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까지 운전을 해서 가는 도중에도 눈물은 끊이질 않았고 손이 자꾸만 떨려서 내가 어떻게 운전해서 온건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응급실로 향하여 수술에 들어가 이곳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재환이를 찾았다.
역시나 재환이는 보이지 않았다. 수술중인지 확인해보려고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실 가려던 찰나, 응급실 입구에 있는 의자에 빅스 멤버들이 사색이 되어 모여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조용히 의자 맨 끝에 앉아 멤버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려고 귀를 귀울였다.
"아무 일도 없을거야, 얘들아. 너무 기운빠져 있지 말자."
"맞아요. 수술 잘 끝나서 금방 회복할거예요."
"근데.. 켄 형 어디 간다고 하고 나간거야?"
"잠깐 집에 다녀온다 그랬어. 그런데 사고 난 장소가 올림픽대로였대. 그 쪽은 잠실 방향인데 왜 그리로 갔는지 모르겠어."
"그래..? 그럼 사고는 어떻게 난거야?"
"비 와서 길이 미끄러웠나봐.. 뭐가 급했는지 과속하다가 차가 미끄러지면서 전복됐는데 그 상태로 가드레일에 세게 부딫힌거래. 조금 큰 사고긴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수술만 잘되면 아무 문제 없을거라 하셨으니까 수술 잘 끝나기를 기다리자. 여기에 다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일단 다들 숙소에 가. 수술 끝날 때까지는 내가 기다릴게."
"나도 같이 있을게. 너넨 가서 쉬어."
학연오빠가 하는 말을 엿듣는데 멈추었던 울음이 터져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재환이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잔인하고 고통스럽다. 혹시라도 재환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된다면, 정말 혹시라도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 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지금으로서는 재환이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야 하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사실이 더욱 좌절스럽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을 팔아서라도 사고 전으로 되돌리고 싶은 심정이다.
또 재환이가 깨어나고 난 후에는 미안해서 어떻게 재환이의 얼굴을 봐야할 지도 모르겠다. 분명 재환이는 내 탓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고 다독여주겠지.. 그래도 나는 이번 일이 재환이에게 평생 죄로 남아 자책하고 미안해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마음이 착잡해서 아픈 것도 졸린 것도 모두 잊게 되었다.
보호자 대기실 TV화면에 떠있는 이재환이란 이름 옆에 '수술 중' 이라는 글자가 왜 그리도 아픈지, 밤 사이에 흘린 눈물이 아마 내가 평생 흘렸던 눈물보다 더 많을 것임이 분명하다. 언제 수술이 끝날 지도 모른 채로, 그렇게 불안함과 두려움에 둘러쌓여 지옥같은 새벽이 지나고 어느덧 아침 7시를 향하고 있었다.
밤새 보호자 대기실을 같이 지켰던 학연오빠와 택운오빠도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그래도 재환이 말고도 다른 수술 환자들이 있어서 마음 편히 보호자 대기실에 있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인 8시, 수술실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의사선생님이 걸어나왔다. 학연 오빠와 택운 오빠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달려갔다. 나도 급히 달려가 근처에 서서 수술 결과를 들었다.
"이재환 환자 보호자 되시나요?"
"네, 저희가 보호자입니다. 재환이 수술.. 잘 끝났나요…?"
"다행히 수술은 아주 잘 되었어요. 생각보다 환자의 부상이 심해서 처음엔 출혈 때문에 쉽지 않은 수술이었는데, 그래도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환자의 갈비뼈가 많이 부서진 상태였고, 팔 전체 부분에 심한 타박상이 보였고, 또 뇌 손상이 우려되었었는데, 딱히 외적으로 손상된 게 보이진 않아 일단 회복 후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검진을 받아보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하.. 다행이네요. 진짜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의사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갑자기 찾아온 안도감과 그 동안의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 같다. 힘이 풀린건 학연 오빠도 마찬가지인지 택운오빠의 부축을 받으며 병실로 향하는 걸 보았다.
