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오메가 팬픽
Gainloss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휘리릭 벌어졌다. 남자는 일어나자마자 지호를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온도계까지 재며 꼼꼼하게 따졌고 두발로 멀쩡히 일어나서 걷는데도 쓰러지지는 않을까 병약한 재벌 집 도련님 다루듯 했다. 우두망찰, 바보처럼 서있는 지호를 남자는 아침치고는 (좀 많이) 늦었지만 식사라도 하고 가라며 반강제로 다이닝룸으로 데려 왔다. 눈을 떠서 지금까지 뭐 하나 자기 힘으로 한 게 없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남자에게 주도권이 넘어가 이리저리 줏대 없이 질질 끌려 다니는 마리오네트 인형 같은 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꼴불견도 이런 꼴불견이 없어 의자에 앉아있는 지호의 안색이 퍽퍽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은인에게 뭐라 할 처지도 아니라 뚱해있는 지호에게 남자가 기분 풀라면서 달콤한 꿀차를 내왔다. 그냥 꿀차도 아닌 새콤한 레몬꿀차. 괜찮다고 거절하려 했지만 이미 남자는 뒤돌아 부엌으로 간 채였다. 콧노래까지 하며 요리에 심취해있는 모습이 아무래도 말해도 소용없을 듯 싶다. 나른한 허밍과 도마에 떨어지는 칼 소리가 제법 그럴듯하다.
넓은 등짝에 핫핑크 앞치마라니.
지호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아 고집스럽게 입술을 일자로 당겼다. 이제와 안 먹는다고 거절하기도 그렇다. 지호는 달달한 향기가 피어오르는 예쁜 황금색 꿀차를 내려다보았다.
“따듯해.”
머그컵에 두 손을 가져다대니 손난로라도 쥔 듯 훈훈한 온기가 느껴진다. 눈을 내리깔고 따스함을 즐기던 지호는 조심스럽게 눈을 떠 남자를 훔쳐보았다. 남자는 불 위에 프라이팬을 들고 중화 요리사처럼 능숙하게 조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경계심을 갖지 않은 적은 ‘그날’ 이후 처음이었다. 이 모든 게 남자가 치밀하게 꾸며낸 연기일 수도 있는데. 언제 그 달콤한 낯짝 뒤에 숨겨진 더러운 알파의 본능을 드러내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번쩍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데, ……그가 무섭지 않았다. 실은 별로 경계하고 싶지도 않았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토록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배고프죠? 짜잔. 지훈표 야채볶음밥이에요. 맛없더라도 제 정성을 봐서라도 꼭 다 드세요.”
어느새 요리가 끝났는지 남자는 고소한 냄새가 나는 야채볶음밥을 보기에도 맛깔스러운 쟁반에 담아왔다.
“지훈표 야채볶음밥?”
그건 또 무슨 요리인가 싶어 지호가 눈을 치뜨자, 남자가 아- 하고는 쑥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내 정신 좀 봐.
“어쩌다보니 통성명도 안했네요. 표지훈입니다.”
“……우지호.”
원래 타인에게 이름을 잘 알려주지 않았다. 편집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의심병이 많은 지호는 본인의 그림을 거래할 때조차 실명 대신 가명을 쓰곤 했다. 그런 그가 이 낯선 사내에게 거리낌 없이 실명을 누설하고 있는 것이다.
“어때요? 맛있어요?”
숟가락을 들어 한입 입에 넣기가 무섭게 지훈이 지호에게 물어왔다. 잘 닦인 구슬처럼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것이 꼬리가 있다면 살랑살랑 흔들 기세다. 지호는 다소 부담스러운 눈빛 속에서도 꼭꼭 음식물을 씹었다. 목이 너무 메마른 탓에 삼키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그런대로 맛있었다.
“괜찮아.”
시큰둥하게 말했을 뿐인데 지훈의 표정이 꽃이라도 핀 듯 굉장히 환해졌다. 움찔. 예상외로 상대방의 반응이 너무 좋자 지호는 괜히 껄끄러워지고, 부끄러워지고, 여하튼 기분이 이상해졌다.
“학생이에요? 고등학생?”
뭐야, 이 개소리는. 지호는 먹다말고 불쾌해져서 찌릿 지훈을 째려보았다. 지호의 세 배나 되는, 매우 수북하게 쌓인 볶음밥을 빠르게 없애 가던 지훈은 노골적으로 노려 보는 지호의 시선에 뭐가 잘못되었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주 순진한 얼굴이다. 하아. 지호는 탁- 소리 나게 수저를 내려놓고 말했다.
“나 원숭이띠다.”
“원숭이띠? 원숭이 띠면… 스물넷인데?”
말도 안 돼. 경악으로 입을 쩍 벌린 지훈을 무시하며 지호는 와구와구 다시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이를 밝히면 노안이라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는데, 근래 들어서부터 급격하게 동안 페이스가 되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게 딱 저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아무리 그래도 고삐리라니 날 뭘로 보고.
“하, 하. 저보다 형이네요?”
