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얘가 왜이래? " 혈기왕성한 나이는 이미 지난 순규가 집에 마스카라가 다 떡이되고 팬더 처럼 번진 눈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자 성규는 식겁했다. 아, 얘 술취하면 나 진짜 반죽는데 어쩌지? 성규의 끝없는 고민에 순규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성규는 고민을 멈추질 않았다. 반쯤 풀린 눈으로 순규가 입을 열었다.
" 나 술 안먹었거든, 이 개새끼야? " " 이게 오빠한테!! "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으어엉. 계속 울음을 멈추지 않고 꺽꺽대자 성규가 조심스레 다가가 발로 순규의 무릎을 툭툭, 치더니 돌아올 보복이 무서워 순규의 가방사이로 발을 숨겼다.
" 야 왜 우냐? " " 이런 씨발라먹을 씨지브이 새끼야!! "
왜 나한테 난리야 기지배야! 씻고 들어가서 남이자 퍼뜩 자! 나름 도와주려고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돌아오는건 순규의 육두문자에 삐진 성규가 괜히 삐죽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 야 김성규 너 멈춰라?.. " " 이게 오빠한테!! " " 진짜 오빠면 나 좀 도와줘 부랄아 엉엉. " " 싫은데? " " 동생이 불쌍하지도 않냐? "
순규를 오래 봐온 결과 분명 둘 중 하나임에 틀림 없다. 하나는 오빠아, 친구들이 명품백 샀다고 자랑질이야. 하나만 사주면 안돼? 또 다른 하나는 오빠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복수해줘!! 제발 전자이기를 빈다. 내가 지금까지 김순규 전남친들한테 대리복수만 벌써 스물한번째니.. 우선 응이라고 대답만 하면 저 시끄러운 울음소리라도 어떻게 막아볼 수 있을까 해서 아 알겠어! 뭔데! 라며 책임진다는 약속을 입 밖으로 뱉고 말았다. 이런 신발.
" 나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복수해줘!! "
이런 SSYANG. 성규가 제발 아니였으면 좋겠다고 부정하고 또 부정했던 그 말이 순규의 입에서 저절로 턱이 떡 하고는 벌어졌다. 이로써 인피니트 규인네에 이은 새로운 턱쩍남.
" 내가 왜!! 너 내가 저번에 사귄 남자친구 대리복수 해주다가, 엉? 어떻게 됐더라? 야!! 나도 사람이야 이기지배야!! " " 아씨!! 나 복수 안해주면 오빠가 저번에 엄마가 아끼는 그릇 깨먹은거랑, 또 뭐있더라? " " 야!! " " 아, 오빠가 엄마 지갑에서 돈도 세번이나 슬쩍한거 그거 다 말할거야!! " " 아 알았어 해주면 되잖아 진짜!! "
오빠 고마워♥ 하트까지 남발해가며 애교를 부리고 웃어대는 여동생에 성규는 어이가 없었다. 하트는 좀 빼라? 해줄 마음 쏙 사라지니깐 흥.
" 오빠 그새끼 진짜 진짜 악질 중의 최 최 최! 악질이야 정말. " " 어련하시겠어요.. " " 아 비꼬지말고 들어!! 지금 까지 강동각부터 원반까지 사귀면서 걔보다 나쁜애는 없을껄? " " 저번에 바람핀 애보다? " " 차라리 바람이나아. 이번엔 뭔줄 알어? " " 뭔데 " 그새끼가 게이야. 게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는 순규에 옆에서 듣고있던 우현이 아니꼬운 표정으로 순규의 머리를 툭, 민다. " 그러니깐 안목 좀 높여라. 잘생겼다고 아무나 다 사귀고 다니지 말고 " " 이씨! 나 눈 높아! " " 야 나중에 결혼하면 오빠같은 남자가 진짜 좋은거야 이 기지배야 " " 기지배라고 하지마 이 고자새끼야! "
* 우현이 오늘 참석할 행사는 서울 망원홀에서열리는 울림 회장 김정렬 취임 39주년 기념식이었다. 울림브랜드 제품은 사실 별로 우현의 취향은 아니었다. 실속없고 아무런 보온처리도 되지 않는 털잠바 하나에 네임가격으로 오백만원. 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오백만원으로 기부를 하지 그래? " 남부사장, 오랜만일세. " " 아, 예.. 뭐. " " 취임식에서 이번 12월발 중순에 출시될 제품을 하나 소개할까 하는데, 잘 봐주게. " " 아, 예 뭐. "
우현은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정렬의 손을 쳐다봤고 정렬은 주머니에 장갑을 꺼내 낀 후, 악수를 청했다.
