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 - Sky writer
정한은 순영에게 그의 방을 배정 한 후, 그가 자신과 리더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길 권했다. 첫 번째는 지훈에게 찾아가 정식으로 인사를 전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내일 아침이 밝아오면 A1의 팀원들에게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 하는 것. 순영은 두 번째 지시사항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잠깐. 내가 이 곳을 먼저 알고 자발적으로 찾아온 것도 아닌데, 당신들 팀원에게 나를 직접 소개하라는건가?"
"그렇지."
"아까 그 녀석 못봤어? 내가 무슨 중죄를 지은 죄인인것 마냥 이 곳에 발을 들였다는 이유로 나를 미친듯이 몰아붙였잖아. 모두가 그런식으로 나온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거란거 잘 알텐데."
"민규의 그런 모습에 적잖게 상처 받았나보구나. 그 애가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닌데 말이야. 그 녀석은 내가 잘 달래볼게."
"그런 뜻이 아니잖아."
"......"
"내가 정말로 이 곳에 있어도 되는게 맞나 싶어.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온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순영이 정한을 노려보다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정한은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긴, 이 녀석은 그저 겐지의 배후세력을 '알 수도 있다는' 확실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강제로 타지에 끌려온것과도 마찬가지니까. 동생과도 떨어져 지내게 되었으니 마음의 여유가 단 1%도 없을 수밖에.
정한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자신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순영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티는 안내려고 해도 풀 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말로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리더는 평소 모든 면에서 융통성이 있는 자인가, 없는 자인가. 그리고 그 밑에 있는 나는 또 얼마나 융통성 있고 얼마나 순종적인가.
"기분 전환이 필요해보이는군."
정한이 한발자국 다가가 순영의 어깨를 매만졌다. 순영은 건들지 말라는듯 어깨를 흔들며 털어냈고 정한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앞으로 걸어가 빤히 쳐다보았다.
"약속대로 선물을 줄게. 비록 네가 리더를 바로 못알아보긴 했지만."
"내가 어린 애도 아니고. 됐어, 그딴거."
"네가 좋아할만한걸로 준비했는데."
"선물은 무슨. 됐다고."
순영은 아예 정한을 등지고 돌아섰다. 그리고 대충 챙겨온 짐가방을 괜히 뒤적이면서 뒷통수를 짜증난다는 듯 박박 긁어댔다. 자신이 생각해도 유치했다. 방금 그 멘트. 혼자니, 뭐니 하는것들. 어차피 이 인간들은 그런거 신경도 안쓸텐데. 단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내가 필요했던건데.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다 쓰고 필요가 없어져버리면 결국 또 다시 버려지게 될까?
"너, 아까 그 차 맘에 들어하는것 같던데."
"......"
짐가방을 뒤적거리던 순영의 손이 멈칫한다.
"왕년에 좀 했다던 레이싱 실력을 내가 감히 보여달라고 해도 될까."
"그게 무슨 소리야."
"달리게 해준다고 했잖아. 이건 애초에 했던 약속이라고. 벌써 잊었어?"
"......."
"선물로 줄게. 아까 네가 본 그 차."
"...뭐? 너 지금 그 말..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럼."
"미친것 같은데, 너."
순영이 최대한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걸 나한테 준다는 소리인가. 설마. 내가 뭔데. 내가 뭐길래 그런걸. 왜?
"사실 그건 얼마전에 엔진을 새로 갈아서 이미 그레이드 작업이 완료된 차야. 새 주인이 누가 될까 싶었는데, 그게 이런 순박한 녀석이 될줄은 아무도 몰랐을걸."
정한이 바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들어 흔들어보였다. 그리고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순영을 향해 키를 던졌다. 순영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한 손으로 키를 받아내고서 슬로우모션으로 설정된 것처럼 천천히 차 키를 들여다보았다. 벤틀리 컨티넨탈. 미친것 같다.
"미친게 분명한데...."
권순영. 그가 한창 한국에서 잘나가는 레이싱 선수였을때 떠올렸던 드림카들이 있다. 태생부터 부자였던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제 손으로 힘들게 직업을 찾고 생계를 이어갔던 순영은 갓 레이싱 선수가 되었을때도 사실상 본인 명의의 차도 없었다. 이름을 알리고 이제 돈의 맛을 조금 보려고 할때쯤 그가 제일 먼저 했던건 집안의 빚을 갚는 일이였기 때문이였다. 그런 그가 자신 인생 일대의 0순위였던 드림카를 갖게 되다니, 약간 이 세상이 기괴하고 미쳐보였다. 며칠 사이에 운명이 뒤틀린것 같았다.