이번에는 지호의 눈이 커질 차례였다. 어이가 없어 지호는 지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르게 스캔했다. 이렇게 듬직한 애가? 나보다 어리다고? 지훈이 딱히 나이 많아 보이는 생김새는 아니었지만 성숙한 티가 나는 것이 결코 지호의 아래로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전 스물 셋이에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나이를 공개해주신다. 지호는 우물우물 밥알을 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 참 살고 볼 일이다.
처음에는 별로 입맛이 없었는데 막상 빈 배에 뭐라도 들어가니까 식욕이 땡긴다. 어느덧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 지호를 보고 지훈이 빙그레 웃었다. 그 미소를 보니 괜히 심장 부위가 간지럽다.
“아직 많이 남아있어요. 더 드릴까요?”
“어어?”
지호의 그릇을 들고 지훈이 일어서자 당황해서 지호도 따라 일어섰다. 아냐, 넌 먹고 있어. 내가 덜어 옮기면 되니까ㅡ 얻어먹는 처지에 밥까지 떠서 먹여 달라고 할 정도로 지호는 염치없지 않았다. 눈치 보여 말리려던 것이 의도치 않게 지훈의 팔뚝을 휙 낚아채버리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그릇이 바닥에 쿵 떨어졌다. 코렐 사의 명품 그릇답게 깨지지도 않고 흠집도 안 났지만 문제는…….
“아.”
단단한 근육이 손바닥 안에서 따듯한 열기를 뿜고 있었다. 그 원초적인 감각에 지호는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후다닥 손을 등 뒤로 숨겼다. 그런 지호를 보는 지훈의 눈동자가 아주 까맣다. 블랙홀이라도 심어놓은 듯이 빛이란 빛은 모조리 빨아들이는 듯하다. 지훈이 천천히 지호에게 다가왔지만 지호는 온몸이 굳어버려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쿵 쿵 쿵. 불규칙한 심장박동이 지진난 것처럼 정신없이 울려댄다. 피가 통째로 거꾸로 도는 것 같다. 지훈이 큰 손을 뻗어 살며시 지호의 얼굴을 덮는다. 아, 지훈의 뜨거운 손이 피부에 닿자마자 지호는 자기도 모르게 묘한 소리를 흘렸다. 뭐지, 뭐지. 비상사태가 걸리고 머릿속에서 적색 신호등이 깜빡 켜졌지만 이상하게도 손발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질끈. 지호는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밥알이 묻어있길래.”
긴장에 떨고 있던 지호의 귀에 재미있다는 음성이 파고들었다. 홧김에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뜬 지호는 부드럽게 웃고 있는 지훈을 보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야. 뿅망치로 한 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다. 놀림당한 기분에 지호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지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호에게 볶음밥을 덜어내 주고 자기는 자리에 멀쩡히 앉는다. 지호만, 새됐다.
“뭐해요. 밥 안 먹어요?”
한쪽 입꼬리를 씩 당기는 지훈의 위로 웬 능구렁이 한 마리가 보이는 건, 분명히 자신이 피곤해서라고ㅡ 지호는 생각했다.
***
밥을 두 공기나 해치우고 표지훈에게 떠밀려 화장실로 가서 치카치카 양치질까지 한 지호는 드디어 자신의 집에 가게 되었다. 사십 평도 더 되는 이 넓은 공간을 지훈 혼자 쓰는 듯 다른 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 가정부 아주머니가 다녀가는 것 외에는 아무도 집에 안 온다던 지훈의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복 받은 자식. 졸부 집 아들임에 틀림없는 지훈에게 뜻 모를 질투가 일어났지만 별로 그가 밉지는 않았다. 걱정된다며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지훈을 간신히 뜯어 말린 지호는 어정쩡하게 현관 앞에 서있었다. 아직도, 감사인사를 하지 않았다.
“정말 괜찮겠어요?”
그렇게 묻는 지훈의 말은 그 어떤 흑막도 없는 순수한 호의라서 더 말문이 막혔다. 지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혀로 입천장을 꾹꾹 눌렀다. 오그라드는 말, 정말 못하는데.
“야,”
“네?”
지호가 쭈볏쭈볏 거린다. 부지런히 손을 꼼지락대는 지호는 누가보기에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훈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기다렸다.
“그…….”
“?”
“고마…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개미 방구소리보다도 더 작은 지호의 말에 지훈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입을 헤- 벌렸다. 이거 웃어도 되나요? 하지만 대놓고 웃어버리면 분명히 지호가 기분 나빠할 게 뻔했다. 당황스러워 하는 지훈을 버려둔 채 얼른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나려 했던 지호는 문을 열기 직전, 신발장 위에 걸린 그림 한 장을 보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물감이 아니라 사람 피로 칠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징그러운 붉은 하늘. 인간의 실루엣이 드리워진 시커먼 대지와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 익숙한 적색 풍경에 지호의 눈가가 떨렸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익숙하지는 않았다.
저건 바로 내가 그렸던 그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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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끝~! 수학점수가 이십점이나 올라서 기뻐요. 쉽긴 했지만...서도.. 흐흐. 시험이 끝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네요 ㅠ3ㅠ 뭔가 지훈이와 지호의 첫만남이라 공들여서 써보고싶었지만 여김없이 똥망이네요 으흑흑 제 필력에 좌절하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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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봐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사랑해요..!!!!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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