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 시간. 12시 전에 들어온다고 약속 했는데, 12시는 무슨, 벌써 새벽 세 시다. 연락이라도 꼬박꼬박 하면 걱정이라도 덜 하지, 12시가 지남과 동시에 연락 또한 끊겼다. 잔뜩 취해선 여사원이라도 옆에 끼고 부어라 마셔라 할 문현아를 생각을 하니 이가 바득바득 갈린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는 아닌 밤중에 밑층 시끄러워 질 것은 생각도 안하고 쿵쿵 발소리를 내며 현관문으로 가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꿔놓고는 다시 쿵쿵 발소리를 내며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너무 화가 나는 나머지 휴대폰을 확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액정이 깨질 것 같아서 차마 그런 짓은 하지 못했다. 이 휴대폰도 나름 언니랑 커플로 맞춘 건데. 아, 이 상황에서도 언니 생각이나 하는 나에게 그저 화가 나 머리를 쥐어 뜯었다. 지금 언니는 내 생각도 않고 이번 건도 무사히 잘 넘겼다며 그저 회사 동료들과 함께 하는 회식이나 즐기고 있을텐데 그런 언니 생각만 하는 내가 한심해 지는 것 같아서 작게 한숨을 쉬고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다. 그렇게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려 눈 감은지도 얼마나 지났을까, 도어락 번호도 충분히 익숙해져 있을텐데 술에 취해서 인지 한참 동안이나 누른다. 그것도 이제는 틀린 비밀번호를. 비밀번호가 틀려서 나는 도어락 소리도 화가 나 한껏 예민한 나에게는 그저 문현아가 만들어 내는 소음일 뿐이다. 몇 번 시도를 해보아도 열리지 않아서 답답했던 모양인지 결국 내 휴대폰 조명을 밝힌다.
[겨ㅕㅇ리야 자?]
[언ㄴ 문ㄴ좀 어ㅕㄹ어줘]
나 지금 술 취했어요. 라고 동네방네 알리고 다니는 듯한 언니의 오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술을 얼마나 마셨으면 저 지경이 될 수가 있지? 평소에 언니가 술을 못하는 편도 아니고 평소에 항상 완벽한 걸 추구하는 편이라서 그런지 오타도 잘 내지 않던 언니가 언니가 저렇게 오타를 낼 정도면 정말 많이 마신 거다. 지금 당장 문 앞에 있을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화라도 내고 싶었지만 지금 이 상태라도 언니 목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화가 풀려 버릴 것만 같아서 꾹 참고 최대한 차분한 척을 하며 휴대폰 키패드를 눌러 답장을 보냈다.
-오늘은 밖에서 자
-나 지금 언니 얼굴 보기 싫어
[언ㄴ니가 느저ㅇ서 화났어?]
-알면 집에 오늘은 집에 들어올 생각 하지마요
언니와 약 3년간의 연애와 동거를 하면서 내가 언니에게 화난 적은 있어도 이렇게 강단있게 굴었던 적은 손에 꼽히거나, 아니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없다. 언니도 나에게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었고, 나 또한 언니와 다투는 게 싫어서 언니에게 최대한 맞추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3년간 만나며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다던가 하는 흔한 연인들이 하는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언니가 지금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내가 화났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알아줬으면 하는 내 마음도 어느정도 내포 되어 있기도 하고, 아마 나는 지금 사과 어린 위로를 받고 싶어서 이렇게 투정을 부리는 것 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알았어]
[잘 자 추우니까 이불은 꼭 덮고]
심장이 덜컥거리며 가쁘게 뛰는 게 느껴졌다. 나한테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약 3년이라는 시간을 봐왔는데 이제는 하다 못해 카카오톡 메시지에 설레서 심장이 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지금 자기가 영하를 웃도는 날씨에 쫓겨난 격인데 따뜻하게 보일러까지 잘 돌아가는 집 안에 있는 남 걱정이나 할 때냐구. 이 미련한 문 곰탱이가 분명 현재주도권을 잡고 있는 건 나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이 카톡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될 줄이야. 게다가 아까는 오타를 밥 먹듯이 내더니 그것도 다 연기였는지 오타는 커녕 저게 술 취한 사람이 정녕 맞나 싶을 정도로 정확하게 쓰여져 있다. 나는 차가운 현관문 앞에서 작게 한숨을 쉬고는 도어락 버튼을 눌렀다.
"언니, 나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들어와요."
문 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스프링 마냥 튕겨 몸을 일으키는 언니가 보인다. 따뜻한 곳, 하다 못해 집 근처 찜질방이라도 가서 잘 생각은 않고 미련하게 밤 새도록 현관문 앞에 앉아 있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문을 열었을 땐 언니가 추운지 쭈구리 마냥 소화전 앞에서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문을 열어 이제 막 찬 바람과 마주하는 나도 벌써 이렇게 추워서 오들오들 떨릴 지경인데 여태까지 계속 밖에 있었던 언니는 얼마나 추웠을지 생각하며 괜히 내 탓을 했다.
그렇게 사이에 문 하나를 두고 우리 둘이, 혹은 나 혼자 하는 무언의 싸움은 오늘도 내가 언니에게 져버리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