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장님 책상 위에 걸터 앉아 있던 우현이 일어나 엉덩이를 슥슥 털고는 맞은편 쇼파에 앉았다. '앉아봐요. 부사장님 지시.' 하고 말하더니 손을 까닥거린다. 지시래, 지시! 부사장님이 나한테 지시를 주셨대! 얼굴이 금요일 저녁보다도 더 새빨갛게 변해있겠지 물론. 으악 미칠 것 같다. 지시가 짤리는거면 어떡해? 슬금슬금 다가가서 우현의 맞은편의 자리잡자 신기하게 쳐다본다. 내 얼굴이 웃기세요? " 저기요!! 저 제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저 진짜..!! " " 뭐? " " 진짜 진짜 정말로 열심히 할 수 있어요. " " ..무슨 " " 앞으로 지각도 안할거구요 또.. "
요플레라고 뻥도 안칠게요!! 성규는 두 손발이 사라질정도로 싹싹 빌어 파리까지 형님이라고 부를 기세였다. 그리고 싹싹빌면서 은근히 눈치를 보자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 순규한테 맞기 전보다 훨씬 두근거렸다. 순규기지배한테는 맞으면 끝이지만 이건 내 생사가 달린 문제라고. 이런저런 생각에 조금 더 열심히 살껄이라는 걱정아닌 걱정을 하고 있는데 저 일찐같은 놈이 푸하하 하고 웃는다. 지금 너 사람 염장지르니? 염정아세요?
" 저기요, 이게 웃을 상황은 아닌 것 같.. " " 누가 짜른다고 했나? " " ..부사장님이 저 모가지 날리는, 아니 짜르시는 거 아니였어요? " " 남부사장님이 앞으로 개인비서 하는건 어떻겠냐고 전해주라던데. "
네? 제가요? 저보고 개인비서하라구요? 그 부사장님 헤드빙빙? 미친. 나같이 불쌍한 루저새끼도 잘 되는 일이 있기는 있구나. 다시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고 재차 확인했다. 제가 진짜 개인비서라구요? 오 갓! 미친! 빨리 일어나서 90도로 인사해도 모자른데 눈을 깜빡일 힘도 없었다. 턱을 쩍하고 벌리고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자 그 일찐이 다가와 머리를 툭, 민다.
" 정신나갔어? " " ..저기요 " " 뭐. " " 부사장님하고는 무슨 사이세요? "
우현이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고민에 빠졌다. 아니 내가 적어도 클럽을 주름잡고 있을 것 같은 저 개날라리 일찐대딩보다는 훨씬 나이들어보이는데 무슨 반말이야. 라고 돌직구로 말은 하고 싶지만 우선 부사장님하고 조온나 친한 부자형일 수도 있으니깐 컴 다운. 미간을 찌푸리며 무슨사이냐고 한번 더 물어보자 우현이 생각났다는 듯 아! 하고 탄성을 지르더니.
" 가장 잘 알고있는사이? " " 뭐라구요? " " 죽고 못사는 사이? " " 뭐요? " " 서로 좋아하진 않지만 붙어있어야 하는사이? "
뭐야, 게이야? 요즘 왜이렇게 게희 천국이야 쯧쯧. 물론 성소수자를 존중한다해도 게이가 많아지면.. 경쟁자가 줄고 좋은거구나! 고맙다 일찐자식아!..그럼 부사장님도 게이인가? 성규가 게이에 관한 생각들을 하며 목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데 우현의 뒤에 위치한 부사장 명패를 보는데 부사장님이름이 남ㅇ, 남우현?!
" 부사장님 이름이 남우현이에요? " " 어? 아, 뭐? 너 어떻게 알았어. " " ..뒤에 명패 있길래. " " 아, 난 또. " " 근데 왜 반말해요? 댁이 부사장이야 뭐야. 나이도 어린게. " " 내가 나이가 어릴지 안어릴지는 어떻게 아시고? "
시발 이런 개새끼같은 놈은 대체 어떻게 상대햐야 되는거야. 그냥 이럴때는 아 미안해요 님이 너무 어려보여서.. 동안이시네요! 라고 해야 정상 아니니 이 병신해삼말미잘똥방구 같은 개새끼야? 솔직히 있는 욕 없는 욕 다 퍼붓고 싶지만 굉장히 지조있는사람이라고 항상 자신을 자부해 왔던 성규였기에 조용히, 최대한 조용히 목소리를 깔고 칼잇으마 넘치게 얘기했다.
