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아빠 박지훈
수정이와 정반대인 건물에 수업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강의 끝나고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끝나고 또 강의가 있다고 변명을 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할때마다 수정이한테 미안했다. 또, 이렇게 거짓말을 할때마다 수정이한테 얘기해야하는데… 생각이 들곤한다. 과연 수정이가 잘 이해해줄까. 내 진실을 들어도 날 피하지않고 지금처럼 똑같이 대해줄까. 무서웠다.
여러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근 며칠 사이에 여러 일이 빵빵 터지니 이렇게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에 생각은 애꿎은 머리를 더 복잡하게 하는 것 같아 가방 구석에 박혀있던 이어폰을 꺼내 엉켜있는 줄을 풀었다. 마치 엉켜있는 줄이 내 복잡한 머리를 나타내는 것처럼 좀처럼 풀리지않았다. 걸으면서 풀어서 그런가 싶어 다 풀고 가야겠다 생각해 걸음을 잠시 멈췄다. 드디어 이어폰 줄이 풀려 핸드폰에 이어폰을 꼽고 고개를 들자 나무 사이로 박지훈이 보였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박지훈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내 눈이 동그랗게 떠지면서 얼른 뒤로 돌아 귀에 이어폰을 꼽고 최대한 빨리 걸었다. 아, 강의실 가려면 저기 지나서 가야하는데. 이렇게 가면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당연히 지각하겠지. 학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이래저래 생각하다 박지훈이 따라오지는 않는 것 같아서 결국 걸음을 멈췄다. 하긴, 그 상황에서 따라와도 웃기는 그림같았다. 두 눈 질끈 감고 다시 뒤를 돌아 아까 가려던 곳으로 다시 걸어갔다. 그래, 최대한 노래 듣는 척 지나가면 내가 누군지도 모를거야. 처음부터 신경을 안 썼을 수도 있어.
방금 박지훈이 있던 곳에는 어디로 간 것인지 박지훈이 보이지 않았다. 안도감과 동시에 실망감이 몰려왔다. 정말,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일까. 뭔지 모를 감정에 갑자기 강의가 생각나 핸드폰 화면을 켜 시계를 보니 지각까지 1분밖에 남지 않아 냅다 뛰었다.
2분 정도 지각을 했는데, 다행히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시지 않은 것 같았다. 맨 앞과 맨 뒤에 두 자리가 남아있길래 어차피 교양 과목이라 맨 뒷자리로 가 앉았다. 시력이 좋지않아 수업에 집중이 되지는 않았다. 지루하기로 소문난 교수님이라 그런지 몇몇 대놓고 엎어져자는 학생들도 보였고, 상모놀이를 하듯 꿈뻑거리는 학생들도 꽤 보였다. 그래, 그때까지는 좋았다. 차라리 내 눈을 옆으로 돌리지 말걸. 눈을 옆으로 돌리자 '박지훈'이라고 반듯하게 쓰여진 책이 보였다. 몽롱하던 정신이 순간 팍 들었다. 너무 당황해 눈알만 이리저리 굴렸다.─너무 굴려서 혹시 옆에서 내 눈알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을지도 모른다─ 온몸은 얼음에 언 듯 경직돼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박지훈인지 아닌지 확인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차라리 아예 시간이 멈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 몸을 좀 움직여보려고 자세를 바꿨는데, 하필 펜이 떨여졌다. 그것도 박지훈이 있는 쪽으로 말이다. 아니, 아직은 옆에 박지훈이 앉아있는 줄은 모른다. 그냥 책에 적혀진 이름만 봤지, 사람은 확인하지 않았다. 이건 사람을 확인하라는 신의 계시인걸까 떨어진 펜만 보고 있었다. 옆에 있는 남자가 펜을 주어주려나 본지 몸을 숙였다. 그 펜에 네임 스티커같은 것을 붙여놓지 않은게 이렇게 다행인지 몰랐다. 펜을 받고 고개로 살짝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아, 지금 딱 죽을 정도다. 딱, 미치겠는 그 정도.
오늘따라 강의가 왜이리 긴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오늘따라 더 길게 느껴지는 것인가. 너무 불안해서 다리를 덜덜 떨고있는 내가 보였다. 자각하고 얼른 다리 떨던 것을 멈췄다. 옆 남자에게 너무 눈치가 보여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옆을 힐끔힐끔 쳐다보게 됐는데 순간 내 눈이 잘못된 것인가 싶었다. 박지훈 책에 낙서가 돼있었다. '성이름'이라고. 너무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 낙서를 보자마자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 여기서 나가면 더 이상해지는데. 진짜 안 되는데…
드디어 길고 긴 강의가 끝났다. 언제나 늦게 나가는 습관 있었지만, 오늘은 늦게 나가면 내 정체를 다 들켜버릴 것만 같아 얼른 가방을 싸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옆에 있던 ─박지훈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내 손목을 잡았다. 그대로 또 몸이 굳어버렸다.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눈알만 굴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머릿속에서 백팔번뇌했다. 뒤를 돌아볼까, 말까. 볼까, 말까. 일 초가 한 시간 같았다.