" 악수는 안받아도 되죠? 제가 피부가 예민해서. " 정렬이 우현을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우현은 휘파람을 부르며 스키니진 주머니에 검지,중지,약지 손가락을 대충 찔러놓고는 홀 안으로 들어갔다.
" 어이, 정렬씨. 너는 나한테 안되세요. "
* " 그러니깐 직업이 없다고? " " 응. " " 니가 왠일이냐? 뜯어벗길 것도 없는 무직남친이 있었고? " " 얼굴이 말 다했었어. " " 오빠보다 잘생겼냐? " " 오빠. " " 왜? " " 정신차리고 거울봐. " 예리한 놈.. 순규의 전남친 프로필을 쭈욱 훑어본 성규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혹시 얘가 말한 게이라는거 그냥 순전히 구라아냐? 김순규가 싫어서 헤어지고 싶은데, 거머리 같아서 게이라고 했을 수도 있지.. 설마 무직도 그냥 거짓말인가?
" 야, 김순규. " " 왜 삐졌냐? " " 남우현 이 자식 무직 맞아? " " 응. 차도 없고 가진게 아~무것도 없어. "
게이도 맞다 이거지 그럼? 그러니까 결론은.
" 오빠가 꼬시기만 하면 돼. "
오 하나님. 머글인 제가 게이를 꼬시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아 보고있니? 김성규 이십대 끝 줄 다 채워가면서 이짓하고있다, 하하하. 성규는 우현의 사진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이여도 남자가 무조건적으로 다 좋은건 아니겠지? 날 싫어하면 어떡해? 사실상, 성규는 이 복수를 별로 열심히 할 필요성은 없었다. 순규의 성격은 성규와 180도 다르게 단순 그 자체이기 때문에 3주후면 금방 잊어버릴게 분명했다. 하지만 성규는 새로운 소재의 복수극에 이왕 하는거 제대로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 김성규와! " " 김순규의! " " 졸라 재밌는 복수시리즈!! " " 남우현 복수하기!! " " 오예!! " " 우와!! "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저것들이.. 자랑스런 딸과 아들을 두신 나여사가 혀를 끌끌차며 세탁기에서 빨래를 걷어갔다. 이번에 또 순규년 차인거야? 몇번째냐 딸아! 엄마는 말이야 학창시절에, 엄마들의 거짓말 1순위 학창시절 나는 이랬었어. 성규와 순규는 또 시작되는 엄마의 경험담 얘기에 귀를 틀어 막고는 본격적인 남우현 골탕먹이기 작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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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많이 낡긴 했지만 엄마한테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들어가며 받은 양복을 멋있게 차려입은 성규가 한손에는 양말을 또 다른 한손에는 식빵을 들고 신발을 대충 구겨 신는다.
" 다녀올게! " " 개새끼야 오늘 복수 화이팅 하세요!! "
징하다 징해.. 알겠어!! 아침이라 땡땡 부은 얼굴에 이은 땡땡 부은 목소리로 대답한 성규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데 아침부터 재수가 더럽게도 없을 모양인지 지나가던 비둘기가 양복 허리라인에 새하얗고 고운 대변을 그만. 웁스 남자는 허리가 생명인데.
" 개짜증나 진짜!! "
친절한 성규씨 01 멋지게 옷을 갈아입고 우울하게 야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칼퇴근을 하면서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성규는 결국 멋을 포기했다. 미친. 천하의 김성규가 야동도 아니고 멋을 포기해? 하긴 8시 30분까지 출근해서 가자마자 자뻑남 이호원 심부름도 해야되고 프린트물 복사도 해야되는데 누가 감히 멋을 지키고 회사를 오겠어. 입술로 부르르, 소리를 내며 성규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갑자기 주머니 속에서 지잉 하고는 작은 진동이 울렸다. 하나님 부처님 알리신님 호느님 제발 이부장 그 개새끼만 아니게 해주소서! 성규가 천번이고 만번이고 기도를 하며 핸드폰 액정을 본 순간!