"단,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
"어려운건 아니야."
"그래, 이런걸 거저 줄만한 인재는 아닐거라 생각했어."
"웃기는군."
순영이 정한의 말에 집중했다.
"앞으로 너에게 믿기지 않을만한 일들이 생겨날거야. 아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을지도 몰라."
"......"
"그럴때마다 늘 명심해. 어떤 행복이 찾아와도 깊게 젖지 말고, 어떤 불행이 닥쳐와도 깊게 파고들지마. 그건 감정소모다."
"......"
"한가지만 명심해. 그 모든것들은 꿈이 아니라, 네 피부로 부딪히고 있는 현실이라는걸. 그럼 너는 자연스럽게 정신을 차리게 될거고, 꿈이 아닌 현실에서 기존의 너보다 나은 대처를 할 수 있을거야."
"......"
"알아들었을거라 믿어. 그럼 이제 그만 리더에게 가봐. 오래전부터 널 기다리고 있어."
순영은 정한의 쏟아지는 말을 하나하나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서도, 겨우 그런게 조건이라면 받아들일수 있겠다는 마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의 방문이 열려있었다. 순영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금은 멍청한 표정을 한채로 지훈의 방을 슬몃 들여다보았다. 처음 든 생각은 이것이였다. 자신의 방과 차원이 다른 이 곳은 마치 IT학자가 만들어낸 우주와 같고, 흔히 볼 수 없는 이 어지러움 속에 느껴지는 칼같은 정갈함은 몹시 소름이 돋는다고.
그가 지훈의 방문에 노크를 했다. 지훈은 약속이라도 한 듯 노크와 동시에 순영의 앞에 나타났다. 덕분에 순영은 심장이 떨어져 나갈뻔하여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놀랐잖아!!"
"뭐?"
"아, 아니. 놀랐다고요."
첫인상과 다르게 정색을 하고 있는 지훈의 얼굴을 본 순영이 자신도 모르게 말을 고쳐갔다. 정말로 작고 하얀 이 남자가 팀의 리더라고? 믿기지가 않는다. 괜히 바지 주머니에 꽂혀있던 손도 슬며시 빼내어본다.
"지금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도대체, 얘가 왜?"
지훈이 커피를 마시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을 텄다. 순영은 다시 한 번 팔에 오소소 올라오는 소름을 주체하지 못하고 괜히 시선만 여기 저기에 두었다. 찔리는 마음에 헛기침을 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거라면 익숙해."
"딱히..그런게 아니라.."
"서론이 너무 길면 지겨우니까 간단하게 본론만 말하지. 나도 꽤 바쁘거든."
간헐적 두통을 느낀 지훈이 자신의 미간을 두 손가락으로 짚고는 순영에게 쇼파를 향해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순영이 곧이어 넓직한 블랙 브라운 쇼파에 앉아 두 손에 깍지를 끼고 한 쪽 다리를 미약하게 떨기 시작했다. 지훈은 자신의 워크테이블에 가서 쓰고있던 안경을 벗어 내려두고서, 다시 순영의 곁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왜인지 모르게 그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에 위압감이 든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만났던 정한과 민규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순영은 제 자신이 이렇게 겁이 많은 사람이였나 싶은 마음에 인생의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식은 땀이 나는것만 같았다. 진정하자. 지금은 단순히 대화를 하러 온거니까. 여기서 기에 눌리면 안된다. 지금이 정말 중요한 순간이다. 정말로 나를 찾던 사람을 만난거니까.
"궁금하겠지. 왜 하필 너인건지."
지훈이 감정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순영은 그의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어 바라보았다. 아, 이렇게 정면으로 가까이에서 보는건 처음이다.
"지금 잠시동안은, 네 입장으로써 충분히 기분 나쁠만한 이야기를 할거야."
"......."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깊게 일렁였다. 이 리더라는 자는 나이가 어떻게 될까. 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고 하얀 피부가 아무리 봐도 10대인데. 어떻게 이런 자가 보스라는걸까. 정갈하게 내려온 갈색 머리칼도 누군가 신경 써서 빗어준것처럼 칼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도 작고, 입술도 빨갛다. 셔츠 사이로 보이는 목선 역시 여리다. 그리고 그 밑에 보이는 쇄골도, 나를 보고 있는 저 눈도 너무나.