" 아 뭐 나이는 그렇다 쳐도. " " ...... " " 너무 싸가지 없는 거 아닌가? "
오 갓. 드디어 내가 일을 치는구나! 싸가지라고 말하면 안되는데.. 그러다 저새끼가 부사장님한테 꼰지르면 어떡해. 입술을 깨물고 다리를 덜덜 떨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꽤 흥미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우현에 더 화딱지가 나서 의자에서 일어나 흥! 하고는 부사장실을 빠져나왔다. 사실 무서워서 빠져나온거지만. ..저런 개새끼한테 있어보이려고 한 내가 잘못이지. 시발! ** 호원이 젓가락으로 콩을 다 골라내자 동우가 떽! 하며 콩들을 호원의 입에 구겨넣는다. 아 존나 맛없어..토나올 것 같애.. 호원이 욕투정을 부리자 동우가 버리를 한대 콩 쥐어박는다. 우선 때리기는 했는데 혹시나 호원이 화낼까봐 손을 숨기고는 '동우가 안때렸다 느하하학!'이라고 최고의 병신미를 보여준다. 하도 병신같아서 호원이 어이없단 표정으로 쳐다보자 미안해..라고 기운없이 말하고 먹는 것 마저 기운없이 먹는다. 아 쫌! 맛있게 팍팍, 어? 그렇게 먹으란 말이야 장동우!! 여전히 침울한 얼굴로 김치를 깨작깨작 찢고 있는 동우를 보니 괜히 호원만 나쁜놈 다 된 것 같다. 무슨 저 형은 감정기복이 저리 심해, 조울증인가? 일부러 콩을 더 골라내자 그제서야 동우가 고개를 들어 호원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아 시발 쳐다보지만 말고 잔소리를 하라고 잔소리를!! " 너 콩 좀 골라내지 말라니깐? "
아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님 호느님 정말정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장동우의 침묵을 주신다면 차라리 지옥에 퐁당 빠져버리고 말겠어요. 일부러 대꾸를 하지 않고 콩을 골라내자 동우는 되지도 않는, 아니지 아주 잘 어울리는 애교를 피운다. 예를들어 일더하기 일은 귀요미라던가, 일 빼기 일은 주먹밥이라던가, 라틴을 춘다던가.
" 진짜 애교부린다고 내가 넘어갈 것 같아? " " ..때릴꼬얌? " " ...김성규는 왜 안와? " " 성규가 너 싫어해, 임마. "
안싫어하거든? 성규가 식판을 들고와서는 동우의 옆에 자리잡는다. 푸하하! 여긴 공적인 공간이 아닌 사적인 공간이잖아? 그럼 장동우한테 얼마든지 반말해도 된다고!! 는 무슨 비루한 5년차 사원은 구석에 짜져있어야지요.
" 너 어디갔다 왔냐? "
아 나 사원아니다. 이제 사원아니다!! 우핳! 우핳! 사원아니다!! 갑자기 짜라빠빠 춤을 격하게 춰대는 성규의 모습에 호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무슨 명걱턱이세요? 아니지 호걱턱이지. 호원이 무슨일 있었냐는 표정으로 성규를 쳐다보자 성규가 헛기침 몇번을 하더니 마치 한정판 명품을 새로산 강남아줌마들에 빙의해서는 목소리를 내며 말한다.