발신자 이호원개새끼. 성규는 그 후로 종교같은거 안 가지고 살기로 마음먹었단다. " 아이고 부장님! ..아, 거의다 도착했.. "
오늘 하루도 힘차게 이리 굽신! 저리 굽신! 전화를 끊은 성규는 짜증이 이빠이 데쓰로 나기 시작했다. 멋도 포기하고 왔는데 야근까지 하게 생겼구나.. 그렇구나. 지하철 역 앞까지 도착한 성규가 발을 동동 굴렀다. 핸드폰 한번 앞 한번 핸드폰 한번 옆 한번 이호원 그 개새끼가 내 눈앞에 있지도 않은데 괜히 눈치가 보였다. 지금 내 하루 생사가 걸려있는 문제인데 멋이 중요해? 성규가 구두를 벗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운동화를 꺼내어 신발끈까지 꽁꽁 동여맸다.
" 미친. 남우현 복수는 어쩌고! "
아 근데 남우현 얼굴도 모르는데 내가 복수는 어떻게 하고 만나는건 또 어떻게 만나. 아니야 안한다고 했다가는 내 목숨이 저 멀리 날아갈지도 몰라.. 그 생각에 다시 땅이 꺼질 것 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빡빡 털었다. 이호원개새끼의 넓은 아량으로 야근 취소에 순규기지배의 바다같은 마음으로 복수 그런거 안해도 된다고 하면 지옥에 떨어져도 한이 없을 텐데. 다 포기 한 채 괜히 옆에 있던 쓰레기통을 툭툭 차면서 투덜투덜 거리자 바퀴에 거북이가 달렸는지 이제서야 지하철이 도착했다.
" 미친거 아니야? " " 안미쳤는데요? " " 아 그러세, "
뭐야 이 개새끼는! 성규가 힉 소리를 내며 놀란 표정으로 말 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봤다. 미친. 또라이 아냐?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 공부안하고 강남일대 클럽에서 짜라빠빠나 흥겹게 추고다니는 학생이에요. 를 티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옷 좀 봐라 으이구. 성규가 쯧쯧 소리를 내며 괜히 가방에서 회사 사원증을 꺼내어 목에 걸었다. 그리고 대기업 'WH 그룹'의 로고표시를 더욱 더 돋보이게 하기위해 만지작 거렸다. 어라? 근데 왜 반응이 없지. 너 이새끼 돈 좀 있나보네? 성규가 아무리 옆에있던 남자새끼의 눈 앞에 대놓고 사원증을 들이 밀어도 남자새끼의 표정은 너 지금 뭐하냐 유치하게. 라는 인소틱한 표정, 아니지 시크릿가든의 김주원에 빙의라도 된 듯 성규를 쳐다봤다.
" 저기요. " " 네? " " 그 사원증 한개도 안부러우니깐 좀 치워주실래요? "
미친. 다 알고 있었어? 내가 자랑하는걸 알고 있었단 말이야? 성규가 속으로 젠장을 연신 외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상 김성규가 남자한테 사원증을 대놓고 보여주며 나 WH다닌다를 자랑하고 있는게 눈에 뻔히 보였지만. 하지만 이대로 죄송합니다 라고 말할 김성규였다면 주인공도 아니었겠지. 괜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원증을 양복주머니 안으로 집어넣고는, " 죄송합니다. 자랑하려던게 아니었는데.. 허허 "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아무리 김성규래도 일찐st 룩을 완성시킨 남자가 무서웠겠지. 그제서야 남자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아 뭐, 아시면 됐어요. 라고 성규에게 싸가지 없는 미소를 날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성규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지하철에서 내렸다. 아니 근데 내가 왜 무서워한거야? 저 개새 지하철 타고 다니는거 보면 나랑 별로 다를 것도 없는 루저일뿐인데? 라고 콧김을 뿡뿡 내뱉으며 생각하긴 했는데 그래도 뭐 행동에 후회는 없었다. 괜히 그 일찐처럼 보이는 학생한테 대들어서 좋을 것 없고 뭐. 그래 어차피 빌빌 기는 인생 끝까지 빌빌 기어보자!
