 울렸다. 찬열은 그 소리에 책상위에 놓여있는 백현의 핸드폰으로 눈을 돌렸다.  

 

김종대. 

 

찬열은 그 이름에 눈살을 찌푸렸다.  

백현은 찬열이 볼세라 허겁지겁 전화를 받았다. 혹여나 수화기 너머로 종대의 목소리가 들릴까, 백현은 잠시 전화를 받고 오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뒷문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찬열은 백현이 나간 뒷문을 쳐다보다 다시 위스키잔으로 시선을 돌렸다. 

 

 

 

 

 

 

 

"심장 쫄려 미치겠네." 

 

 

 

 

 

 

 

뒷문으로 나온 백현은 심호흡을 했다. 종대의 이름만 나오면 찬열의 표정이 굳고 기분이 안좋아지니 여간 곤란한게 아닐 수 없었다. 백현은 종대에게 다음부턴 미리 문자를 하고 전화를 하라고 한 소리 해줘야지. 하고 생각했으나, 종대의 목소리가 너무 무거워보여 그대로 하려던 말을 삼켰다. 

 

 

 

 

 

 

 

"찬열아. 이제 가야겠다." 

 

 

 

 

 

 

 

종대와 전화를 마친 백현은 찬열의 팔을 이끌었다. 왜냐고 묻는 찬열의 물음에도 백현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두르기만 했다.  

 

[백현아, 미안하다. 잠깐 내 동생 좀 맡길게. 엄마가 자살했어.] 

 

종대의 부탁에, 한편으론 찬열이 마음에 걸렸지만 백현은 알았다고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종대 어머니, 우울증이셨지. 

집 앞에서 백현은 문을 열려다 멈추어 찬열을 바라봤다. 

 

 

 

 

 

 

 

"미안. 그래도 화는 내지마. 어쩔 수 없었어." 

 

 

 

 

 

 

 

찬열은 백현의 말을 이해 할 수 없었다. 또한 찬열이 뒤이어 본 광경은 지금에서야말로 자신이 정말 꿈을 꾸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찬열은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문이 열린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백현은 두 눈을 질끔 감았다. 하지만 잠잠했다. 뭐지, 하는 찰나에 찬열이 조심스럽게 한 발짝을 움직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거실 소파위에 앉아있던 한 여자가 찬열과 백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아...." 

 

 

 

 

 

 

 

그 여자. 그 여자다. 어젯 밤 비를 함께 느끼던 그 여자야. 찬열은 여자에게 다가갔다. 백현은 그런 찬열의 행동에 의아했지만 한 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정도면 둘만 놔두고 가도 괜찮겠지. 하지만 맘처럼 쉽게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저쪽에선 분명 종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쯤이면 종대어머니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을테니까. 백현은 한참을 고민하다 모르겠다는 식으로 문을 닫아 버렸다. 

 

 

 

 

 

 

 

"미안해요." 

 

 

 

 

 

 

 

찬열은 백현이 나갔는지 들어왔는지도 신경쓰지 않고 대뜸 여자에게 사과했다. 여자가 아무런 미동도, 동요도 없는 차가운 눈빛으로 찬열을 올려다 봤다. 

 

 

 

 

 

 

 

"맘대로 사진 찍어서 미안해요." 

 

 

 

 

 

 

 

여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찬열은 그제서야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던 여자를 알아챘다. 목이 아프겠지.. 찬열은 그런 여자의 앞에 앉았다. 따라서 여자의 시선도 찬열과 함께 내려 앉았다.  

 

 

 

 

 

 

 

"어제, 밤에. 내리는 비 속에서 나도 함께 있었어요." 

 

 

 

 

 

 

 

그 말에 여자가 반응했다.  

 

 

 

 

 

 

 

"날 찍었다던 사진들. 볼 수 있을까요." 

 

 

 

 

 

 

 

찬열은 곧장 카메라를 가져와 여자 옆에 앉았다. 그러곤 30장이 넘는 사진들을 여자에게 보여줬다. 사진을 다 본 뒤에 여자는 고개를 뒤로 젖혀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눈을 감고 한숨을 한 번 내쉬었고, 곧바로 찬열을 바라봤다. 묘한 동질감이 여자의 마음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한번도 자신을 이렇게 바라봐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긋지긋한 경멸감의 찬 눈빛을 여자는 잘 알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목소리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쌍둥이 오빠조차 나에게 그런 눈빛과 소리를 새기는데, 어떻게 처음보는 남자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엄마가 자살했어요.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여자는 그냥 말이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왠지 이 사람이라면 내 얘기를 해도 괜찮을거 같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모두 뱉고 싶었다. 생각할 시간같은건 가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뛰쳐나왔어요. 맨발로. 그땐 우리 오빠도 집에 없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근데 비를 맞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져서, 빗물과 함께 모든게 씻겨나가는거 같아서, 그냥 그렇게.. 해가 뜰 때까지 있다가 집에 들어갔어요." 

 

 

 

 

 

 

 

찬열은 아무말 없이 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새 찬열의 손은 여자의 손과 맞닿아있었지만 뿌리치지 않았다. 

 

 

 

 

 

 

 

"집에 가니까 엄마가 매달려있길래 방문을 닫고 화장실에만 있었어요. 옷도 안갈아입고, 욕조에 한참 앉아있으니까 오빠가 문을 열더니 뭐라고 말을 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기억이,"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찬열은 그런 여자를 안아줬다. 찬열도 함께 느끼던 묘한 동질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 서로에겐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거였는데. 찬열은 백현이 이대로 오늘만은 들어오지 않기를 바랬다. 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이 여자가 내 품에서 떠나지 않았으면을 소망했다.  

 

그렇게 밤이 흘렀다. 

 

시간은 새벽 1시를 향해 지나고 있었고, 찬열은 여자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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