" 맞지. "
" … … "
" 성이름 맞지. "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리고 고민하고 있을때, 남자는 그런 내가 답답했던건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리고, 난 그 첫마디로 그 남자가 정확히 박지훈인것을 알아냈다. 목소리가, 누가봐도 박지훈이었다. 성이름 맞지. 나는 아직 너를 볼 자신이 없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너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들을 정리해놨었는데, 머리가 도화지처럼 하얘졌다. 박지훈은 내 손목을 놓지 않았다. 왜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지는 않았다.
" 성이름 아니니까, 놔주세요. "
" … 왜 계속 피하는거야. 피하지마. "
" …… "
" 피하지 말아줘, 부탁이야. "
" … 갈게요. "
절대 안 놓아줄 것 같았던 박지훈의 손에서 손목을 빼내려고 하자, 의외로 쉽게 풀렸다.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을 나왔는데, 괜찮을거라 생각했는데, 강의실을 나오자마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안되는데. 빨리 가야되는데. 박지훈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려고 하자, 박지훈이 언제 나왔는지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이번에는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있는 힘껏 뛰었다.
──
그렇게 바로 정훈이에게 왔다. 어제 정훈이를 놔두고 간 것이 화나 원장님께 무어라 하고싶었지만, 그럴 깜냥이 되지않았다. 얼른 정훈이만 데리고 나와 정훈이를 보며 애써 환하게 웃었다. 애 앞에서는 힘든걸 티내면 안 되니까.
" 엄마, 오늘 힘든 일 있었어..? "
" 어? 아니, 우리 정훈이가 있는데 힘든 일이 어디있어~ "
" 나는 괜찮아. 엄마만 안 힘들면 돼. 정훈이는. "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활짝 웃었는데, 애는 눈치가 왜이렇게 빠른 것인지 내가 힘든 일이 있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런 정훈이를 보고 있자니 괜히 눈물이 나왔다. 그자리에서 정훈이를 품에 안고 최대한 눈물을 안 보이려 눈물을 닦았다. 정훈아, 오늘은 엄마 친구 보러갈까? 엄마 친구? 좋아!
──
" 미친. "
" … 애 앞에서 욕하지 말고. "
" 이게 욕 안 할 수 있어? 너 진짜 너무하다. 이걸 어떻게 이제 말해? 그럼 여태까지 과 모임 안 온 것도 다 이거 때문인거야? 아, 진짜 성이름 어떻게 이럴 수 있어. "
" 수정아, 하나씩. 난 너 반응이 어떨지 모르니까… "
" 뭘 어떨지 몰라. 당연히 괜찮아 위로 해줘야 되는거 아니야? 내가 아무리 인성이 거지라도, 그렇게 바닥은 아니다? "
이렇게 우울한 날, 생각해보니 말 할 친구도 없고, 괜히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아 집에 들어가는 길에 수정이한테 연락을 해 카페에서 보자고 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해도 수업이 다 끝나고 수정이를 보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수정이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도저히 이 일을 나혼자 감당하지 못하겠기에 수정이를 카페에서 만나자마자 다 털어놓았다. …박지훈의 얘기만 빼고. 이 얘기만으로도 벅찰텐데, 이 상대가 박지훈이라는 것을 알면 얘는 얼마나 뒤로 자빠질까. 어디까지나 수정이를 생각해 말하지 않았다.
" 고맙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
" 고맙긴.. 근데 나 진짜 좀 실망했다? 난 너 진짜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에선 좀 실망. 근데 또 너 마음도 이해가 가긴가고… "
그래서 애 이름이 뭐라고? 정훈이. 정훈이? 성은? 박. 박정훈이야? 엥? 박정훈? 박지훈이랑 이름 비슷하네. 아무튼, 그 쌍노무새끼 아직도 연락 안 하는거지?
…연락은 안 하지, 오늘 얘기를 해버렸어. 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던 수정이는 의외로 정훈이와 짝짝쿵하며 나보다 더 잘 놀아주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수정이는 정훈이의 볼을 꼬집기도 하고, 너무 귀엽다며 자기 혼자 막 웃기도 했다.