" 저 부사장님 개인비서 됬어요. "
성규는 자신에게 굽신굽신대는 호원을 상상했다. 어머! 지금 까지 제가 너무 잘 못해준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성규님. 어디 팔이 아프시진 않으신지요? 혹시 어깨가 뭉치셨나? 그간 커피심부름 하시느라 힘드셨죠? 이제 저한테 맡겨만 주십셔! 호원이 굽신굽신 성규에게 깍듯이 대할 상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 아 그래요? 축하해요. "
이호원이 정말 냉정히 손을 뻗어 구해준다. 요플레보다 못한 개새끼. 요플레는 맛이라도 있지 넌 뭐니 정말? 씩씩대면서 핸드폰 버튼을 누르니 문자 21통.. 뭐? 문자 21통?!! 분명 여자에게 온 문자는 한개도 없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자신에게 문자를 했다는 그 행복감에 빠져 잠금을 풀고 문자목록을 확인했다.
이런 젠장! 그래 이럴줄 알았어. 어떻게 21통 중 10통이 김미영누나일 수 있냐고. 누나 나 좋아해요? 참나. 나머지 열통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8통은 순규 나머지 두통은.. 누구지? 혹시 두통약사라고 두통보낸건가? 는 몹쓸 드립. " 헐 대박. "
진짜 대박소리밖에 안나온다! 이건 진짜 대박이야! 골룸이 반지를 찾아 마이프레셔스를 외쳤을 때보다도 더!! 나머지 두통이 부사장님. 부사장님이라고.. 문자 한글자 한글자에도 전해지는 그 포스에 성규는 축축하게 지릴뻔한 아랫도리를 간신히 부여잡고는 문자를 보관함에 이동시켰다.
[ 개인비서 하시기로 한 김성규씨 맞죠? 열심히 하신다길래 문자합니다. ] [ 지금 내문자 씹어요? ]
허걱. 뒷 내용은 충격적인데? 거의 빽 소리를 지르다 시피 말한 성규가 입을 가까스로 틀어막고는 호원과 동우의 눈치를 살폈다. 뭐 나한테 평소에 관심이 없는데 이런거에 놀랄리가 없지, 놀랄리가.
" 누군데? "
왜 이럴때만 저렇게 눈치가 좆나게 빠른거야.. 성규는 내빼고 내빼다 결국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핸드폰을 호원에게 건냈다. 핸드폰을 받은 호원이 문자를 천천히 읽더니 입을 떡, 하고 벌린다. 쟤는 왜자꾸 턱빠지는 행동을 자주하냐고. 무슨 진짜 호걱남도 아니고. 에휴 내가 이렇게 까댄다고 뭐가 달라지려나.. 앞이 컴컴하다.
호원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뭐 병신같은 정성을 쏟고있다. 그리고 우쭐한표정을 짓고 핸드폰화면을 내 눈앞에 가져다 대는데.. 미치셨어요? 또라이세요? 지금 내 인생 말아먹으려고 작정하신거에요? [ 내가 씹든 말든 당신은 제꺼에요. ]
저런 문자를 보내시면 어떡해요, 부장님!! 성규가 목에 핏대 세워가면서 호원에게 소리지르자 호원은 허허 하고 인상 좋게 웃어가며 성규의 성질을 아주 박박 긁어대신다. 저 개새끼 진짜 저 미친 저 아오 저 씨지브이 새끼 저거 진짜. 헐 미쳤나봄.
***
우현은 성규의 문자에 뒤로 넘어갔다. 푸하하 이거봐라? 대우가 다르네, 대우가? 우현이 문자를 보면서 레몬사탕청년이 나오는 막이래쇼를 볼 때보다 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우현을 우현의 비서인 명수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렇게 쳐다보면 뭐해. 남우현이 눈치가 김성규 눈보다 훨씬 작은데. " 푸하하 명수야 잠깐만 일로좀 와봐 " " 예, 부사장님. " " 이거봐. 아까 김성규가 보낸건데 너무 웃기지 않아? "
도대체 저게 어디가 웃기다는거야 이 또라이는? 내가 씹든 말든 당신은 제꺼에요. 이게 웃겨? 또라이아냐? 상또라이! 명수가 입을 축 늘어뜨리며 대충 하하하 웃어주고는 '웃기네요'라고 말하자 우현이 입맛을 쩝 다시며 핸드폰 화면을 껐다. " 안웃기면 안웃긴다고 하지그래? " " 아니요. 진짜 웃깁니다. " " 뭐라고? 웃겨? " " 예? " " 이 상황이 웃기냐? "
왓더.. 뭐야 저 병신은. 어쩌라고 나보고. 명수가 인내심의 한계가 올뻔한 위기를 극복하고는 활짝 웃으며 '정말 웃깁니다 푸하하하하!' 라고 억지웃음을 보였다. 역시 남우현은 눈치가 젬병이였어. 그걸보고 또 좋아한다.
