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깃 흘깃, 제 눈가에, 뺨에, 코에 입술. 그리고는 발끝까지. 훑어보는 시선에 온 몸이 얼어붙었다.
알아차리기 힘들정도로 잠깐 잠깐씩 스쳐지나가는,신경을 꽤 기울이지 않으면 모를법한 시선이었다. 살짝 째진 눈매 밑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까만 눈동자. 언제나처럼 저를 향한 그 눈의 주인공은, 반장 강승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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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윤X남태현 근하신년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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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비슬 비에 젖은듯한 까만 머리가 형광등 불빛아래에 빛났다. 까만 머리와는 다른 분이 떨어질 것만 같은 여느 여자애들보다 고운 두 뺨. 강아지 같이 뽀얗고 말간 웃음. 간혹가며 코를 찡그리며 장난끼 가득한 이 나이대의 소년들의 풋풋한 웃음은 묘한 매력을 지녔다. 분명 말갛고 고운 강아지 같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선. 육체를 이루는 선은 묘하게 남자아이와 남자.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누비는 소년 다워서 넋을 잃게만 했다. 쭉 뻗은 어깨의 선과 쇄골의 선이라던가 허벅지부터 발목께까지 이어지는 다리의 선 둥이 빛났다. 형광등의 껌벅껌벅이는 죽은 주홍불빛이 그의 얼굴을, 몸을 따라 미끄러졌다. 껌벅껌벅 죽어가는 시선. 점멸하는 빛.
··정말로, 그 시선의 의미를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나는 정말이지 곤란했다.
피부 위로 개미가 기어가는 듯 꿈틀꿈틀 신경을 좀 먹는 시선. 마주치면 미끄러져버려 이내 형체를 잃어버리는.그럼에도 그 마주친 검은 눈동자 속에 담긴 뜻 모를 뜨거운 무언가를 채 삼킬 수 없어서. 뱉어낼 수도 없는 그것을 마주할 때면, 가슴 한 쪽이 답답해져오게 되어버리는.
친구라기엔 ,네가 너무도 멀다. 괜시리 주먹을 폈다 쥐었다. 거리는 3센티. 귓가로 퍼지는 네가 밭아낸 찬 공기를 몰아내는 뜨거운 숨. 바로 옆에서 울리는 마음을 비뚫게 하는, 웅웅대며 휘저어놓는 낮은 톤의 목소리. 괜히 책상 위로 두 팔을 뻗고선 두 팔 사이로 얼굴을 가둔 채 숨을 죽였다.
"남태현."
"..."
띠-소리와 함께 교실 안 히터가 꺼졌다. 부연 숨이 얼굴을 가둔 팔 사이에 닿더니 그대로 얼굴로 다시 닿았다. 미끌미끌한 습기. 따스한 숨. 어느쪽을 택해야 하는걸까. 멍한 머리가 제대로 된 사고를 불러오지 않는다. 잔뜩 울렁거리는 멍청한 가슴 마냥 머리도 멍청해진 모양이지. 문득 동생이 목도리를 짜겠다고 가져다놓은 실타래를 키우는 고양이가 복잡하고 어지럽게 위 아래가 어딘지도 모를만큼 엉켜버린 그 모습이 생각났다. 지금 자신이, 딱 그 모양이 아닐까.
"남태현."
"..."
"야, 자냐?"
투박하고 거친 손이 제 머리 위로 올라왔다. 쪼그라드려는 목을 당당히 피려 애를 썼다. 숨이,막혔다. 숨을 어떻게 쉬어야하는지 나는 방법을 잊었다. 아무리 숨을 몰아쉬려해도 숨이 자꾸만 막혀와서, 숨이 계속 모자라만와서 나는···한번 머리 위에 얹어진 그 온기는 조심스레 제 머리를 보다듬었다. 머릿칼 한 점 한점이 무슨 해외 유명 조각상인 것마냥, 녀석이 몇일몇날 걸려 겨우 베껴적은 악보마냥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단 듯이 쓸었다.
"···잘자."
나는, 그런 네가 어려웠다.
*
"태현아! 여기,여기!"
진우형이 손을 흔들었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 위로 얹혀진 회색 후드가 올망졸망하니 귀여웠다. 똘망똘망하고 물기가 고여있을 것 같은 커다란 눈이 눈과 눈이 마주치자 사르르 접히며 귀엽게 웃었다. 이제 막 고 3되시는 분이 고1 교실에 내려와 앉아있음 어쩌란건지. 분명 아무 생각없이 내려와 앉아있을 진우형이지만 고3이라는 것에 괜히 겁을 먹은 채 흘끔흘끔 보는 반 애들의 시선이 달갑지 않다.
"형, 염색한 거 걸리면 어떻게 되려구요"
"그래서 후드썼지."