" 근데, 있잖아. 이런 말 해도 되려나. "
" 뭔데? "
" 얘.. 박지훈 닮았어. "
그때,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박지훈이 보였다.
──
" 인사해. 여긴, 유교과 성이름. 여긴, 경영학과 박지훈. "
" … … "
" 이 애는 … 사촌 동생. "
" … … "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냐 함은,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박지훈이 보이는 거 까지는 정말 지금 상황에 세발의 피도 되지 않았다. 하필, 정수정이 박지훈을 보고 흔들리는 내 눈동자를 보고는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봐 박지훈을 보고는 아는 척을 해서 손을 흔들자, 박지훈이 여기로 걸어왔다. 아니… 왜 하필, 오늘. 수정이한테 그냥 전부 다 말할걸그랬나. 진짜, 하나라도 숨기지말고 다 말할걸 그랬나. 생각했을땐, 이미 늦었다. 정수정이 계속 앉으라고 부추겨서 박지훈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니, 이 카페에 들어온거 보면 일행이 있어서 들어온거 아니야? 얼른 일행한테 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정수정은 나와 박지훈을 아는 사이로 만들고 싶었던건지, 다짜고짜 소개를 시켰다. 여긴, 유교과 성이름. 여긴, 경영학과 박지훈. 그리고, 이 애는 … 사촌 동생. 누구의 사촌 동생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정수정이 내게 해준 최대의 배려였다.
" 귀엽다. 이름이 뭐야? "
" … … "
" 이름이 박정훈인가보네. 정훈이야? 박정훈? "
일부러 박지훈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지금, 자리가 어떻게 돼있냐하면, 정수정과 박지훈이 같은 쪽에 앉아 있고, 나와 정훈이가 같은 쪽에 앉아 있는데, 내 맞은 편에는 정수정이, 대각선에는 박지훈이 있다.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사람이 박지훈이 아니라 불행중 다행이었다. 설마 했는데, 박지훈이 정훈이에게 이름이 뭐냐며 말을 걸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되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불안한 분위기였다. 만약, 여기서 정훈이가 박지훈의 애라는 게 걸린게된다면. 아,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정훈이는 언제나 그랬듯 사교성이 좋은애는 아니라, 답을 하지 않았다. 박지훈은 정훈이의 가방에 적힌 이름을 본 것인지 '정훈이야? 박정훈?'이라고 물었다. 그러자, 정훈이는 끄덕거렸다. 여기서, 정훈이의 행동에도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정훈이는 절대. 절대, 낯선사람이 말을 걸면 고개를 끄덕이지도, 이리저리 돌리졷 않고 그냥 묵묵부답으로 있는데, 방금 박지훈이 물어봤을땐,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하다.
" 귀엽지. 이야, 이렇게 있으니까 진짜 닮았다. 나 안 그래도 너 오기 전에 얘랑 너 닮았다고 얘기하고 있었거든. "
" 내가 언제.. "
" 아아, 정정. 내가 일방적으로 얘기했지, 같이 얘기한건 아니야. "
이쯤되면 정수정은 폭언의 아이콘이다. 아니, 폭력적은 아니니까 폭로의 아이콘이라고 해야하나. 지금 정수정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쫄려 죽을거같다. 생각보다 정수정과 박지훈이 친한거같아 괜히 안절부절 못하는게 티나는 거 같기도 했다. 난 아직도, 박지훈의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냥 아무렇지않게 대해야하나? 아니면, 또 피해야하나? 피한다는 말에 갑자기 생각났다. 오전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 '피하지 말아줘, 부탁이야.' 나름 애절하게 들렸던 그 말. 여자친구도 있다면서 이렇게 여자 둘에 끼어있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 너 근데 여긴 왜 온거야? "
" 아, 그러게. 너보러..? "
" 아무리 그래도 여자친구 있는 애는 안 건든다. 내 철칙이야. "
내가 궁금해하고 있을 찰나, 타이밍 좋게도 수정이가 여긴 왜 온거냐고 물었다. 박지훈은 뜸을 들이더니 너보러? 라고 답했다. 순간 움찔해 몸을 움찔거렸더니 정훈이가 나를 쳐다봤다. 엄마 괜찮아?
" 엄…마? "
+ 예 드디어 만났습니다 드디어 만났어요
앞으로 쭉쭉 뺄게요 근데 가끔 찌통 있을수도 있...
내용은 생각날때마다 써야하는것,,,,,,
여러분 항상 사랑합니다 댓글도 사랑해요 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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