" 그치? 웃기지? 너무 웃기다니깐 진짜! " " ...ㅇ,예! 웃겨요 웃겨. " " ..나 미쳤나봐. "
그걸 이제야 아셨어요? 라고 차마 말하진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며 나름 궁금하단 표정으로 명수는 우현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우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더니 의자에 철푸덕 앉는다. 그리고 또 다시 ' 나 진짜로 미쳤나봐 ' 라며 자신을 자책하고.. 김명수는 공감하고..
" 무슨 일 있으세요? " " ..난 왜 태어난거야. "
..뭐여 시방? 당연히 그냥 꺼낸 말일줄 알았는데 정말 진심으로 자신을 자책하는 일명 멘붕보이스에 재빠르게 왜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라고 소리를 빽 질렀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우현은 마치 그 질문만을 기다렸다는 듯 엉엉 대며 입을 열었다. " 김성규 부사장 개인비서 그거 시켰잖아. " " 네. " " ..그럼 김성규 얼굴 어떻게 봐? " " 그게 무슨..? " " 아 진짜! 내 얼굴로 나는 부사장이 아니에요. 라고 얘기했는데 부사장 개인비서면 김성규가 부사장 얼굴을 봐야하잖아!! 나 어떡하냐고!! 미친거아냐? " " 헐. 부사장님 미쳤어요? " " 난 진짜 미친게 분명해!! 생각이 없어 젠장!! "
**** 역시나 퇴근하고 집에 도착할 때 까지 문자 한통 오지 않았다. 아 똥줄탄다고..욕이라도 좋으니까 답장좀요 님아. 성규가 애타게 부사장님의 문자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자 순규 기지배가 얼굴을 다 씻었는지 목에 두른 수건으로 이마를 벅벅 닦으며 발로찬다.
" 어때, 오늘 복수는? "
김순규가 왜 학교 다닐 때 공부를 그렇게 못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답부터 찾으려고 하니 문제가 안풀리지, 문제가 쯧쯧.
" 남우현이 정확히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복수하냐? " " 뭐야 그럼 복수 안했어? " "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복수해. 너 바보니? "
이게 진짜! 순규가 발로 성규의 얼굴을 밀며 구타했다. 아마 내일 아침뉴스에는 망원동 자택에서 동생이 친 오빠를 구타하여 살해.. 라는 기사가 뜰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손발이 파리가 되도록 싹싹 빌며 하지말라고 항복했다. 사실 진짜 까놓고 남우현 얼굴도 모르고 어디사는지도 모르고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딱 이름하고 무직이라는 것만 아는데 어떻게 복수를 해. 순간마다 느끼지만 김순규는 정말 힘만 더럽게 쎈 이 시대 최고의 무식 킹이 따로 없었다. 가끔씩 잔머리가 빨리 회전할 때도 있지만.
" 그럼 복수는 대체 언제할건데! "
뻔뻔하게 복수를 요구하는 순규의 모습에 '저 기지배는 내가 복수학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왜 복수를 시키고 난리야!' 라며 한대 똥킥을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순규의 오금이 지릴듯한 눈빛에 기가 죽은 성규는 '그래 언제 할까 하하하?'라고 나름 비위를 맞추어주고 있었다. 아 맞다. 남우현 하니깐 뭐 생각나는게 있었는데.
" 아, 맞다!! 남우현!! " " 남우현? 왜 뭐 아는거라도 있어? " " 우리 부사장님 이름도 남우현이거든. 관련 없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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