"나 역시 처음부터 너를 알고 있던건 아니였어. 오랜 시간 전부터 너를 조사했던건 아니니 그건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말고."
그러니까 그게 너무...
"......"
"듣고 있어? 아니면 너는, 이 일에 대해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는건가?"
"..너무나..."
"..뭐?"
중얼거리는 순영의 입모양을 지훈이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권순영."
"...너무.."
"정신 차려."
"..귀엽다."
...아, 미친.
"아. 잠, 잠깐. 잠시만. 그게, 아, 그게 아니라.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지금 그거 나한테 한 소리야?"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그 소리가 조용했던 이 방안을 미친듯이 휩쓸고 돌아다님으로 태풍이 불어 닥치는것 같았다. 자기 자신이 너무나 싫어졌다. 순영은 처음 지훈을 봤을때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게, 그게 하필 수많은 감정중에 귀엽다는 느낌일 줄이야. 그가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마치 티비에서 보던 락밴드의 락커처럼 머리를 흔들어제끼기 시작했고 지훈은 자신에게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던 모습보다 지금의 감정을 주체 못하는 모습에 뒷걸음질을 쳤다.
어쩌면 조금 미친건가. 뭐가 문제지. 긴 비행시간이 문제였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미쳤나?"
"아니, 그게 아니라.."
"정신 차리고 똑바로 들어. 느꼈겠지만, 여기는 네가 함부로 들어올만한 곳이 아니야. 그 말인즉슨 너는 여기서 함부로 나가지도 못한다는 뜻이야. 알아들어?"
지훈이 반대편 쇼파에 털썩 앉으며 순영을 향해 경고했다. 순영은 귀끝이 새빨개진채로 머리를 한껏 털었다. 그리고서는 눈을 똑바로 들어올려 지훈을 집중하여 쳐다보았다.
"너와 나의 만남은 조금은 진지할줄 알았는데, 그런식으로 초를 치다니 생각조차 못했다. 대단해."
"......"
"김민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는것도 오랜만이네."
"예?"
"..아무것도."
지훈은 문득 자신에게 귀엽다는 소리를 남발하던 민규를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 녀석도 이런 말을 할때면 조금 맞아야 정신을 차렸지.
"네가 들으면 기분나쁜 말을 조금 할지도 모르겠다고. 괜찮냐고 물었잖아."
"......"
"침묵은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일게."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순영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순영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심장이 두 배로 뜀을 느꼈다. 당최 정상적인 사고가 되질 않는다.
"누구나 사람에게는 약점이라는게 있어. 그리고 나는 그 약점을 이용할줄도, 건들지 않고 눈 감아줄줄도 알지."
"......."
"그런데 이번 경우는 조금 달라. 나는 너라는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엄청난 고민을 했어. 네 약점을 이용할지, 아니면 그냥 넘어가줄지."
"......."
"그리고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보호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나 역시 같아. 나는, 나와 내 팀을 보호할거야. 네 약점을 이용해서."
"..듣다보니 기분이 이상하네요. 제가 무슨 희생이라도 해야한다는건지."
"내가 분명 네 기분이 나빠질거라고 했잖아."
지훈은 순영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기대었다. 그리고 순영의 귓가에 입술이 닿을만한 거리에서 차분히 속삭였다.
순영은 이 순간, 운명이 뒤틀린것도 모자라 지옥에 자진해서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이 자는 혹시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네가 생각하는 만큼 악질은 아니야."
아니. 맞는것 같다.
"어디 이 세상에 힘든 인간을 구제해주는 좋은 악마라는게 있나."
"하지만 지금 당신은 나에게 그런 말을 함으로써 악마의 탈을 보이는것과 같아요."
"네가 나한테 귀엽다는 말을 지껄였을때도 내 눈에 넌 그저 저질로 보였어."
이 인간, 뒷끝 있다.
귀엽다고 했던 것 절대적으로 취소한다. 내 기억속에 그런 이미지는 없는거야. 절대로.
"일종의 거래라고 생각하자. 네가 나에게 약점을 보인 대신, 나도 너에게 내 치부를 보여줄게."
"당신이 생각하는 내 약점이 뭔데요. 집안? 재산 문제? 아니면, 그 빌어먹을 입에 올리지도 못할 꿈을 갈구하는 내 모습?"
"잘 알고 있네."
"장난하지 마요. 그런거 아닌거 다 아니까."
"나도 일개 인간인지라 모든것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 그냥 너와 내가 머리를 맞대고 퍼즐을 맞춘다고 생각하면 쉬워지는거야."
