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운명
w.운현
BGM :: Destiny, 인피니트
찬 바람이 불었다. 바람의 온기가 약한 피부에 생채기를 낼 것만 같았다. 연회색으로 물든 얇은 가디건을 더욱 끌어당겨 입었다. 센 바람으로 인해 파도가 크게 일렁였다. 잠잠해진 파도가 모래를 덮고 발을 덮었다. 반복 해서 일렁일 때 마다 발목부터 차례대로 내 몸을 적셨다. 물을 먹어 달라붙은 청바지가 무겁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추고 남색 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그토록 보고싶었던 얼굴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크게 불었던 바닷물이 가슴께에 닿았다. 숨이 턱 막히고 발이 떼어지질 않았다.
"저기요!"
"…"
"저기요! 여기 좀 봐요!"
"…"
"안 들려요? 씨발, 진짜!"
고개만 돌려 뒤를 돌자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처음보는 모르는 남자. 살리려고 하는 것 같아 뒷걸음질 쳤다. 어떻게 먹었던 마음인데 여기서 날 살리면, 그럼 나 다시 힘든거 반복해야 되잖아. 오지말라고 도리질쳤다. 바닷물이 목 부근까지 닿고 그 남자의 차가운 손도 허리에 닿았다. 허리에 둘러진 팔을 겁먹은 표정으로 쳐내자 손목을 잡고 바다를 휘적거리며 나가더니 나중엔 아예 번쩍 들어 바다를 완전히 빠져나갔다.
"괜찮아요? 다친데는요?"
"…"
"저기요, 말 좀, …울어요?"
"…어요. "
"뭐라고요?"
"왜, 살렸, 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모래사장에 내려놓고선 얼굴에 튄 물을 닦아주었다. 머리 부근만 빼고 다 젖어버린 이 남자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괜찮냐고 묻자 갑자기 훌쩍거리며 울어버린다. 기껏 살려놨더니 왜 살렸냐고 타박까지 한다. 뭐야, 이 사람. 한숨을 내쉬며 일으키려 하자 갑자기 목을 끌어안으며 아기처럼 펑펑 울어버리는 남자.
제 목을 끌어안고 목놓아 울어제끼는 남자를 보며 눈만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한참을 그렇게 울어제꼈다. 중간중간 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리고 힘에 부쳤는지 색색거리며 숨을 쉬다 다시 한번 펑펑 울고.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끊임없이 그렇게 울었다. 위로라도 해보려 그의 등을 쓸어내리자 손이 닿자마자 끅끅대며 울음을 참는 듯 했다.
"다 울었어요?"
"…"
"대답 안 할거에요?"
"…쪽팔려."
"왜요, 귀여운데."
"저기, 나…추운데‥"
일단 내 차로 가요. 남자의 손에 잡힌 제 손으로 시선이 갔다. 맞닿은 두 손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남자의 손은 따뜻했다. 이름이 알고 싶었고 이름이 뭔지 알고 싶다고 물었다. 남우현이에요, 그 쪽은요? 김성규요. 이름 예쁘네요. 우현씨도 예쁜 이름이네요. 식상한 대화를 나누며 우현의 차 앞에서 멈추었다. 기다리라며 뒷자석에서 무언가 뒤적거리더니 옷을 꺼낸다.
"이거 입어요."
"우현씨는요?"
"여기에 며칠 쉬러 온거라 옷은 많아."
"…그래도,"
"입어, 감기걸려도 책임 안 져요."
"…"
"생긴건 안 그렇게 생겨서 고집은."
옷을 성규에게 건넨 우현이 저도 갈아입을 옷을 챙겨 샤워실로 향했다. 성규씨는 차에서 갈아입어요. 수건으로 물도 좀 닦고, 히터 틀어놨으니까 몸도 녹여요. 옷이 든 쇼핑백을 들고 샤워실로 가는 우현의 뒷모습을 보다 차 안으로 들어갔다. 옷을 재빠르게 갈아입고 물이 묻는 시트를 손으로 문질렀다. 샤워실로 들어간지 10분 가까이 됐는데도 우현이 나오지 않자 옆에 있는 슬리퍼를 신고 나가려할 때.
"빠르시네."
"아, 깜짝이야!"
"뭘 그렇게 놀라."
"당연히…!"
"당연히 뭐."
당연히 그렇게 갑자기 나오면 놀라죠‥ 성규에 말에 피식 웃던 우현이 뒷자석에서 담요를 꺼내 성규의 무릎 부근에 덮어주었다. 히터도 최고 온도로 올리고선 성규를 힐끗 쳐다봤다. 창문 너머로 바다 쪽을 멍하니 보고있던 성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팔자눈썹을 일그러트렸다.