쨘! 이라면서 두손 검지를 이용해 후드를 가리켰다. 깊게 눌러쓴 후드는 확실히 귀밑머리라거나 대부분의 갈색빛의 반짝이는 머리를 감춰줬지만··후드 바깥으로 튀어나온 눈썹까지 덮고있는 꼬불꼬불한 갈색 머리는 어쩌자는건지. 진우형은 가끔씩 하나를 빼먹곤한다. 그 허술함과 헐렁함, 귀염상인 외모와 알맞는 엉성함과 어색함들이 진우형의 매력이긴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곤란해질때가 많다.최대한 반 애들의 시선과 닿지 않게끔 애들 시선이 향하는쪽으로 등을 보였다. 등에 빼곡히 박혔던 시선들이 김이 샜다는 듯 차차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동시에 다시 우르르 시끄러워지는 교실.
"형. 앞머리는요."
"아!맞다. 그러게."
보일줄은 몰랐네. 어떡하지..라며 진우형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손가락을 꼬아대었다. 역시 아무 생각없이 온 게 맞다. 아무래도 매주 월요일이면 오전 6시 쯔음 등교하는 진우형이니 충분히 선도부의 눈을 피해 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으리라. 미간을 찌푸리고서는 태현아 어떡해,나? 라며 곧바로 고개를 치든다. 올망졸망한 눈동자 속 울음끼가 가득하다. 곤란한 마음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노라니 진우형이 손을 턱 잡아온다. 언뜻 하얗고 고와보이는 손이지만 남자다운 거칠거칠한 촉감. 갑작스레, 마주 잡힌 손. 까슬한 촉감. 절로 놀라 손을 절로 빼려하니 세게 잡아쥔다.
"어떡하지, 태현아?"
진우형의 시선이 느릿하게, 잡힌 손 부터 허리께를, 그리고 어깨, 목의 선. 얼굴을 느릿하게 훑어온다. 마냥 말똥말똥하던 사슴 같은 눈이 길게 접히고는 묘한 둥근 곡선을 그렸다. 어깨를 은근슬쩍 감싸오는 팔의 단단함. 기이한 미소. 얼어붙은 몸은 눈만이 갈데없이 방황했다. 손을 풀어야하나, 스킨쉽이 싫다고 해야하나? 이러다가 버릇 없는 후배로 2학년 선배들한테 낙인 찍히면 어떻게 되는건가. 민호형, 승훈형··미움 받기 싫은 형들의 목록이 차근히 떠올라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아랫입술을 가만히 꾹 윗니로 눌렀다.
가끔씩 접촉해오는 진우형의 스킨쉽은, 자신을 매번 혼돈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니까, 이것은 강승윤의 시선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강승윤의 시선이 마음의 울렁거림을 동반한 것이었다면 이것은, 어쩐지 음습하고 기이한, 묘한. 어지러운. 온 몸을 얼어붙게 하는 무언가 거부감이 드는 어떠한 것들.
아무렇지도 않게 떨쳐내면 되는거다. 스킨쉽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된다. 이해해줄지도 모른다. 지긋이 물던 아랫입술을 조금 뜯었다. 반대편 손을 천천히 올려 최대한 자연스럽게 진우형의 손과 맞닿게 했다. 떨어지게만 하면 되는거다,라며 속으로 알 수 없는 기합을 넣은 채로 찬찬히 진우형의 손을 밀려 애를썼다. 예상과는 다르게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밀고 있어 힘이 가해질텐데도 불구하고 진우형의 얼굴은 미동도 없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특유의 미소만 그리고 있었다. 뱅,현기증이 돌았다.
"형. 종 쳤어요."
"응? 누구? 태현이 친구?"
무성의한 손길로 아무렇지 않게 진우형의 손을 떼어 버리는 누군가. 하이톤으로 애써 올린 듯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강승윤이 웃고 있었다. 입이 웃고있지 않다. 평소 코까지 찡그리며 가끔 턱 역시 찡그려지는 온 얼굴로 웃는 그 개구장이 웃음이 아닌 그저 눈만 휘어지는 웃음이다.
"1학년 3반 반장 강승윤입니다. 곧 국어쌤이 들어오셔서요~"
"아, 맞다! 1학년 국어쌤 깐깐하지. 미안미안. 태현아 2교시 쉬는시간에 보자!"
진우형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친 후 후드를 깊게 눌러쓰곤 종종 걸음으로 교실 밖을 향했다. 긴장이 풀려서 훅 꺼지려는 다리와는 달리 제 자리로 가지 않은 강승윤으로 인해 막혔던 피가 다시 도는 것 같았다. 심장에서 빠르게 분출된 피들이 서서히 돌아 열로써 볼 위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 두근거림이 이상하고 몹시 수상했다.
"저 형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
진우형 앞에서의 하이톤과는 달리 낮은 톤의 목소리라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바로 옆 귓가에서 강승윤의 화난 듯한 목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까와 다른 의미로 두 눈이 갈 데를 잃고 방황했다. 강승윤의 숨결이, 바로 목께에 닿았다. 몸이 잔뜩 굳었다. 강승윤이, 제 숨을 또다시 앗아갔다.
"2교시 쉬는시간은, 나랑 같이 교무실 가자."
눈과 눈이 마주쳤다. 강승윤의 눈동자 속 열기는 타오르고 있었지만 먼저 피하는 쪽은, 내쪽이었다. 귓가로 희미한 낮은 톤의 웃음소리가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