"......"
"최근에 내가 조각을 하나 잃어버렸어. 아주 작고, 미세한 조각이지."
"그런데요."
"그런데 아쉽게도 그 조각은 내 발 밑에 있지않아."
"그럼요."
"누가 그걸 쥐고 있을것 같아?"
"....알면서도 당신이 숨겨놓았겠죠."
"아니."
"......."
"신기하게도, 우리와 전혀 관련이 없는 네가 갖고 있어."
순영은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단번에 숨이 거칠어진다.
"너의 과거가 필요해."
"......"
"겐지가 개입되어 있는 네 과거말이야."
"......"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 하지만, 왜곡이 아닌 진실이 필요해."
그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그 말을 알고 왔다. 내 가장 큰 약점.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늘 한결같이 단칼에 베어 죽여버리고 싶었던 그 녀석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잊었다고 생각할때면 늘 꿈에 나타났다. 정말로 다 잊었다고 생각할때면 모래시계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정말로 인생에서 지워버린줄 알았다고 생각했을때, 이 자들이 나를 찾아왔다.
지훈은 분명 순영을 본격적으로 찾아내기 전부터 그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순영을 만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자백을 정확하게 받아내야 했다. 그것은 자신의 동료라고 믿었던 겐지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였고, 그리고 그 믿음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명백한 증명이 담긴 진실의 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마지막이다. 이게 아니면 그는 겐지를 제거해야할 이유 한 가지가 사라져버린다.
"아, 알아요. 겐지. 그 죽일놈의 새끼가 당신네 팀원이라면서요. 근데 그렇게 대단한 당신들이 통수를 맞았다더군요."
"그런셈이지."
"그 새끼는 통도 커. 내가 아무리 뭣도 모르는 하룻강아지라고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그 큰 게임을 벌이지는 못할것 같은데. 그 자식은 심성을 쓰레기같이 쓰는걸 못고치나봐요."
순영이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지훈은 아무런 말 없이 그를 지켜보았다. 감정을 고조시키려는 속셈이였다.
"내 과거가 그렇게 궁금하다니 말해줄게요. 정말 그 누구한테도 말하기 싫었는데."
말을 잇지 못할정도의 흥분감이 또 다시 찾아온다. 순영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인다. 생각만 해도 뇌가 저릿하고 피가 거꾸로 차오르는 느낌이였다.
"나는 한국에서 꽤 인기 있던 레이싱 선수였어요. 권순영. 내 이름 세 글자만 대면 상대팀에서 백기를 들 정도로 유명했어요. 미국이 됐든 일본이 됐든 나와 상대 하는 곳 그 어디든 전부 다. 그리고 그때 난..겐지와 같은 팀이였죠."
"그래."
"..아, 그때는 뭐가 그렇게 행복했는지. 그 새끼랑 살을 부대끼면서 함께 살듯이 지냈어요. 숙소가 맘에 안든다는 이유로 늘 우리 집에서 생활했거든요. 나는 어머니, 아버지, 내 어린 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그 녀석은 늘 내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던 밥을 먹고 나가서는 나보다 더한 훈련을 받던 놈이였어요. 어머니는 그게 장하다고 했죠."
"......."
"자동차 몇 대를 부셔먹을 정도로 열심히 달렸어요, 그 새끼도. 그러니까 그 자식은 원체 감이라는게 없었어. 어지간히 못했다고. 실력? 그런건 개나 줬어. 나는 타이어 펑크조차 한 번도 낸 적 없는데. 그런데 그거 알아요? 우리 팀은 나같이 돈 없는 놈보다 실력이 거지같아도 집안이 나쁘지 않은 겐지를 밀어주고 싶어했어. 미친거지. 그래도 나 그 새끼보다 못한거 별로 없었어. 어려서부터 집안은 가난했어도 학교에서 교육도 제대로 받았고..."
"......."
"그러니까 결론은, 씨발. 내가 모든 경기에 나갔다 하면 1등을 거머쥐었다는 말이에요. 겐지는 그런 내가 싫었던거고. 감독도 그런 나보다 겐지를 더 푸시했어요. 나는 설 자리가 있음에도 좁아져야 했고, 실력도 안되는 겐지는 늘 나를 밑에서 바라만 봐야했다고. 물론, 나 같아도 그런 내가 얄미웠을거야. 똑똑하지도, 돈이 많지도 않은 주제에 레이싱 조금 한다고 신문에 실리고 티비에 나오고. 유명해지니까. 그거 알아요? 나 여기 미국에도 올 뻔 했는데."