"왜 함부로 죽으려던거에요?"
"고아거든요, 엄마가 보고싶었어요. 문득."
"그럼 지금까지 나라에서 지원 받은건가?"
"그런 샘이죠. 근데 졸업하니까 성인이라고 지원이 안된데요. 고아원에서도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니까 제 발로 나왔고."
"근데 왜 죽으려는게 이 바다였어요?"
"수녀님이 그러는데, 내가 여기서 발견되서 데려온거래요."
혹시 성규씨가 여기서 태어난게 아닐까요? 나도 이 바닷가에서 태어났거든요. 형이랑 뛰어다니고 그랬었는데 세월이 지나도 이 바다가 너무 좋은거에요. 오면 편안하게 만드는 그런게 있달까. 생각나서 와봤더니 어떤 미친 사람이 죽으려고 하니까.
"그 미친 사람이 나에요?"
"네, 성규씨요."
"그냥 모른체 하지."
"그러려고 했죠, 근데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요."
"그게 뭐야."
내가 보듬어 주고 안아주고 싶었어요. 그냥 살리고 싶었던게 다에요. 세상에 버려진 사람 같이 보여서, 내가 거둬가려고.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갈래요? 성규씨가 원하는대로 지원해줄게. 성인되면 하고 싶었던거 나랑 다 해요. 나랑 매일 밥 같이 먹고 같이 자고 데이트도 하면서, 그렇게 해요, 나랑.
*
"뭐야, 여기서 뭐해."
"너 기다렸지."
"먼저 자라니까."
"저녁은, 먹었어?"
"아니, 아직."
배고프겠다, 잠시만. 거실 소파에서 조용히 앉아 기다리던 성규가 저녁도 못 먹고 퇴근한 우현에게 밥을 차려주려는지 부엌으로 걸어갔다. 네모단 반찬통 몇 개를 식탁에 놓고 먹을만큼 남은 국을 끓이려 가스레인지에 불을 가했다.
"규형."
"…응?"
"오늘 무슨 일 있었어?"
"…"
"왜, 무슨 일인데."
뒤에서 허리를 안아오는 우현의 애교에 성규가 힘 없이 웃어보이곤 뒤를 돌아 우현과 눈을 마주쳤다. 진심 어린 목소리로 눈꼬리는 축 쳐져선 저를 쳐다보는게 마냥 귀여운 강아지나 다름 없었다. 말을 안 해주면 또 혼자서 토라질까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고아원에서 연락이 왔어."
"…"
"엄마 보고왔어."
"형."
"되게 예쁘게 웃고계셨어."
"성규야."
"나보고, 잘…지냈냐고, 물으셨,"
"그만해. 알겠으니까."
성규의 부모님은 돌아가신게 분명했다. 아니라면 이렇게 울면서 얘기할리가 없다. 진짜 보고온거라면 퇴근하고 들어오자 마자 제게 안기며 신나서 떠들었을게 뻔하니까. 처음으로 마주하는, 몇 년간 기다렸을 부모님의 얼굴을 납골당에서 보고왔을거다. 작은 관 너머로 보이는 작은 국화꽂과 그 뒤에 보이는 작은 액자에 작고 어린 성규를 안고 있는 부모님에 모습이 담긴 작은 사진. 작은 성규의 머리를 당겨안았다. 두 번째로 보는 성규의 우는 모습에 가슴이 아련해졌다. 그래서, 대답은 해드렸어?
"응, 너 때문에 잘 지낸다고."
"…"
"나중에 너랑 같이 온다고 약속하고 왔어."
"…"
"엄마가 우현이 너, 보고싶데."
"그래, 같이 가자."
"…"
"그만 좀 울고."
성규의 눈을 소매로 닦아주었다. 붉어진 눈이 우현을 올려다보았다. 두 눈을 마주보고 웃어주다 성규를 다시 한 번 세게 안았다. 성규에 목덜미 쯤에 얼굴을 묻은 뒤 눈을 감았다. 형이 울면 다들 슬퍼하니까, 이제 그만 좀 울어. 저 위에서 잘 보고계실거야. 형이 나랑 이렇게 잘 지내는거 보시고 좋아하실거야. 그러니까 그만 울고 우리 키스나 할까? 음, 아니면 뜨거운 밤? 둘 다 하자고? 알겠어 이리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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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올리면 제가 쓴글은 완전 덩이 되지만 이 친구의 글이 너무 좋아서..
ㅋㅋㅋㅋ좋네요
아 마지막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