*
" 장난해요? 지금 시간이 몇시야. " " 9시 10분이요.. " " 원래 몇시까지 와야하는지 알아요, 몰라요. " " 알아요. "
또시작했다. 저 사람 가르치려는 저 짜증나는 말 뽄새. 왜 지각했냐는 호원의 말해 성규는 아침에 비둘기가 남자의 생명이라는 허리! 에 새하얀 응가를 해버리는 바람에 갈아입고 와서..
" 그럼 지금 허리에 있는 새하얀 응가는 뭐죠? " " ..이거는 요플레!! "
성규의 요플레 드립에 일순간 회사에는 침묵 상태가 되었다. 아니 왜그래요 말좀 하세요.. 호원이 아주 어이가 없단 목소리로 어쨌든 오면 된거라며 다음부터 지각하지 말라고 대충 잔소리를 하고는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5년째 사원! 나는 왜 5년째 같은 자리를 맴도는가! 아니 내가 저 장동우 개새끼보다 못한게 뭐야! 키도 내가 훨씬 크지 얼굴도 내가 더 매력있지. 또 뭐야 그 일 처리 능력도 내가 차라리 나은 것 같고 말도 내가 더 잘하고!! 근데 왜 쟤는 온지 2년밖에 안됬는데 대리냐고!! 라고 마음 속으로 장동우를 실컷 껌보다도 더 질겅질겅 씹고있는데,
" 성규야 이거 복사좀..! 헤헤 " " 응. 아니 네 장대리님. " " 아이 뭐 존댓말 까지 하고 그래! "
그래봤자 달라지는건 없다. 에휴 장동우 욕하기 전에 내가 이 지긋지긋한 사원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보자. 남우현이 잘생겼다고 했으니까 이왕 하는거 남우현을 신명나게 꼬셔서 연예인을 시킨 후 돈만 뜯어낼까? 아니야 그건 아니지. 내가 평생 남우현이랑 같이 살면서 게이인생을 걸어갈 것도 아니잖아.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 김성규라고!!
" 성규씨 일 안해? " " 어이구 일 합니다!! "
그래 우선은 일이나 열심히 하자. 이게 내가 이 개같은 사원에서 벗어날 가장 정상적이고 안전한 방법같으니까 오 갓!
오랜만에 눈에 불을 켜고 컴퓨터 자판을 신명나게 두들기려고 했는데 여기저기서 온갖 복사심부름과 커피심부름을 하도 시켜대니 제대로 일을 할리가 있나. 이건 비정규직보다 못한 대우라고! 나도 나름 사원인데 왜 사원취급을 안해주냐 그거야. 그래도 복사와 커피심부름을 하다보니 시간은 꽤 빨리갔다. 벌써 시간은 점심시간. 오늘은 무슨 메뉴를 먹어야 하나 나름 행복한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개새끼가 나를 부른다. 나 좀 부르지마 제발!! 점심시간이잖아!!
" 어이쿠 부장님 왜..? " " 부사장님한테 좀 가봐요. "
내가 무슨 잘못했나? 어떡하지. 나 뭐 물건 빼돌린 것도 없고 회사 보고서 같은거 빼돌린 적도 없고 스파이도 아닌데. 분명 30초전까지만해도 이런 심부름을 하면서도 WH그룹에 나름 취직을 했다는 생각에 그저 싱글벙글이었는데 헐. 부사장실로 발걸음을 향하면서 처음 회사 취직했을 때 엄마!! 나 드디어 취직했어!! 엄마가 항상 무시하던 나 김성규가 WH그룹에 취직을 했다고!! 라며 환호성을 지르던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헐. 어떡하지? 부사장앞에서 땀에 쩔은 손을 양복 허벅지 부근에 벅벅 문지르던 성규가 문고리를 조심스레 돌렸다. 아, 어떡해 진짜. 미추어 버리겠네. 스트레쓰!! 내가 제일 존경하는 언제 어디서나 평온하신 개리 형님을 생각하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 미친. 저 새끼 아까 그 일찐새끼잖아 저거. 뭐야 왜 여깄어. 안잡아가? " 누구세요..? " " 웰컴 투 부사, 아 부사장이 영어로 뭐지? "
그러니깐 지금 그 말은
" 에이 나 부사장 아니니깐 쫄지마요. "
아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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