"......."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에서도. 다 나만 원했는데."
"......."
"근데, 그게 내 가족을 죽여야 할 이유였나싶고."
지훈은 동조하지 않고 순영의 말에 귀기울였다. 결국 다시금 울음을 터뜨린건 순영이였다.
"전부 다 불에 타서 죽었어요."
"......"
"생각보다 단순한 방법이였죠."
"......"
"불을 지른건 우리 집 뿐만이 아니에요. 내 마음에도 불을 지른거죠."
"......"
"나는 그때 결심했어요. 그 새끼를 죽여버리기로."
지훈은 더 이상 가만히 듣고만 있기에 순영의 감정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 되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얼굴에 맺힌 수많은 물기를 닦아주려 손을 뻗었다.
"근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 왜, 그 새끼는 내 가족을 그렇게 쉽게 파탄내버렸는데 왜 나는 안되는거지. 한참을 생각했어요. 칼을 들고 달려가서 등에 꽂으려고도 하고, 똑같이 불에 태워버리고 싶어서 휘발유를 들고 달려든적도 있어요. 근데 그 새끼는 목숨이 아홉개인지 쉽게 안죽더라고."
"왜지?"
"왜일까."
"......."
"정말 미친듯이 노력했는데 되질 않았어요. 누군가가 나를 꼭두각시처럼 제어하고 있었거든요."
"어떤식으로?"
"......."
"괜찮아. 말해."
"...내 정신을 지배한거에요. 말로 해도 안될거 알고, 폭력을 써도 나는 절대 죽을 인간이 아니니까."
"그래서?"
쉴새없이 말을 이어가는 순영의 머리에 땀방울이 맺혔다. 얼굴에 열꽃이 피어오르는듯 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지훈의 손을 치우고 제 눈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누군가가 내 몸에 마약을 주입했어요."
"......."
"내가 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당시에 누군가가 나에게 마약을 수시로 주입해서 나를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나는 내 가족이 죽어갈때에도 아무것도 못했어. 등에 칼을 꽂는것도, 휘발유를 들고 달렸던것도 전부 환상일 뿐이였다는거야."
"......."
"무기력한 내 자신. 가만히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비참함. 당신이 그 죽고싶은 기분을 알아?"
충격적일만큼 쏟아져 나오는 순영의 이야기에 지훈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가 알던 사실이 전부가 아니였다. 그래, 역시나 무언가가 더 있었다.
마약. 그래. 여기서 단서가 나온다.
"솔직하게 말해볼까요? 나는 애초부터 당신들한테 도움 될거 하나도 없었어요. 다 들었듯이 알잖아. 나는 이렇게나 약해. 아,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말아요. 윤정한 그 사람한테 다 말했거든요. 나는 도움이 되지 못할거라고. 근데 구제해준답시고 끌고 온게 그 사람이에요. 몰매를 칠거면 그 사람한테만 하길 바래요."
"......."
"당신들 자초지종은 다 들었어요. 미안하지만 나도 이미 당신들 치부를 다 알고 있다고. 나만 약점 잡힌것처럼 말하니까 기분이 더러워져서 말하는건데 말이에요."
"......."
"...겐지 그 새끼한테 걸리면 당신들도 답 없어. 그 자식을 컨트롤 하는 새끼가 어떤 개악마새끼인지 알면 차마 손도 못댈거라고."
지금이다. 지훈은 순영의 앞에서 한쪽 무릎만 꿇은 상태를 고정한채로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래. 딱 한 번만 고통 받자. 어서, 어서 말해. 권순영.
그러나 순영은 지훈의 바람처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다, 무언가가 생각난듯 자신의 왼 쪽 네번째 손가락에 끼어있는 반지를 빼내어 지훈에게 보였다.
"이거..우리 엄마 유품인데."
지훈은 고운 미간을 살며시 구기며 반지와 순영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래."
"이게 마지막인줄 알았다면."
눈을 감으며 쓴웃음을 지은 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순영의 대답을 다시금 유도하려 했다. 그러다 지훈의 시선이 머문 곳은 반지자욱이 선명히 남겨진 순영의 네 번째 손가락이였다. 반지자욱 치고 크고 어두운 멍이 네모진 굴곡을 띄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단순한 반지 자욱이라고 하기엔 만지지 않아도 이질감이 느껴지는것 같았다.
"이게 우리 엄마 마지막 유품이라니까..."
