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아빠 박지훈
박지훈은 요리를 잘했다. 도시락을 먹을때부터 생각했지만, 만약 박지훈과 결혼─결혼이라고 하기 조금 쑥스럽지만 그래도─을 한다면, 결혼까지가 아니라도, 같이 산다면 밥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었다. 아니, 물론 나도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안에 남자가 요리를 잘 하면 내가 밥때문에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박지훈은 식탁을 다 차리고, 내가 숟가락을 들때부터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니, 왜 그렇게 쳐다보는건데? 체하겠어. 라고 묻자 박지훈이 말했다. 예뻐서. 조금 오글거리는 말에 입에 있던 음식물을 밖으로 내뿜을뻔 했지만, 다행히 그 수준까지는 가지않았다. 배 안 고파? 왜 안 먹어. 너 보는 것만으로도 배불러. 그럼 정훈이 챙겨줘. 나말고 정훈이를 챙겨달라는 말에 삐진건지 입을 빼죽 내밀고는, 정훈이 혼자 잘 먹고 있거든! 이라고 소리쳤다. 그래도, 먹여주면 잘 먹어.
구청을 가려고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오는데, 박지훈이 왠일인지 잘생겨보였다. 옷도 평소와는 딱히 다를게 없는데… 왜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박지훈과 눈이 마주쳤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왜, 잘생겼어? 라고 묻는데, 내가 응. 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 무의식에서 나온 말과 행동이었다. 여태까지 박지훈한테 잘생겼다고 말한적 한번도 없는데… 박지훈은 내 말에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진심이야?'라고 물었다. 그래, 이왕 뱉어낸 말인거 기분이라도 좋게해주자는 마음에 고개를 더욱 세차게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토요일. 구청이 업무를 보지 않는 날이었다. 옷을 다 입고나서야 생각해내다니. 우리 둘은, 정말 바보였다. 하. 괜히 옷 입었다며 한숨을 금치 못하자, 박지훈이 하는 말이, 구청 안 갔으면 옷 벗고 다니려고 했어? 란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아니면 정말 개그인건지. 자기 혼자 말하고 자기 혼자 웃는데, 내가 웃지 않자 민망한건지 이내 웃음을 그쳤다. 그나저나, 그럼 오늘 뭘 하지.
──
" 이 년아, 넌 다짜고짜 와서 그게 할 말이야? "
" 아니이… 나도 빨리 말하려고 했는데… "
" 이름이도 빨리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이제 말씀 드리네요. 죄송합니다. "
" 아니, 난 자네한테 뭐라 하려던게 아니라, 아니, 뭐라 하긴 해야지. 내 딸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왜 이제 나타나? "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엄마한테도 허락을 받고 혼인신고를 하자는 박지훈의 말에 엄마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정훈이를 데리고 박지훈과 같이 지방으로 내려왔다. 당연히, 엄마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고, 나는 엄마한테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말했다. 말하는 도중에, 엄마가 끼어들어 나한테 뭐라고 하려고 하면, 박지훈이 옆에서 소위 말하는 쉴드라는 것을 쳐 주었다. 예를 들어, 다 제 잘못입니다, 라던가. 엄마도 처음에는 당황해서 화를 냈는데, 지금은 좀 누그러진듯하다. '이 년아'라고 말 한 것도, 화나서 말 한게 아니라, 약간 서운하다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타겟이 박지훈한테 돌려져 엄마는 왜 이제야 나타났냐고 물었다. 박지훈은 엄마의 질문에 눈알을 도르르 굴렸다. 아니, 엄마! 지훈이도 나 많이 찾았대! 근데 내가 맥락도 없이 숨은거고! 됐어?
" 그래, 뭐. 니들 인생 니들이 알아서 해야지, 별 수 있겠니. 보아하니 벌써부터 엄마 모른체하고 둘이 아주 금실이 좋은 거 같은데. "
" 모른체라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
" 맞아요, 장모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 "
벌써부터 장모님이라니. 아, 물론 다른 부부들도 상견례하고 그러기 전에, 장모님이라고 부른다지만,─드라마에서 봤다─ 내가 직접 겪으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엄마도 당황한 눈치였지만, 티를 안 내려고 애썼던 건지, 금방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래도, 생각했던것보다 분위기가 험악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의외로, 좋았다고 하는게 더 맞는 표현인것같다. 엄마는 정훈이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예쁘다고 같이 놀아주기에 바빴고, 그 틈을 타 내가 옛날에 쓰던 방에 들어왔다. 물론, 박지훈과 같이.
" 진짜 오랜만이다. "
" 그래도, 다행이다. 장모님이 반대 안 하셔서. "
" 그러게. 난 너 엄청 혼내실줄 알았는데. "
" … 그건 … 난 맞아도 싸. "
내 방에 들어와서─엄마는 내가 이 집을 나가고 난 뒤에도, 언젠간 내가 이 집을 다시 오는 날이 있을 수도 있다며 내 방의 가구들을 치우지 않으셨다 내가 보기엔 혼자 사는게 외로워서 그런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훈과 나란히 침대에 앉았다. 나는 뭐가 바뀐게 없는지 빙 둘러보는데 바뀐 것은 무슨, 먼지 한 톨도 없었다.─엄마가 매일 청소를 했다는 뜻이다─ 박지훈은 자기가 잘못한 것은 정말 급히 반성하고 있는지, 그 일 얘기만 나오면 한없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힘들었어도, 그래도, 뭐 어때. 지금 이렇게 행복한데.
