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너져 내린 건물에서 캠코더를 발견했다.
금속케이스에 소중한 듯 간직된 캠코더.
배터리가 다 닳았긴 했지만 충전만 하면 다시 작동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메모리칩 사이에 종이 끼워져 있었지만 글씨가 바래져 읽을 수 없었다.
대신 충전을 마친 캠코더를 작동시켰다.
(Y / N)
YES.
우리는 지금부터
파티를 열 것이다.
#00
세상이 망했다.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로 인간보다 낮은 지능으로
인간보다 강한 본능으로 움직이는 그들에게.
..아마 이걸 좀비..라고 부르던가?
!-- Document End -->모든 것은 고요 속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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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치__직....
다니엘 뭐해 너. ...야 이거 불 안 들어왔잖아.고장난거네
짐 늘리지말고 버려라.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가득 담긴다.)
(주변이 시끄럽다.)
(결국 화면이 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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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아,아아 오 됐다.안 버리길 잘했지?
(주변이 어둡다.)
(폐허된 거리가 앵글 속에 담겼다가 종현의 얼굴로 꽉 찬다.)
종현 우리는 지그음..음..어젯밤 라디오에서 들은 대로 광화문에 갈 예정이다.
재환 거기가면 군인들 있다니까 간다.
종현 야아..내가 지금 찍고 있잖아.저리로 가라고.
재환 이제 거기가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후로 몇 분 동안 둘이 싸우는 모습만 계속된다.)
(그리고 그 다음 영상들 역시 같은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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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2
학교에서 도망친지 2주일 가까이 된 지금.사실 애들이 많이 지쳤다.
성우 얼마 전에 진짜 죽을 뻔 한 적이 있었다.음..우리가 마트 털러 갔을 때였나.
그래 그 때.웃기게도 지금은 마트에도 왕이 있나보다.
너무 배고파서 뭐라도 먹고싶어서 눈에 보이는 마트 아무데나 들어갔는데...
그 날 처음으로 좀비보다 인간이 더 무서운 존재란걸 느꼈다.
종현이가.. 한 쪽 팔을 전혀 못쓰게 되었다.나는 우리나라 총 소지도 가능한 곳인지 몰랐지.
(갑자기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린다.)
(성우는 한껏 경계하며 카메라에 손을 뻗는다.)
...아닌가?여전히 좀비가 더 무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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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거의 다 왔다.
현빈 우리는 이제 광화문에 다 와간다.
아까 다행히 버스정거장을 봤다.종로2가 였으니까 이대로 쭉 가면 되겠지.
민현 내가 왜 널 찍어줘야하냐?팔 빠지겠네..
현빈 ...애들이 많이 예민해졌다.
민현 시끄러.
#004
어딘가 이상하다.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카메라는 심하게 덜컹거린다.)
(흘끔흘끔보이는 장면엔...좀비들이 가득하다.)
종현 씨'발 이게 말이 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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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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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만 들린다.)
(이따금 아니 계속해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뛰어!
(캠코더는 바닥만 찍는다.)
(짐승같은 것이 쉬익 소리를 내며 따라붙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년들이 달리는 와중에도 그들이 가는 길에는 시체들과 장기들로 보이는 무언가가 깔려있다.)
(...그들은 익숙한듯 달린다.)
(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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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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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정신없이 달렸다.여기가 어딘지도 모를만큼.
ㄹ
(망연자실한 표정의 소년들이 컴컴한 지하에 헉헉대며 앉아있다.)
(누구하나 쉽게 입을 열지못한다.)
(듣기 싫을만큼 불규칙하고 강하게 누군가 문을 두들긴다.)
(...영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니엘 죽지말라고...야..정신차려...
(재환이 배를 움켜잡고 괴로워한다.)
재환 하..흐으..후....안 죽어 새,끼야..
종현 10부터 거꾸로 세어봐...정신 잃지말고...김재환.
(좀비들에게 물린 것인지 상태가 좋지않다.자꾸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정신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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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민현 결정해야지 버릴건지 끝까지 같이 할건지.
현빈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답은 분명 하나밖에 없을텐데 선택지가 2개야.
민현 ...'모르겠다'라고 하지마. 방금까진 확신했었는데 그러기 싫어지잖아.
성우 확신한다고 당당히 말 할 수 있었어?
민현 ...저 문이 얼마나 오래 갈 것 같아?
......
나는 오늘 밤 까지 라고 보는데.
(차가운 눈빛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한다.)
(이내 화면은 소년에 의해 꺼진다.)
#007
(화면에 또 다른 소년의 얼굴이 나타난다.)
(그의 뒤로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색색대며 자는 재환과 그의 곁을 지키는
다니엘이 있다.)
다니엘 이제 알 것 같다.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종현이 물끄러미 다니엘을 바라본다.
정확히는 카메라를 바라본다.)
다니엘 너도 알잖아 반장.
종현 ..난 항상 꿈꿔왔던 일이었지.다만
다니엘) ....
종현 준비가 안 되었을 뿐이야.
다니엘 현실은 더 준비없이 찾아왔는데 뭘.
(종현 살짝 웃으며 짐승같은 소리를 내며 이빨을 가는 재환을 바라본다.)
종현 한번만...한번만 더 물어봐주라.
할 수 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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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__직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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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파티를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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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밤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파티를 열 것이다.
그를 위해
가진 물을 전부 마시고
통조림을 전부 먹는다.
한 가지
술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쿵쿵대는 저 노크소리와 우리들의
심장소리를 음악으로 인생 가장
화려한 파티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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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문이 점점 심하게 덜컹거린다.)
야 누가 김재환 좀 깨워봐.
오늘이 마지막 날이잖아.
(소년들이 좁은 지하에서 웃는다.)
(녹화된 영상에서 처음보는 표정이다.)
(재환이 힘겹게 정신을 붙잡고 있다.아이들도 그를 부축해준다.)
현빈이 먼저 물을 이리저리 뿌린다.
땀을 씻겨내기는 커녕 머리만 살짝 젖을 정도의 양이지만
최고의 사치다.
더 이상 어두운 밤도 없다.손전등을 밤새도록 켜 둘 예정이니까
그리고 밤새도록 파티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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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소리가 끊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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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점점 약해진다.)
(그들이 더 발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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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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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쾅-!
드디어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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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그 순간 결국 화면이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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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
[재생하시겠습니까?]
(Y / N)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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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화 하시겠습니까?]
(Y / N)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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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영상은 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