지훈이 순영의 눈을 한 번 바라보고는, 그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와 매만졌다. 손가락 안의 감촉이 말랑하지가 않다. 피부층이 아니라 고체의 작은 물질이 표면에 잡힌다.
표피 안에 무언가가 있다.
"안 잃어버리려고 애쓴건데. 내가 이걸 여기까지 들고 왔네. 나, 진짜 잘 살아있는거 맞죠. 아직도 약에 취해서 착각하고 있는건 아닌거죠."
이게 아니다.
"잠깐."
"....."
"권순영, 그만. 진정해."
"진정이 안되는데..어떻게 하지?"
"아니, 진정해. 너는 지금 진정해야만해."
"잘 들어요. 당신들이 그렇게 궁금해하던 이름을 알려줄테니까."
"..권순영?"
지훈은 무언가 위험을 감지했다. 자신의 방 안에 있는 위험감지 센서의 신호가 순영이 반지를 빼냈을때부터 울렸기 때문이다. 그건 지훈만이 알아 볼 수 있는 적색신호였다. 지훈은 머리를 굴려 상황판단을 했다. 내 생각대로라면 지금 이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 그가 쇼파 옆 테이블 밑에 있는 인터폰으로 급히 정한을 호출했다.
"지금 일이 생길것 같은데, 당장 내 방으로 와줘."
- 바로 갈게.
지훈은 잔뜩 흥분한 순영의 손을 잡았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알려준다고. 잘 들어."
"내 말부터 들어. 지금은 아니야."
"왜? 그렇게 궁금해하던 이름이잖아. 그러니까, 그 새끼 이름은-"
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며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순영의 머리에 가져다댄건 순간이였다.
"닥쳐."
완벽한 태세변환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순영의 입이 단숨에 다물어졌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얼굴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지훈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모든 세상이 원망스럽고, 또 비참하고 비참했다. 해달란대로 해주었을 뿐인데. 나는, 이들이 원하는걸 주려고 했을 뿐인데. 역시나 자신은 오래전에 가족과 함께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바깥에서 정한의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고 지훈은 벽에 달린 센서의 지문인식을 통해 문을 열어주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뛰쳐 들어온 정한은 제 눈 앞에 보이는 광경에 머리가 아찔해짐을 느꼈다.
"이지훈..?"
"가까이 오지말고 거기서 지켜봐."
지훈은 순영에게 겨눈 총구를 천천히 내리며, 순영의 입을 재빨리 틀어막았다.
"입 다물고 내 말에 따른다고 약속해. 절대로 한 마디도 꺼내지 않기로 약속하라는 말이야."
순식간이였다. 울부짖는 순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쪽 무릎까지 꿇으며 다정히 이야기를 들어주던 지훈이 이유없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게 된 건. 순영은 비로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자 지훈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고 정한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리에 차고 있던 총을 꺼내들어 순영을 겨누었다. 정말이지 죽고 싶었다. 순영은 차라리 혀를 깨물고 자결을 해버릴까 생각했다.
"입 닥치고 네 번째 손가락 이리 줘."
"......."
순영이 눈을 꽉 감았다. 반지가 탐났던걸까. 이런 상황에서도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순영은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왼 쪽 손을 내밀었다.
지훈은 서서히 순영의 입을 틀어막은 제 손을 풀어내고 정한에게 눈짓했다. 계속 겨눠. 멈추면 안돼.
"지금 네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 모두가 살기 위해서다."
"......"
"조금 아플지도 몰라."
지훈의 말을 마지막으로, 난데없이 살갗이 찢겨지는 소리와 동시에 순영의 단말마 비명이 지훈의 방 안을 가득 덮었다.
"아악-!!!"
순영의 네 번째 손가락에서 맑은 피가 흘러넘쳤다. 정한 역시 보여지는 광경에 당황함을 금치 못했지만 흔들림 없는 자세로 저격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지훈은 투명한 유리 테이블에 무언가를 던지듯 내려놓고 순영의 살갗을 찢어낸 나이프로 재빠르게 자신의 셔츠 자락을 길게 뜯어내어 순영의 찢긴 손가락 피부에 덮은채로 묶어 흐르는 피를 지압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소름이 돋고 정말 죽고싶었던건 순영이었다.
"씨발, 지금 뭐하는...!!!!!!!!"
"입 다물어."
"이럴거면 그냥 죽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조용히 해."