" 우리 이제 진짜 부부다. "
" 그러게. "
" 안 기뻐? "
" 기쁘지. "
내 성격 자체가 원래 반응이 많이 없는 성격이다. 즉, 박지훈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박지훈이 우리 이제 진짜 부부라고 말하는 말에도 뭔가 낯부끄러워서 격하게 반응을 하지 못했다. 박지훈은 그걸 별로 안 기쁜 것으로 받아들였나 또 입이 삐죽 나왔다. 그 삐죽 나온 입이 귀여워 한 번 입을 맞췄다 떨어졌다. 기뻐, 많이. 원래 이런 표현도 잘 쓰지 못했는데, 박지훈이 나를 바꿔놓았다.
" 나 고민이 있어. "
" 뭔데? "
" 나 진짜 네가 너무 좋은데, 어떡하지. "
" … … "
" 이상한 눈으로 보지마. 나 진심이야. 진짜 같이 있으면 심장이 터져버릴거 같은데 어떡하지. "
정말 진지하게 고민이 있다고 말하는 박지훈이 요즘 일이 잘 풀리는데 무슨 고민이 있나 싶어 뭐냐고 묻자, 나 진짜 네가 너무 좋은데, 어떡하지. 란다. 그러게, 널 정말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을까. 이런걸 왜 그렇게 진지하게 묻는거냐는 눈빛으로 박지훈을 쳐다보자, 내 눈빛을 읽은 건지, 이상한 눈으로 보지마라고 하며 같이 있으면 심장이 터져버릴거 같다고 말을 이었다. 사실, 그건 나도야. 너가 너무 좋아. 근데, 표현을 못 할 뿐이지.
" 근데, 너 학교에서 인기 되게 많은 거 같던데. "
" 아, 그게, 내 과 특성상 여자 남자 비율이 얼추 잘 맞아서… 여자도 많아서… "
" 여자가 많아? "
" 어? 지금 너 질투하는 거야? "
사실, 저번부터 묻고 싶었다. 나는 우리 과에 죄다 여자, 여자, 여자. 밖에 없는데─정확히 말하자면, 남자가 4명이 있긴하다 근데 그 남자들도 각자 짝이 있는걸로 알고있다─ 박지훈의 과는 경영학과니까 학생도 많았고, 여자도 많았다. 수정이가 말하길, 박지훈 번호를 그렇게 따간다던 여자들이 많다고 했는데… 그게 심히 걱정되었다. 그래, 박지훈이지만, 박지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여자들이 문제였다. 그래서 박지훈한테 확인사살을 하고 싶어서 물어본건데, 돌아오는건 지금 질투하는거냐는 질문뿐. 그래, 나 질투한다. 너한테 질투한다고.
" 걱정 안 해도 돼. "
" 너는 걱정 안 돼. 그 여자들이 걱정인거지. "
" 내가 항상 말했잖아. 그 어떤 여자보다 너가 최고라고. "
" … … "
" 내 첫사랑도 너고, 마지막 사랑도 너야, 성이름. "
──
엄마에게 이제 자주 온다는 말을 뒤로, 지방에서 박지훈의 집으로 올라왔다. 박지훈이 내가 정훈이와 둘이 살던 집을 알아서 처분해주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그래서 난 정말 걱정을 하지 않는 중이다. 박지훈이 알아서 잘 해줄테니까. 그렇다고 이게, 책임을 전가하는게 아니고, 정말 박지훈이 잘할거라고 믿는다. 그 문제로 잠깐 나갔다온다고, 정훈이와 같이 놀고있는데, 박지훈을 못 본지 고작 한 시간 몇 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보고싶었다. 박지훈이. 지금 전화를 걸기에는 주책인가 싶어 전화도 걸지 못하고, 정훈이에게 계속 박지훈 얘기만 했다. 정훈아, 넌 아빠 어떤 거 같아? 우리 아빠 잘생겼지. 그리고 엄마 되게되게 좋아해. 음… 그건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왜 물어봐? 응? 아니, 너무 좋아서. 엄마도 아빠 좋아해? 응, 그럼 당연하지.
박지훈이 없는 몇 시간은 정말인지 무료했다. 아직 이 집이 익숙하지 않아, 뭐가 어디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몇 시간 동안 정훈이와 거실에서 말하고, 장난치고를 반복했다. 그때,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정훈이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쪽으로 박지훈을 마중 나갔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박지훈 뒤에 보이는 모습에 사고회로가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새아가니? "
" … … "
" 예쁘고 참하게 생겼네. 어머, 애도 너무 귀엽다. "
" 이름아, 우리 엄마 아빠. "
하하, 그래. 인생은 참 당황스럽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박지훈과 나의 인생이다.
+ 휴....... 현생에 시달려 얼른 글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100화까지 연재해달라는 독자님도 계셨고, 아무튼 오래오래 해달라고 하시는 독자님들이 많아서
마음이 아프네요.... 여러분 저에게는 아주 많은 소재가 있답니다
한 열 개는 족히 넘을걸요? 그거 다 쓰고 인생 마감하려 하니까 이 작품이 끝난다고 걱정 마시옵소서
그때는 더욱 매 회 기대되는 작품을 구성해올게요!!!!!!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마시구.... 아무튼 저 이번에도 초록글 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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