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지색 (傾國之色)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벚꽃을 닮은 그녀인데.
01
"장차 나라를 이끌어야 할 세자가 월담을 한다는 소문은 어디서 나오는 말입니까, 세자."
왕세자가 월담을 한다는 소문은 궁 안에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 소문은 왕세자에게도 왕실의 권위에도 타격을 주는 소문이었다. 장차 나라를 이끌어 갈 왕세자가 밤 마다 월담을 하여 여인을 만난다, 기방에 간다, 다른 살림이 있다. 등 왕세자의 권위를 하락 시키는 소문들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고 그로 인해 왕세자를 감시하는 눈들이 더욱 더 많아졌다.
"어미는 그 소문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세자를 믿는 것도 아닙니다."
소문을 듣고 먼저 세자를 찾아 온 건, 중전이었다. 어려서부터 애정을 받으며 살아 온 세자는 아니지만, 세자를 왕위에 앉히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그녀였다. 오직, 권력을 얻기 위해서, 손에 피도 묻히는 그녀였다. 급하게 찾아 온 중전의 말에는 중의적인 뜻이 담겨 있었다. 소문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믿지도 않겠다고.
"금혼령을 내리겠습니다."
중전의 말에 세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혼기가 다가오는 세자에게 세자빈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세자에게는 영원을 약속한 정인이 있었다. 소녀. 세자의 머릿속에 소녀가 스쳐 지나갈 때에, 그의 표정은 당황한 기색을 그대로 내보이고 말았다. 세자의 표정 변화를 느낀 것인지, 중전은 세자를 보며 다시 얘기했다.
"소문도 믿지 않고, 세자도 믿지 않겠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까?"
나라에 금혼령이 내려졌다. 금혼령과 동시에 처녀단자가 내려지고, 단자에는 명문가의 여식들의 이름이 하나 둘씩 적혀 나갔다.
영의정 댁 여식, 성이름
소녀의 머릿속에는, 소녀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
소녀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소녀의 어머니는 시해 당하였다.
이 나라의 국모라는 사람에게.
그날 따라, 하늘이 유난히 빛났다. 빛나는 별들 덕분에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와 둘이 걷는 밤길 산보도 무섭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는 어머니였다. 나를 자신의 뒤로 숨기던 어머니의 시선 끝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다른 남자와 함께. 두사람은 어머니를 보더니 조금 놀란 눈치였다. 마치 밀회를 하다 들킨 사람처럼.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여자와 사인을 주고받은 남자는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서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머니는 꽉 잡았던 손을 놓고선 나를 재촉했다. 어서 가, 어서.
"어머니!"
"어서 가라고 했지 않았느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뒤로 한 채, 달려 나갔다. 아버지를 모시고 얼른 다시 오면, 괜찮을 것 같아서.
*
세자빈이 되기 위해서는 총 세 번의 간택이 있는데, 초간택, 재간택, 그리고 삼간택. 긴장할 겨를도 없이 초간택은 끝이 났다. 생각했던 간택식과는 굉장히 달랐다. 용모와, 걸음 걸이, 세자빈이 되기 위해서만이 아닌, 왕실에 들어가기 위한 기본적인 예절 등을 심사했다. 그래서 중전 또한 보지 못했다. 반대로 중전은 날 보았을지 모르지만, 왕가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않고 있는 게 왕실의 법도였기에 그 날은 여인들 구경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총 두 번의 간택식을 모두 지나.아버지가 영의정인 덕에, 최종 간택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내가 아니라면, 좌의정의 여식이 될 것이 분명했다. 세 번의 간택식을 통해 말로는 공정성을 추구한다고 하겠지만, 결국엔 모두 가문 싸움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최종 간택의 날이 밝았다.
사실은 어젯밤 잠이 들지 못하였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 중전에 대한 원망, 소년에 대한 그리움, 그 모든 게 합쳐져 이름이의 머리속을 헤집어 놓았다. 마지막 간택을 위해 소녀가 다시 입궁을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죽였던 그녀를 다시 만나는 자리. 오늘 소녀의 행동에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셋 중 그 누구도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아씨, 가마가 준비 되었습니다."
오늘이 끝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내가 만약 궁으로 들어 갔을 때에 내 정인이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진 않을까, 중전이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어머니가 내게 벌을 내리시진 않을까.
어찌, 어머니를 죽인 자의 아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 아름다운 며느리를 얻었도다."
최종 간택에서는 나와 좌의정의 여식, 그리고 이름 모를 가문의 여식까지 셋이 남아 있었지만, 승자는 뻔했다. 세자빈은 나였다. 권력을 중요시 하는 왕실에서는 애초에 정치적 술수를 써 영의정의 여식인 나를 내정해 두었던 것이고, 좌의정의 여식을 비롯한 후보들 역시 들러리에 불과했다. 훗날, 아버지가 권력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임금과의 친분이 있었기에 넘 보지 못한다는 것 또한 왕가의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들 덕분이었는지, 왕은 물론, 중전 역시도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간택을 받고 난 후, 바로 별궁으로 옮겨졌다. 별궁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있었다. 봄의 끝자락에 만나는 벚꽃이라니, 생소했다. 태어나 벚꽃을 딱 세 번 보았다. 어릴 적 어머니와 산보를 걸을 때, 벚꽃을 보고 싶다 하였을 때 소년이 선물해 준 벚꽃, 그리고 지금.
"벚꽃이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벚꽃을 딱 세 번 본 이유는, 소녀의 주변엔 벚나무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벚꽃을 닮은 그녀인데.
읽어 주세요 ♡ | ||
제 똥손이 오늘도 이상한 글을 썼습니다. 지훈아 미안해... 2화부터는 본격적인 지훈이의 분량과 함께 글의 분량도 많아 질 거예요!!! (아마도) 글을 정말 잘 쓰고 싶은데 아직 공부가 덜 되었나 봐요... 죄송해요 갑자기 사라지면 공부하러 갔구나... 생각해 주세요 사랑해요옵!!!!! 아 암호닉도 이번 화부터 받으려고 하는데 신청 해 주실 분이 있을까요... 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