"지금 네가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
순영의 울부짖음에, 평소에 그렇게도 차분하고 단 한 번도 표정에 변화를 주지 않던 지훈은 이성을 잃은채로 순영의 머리통을 잡고 악을 질렀다.
"이 모자란 새끼야, 지금까지 네 몸에 생체 칩이 심어져 있었다고!!!!!!!!!!!!!"
지훈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순영의 피가 묻은 제 손을 바라보다, 한 번 털어내고는 유리 테이블에 올려둔 의문의 물건을 들어 순영의 눈에 들이 밀었다.
간격이 0.7mm정도의 사이즈로 되어있는 작은 칩(CHIP)이였다.
"....뭐?"
"..보여? 똑바로 보이냐고."
"..이게..뭐지..?"
"생체 보안칩이야. 체내 폭탄이다."
"......."
순영의 몸 즉 네 번째 손가락에는 폭발하는 폭탄 칩이 심어져있었다. 이 방식은 러시아에서 주로 스파이 테러용으로 쓰던 방식이였는데, 스파이가 해당 칩에 저장되어있는 금기사항을 발설하게 되면 그것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물론 최소 15평의 건물이 함께 폭발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진 체내형 폭탄이였다. 그러한 생체 보안칩이 순영의 몸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한 지훈으로써는 방법이 없었다. 금기사항이 아니더라도 시스템 오류로 인해 무언가 타이밍이 좋지 않아도 잘못 터지는 경우가 간혹 있기에 그것을 발견하게 된 그 순간부터 듣기 좋은 설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았다.
"네가 살아가면서 그 새끼 이름을 한 번이라도 말하는 날이 있었다면, 넌 이게 폭발함으로써 갈기갈기 찢겨져 죽을뻔 했어. 너는 자폭탄을 몸에 심고 살았던거야."
"..아..아...."
"용케도 한 번도 그 이름을 내뱉은적이 없었던건 철저히 네 운이였다."
멀리서 바라보던 정한이 총을 내던지고 두 사람에게 뛰어와 지훈과 순영의 상태를 체크했다. 지훈의 뜯겨진 하얀 셔츠에는 순영의 피가 물들어있었고, 그로 인해 지훈의 허리는 드러나있었다. 하얗고 마른 허리와 갈비뼈 사이에 들숨과 날숨이 오가는것이 보였다. 그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였다는 것을 그들 모두가 피부로 느꼈다.
순영 역시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을 바라보다 깊은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지훈은 그 칩을 정한에게 건네며 보관을 부탁했다.
"체내 밖으로 나왔으니 지금은 폭탄의 효력이 없을거야. 하지만 제대로 분해해서 따로 보관 해줘."
그가 다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룸 밖을 나서려 했다.
"운 좋은 새끼."
지훈의 욕지거리가 순영의 귀를 따갑게 스쳐지나갔다.
깊은 잠에 빠졌던것 같다. 어제 밤에 있었던 일들을 곱씹다 겨우 잠에 들었던 순영은 오전 11시가 다 되어서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왼 쪽 손이 저릿함을 느껴 들어올리니 어제 지훈이 긴급하게 처치해준 흔적은 온데간데 없고 새로운 붕대로 압박이 되어있었다.
"...대체.."
A1에 온지 겨우 이틀째 아침.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였다.
그가 대략 30분 정도를 멍하니 누워있다,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침대 머리맡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스프가 담긴 접시를 발견했다.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정한이 두고 갔을것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있었던 일로 지훈에게 고맙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원하는 답을 줘야 할지 고민을 하던 찰나였다. 시끄럽게 인터폰이 울렸고, 순영은 룸 입구에 있는 문 옆에 매달린 인터폰의 수화기를 들어올려 조심스레 말했다.
"여보세요."
잔뜩 기가 죽은 순영의 목소리에 생기를 불어넣은건 지훈이였다.
- 아침은 먹었는지 궁금해서.
순영은 지금 자신의 과거라거나, 가족사를 얘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 눈에 눈물이 뜨겁게 차오르며 코 끝이 찡해짐을 느꼈다. 이지훈이라는 자는 내 생에 나를 가장 짧게 만난 주제에, 오히려 나를 가장 미치게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직."
- 먹어.
"......."
- ..먹어야 빨리 나을테니. 그래야 우리가 남은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
"..알아."
- 그래. 그럼.
"잠깐만요."
- 말해.
정적이 흘렀다. 순영은 제 왼쪽 손을 들어올려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고맙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말해야할지. 아까부터 내내 같은 고민 뿐이였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두 가지가 있는데.."
