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에 멘토스!
01
솔직한 말로 누구누구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은 오그라들기 그지없으며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였다. 하나 더, 빡치는 건 그 누구누구의 범주에 본인이 들어간다는 거고. 김여주는, 아. 씨발 김여주 선생은 XX고에서 한껏 유명세를 뽐내고있는 장본인 중 하나였다. 물론 그것도 대가리 색 한 번 사납던 강다니엘의 등장이 있고나서부터.
"야, 오늘 그새끼 왔냐?"
"웬일로 니가 안 묻나 했다. 아직 안 왔어."
"시발, 개빡치는 새끼. 걔 나한테 왜 그런다냐?"
"얼굴만 보면 화나서 그런 거 아님? 그런 거면 인정하는데."
"박지훈 대가리 깨져야 정신차리지."
박지훈과의 대화 주제인 강다니엘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2년 동안은 전혀 접점이 없는 인물이었다. 3학년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김여주라고 하면은 아 그 문과 탑? 이라는 반응이 다였고 좀 친하다 싶으면 김여주가 얼마나 말이 많은 애인지에 대해 토로하는 게 끝이었는데. 김여주의 인생이 한 번에 뒤바뀐 건 소문의 강다니엘과 같은 반이 되었던 3월 2일 첫순간이었다.
*
"이번에 김여주 반에 친구 1도 없는 거 실화?"
"박지훈 진짜 뒤진다. 키도 개미새끼만한 게."
"야 씨발 남자는 군대가서도 커."
당치도 않는 박지훈의 말에 콧방귀를 끼며 반으로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강다니엘과의 첫 대면은. 그냥저냥, 강다니엘은 김여주를 몰랐을게 뻔했으며 소문으로만 듣던 그 애가 앞에 서있는 놈이라는 걸 어렴풋이 여주는 느꼈음에 틀림없다. 대충 손을 까딱하곤 반으로 들어서는 여주를 다니엘이 지긋하게 쳐다본 걸 지금은 알런지 모르는 일이지만. 아마 둘의 첫만남부터 범상치않았다고 박지훈은 혀를 내두르곤 했다.
3학년이 된 첫날인데 반 분위기가 이상하긴 했다. 몇몇은 쎄한 느낌으로 의자에 앉아있었고 몇몇 무리에서는 다니엘이란 이름이 번번히 등장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급급했다. 그래, 낭랑 19세 눈칫밥하나는 이 경쟁사회에서 잘 처먹은 김여주가 그걸 몰랐을 리 없지. 사람 관계에 계급 따위는 없다는 주장이지만 아직꺼정 대가리가 덜 자란 애새끼들의 네모난 링 위에는 부끄러운 계급 같은 게 있단걸, 여주는 잘 알았다. 그리고 가방을 고리에 걸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새끼랑 엮이면 좆된다고.
그건 시발, 김여주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다짐이 됐다. 조용한 친구들 무리에 섞여 앉아선 수특을 훑어보던 김여주의 귓전을 세게 때린 건, 다니엘이 다시 반으로 들어오면서 생긴 일이다. 하하호호 시끄러운 무리가 다니엘의 주변을 감싸돌면서 찾아간 자리는 묘하게도 여주와는 정 반대의 분단이었고 그 자리는 딱 신경전을 하기론 좋은 자리임에 분명했다. 그때부터 여주와 안면이 있던 이의웅은 생각했다. 지금 내 옆에서 열심히 수특을 보고있는 김여주의 눈길이 한 번이라도 더 다니엘을 향한다면 이 반은 가망이 없음을.
"저, 여주야 … 이어폰 빌려줄까? 아님, 귀마개라도."
"아니 괜찮아. 이어폰 있어."
"시끄러운 거 같은데 이어폰 안 써?"
"아니, 저 새끼들이 조용해야지 내가 왜 그래야겠니."
아, 좆됐다. 의웅이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뱉었던 여주의 목소리는 의웅과 조곤하게 얘기하던 목소리의 볼륨과 톤이 아니었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곤 다니엘이 그 얄쌍한 눈을 접으며 얘기하고 있던 자리를 덤덤하게 노려보면서. 여주가 쏘아붙였다. 장담컨대, 의웅이 3년 동안 보았던 여주의 모습 중에 가장 무서웠다고 할 수 있었다.
"아, 미안 시끄러웠어?"
"말이라고 하니. 그걸 모르면서 지금껏 떠든 거야?"
"난 누구처럼 첫날부터 샌님질 할 애가 있는가 싶었지."
"말 한 번 존나 웃기게한다 너. 머리 빈 거 티내지 말어. 나이가 몇인데 …"
오 그래, 마지막 껀 쫌 쎘다. 인정한다. 책상에 머리를 박고 온갖 인상이란 인상을 다 찌푸린 의웅이 급하게 휴대폰을 들어 박지훈에게 문자한다. - 야 니친구 좆됐어; - - ㅇ?누구 김여주? - - 니친구가 김여주 말고 더 있냐; 강다니엘이랑 싸움붙음 - - 김여주가 왜 걔랑 싸워; 나 오늘부터 그런 친구 없어 - - 야; 야시발롬아. - 그렇게 책임감없이 사라진 박지훈의 연락에 의웅은 왼쪽에 앉아있는 여주의 옷깃을 슬쩍 잡아당겼다. 야 여주야, 분위기 좀 봐 … 너 그러다 큰일 나.
"근데 니가 보통 양아치새낀 아닌가 봐. 애들이 다 날 말리네."
"와, 골때린다 너."
"너만큼 골때리겠냐 내가."
"그래 그렇겠지? 미안, 내가 사과할게. 대가리 빈 것까지."
"응 그래. 그것까지 사과해줘서 고맙네."
갑작스럽게 태도가 변한 다니엘에 수근거리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원래 사람이 죽기 전에 미친다고. 저 십새끼가 무슨 꿍꿍이를 갖고있는진 모르겠지만 이 더러운 상황을 없애는 게 중요했던 여주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는 게 다였다. 물론, 사과라는 말을 들먹이는 사람치곤 다니엘에게 전혀 미안함이란 감정이 한 톨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걸 모를 여주도 아니고. 그냥 이대로 신경전만 벌이다 끝내자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린 여주가 샤프를 누르며 대답했다. 말하자면 무시한 거다. 다니엘을. 다니엘의 얼굴이 차츰 굳어가는 걸 정면에서 본 반 아이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가고, 유일하게 모른 채로 서랍을 뒤적이는 건 여주뿐이었다. 하다하다 이젠 의웅이 우는 소리까지 내며 얼굴을 손으로 감싸니. 말 다 한 거지.
"그래서 말인데, 사과하려면 이름은 알아야 하니까."
"김여주. 이제 우리 이름 불리는 일 없도록 하자."
"그래 여주야. 오늘은 내가 미안했어."
실실 쪼개는 웃음을 흘리며 다니엘이 사과했다. 여주의 눈길이 그쪽으로 한 번 향했다가 다시 돌아온다. 다니엘의 사과는 '오늘은'에 그쳤다. 오늘은 다니엘이 잘못했다지만 글쎄, 다음의 사과는 누가 될지 사과는 하게 될지 모르는 게 둘의 사이였다. 여주는 아닐지 몰라도 다니엘의 얼굴은 그랬다. 저 씹썅년을 언젠간 조져버려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