다친 재환이가 깨어나기까지 병실 안에서 같이 기다리는 것도 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문득 슬퍼졌지만, 계속 병원에서 지내면서 깨어나기를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재환이의 수술이 끝나고 3일 정도가 지났지만 아직 깨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하루정도면 정신이 들 줄 알았던 나는 수술이 혹시나 잘못되진 않은 건가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알고보니 간혹가다 마취제가 몸에 잘받는 사람들은 최대 5일까지도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재환이가 그런 케이스고.
지난 3일동안 재환이가 있는 1인실에서 가장 가까운 휴게실에서 지냈다. 재환이가 깨어났다는 소식이라도 들어야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곳을 떠날 수 없었다.
무기력하게 앉아있는데 그 순간, 택운이 오빠와 상혁이가 어디론가 급히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긴장된 마음으로 빠르게 둘이 향한 곳으로 걸어가 보았다. 그 곳은 재환이 부모님이 계시는 다른 휴게실이었다.
"어머님, 아버님! 재환이 깨어났어요!!"
드디어, 드디어 재환이가 깨어났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깨어난 것 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해서 안도의 눈물이 났다. 이제 잘 회복하는 일만 남았다. 눈을 떠준 재환이가 너무 고마웠다.
깨어난 재환이를 단 5분만이라도 만나고 싶지만, 멤버들과 재환이 부모님이 병실에 교대로 계셔서 내가 들어가 볼 틈이 없어 속상하다. 재환이가 혹시라도 병실 밖을 나올까봐 그 후로도 병원을 떠날 수 없어서 이곳을 지키고 있다.
요즘 만큼 내가 프리랜서라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재환이의 얼굴은 한 번이라도 보고 가는 게 내 마음도 편할 것 같아 기약없이 계속 기다렸다.
재환이가 깨어난 지 하루가 되었을 때, 사고 후 5일동안 집에 들르지 못한 나의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집에 간 사이에 재환이가 나오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조급해져 최대한 빠르게 집에 들러 씻고 옷도 갈아입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또 하루가 흘러 내 몸도 마음도 점점 더 지쳐갈 때쯤, 휴게실 앞에서 학연 오빠와 의사 선생님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검사 결과 나왔나요…?"
학연오빠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레 선생님에게 물어본다. 내가 집에 다녀온 사이에 재환 오빠가 무슨 검사를 받은 모양이다.
"이재환 환자, 기억상실이 맞네요. 정확한 병명은 역행성 부분 기억상실증입니다."
"네? 그게 뭔가요..?"
"쉽게 말해서 사고 당하기 전의 기억의 일정한 부분을 잊어 버리게 되는 겁니다. 핸드폰 사진첩에서 사진 몇 장이 날아갔다고 생각하면 쉽죠. 환자가 주위 가까운 지인들은 다 기억하는 걸 보면, 잃어버린 그 기억이 이재환 환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던 기억일 지, 또 행복했던 기억일 지, 아님 스트레스를 주었던 기억일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기분이 들었다. 기억상실이라니..
"그럼.. 그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는 건가요?"
"이 역행성 부분 기억 상실증이 흔한 케이스가 아니라 확답을 드릴 순 없지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환자의 정신적인 부분, 혹은 뇌에 직접적으로 큰 무리가 갈 수 있으므로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게다가 지금 이재환 환자는 신체적으로도 회복이 다 되지도 않은 상태이고, 뇌에 손상을 입은 것도 절대안정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최소 6개월은 무리가 될 수 있는 활동을 자제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일을 최소화 해야 하는게 관건입니다."
"아, 네… 그럼 가수 활동도 잠시 쉬는게 맞는 거겠죠?"
"아무래도 그 편이 환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기적으로 검진 받으면서 추후 상태를 살펴보면, 안정을 취해야 할 기간이 6개월보다 더 앞당겨 질 수도 있으니 꾸준히 관리를 잘 해야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심각한 표정으로 병실로 향하는 학연오빠의 뒷모습을 보며 나 또한 생각에 잠겼다. 역행성 부분 기억 상실증인데 주위 지인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고? 그럼 나를 기억하고 있는 지는 아직 알 방법이 없네.. 그런데, 멤버들이 아는 재환이의 지인이 재환이 지인의 대부분일텐데? 그럼 남은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거잖아…?
순간 불안한 생각이 나를 스쳤고 그 때부터 불안함에 또 다시 걱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불행의 시작이 되었음을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