- 고맙다는 말은 사양할게. 그리고, 중요한 이야기는 얼굴 보면서 하고 싶은데.
지독한 통찰력은 이런 상황에서도 나오는구나. 순영이 마른침을 삼키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터폰을 제자리에 걸어 두었다.
마른 두 다리로 침대에 돌아가 쓰러지듯 누웠다.
".....너무 길다. 내 인생."
정한이 입에 토스트를 물고 사격장으로 진입했다. 그 곳에는 민규가 먼저 진을 치고 있었고, 옆에는 석민과 승철도 함께 있었다. 다만 사격 연습을 하는건 민규뿐이었다.
"민규, 좋은 아침."
"하나도."
"우린 좋은 아침 아니냐."
"아니냐?"
승철이 정한을 보며 자신과 석민에게는 인사를 하지 않은걸로 트집을 잡자 석민도 승철의 말에 꼬리를 물며 시비조로 물었고, 정한은 가볍게 무시하듯 웃어보였다.
"너희는 좋은 아침이겠지."
"무슨 소리냐."
"민규는 아니거든."
"조용히 하시지."
어제 일을 거들먹거리는 듯 얄밉게 말하는 정한에게 짜증을 낸 민규가 정한을 한 번 노려보고는 다시 사격에 집중했다.
"우리는 먼저 내려간다. 리더가 시킨 일이 있어서."
"나는 안갈래...."
"정확히 말하면 이석민한테 부탁한 일인데 내가 도와주러 가는거야. 윤정한, 김민규 잘 달래줘. 뭔지는 몰라도."
"그래. 이석민 키우기에 시간 빠듯한 최승철도 화이팅."
"아..귀찮아."
승철이 석민에게 헤드락을 걸다시피 끌고 내려가는것을 끝까지 지켜보던 정한이, 보호장비를 차며 사격 준비를 했다.
"기분 괜찮다는 거짓말은 적어도 하지 말지."
"나쁘지도 않아."
"그래. 알겠지. 지훈이는 너 뿐이라는거."
"......."
"네 자리에 위압감 느낄 필요 없어. 어제 그 녀석은 그냥 한낯 민간인일 뿐이야."
"내가 고작 그런걸로 위압감을 느낄거라고 생각하는건가? 진짜, 나를 너무 모르는구나."
민규가 가볍게 방아쇠를 당겼다. 명중이다.
"언젠간 너도 이해하는 날이 올거야. 조금만 기다려."
정한 역시 사격판의 정중앙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역시 명중이다.
"내가 뒷전이 될 줄은 몰랐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랑 먼저 상의할줄 알았는데."
"리더라는게 그렇게 쉬워보이니. 모든 짐을 팀원들에게 나눠준다는거, 그거 지훈이 성격상 잘 안된다는거 알잖아."
"그래도 그게 나라면 괜찮을텐데. 모두에게 나누라는게 아니라, 그냥 나한테 조금이라도 티를 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형은 그게 안되나봐."
"네가 지훈이에게 어떤 존재인데. 너한테 짐이 되기 싫어서 그런거다."
"....그런데 형은 어떻게 아는거야? 그 녀석. 설마 독일에 출장간게 그 녀석 데리러 갔던거야?"
"뭐, 그냥. 자초지종은 모르겠는데 꽤 불쌍한 놈이야. 나도 정은 안가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봐야할 얼굴인데 익혀두는게 좋지 않겠어? 딱히 살갑게는 못해줘도 지금 그렇게 무서운 눈빛으로 패지는 말아줘."
"몰라. 맘에 안들어, 그 자식."
"네 세상에 맘에 드는게 이지훈뿐이지."
"아, 좀."
민규가 정한에게 장난스레 총을 겨누다 정한이 해맑게 웃어보이자 민규도 그제서야 웃어보였다.
그 때, 지수에게서 호출이 걸려왔다.
- 겐지가 없어졌어. 방도 다 정리 되어있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사라졌어. A1 팀원들 모두 긴급으로 모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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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열흘만에 찾아왔네요ㅠㅠ 분량이 짠내나지만 더 늦어지면 큰일날 것 같아서 핵심 포인트만 추려서 업데이트 해봅니다!
남은 여정이 길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ㅋㅋ
감사합니다^^
+ 본문에 나오는 '체내형 폭탄'에 관한 모든 내용은 허구입니다. 킹스맨1에서 감명을 받아 모티브로 적은 것이니, 체내형 폭탄의 유래 등등에 대하여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